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4일 금요일

주님의 선택과 역사(요한복음 15:16~20)


주님의 선택과 역사
요한복음 15:16~20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인생 자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역사이니, 이 역사를 방해할 자는 전혀 없다.

주님께서 택한 종을 시련을 받게 하는 것도 역사하기 위한 방법이요, 핍박을 만나게 하는 것도 역사를 하기 위한 방법이니, 택함 받은 종으로는 아무 것도 염려할 것 없고 두려워 할 것도 없이 순종할 것 뿐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 예지와 예정 아래서 택한 것이니 주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거룩한 예복을 입고 왕래하였지만, 그 사람들 중에는 택한 자가 없으므로 그들은 오히려 메시야를 반대하는 운동에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요한복음 10:26-31). 아무리 인간이 볼 때는 거룩한 자 같고, 진실한 자 같지만 택한 자가 아닌 자들은 중심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형식을 따르게 된다.

이제 택한 자에 대한 주님의 역사를 본문에서 읽으면서 알아보기로 하자.

1. 택하여 세움 (16상반절)

주님께서 택하여 세우는 일은, 택한 자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니 택함을 입는 자도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일로 되는 것이다. 벳세다 동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자기네가 사도가 되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역사라는 것은 종 된 사람이 어떤 계획이나 방법을 세운 것이 아니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므로 오히려 자기 사명을 모르고 떠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베드로가 부름을 받을 적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하고 떨었던 것이다(누가복음 5:8).

사람이라는 것은 언제나 주의 일을 할 때에 자기의 어떤 욕망이나 기대를 가진다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고 아무런 소망 없는 자리에서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택하신 하나님 편에서 그를 찾아와서 강권으로 깨우쳐 주고 붙들어서 쓰는 것이니, 누구든지 스스로 섰다 하는 사람은 자칭 선지가 될 것이다.

금일에 와서 아무런 체험이 없이 신학을 나오고 시취를 받고 주님께로부터 특명을 받은 일이 없이 나선 사람에게는 아무런 주의 역사가 없는 것이니, 주의 종이 되는 자는 주님이 채워 주는 체험을 확실히 받은 자가 되어야만 참으로 택한 종이라고 보게 된다. 어떤 종이 자기는 아무런 체험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떤 큰 체험을 받고 나온다는 것을 오히려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외식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2. 기도의 응답이 있음 (16하반절)

택한 종의 기도라는 것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이, 강권으로 시키는 일이 있는데 심지어 징계까지 하는 일이 있다. 어떠한 종이 기도를 하기 싫어하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면 이 사람은 주님께서 택한 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택한 종이라는 것은 무엇을 내가 얻겠다고 구하므로써 주님이 준다는 것보다도,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기도할 목적을 알려주는 일까지 있다. 우리의 참된 기도라는 것은 억지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이 무시로 되는 것인데 이것을 성령이 시키는 기도라고 보게 된다(로마서 8:27).

택한 종의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1) 기도를 항상 하게 되는 일이요.
2) 중심에 불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일이요.
3) 구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일이므로 뜻밖에 더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종이나 택한 종은 자기가 기도하지 못하던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자기가 메시야가 오면 수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도 전혀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하려고 기도했는데 이루어지는 일은 다른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택한 종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의 앞으로 될 일을 모르는 것이니 만큼 구하는 바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더 큰 것이 이루어지는 일이 열매가 더 많아지는 택한 종의 역사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그 양심에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할 때 그는 두려워서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할 때에 3천명이 회개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3. 서로 사랑하게 된다 (17~20)

택한 종이 된 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일인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오거나 심지어 옥중에서도 불 속에서도, 환란 속에서도 서로 변치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택한 종들의 사랑의 단체라는 것이다. 우리 사랑이라는 것은 주의 손에 붙들린 종으로서 사랑의 도구가 되다 보니 억지가 있을 수 없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단체다. 금일에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동역자의 잘못을 흠잡아 보려는 마음이라는 것은 성령이 떠난 사단의 회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과는 원수가 되는 사랑이다. 왜냐하면 세상과 싸우는 단체이니 세상이 미워하는 것이다. 금일에 종들이 세상과 타협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택함 받은 종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미워하는 것은 주님이 택한 증거라는 것을 본문에 말했다. 주께서 싸우던 싸움을 택한 종이 싸우는 것이니 우리는 끝까지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택한 종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특색은 택한 종의 역사이다. 만일 택한 종이 없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세상보다 다른 점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세속화된 교회로서 세상에 밟힌 바 되어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가 될 것이로되 택함을 받은 종으로 말미암아 되는 일은 세상에게 미움을 받고 멸시를 받고 압박을 받지만 초인간적인 역사가 나타나므로 오히려 세상 사람들까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종 앞에 다 굴복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일이니 타협적인 노선에는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될 것은 택함 받은 종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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