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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5일 일요일

이적과 기사를 행한 사도들(사도행전 2:43 - 3:10)


이적과 기사를 행한 사도들
사도행전 2:43-3:10, 요절:43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서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너희들이 나를 믿으면 내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6:17~18). 이와 같이 사도들이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사도들이 이적 기사를 행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 기사와 이적을 행하므로 모든 사람이 두려워 함(43)

학생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모든 기사를 행하신다면 학생들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을 두려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분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기 전에 강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불학 무식한 사람들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에게 이적과 기사가 많이 있게 되니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신 것은 예수는 분명히 부활 승천하여서 사도들을 들어 쓰는 것을 만민이 알도록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지금도 종들에게 역사가 같이 하는 것은 그 종이 전하는 말을 다 믿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2. 모든 사람들이 사도를 받들기 위하여 하나가 됨 (44~47)

모든 사람들은 사도들이 역사하는 것을 볼 때에 은혜를 받고 자동적으로 모든 재산을 갖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나누어주며 날마다 한 곳에 모여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교회를 부흥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다 같이 살도록 도와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자들이 은혜를 받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돈이 없는 사람은 잘 먹지 못하고 굶주리며 돈이 많은 부자들은 잘 먹고 사는 것과 같이 그때 사도들이 사는 나라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서 모든 물건을 나누어주는 일이 있게 되어 어려운 일이 없이 다 같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공산당은 남의 재산을 빼앗아서 자기 소유로 삼고 부자를 죽이고 압박하지만 그때에는 부자들이 자진해서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보고 다 같이 먹고살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학생들, 지금도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훌륭합니까?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를 않고 다 같이 먹고살아야 된다고 자진해서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은 인간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것은 이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러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앉은뱅이가 일어남 (3:1~10)

예루살렘에 미문이라는 성전 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 앞에 앉아 구걸을 하는 불쌍한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걸을 수 없는 병신입니다. 베드로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가 베드로에게 구걸을 할 때에 베드로는 내게 돈은 없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면서 손목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걸으며 베드로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모든 사람들은 기이히 여겼던 것입니다.

학생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표적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서지도 못하던 앉은뱅이는 얼마나 기뻐할 일이겠습니까?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가 기뻐서 걷고 뛰듯이 우리들도 예수를 믿고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얼마든지 기뻐 뛰면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묻 는 말

1. 모든 사람들이 왜 사도들을 두려워했습니까?
2. 돈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무슨 일을 했습니까?
3. 앉은뱅이가 누구 이름으로 걸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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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8일 토요일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유다서 1:3, 1:20~22)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
유다서 1:3, 1:20~22

유다서 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서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니요, 신앙 노선의 정로가 있는 반면에 곁길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정로를 가기 위해서는 곁길을 가는 자들과 자동적으로 싸우는 일이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신앙 정로가 있는 가운데 곁길이 있게 하는 것은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신앙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는 것을 알 것 (유다서 1:3)

믿음의 도라는 것은 인간 편에서 저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미리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대로 실천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나타난 것이 구원을 완성한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신 역사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그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서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고, 구원을 완성하고,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해 주고 구원하는 일은 이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 그대로 사람에게 주는 것을 속죄와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도라는 것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완성하신 것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거저 받게 되는 것이다.

2.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할 것 (유다서 1:20 상반절, Earlier)

믿음이라는 것은 거룩한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거룩한 성부, 성자, 성신이 행하시는 역사이니 그 역사를 믿음을 통하여 받게 될 때에 ‘나’ 라는 자체는 그 역사를 믿는 신앙에서 날마다 발전하여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내가 믿으므로 내가 완전해 진다는 것보다도 거룩한 믿음 위에서 ‘나’ 라는 것이 전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거룩한 인격을 하나님께 은혜로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으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등한히 하는 것도 탈선이요, 내가 예수를 믿으니 내가 행한다고 장담하는 것도 탈선이다. 오직 우리는 거룩한 믿음 위에서 조금이라도 불의를 용납지 말고, 싸워 나가는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계속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이기는 생활을 할 때에 자아라는 인격은 자아의 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믿음 위에서 날마다 향상되는 것이다.

3. 성령으로 기도할 것 (유다서 1:20 하반절 , Back)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생활이 없이는 아무런 힘조차 얻지를 못하게 된다. 언제나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으므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 승리를 이루게 되어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기도하는 영계에 들어가려면 조금이라도 불의를 용납하지를 않아야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 위에서 불의와 싸워 나갈 때에 성령의 기도는 내게 강하게 역사하므로 완전 승리의 인격을 이루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4.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킬 것 (유다서 1:21 상반절, Earlier)

우리는 ‘나’ 라는 것이 스스로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나’라는 자체는 완전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려면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된다. 조금이라도 속화 된 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생활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바라본다든지 자기의 어떤 욕망을 채워 보려는 것은 참된 신앙에 들어간 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거룩한 믿음인 동시에 인격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겨지는 것을 기독교인의 신앙의 정로라고 한다.

5. 긍휼을 기다리는 것 (유다서 1:21 하반절, Back~22절)

긍휼이라는 것은 게으른 자나 타협을 하는 자나 교만한 자에게는 있을 수 없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는 긍휼함을 기다리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불의와 타협하면서 “주여,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라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이 될 것인가!

결 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 원수가 누구냐 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 : 정욕대로 행하는 자.
둘째 : 기롱하는 자.
셋째 : 당을 짓는 자.
넷째 : 육에 속한 자.
다섯째 : 성신이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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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7일 금요일

심판 날에 정죄 받을 행위(유다서 1:14~16)


심판 날에 정죄 받을 행위
유다서 1:14~16

하나님께서 아담의 7대손 에녹의 예언한 일을 본문에 기록하게 한 것은 변화 승천할 종들이 일어날 때에 정죄 받을 자들의 형편을 말했다. 심판 날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 하여도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정죄 받을 것을 말했다. 강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말했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행동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원망하는 자

원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망의 말이 있으므로 하나님은 진노 하여 그 무리를 진멸 시킨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서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원망 없이 나가야 한다.

예를 든다면 한 가정에 부부가 목적을 두고 생활해 나갈 때에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일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그 남편을 받들어 섬기므로만 그 가정은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우리는 남편이 되시는 예수를 맞이하려면 아무리 난관이 와도 원망 없이 싸워 나가야 한다. 만일 원망하는 말을 하는 자가 있다면 정죄 받게 될 것이다(야고보서 5:9).

주께서 심판하시는 날은 끝까지 원망하지 않고, 나가는 자만이 남은 자가 될 것이니 우리는 끝까지 원망치 않고 나가는 자가 되어야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 불만을 토하는 자

불만이라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일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인데 갚아 주시려 오시는 주님을 영접 할 자가 주님께 대하여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주의 종이라 하면서 주님의 일에 불만을 가지는 자는 자동적으로 정죄를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군대가 전쟁에 나가서 자기 나라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애국 정신이 아니요, 나라를 대적하는 정신이니 반드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순종하신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주님의 일에 불만을 가질 수 없다. 불만을 가지는 자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행동이니 마땅히 정죄 받아야 될 것이다.

3. 정욕대로 행하는 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린 것은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인데 정욕대로 행하는 자는 십자가를 대적하는 자이니 정죄를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종이 주인의 집에서 일하면서 자기 정욕에 따라서 일을 한다면 주인의 집에 도둑이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산 백성 중에서 주의 것으로 쓰여져야 할 종인데 자기 정욕대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망치는 행동이니 이러한 자는 용서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4.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는 자

우리 입술이라는 것은 주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 외에 자기의 것을 자랑한다면 십자가의 대적이 된다. 어떤 사람이 먼 곳에 급한 소식을 전하러 보냄을 받은 자가 그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도 자기를 내세우는 말을 하고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용서 없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제일 급한 소식은 죽어 가는 죄인들에게 십자가를 말해 주는 일인데 어떤 종이 강단에서 자기의 지식이나 인격을 자랑하게 된다면 십자가의 강단을 더럽히는 행동이니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저주가 온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바울은 절대로 자기 지혜나 지식을 말하지 않은 것은 십자가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다.

5.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

어떤 종이 충성된 말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아첨하는 행동을 한다면 이러한 자들은 정죄를 받게 된다. 종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충성 되이 말하는 것이 충성된 증인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워야 할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아첨한다면 이 사람은 삯꾼의 행동이니 이러한 무리는 재림의 날에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충성된 증인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 있다 하여도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자 외에는 주의 날에 설 자가 없는 것이다. 가장 옳은 일은 주님 올 때까지 충성 되이 증거하는 자요, 가장 불의한 자는 주님 올 때까지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이다.

결 론

가장 두려운 일은 종 된 자로서 정죄를 받는 일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종 된 자로 칭찬을 받는 일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여 심판 날에 그 거룩한 반열에 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노력하여야 한다.

첫째로 중심 성결을 위하여,
둘째는 양떼를 살리기 위하여,
셋째로 사상을 지키기 위하여,
넷째는 진리를 변론하기 위하여 조금도 타협치 말고, 용기있게 싸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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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6일 목요일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라(유다서 1:17~23)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라
유다서 1:17~23

서 론

성령으로 시작된 신령한 교회가 종말의 심판기가 올 때에 지도자의 부패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피 흘려 세운 교회가 막대한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을 성령님은 미리 아시고, 사도들에게 감동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한 것이니 우리는 이 예언을 마음 속 깊이 기억하고, 정신을 차려 교회를 바로 지도하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금일에 우리의 원수가 되는 자들은 본문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다 (유다서 1:18)

이들은 사도적인 경건한 신앙 생활을 변질시켜서 인본주의적인 세속화로 흐르되 육체적인 정욕의 자유를 부르짖는 동시에 초대적인 신앙 노선을 오히려 기롱하는 자들이니 신령한 일을 어리석게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이다.

2. 당을 짓는 자들이다 (유다서 1:19 상반절, )

우리는 그리스도는 머리요, 성도는 그 몸의 지체라는 것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사상이며, 정신이며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부패를 따르는 무리들이 한 자기의 그룹을 만들어 보려는 야욕적인 교권주의의 파당이 올 것을 말한 것이다. 이런 무리들은 심판 날에 용납할 수 없는 미운 물건이 될 것이다.

3. 성령이 없는 자들이다 (유다서 1:19 하반절)

기독교라는 것은 성령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사단의 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잉태할 때부터 성령의 역사로 시작되고 부활 승천할 때도 성령으로 된 것이다(로마서 1:4, 8:11). 또는 교회가 완전히 서는 것도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것이니 교회가 끝을 맺는 것도 인간의 힘과 능으로 못하되 하나님의 신으로만이 되는 역사를 종말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스가랴 4:6, 계시록 11:4~5).

결 론

아무리 심판기의 교회가 부패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니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서 끝까지 남은 자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도적인 신앙에서 조금이라도 변하여지면 개포도가 되는 것이니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계시록 1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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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5일 수요일

교훈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요한2서 1:1~11)


교훈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요한2서 1:1~11

서 론

하나님은 교훈대로 역사 하는 신이시니 교훈 안에 모시고자 하는 자라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교파 안에만 하나님이 역사 한다고 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그 안에서 도저히 역사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교훈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은 하나님의 교훈을 존중히 알고 교훈대로 실행하시는 참 신이신 것을 믿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어떤 생활이 교훈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인가에 대해서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진리를 위한 사랑 안에서 행하는 생활이다 (요한2서 1:1~2)

하나님은 진리를 위하여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은 똑같이 역사 해 주므로써 한 지체를 이루는 교회를 구성케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남녀에 진리를 위한 사랑이 아닌 것이 있다면 마귀가 틈을 탈 것 이로되 진리를 인한 사랑에서의 교제는 하나님이 같이 함으로써 열매를 나타낼 것이다.

사랑은 마귀를 청하는 사랑도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사랑도 있으니 진리를 위한 사랑에서만이 하나님은 역사해 주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진리를 위한 사랑의 계명을 지킨 단체를 교회라 하는 것이다.

2. 온전한 상을 잃을까 삼가하는 생활 (요한2서 1:7~8)

하나님의 신은 우리의 구원만을 목적 하여 역사 하시는 신이 아니요, 온전한 상을 이루도록 지혜와 능력으로써 미혹을 받지 않도록 역사 해 주는 신이시니 온전한 상을 잃을까 삼가하는 사람은 돕기도 하고, 깨우치기도 하고, 더욱 열매를 맺도록 역사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돕는다는 믿음은 있으나 상을 잃을까 봐 삼가하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거기서 역사 하지를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의 할 일을 힘써 하기를 기다리면서 역사 하기 때문이다.

3. 교훈 안에서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요한2서 1:10~11)

우리가 교훈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싸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훈을 주시고 그 대적이 따르게 한 것은 싸우는 자에게 더 축복을 하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도록 역사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훈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생활이니 하나님은 기뻐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하나님의 교훈을 중심 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이 말씀을 이용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하나님의 교훈을 그대로 가지지 않는 자는 죄인만이 아니요, 악한 일이 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 그리스도의 영 이기 때문에 싸워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교훈 안에서 싸우는데 있어서도 두 가지로 보게 된다. 어떤 형제가 그 교훈을 바로 믿고 그대로 활동을 하다가 실수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건져 주기 위해서 싸워야 할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찾기 위해서 싸우는 싸움도 있고, 막기 위한 싸움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란 것은 포위에 든 사람을 건져내기 위한 싸움도 있는 것이다. 어떤 형제가 옳은 교훈을 가진 자로서 탈선된 교훈에 미혹을 받을 때 찾기 위해서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의견과 자아의 고집을 위해서는 강하게 나가서는 안 될 것이로되 교훈을 위해서는 사자같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 론

교훈이 없이 신을 모시는 것은 자동적인 우상이 되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만들었다고 만 우상은 아니다. 교훈이 아닌 것을 숭배하는 것이 우상이다. 다시 말하면 교훈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 외에는 하나님을 찾아도 우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라고 말한 것이다(요한1서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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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언자 예수(요한1서 2:1~2, 2:28~29)


우리의 대언자 예수
요한1서 2:1~2, 2:28~29

서 론

주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한 자이심으로 우리의 대언자로서 다시 올 때까지 역사하는 것이다. 이 대언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람을 위해서 대언 하느냐에 대해서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1. 양심적인 고백이 있는 자 (요한1서 1:9)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지만, 고백이 없는 사람을 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화목제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고백을 받고, 하나님 앞에 고백한 자를 위하여 대언기도 해주는 것은 고백할 공로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 값은 용서 없이 죽는다는 율법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2. 실수한 자 (요한1서 2:1~2)

이미 자백을 하고, 속죄를 받은 자라도 또 다시 실수가 있는 경우에 그 사람이 이미 올라간 기도가 있기 때문에 대언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여, 나를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라고 이런 기도를 할 때 그는 대언기도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성령을 보내서 다시 부흥을 주고, 시험에서 다시 이기는 큰 힘을 주기 위해서 주님은 대언기도 하는 것이다.

3. 주 강림시에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대언기도 하는 것이다 (요한1서 2:28~29)

우리의 완전이라는 것은 주님의 대언기도로 되는 것이다. 약한 자를 능하게 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기 위하여 심지어 잠든 자를 깨우치기 위하여 문을 두드리는 심정을 가지신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문 밖에서 재촉하는 것이다(계시록 3:19~20).

주님은 당신의 택한 종이 쓰러지고 피곤해 어찌할 줄 모를 적에 여호와만 바라봐도 새 힘을 받도록끔 역사하는 것이 대언기도로 되는 것이다(이사야 40:30).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마귀 압력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강권역사로 나리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주 강림 시기는 마귀도 극도로 참소하고 주님도 극도로 강하게 대언기도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안에만 있는 자라면 된다는 것이다.

결 론

주님은 일천 구백년 동안을 대언기도로써 승리를 이루어 온 것이다. 만일 주님의 이와 같은 간구가 아니라면 마귀 참소를 벗어날 종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울이 이것을 믿고 누가 나를 그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용기를 가지고 나섰으므로 그는 승리의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로마서 8:34~35). 우리도 이와 같은 용기를 가지고 나서지 않고는 도저히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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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4일 화요일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요한1서 2:1~6)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
요한1서 2:1~6

요한일서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케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한 때에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으로 나타났다 하여도 그 시대 사람 중에 선구자라고 볼 수는 있지만, 온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될 때에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것을 알게도 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체가 온전해지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의 사랑이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되기를 목적하고 역사 하시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케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우리를 위하여 화목 제물 된 사랑 (요한1서 2:1~2)

타락한 인생을 온전케 하는 역사는 전부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죄를 진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지만, 죄 값대로 심판을 나릴 하나님께서 심판 받을 인간에게 심판을 나리지 않고, 화목하자는 사랑에서 먼저 인간의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세우신 것이 인간을 온전케 할 수 있는 사랑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은 오직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열매가 있게 되므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기 위한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독교의 온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 안에 이 사랑의 역사가 없다면 자동적으로 전부가 거짓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 되신 것을 믿는 양심 속에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랑을 받은 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온전케 하는 사랑 (요한1서 2:3~5)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 든 지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온전케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 든 지 무조건 온전케 된다면 공의가 없는 것이니 공의가 없는 사랑은 심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 하기 위하여 지금도 항상 대언기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역사이니 그 말씀대로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 하신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자가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 죄를 깨닫고 말씀대로 행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에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역사가 오는 것은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의 대언 기도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오늘에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만, 그 사랑이 자기 속에서 온전케 되는 체험을 받은 자는 심히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미약한 원인이다. 누구든지 말씀대로 행하려는 것이 강한 자라면 그 사랑의 역사도 강하게 오는 것이다.

3. 예수의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되는 일 (요한1서 2:6)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는 동시에 지금도 행하시는 그 역사대로 따라서 행하는 것을 신자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행함으로서 그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순종 하겠다는 마음이 불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역사가 우리 속에 와서 역사 하므로 써 우리는 그 역사에 따라서 행해지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가 진액을 받되 그 진액이 온전케 되어 열매가 맺어진 가지는 더 가꾸고, 진액을 받되 그 진액이 온전케 되지 를 못한 가지는 제하여 버리는 것과 같다.

신앙 생활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라야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왕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것이니, 그 사랑이 온전케 된 자만 그 사랑 속에서 구하면서 그의 역사대로 쓰여지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랑은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으며,

둘째는 자기가 이익을 보기 위하여 남을 사랑하는 사랑도 있으며

셋째는 자기가 남을 사랑하되 그 사람이 온전케 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요, 하나님이 당신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요, 당신의 아들을 희생 시켜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의심 없이 믿고 순종 하는 사람 속에 온전케 되는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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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요한1서 2:24~29)


가르친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요한1서 2:24~29

기독교는 세계 통일의 완전 교훈을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니 그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그 교훈 안에 그대로 거하는 생활을 할 때에 그 교훈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에서 그 시대 사람에게 각성을 주는 것이 기독교 사명이다. 그러므로 요한1서 2:27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교파의 울타리 안에서 거 하는 것보다도 가르친 그대로 가감없이 생활할 때에 다음과 같은 축복이 있다.

1.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요한1서 2:24~25)

가르친 교훈은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교훈이니 그 교훈에서 가감된 생활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은 그 생활에 있을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진액이 없는 나무가 발전이 없듯이 영원한 생명이 없는 생활에는 아무런 생활에 산 체험적인 발전을 가질 수가 없다. 영원한 생명이 있을 적에 산 믿음이요 없을 적에 죽은 믿음이다.

기독교의 신앙 체험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오는 것이니 이것은 가르친 그대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자만이 받게 되는 체험이다.

2. 기름 부음을 받게 된다 (요한1서 2:26~27)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에서 나오는 교훈은 물질에 국한된 교훈이니 사람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요 기독교 안에 교훈이라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종들이 성령으로 가르침을 받아 기록한 것이므로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는 교훈이니 완전치 못한 인간의 지식이 완전한 것을 가르치는 교훈에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가르친 교훈 안에 거하는 자라야 그들이 받은 기름 부음을 같이 받으므로 그들이 못 다한 사명을 우리가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3. 주의 날에 담대함을 얻게 된다 (요한1서 2:28)

주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셔서 부활 승천하기까지 행하신 일은 죄인을 부르기 위한 법을 완성하신 것이요 다시 강림하실 때는 가르친 교훈 그대로 생활하며 싸워서 승리한 자에게 갚아주러 오시는 날이니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하여도 가르친 그대로 교훈 안에 거하며 생활하지 않은 자는 주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느 학생이 시험을 보는 날에 가서 그 선생이 가르친 교훈 그대로 답을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기독교 안에 많은 종들이 각각 자기의 주관을 세우면서 여러 가지 학설을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교훈 안에 그대로 있지 않는 생활이 되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운 사도들의 교훈 그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조금도 혼선이 없고 조금도 가감이 없는 정확한 다릴줄의 진리를 잡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가르친 교훈은 하늘이 돈다는 과학이 지구가 돈다는 과학으로 변해진 것은 사람은 완전한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고 나날이 발전하는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조물주의 교훈이니 조금도 사람이 가감할 수 없는 교훈이므로 그 말씀대로만 순종할 때에 주의 날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왕권의 영광을 영, 육이 아울러 받게되므로 담대함을 얻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허공을 치는 바람잡이 생활은 하나님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생활이요 가장 작은 일에서 큰 열매를 가져오는 생활은 그 교훈 안에 거하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갈릴리 해변에서 불학무식한 사람으로 어장을 버리고 예수를 따를 적에 너무나 어리석은 일 같으나 요한이 교훈 안에 거하므로 완전한 승리의 사도로서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하나님께 받은 사도가 되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교훈 안에 거할 때에 강한 자가 되고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그 교훈 안에 거하게 될 때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역사하시되 교훈대로 역사하는데는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을 들어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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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3일 월요일

소망과 성결(요한1서 3:1~3, 3:22)


소망과 성결
요한1서 3:1~3, 3:22

서 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적에 특수한 것은 소망이다.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외에 동물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로 소망을 잃고 보니 금수보다 더 악해 진 것이 인간의 타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신 것은 소망을 잃은 인생에게 산 소망을 주는 동시에 자동적인 성결이라는 인격을 가지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기독교의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소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요한1서 3:1)

우리의 소망은 영생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데서 부터 싹트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의 씻음을 받을 때부터 확실한 증거로 받은 것이다(로마서 8:15~17). 증거라는 것은 성신이 오셔서 아버지를 찾도록 역사 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생의 기업을 상속할 권리를 받은 것이다.

2. 주 예수님과 같이 될 소망이다 (요한1서 3:2)

우리는 자녀 된 것으로만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자녀 된 자로서의 자기가 할 직책을 다할 때 아버지께서 큰 사명을 맡기어 역사 하도록 하되 예수님과 동등한 왕권을 받도록 해준다는 것이 종 된 자의 소망이다. 첫째 아담과 같이 죽게 되었던 몸이 예수님의 몸과 같이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3.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는다는 소망이다 (요한1서 3:22)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는다는 소망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특권이 있으니 요청을 얼마든지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풍부한 소망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주마는 약속이 있는 동시에 구하는 자에게만 준다는 것이니 하나님 앞에 담대히 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결 론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지 않고 깨끗하게 살라고만 한다면 이것은 세상 도덕적인 의식적인 종교에 불과한 것이다. 완전한 소망을 주므로서 산 생명의 생활이 있는 행동에서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양심 중심 사상 생활이 깨끗해지는 것을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성결이라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자로서 중심에 불결한 마음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소망을 얻은 자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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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과 성결(요한1서 3:1~9)


하나님의 사랑과 성결
요한1서 3:1~9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경륜은 완전 성결의 인격을 이룬 자로써 거룩한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서 쓰신 것은 마귀를 이기는 자를 완전히 성결에 이르른 인격으로 인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과 성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는 사랑 (요한1서 3:1)

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고싶은 심정을 가지시고 인간이 그 심정을 알게 하는 동시에 실천적인 증거를 나타낸 사랑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의 비밀은 세상과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세상이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없는 악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명분을 얻게 된다는 것은 그 은혜를 받은 자 밖에는 알 자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사랑을 받아 자녀가 된 자는 깨닫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당하는 일도 있게 되는데 그것은 거룩한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한 데서 세상에 대적이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의 택함을 입은 자 인고로 미움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요15:19).

2. 왕권을 받게 하는 사랑 (요한1서 3:2~3)

하나님의 사랑의 한계는 죄인을 불러서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는 것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고 거룩한 당신의 아들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서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성결은 마음에 두지를 않고 한 죄인의 한 사람이 되는 자리에서 만족하여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에 목적을 두고 싸워 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같이 왕권을 누리는 단계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모든 순교자들은 재림의 날에 완전한 구속을 받는 몸이 될 것을 바라보고 순교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다.

3. 죄를 없이하는 사랑 (요한1서 3:4~5)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용납하는 사랑이 아니고 죄를 없이 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한 체험을 받으려면 죄와 싸우는 생활에서 자신의 죄의 근성까지 없이할 것을 믿고 싸워 나갈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 죄를 없이 하는 역사를 하시므로 거룩한 인격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행함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죄를 없이 하는 그 사랑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4.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랑 (요한1서 3:6~8)

어떤 사람이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서 마귀의 일을 용납한다면 거짓 영의 미혹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 자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조금도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마귀의 일을 없이 하는 주님의 역사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풀 때에 사랑의 씨를 먼저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천적인 사랑을 가지셨으므로 말로만 거룩하게 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고 거룩한 씨를 주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죄를 이길 수 있는 씨를 주어서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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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일 일요일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예수(요한1서 3:4~12)

요한1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처음부터 죄를 범한 자는 마귀요,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자는 예수님이시다. 마귀가 없었으면 죄가 없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마귀를 창조했느냐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마귀는 하나님이 낸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같이 마귀도 스스로 있었다는 이원론을 말하는 자도 있다. 또는 천사가 타락해서 마귀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창조하신 것은 근본이 가장 간교한 뱀이다. 가장 간교하다는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이러한 기능을 준 것은 아무리 꾀이는 일이 있어도 가장 간교한 뱀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인줄 믿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죄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남을 범죄 하도록 꾀이는 죄도 있고, 꾀임을 받아 범하는 죄도 있는 것이다. 남을 꾀어서 범죄 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행동이요, 꾀임을 받아 범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꾀임을 받아 범죄할 때에 깨닫도록 해주는 일이 있으며, 그 죄를 용서해 주는 법을 세운 것이 속죄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죄를 짓게 꾀는 것이 옛 뱀인 용의 역사이다(계시록 12:9, 20:3).


이제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예수님의 역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죄를 없이 하려고 세상에 나타나신 역사 (요한1서 3:4~5)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세계 인류 가운데 택함을 입은 사람의 죄를 없이 하는 일을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모르고 흑암 속에 거하는 사람을 찾아 오셔서 행하신 일이다. 만일 사람이 연구할 수 있다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역사라면 인간의 죄를 없이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나라에 계시던 예수님이 죄를 진 인간들을 찾아 오셔서 그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법을 세우신 것이니, 이것이 만민의 죄를 대속한 십자가이다.


죄라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없이 할 수 없고, 죄를 범한 자를 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라야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죄를 벌할 권리가 있는 자라고 해서 법을 무효로 한다면 이것은 법을 낸 자를 멸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며, 법을 세운 자에게도 법대로 벌을 주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없애는 일을 하기 위하여는 독생자를 죄인을 대신해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셔서 역사 하는 것밖에 다른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3년간 이적을 행하게 하셨고, 아들이 십자가에 죽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골고다에 높이 달아 왕래하는 사람들까지라도 알게 하셨고, 아들이 완전 승리로 부활한 후에도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에게까지 나타나 만져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증거로 나타냈고, 십자가에 죽는 것은 세상이 알도록 하시었고, 부활하신 것은 친히 나타나셔서 보여 주셨던 것이다. 누구든지 나타난 예수를 의심없이 믿는 자는 그 죄를 없이하는 속죄의 은총을 주시는 동시에 다시 기억지도 않으신다.


인간의 죄 하나를 없애기 위하여 역사하신 일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일보다 더 큰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천지가 없어진다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없이 한 사람은 영원히 영생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는 역사 (요한1서 3:6)


주님께서는 인간이 과거에 지었던 죄를 없이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범죄치 않도록 성신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성신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역사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나게 될 때에 죄를 범하는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에 결코 범죄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는 행동이요,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을 벗어나는 행동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면서 죄를 범한다면 미혹을 받은 자라고 볼 수 있다. 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고, 한 교회 안에서 사는 것을 신앙 생활로 본다는 것은 아무런 산 체험이 없는 사람들의 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 있고 주님은 우리 안에 있어서 당신이 하실 일을 우리를 통하여 하시고, 당신이 받은 왕권의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고자 하시는 것이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요,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죄를 그냥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죄가 없는 동시에 죄를 없이하는 일을 하시고, 죄 없이 함을 받은 자를 들어 쓰시되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3.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역사 (요한1서 3:8)


예수님께서 먼저는 죄를 없이하는 일을 하여 마귀의 일을 이기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참으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므로써 죄가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평안히 살게 되는 것을 새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 마귀의 일을 없애지 않는 것은 마귀의 일을 이기는 사람에게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일을 허락한 것은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마귀의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일이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일이 없다면 마귀의 일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마귀의 일도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것은 마귀가 역사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큰 영광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마귀의 일을 용납한다면 그 시간부터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마귀의 일을 없이 하려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열매 없는 자가 되어 가인과 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고, 오직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있다.


결 론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는 동시에 죄를 용납할 수 없고, 죄를 용납지 않는 동시에 회개하는 자의 죄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하나가 되려면 죄를 없이 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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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 일을 멸하려 나타난 예수(요한1서 3:7~8, 12, 4:2)

서 론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마귀 일이다. 하나님께서 마귀도 일할 수 있게 허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충성과 진실을 보자는 것이었으나 인간들이 모두 마귀에게 먹힘을 당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슬퍼하는 것보다도 마귀를 없애자는 진노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하여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1. 범죄 하도록 미혹하는 것이다 (요한1서 3:7~8)


인간이 미혹을 받는다는 것은 중생한 자녀를 미혹하려는 마귀에게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중생치 않은 마귀의 자녀는 미혹을 할 나위조차 없는 것이다(4-7). 미혹이라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이 나게 만드는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붙여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믿음이란 문제를 가지고 자기 어떤 주관적인 소욕에 붙인다면 믿음도 유혹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2. 의로운 일을 미워하는 일이다 (요한1서 3:12)


사람이 의를 사랑하면서도 미혹을 받는 죄도 있고, 의를 미워하여 악에 속한 자도 있는 것이니 고의적으로 의를 박해하고 의를 미워한다는 것은 마귀에게 완전히 속한 자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인의 범죄라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다.


3.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부인하는 일이다 (요한1서 4:2)


마귀는 인간 지식을 끼고도 역사하는 것이니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 마귀의 일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인류가 당하는 범죄다. 인간이 죄를 취급할 수 없고, 정당화시키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 흑암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고는 마귀를 멸할 자는 인간에게 전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마귀를 없애게 하는 일은 죄악의 권세를 깨뜨리는 속죄의 법으로 만이 개인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 주님이 나타나서 행하신 일은 각인의 중심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를 없애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구름 타고 다시 올 때 전 세계의 인류를 미혹하던 마귀를 없애는 반면에 그 때까지 회개치 않고 마귀에게 속하여 사는 자는 전멸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 인격을 이루기 위한 것이요, 둘째,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계시록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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