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일 토요일

베드로와 요한의 사명 차이점(요한복음 21:15~25)


베드로와 요한의 사명 차이점
요한복음 21:15~25

서 론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특히 대표적인 자로서 인정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시인하는 바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두 사도의 사명의 차이점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두 사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기독교 종말의 시대에 관한 문제가 결부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사명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사명을 구별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 베드로의 맡은 사명 (15-19)

주님께서 당신을 부인하던 베드로에게 세 번까지 반복하여 물어 본 것은 이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베드로의 심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베드로의 겸손을 요구하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모든 제자는 다 부인할지언정 자기만은 주를 위해 죽겠다고 장담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사명을 가진 종이 가룟 유다 외에 더 큰 실수를 한 자는 베드로였다. 그러나 베드로가 끝까지 주님을 따라 갔기 때문에 이런 실수도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미리 도망했던들 이런 과오는 없었을 것이로되 끝까지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따라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실수가 있어도 제일 열심히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주님은 “네가 얼마만큼 나를 사랑하는 중심이 있어서 애썼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니 너는 낙심 말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은혜 시대의 양떼에게 양식을 나누어줄 복음의 총 책임자로 너를 세운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들어서 높이 썼던 것이다. 이방 땅에 복음을 나가 전하는 일에 문을 연 자도 베드로요, 예루살렘 교회에 큰 부흥을 일으킨 자도 베드로요, 기독교 역사에 제일 큰 이적을 먼저 행한 자도 베드로요, 심지어 옥에 갇혔어도 천사가 그를 옥에서 해방해 준 일도 그의 사명이 컸기 때문에 천사까지도 동원했던 것이다. 주님은 사명을 맡긴 후에도 사명을 감당하도록 역사해 주겠다고 말할 적에 네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므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주님은 사명자에게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주는 것이 주님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2. 요한 사도의 사명 (20-23)

베드로는 요한 사도의 사명을 주님께 물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러 두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요한의 사명을 말한 것이다.

요한의 사명은 주님이 다시 올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사명적으로 받은 계시록은 당신이 재림할 때에 이루어질 사명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들어서 크게 역사 했다는 일은 있으나 요한을 들어서 크게 역사 했다는 일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본다면 베드로보다도 요한이 더 크게 쓰여져야 할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제일 사랑하는 제자요, 십자가 밑까지 실수 없이 따라가 십자가 앞에서 주님 대신에 아들이 된다는 맹세의 부탁을 받은 사도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을 들어서 큰 부흥이나 큰 이적 기사를 나타낸 일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요한은 장로의 한 사람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끝까지 받들어 효성을 다한 제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제일 깊은 주님의 교훈을 직접 받아서 쓴 일은 있으나 큰 놀라운 역사는 없었고 모든 제자가 다 순교를 당했지만은 그는 구십 노령으로 밧모섬에 가서 말세의 영원한 복음이 되는 안식에 들어갈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읽고 듣고 지켜야 될 계시록을 받아서 기록하여 세상에 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시록은 이 날까지 봉한 책으로서 전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던 것뿐이다.

이 계시록의 비밀은 주 강림시 재앙의 날에 전해야 될 사명자가 다시 꿀같이 하나님께 받아먹고 쓴 것이 있지마는 세계 만방에 다시 예언한다는 것을 사도요한은 계시로써 받은 것뿐이다(요한계시록 10:8-10).

사명적인 이름까지도 베드로는 사명적인 이름을 불렀으나 요한은 우레의 아들(보아너게)이란 이름을 받았지만 숨겨 두고 만 것은 그 뢰자(雷子)라는 이름은 심판이 나릴 시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재림시에 전할 복음을 왜 요한에게 미리 계시를 주었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완전한 책으로 이루어 놓음으로써 그 책을 만방에 전할 것이기 때문에 신약전서를 완전히 구성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그러므로 종말의 증인은 다시 해석해서 증거함으로써 다시 예언자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금일에 와서 어떤 사람이 계시록을 맡아 가지고서 성경이 다시 나온다고 하면 이것은 혼선 중에 혼선이 될 것이며 기독교는 완전한 진리가 구비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어떻게 종말에 가서 세상에 환란, 재앙, 심판을 나리며 어떻게 종을 들어서 쓰며 교회를 어떻게 보호해서 남은 종과 남은 교회로써의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 사도 요한이 받은 종말의 복음이다.

결 론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를 놓아 터를 닦은 복음의 역사라면 요한의 사명은 기독교가 끝을 맺는 즉,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는 추수기에 사명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을 받고 성령을 받는 것이 베드로를 통해 받은 복음이라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재앙의 날에 재앙을 받지 않고 구원받는 복음은 기독교 종말에 끝을 맺는 역사가 될 것이다. 세밀히 말하면 은혜 시대 역사의 대표적인 사도는 베드로요, 환란 시대의 대표적인 사도는 요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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