2014년 2월 4일 화요일

주님의 역사와 인격의 차이점(요한복음 21:1~6)


주님의 역사와 인격의 차이점
요한복음 21:1~6

서 론

우리는 주님의 역사를 따르는 종으로서 그 생활의 차이점은 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역사를 따라서 하늘과 땅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주님의 역사가 없는 인격 (요한복음 21:1~6)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을 친히 보았고 만져 보았고 성경을 깨닫게 하는 은혜도 받았고 또는 세계적인 사명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큰 권능으로 역사 하지 아니할 때의 인격이라는 것은 어떻다는 것을 본문에서 잘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다시 할 일 없는 인격으로 자기 고향 어장으로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3년간 안해 보던 고기잡이도 해보았다. 고기를 잡아 보니 3년간에 잘 잡던 고기를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못 잡는 인격이 되었다. 이러고 보니 과거에 예수님을 따라가기 전에 어부의 인격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실업자 중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격이다. 나가서 식생활을 해결하자니 아득하기만 하고 속담에 시세 폭락이라는 말이 베드로에게 해당된 말이었다. 기술도 노력도 소용없고 좋은 그물도 소용없는 전부가 헛것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이때 주님은 그들을 찾아갔던 것이다. 주님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했던 것이다. 순종하고 보니 150마리라는 많은 물고기를 얻었다. 얻고 보니 겨우 어부라는 인격을 찾게 되었다. 그 때 베드로는 심각히 깨닫는 겸손이 생겼다. 나는 이제 주님을 떠난다면 고기도 못 잡을 사람이라는 겸손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될 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유구무언의 태도에 주님이 아신다는 한마디를 대답했다. “너는 내 양을 먹이라”는 음성을 들었으나 용기 잃은 맥 떨어진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주님이 역사하지 않는 종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2. 주님이 역사 하는 종의 인격 (사도행전 3:1~10)

1) 대중을 움직이는 인격

인간이 상상 못할 일이다. 고기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는 인격이 한번 입을 열 때 3천명이 통회했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으로는 이해 못할 일이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은 금일에 와서 이루어지는 인격이다.

3년간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훌륭한 것을 보기도 했고, 훌륭한 교훈을 듣기도 했고, 훌륭한 주님의 부활체를 만져 보기도 했다. 그러나 보고 듣고 만져 보았다는 인격은 하등의 열매는 없었다. 웬일인지 뜨거운 불덩어리가 몸에와 부딪힐 때 그는 홀연히 3천명을 회개시키는 위대한 설교자인 인격을 소유했던 것이다.

2) 마른 다리에 힘을 주는 인격(사도행전 3:7~8)

나면서부터 다리가 말라서 일 평생 힘을 얻어 보지 못한 그 다리에 말 한 마디에 힘을 주는 인격이다. 은과 금은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준다는 말 한 마디에 예수님의 이름은 높아졌던 것이다. 이것이 세계를 지배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과학 만능을 부르짖는 금일의 세계를 지배할 인격은 여호와의 이름의 힘을 받는 자이다.

3)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인격(사도행전 5:1~11)

인간이 볼 때 두려워 아니할 수 없는 인격이다. 말 한마디 책망이 있을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일은 너무나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인격이다. 이 인격을 소유한 자는 원수를 회삼물 같이 밟는 인격이니 이러한 인격이 최후의 승리를 이룬다는 것이다(이사야 41:25). 하나님은 알파적인 초대교회를 수제자를 들어 쓴 것은 약간의 표적이 되고 오메가가 되는 동방 땅 끝의 종을 부르는 일은 전세계의 열왕을 굴복시키고 세계적인 원수를 짓밟고 나가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써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것이다.

실수 많은 베드로가 어제는 주님을 저주하고 고기 한 마리 못 잡는 인격이 금일에 와서 이와 같은 표적을 보았다. 이것은 기독교 종말에 지렁이 같이 무가치한 인격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들어 쓴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 성경도 똑똑히 모르고 아무런 영적 체험도 없는 베드로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썼거든 말세에 성경 지식을 소유하고 쓴 시련 겪은 권세 받은 종의 역사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는 어떤 인간의 과학적인 인물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최저로 떨어진 지렁이 같은 인간이라도 주님만 사모하는 자라면 일조에 큰 변동을 일으키는 일이 하나님께로 오는 그 역사를 힘입어서 쓰여지는 인격으로 교회를 세웠고 교회의 끝을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신이시요, 무소불능 하신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종을 최저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최고로 당신과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올리기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이론이 아니요, 확실한 증거가 있는 사실이니 종말의 역사를 담대히 믿고 여호와를 앙망하여야 할 것이다(이사야 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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