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함
사도행전 28:24~31
서 론
하나님께서 특별히 바울에게 담대한 힘을 주시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은 로마를 중심하여 세계적인 복음 확장을 가져올 경륜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강권으로 로마로 인도하되 원수들에게 결박을 당하여 머나먼 지중해를 건너서 로마로 가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벳을 창대케 하는 일을 할 때에 로마를 중심하여 역사를 하게 하신 것은 로마 제국이 가장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 수도로 바울을 보내어 거기서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1. 반대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함 (사도행전 28:24~27)
바울은 마음이 강퍅한 유대인에게 무서운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거기서 약해지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생각하고 오히려 용기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보고도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았기 때문인 줄 알고 거기서 완악한 자들에게 조금도 눌림을 받을 필요는 없다. 듣든지 말든지 담대히 전하는 것이 종된 자의 사명이다.
2. 구원을 이방인에게 보내신 줄 알고 담대함 (사도행전 28:18)
바울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반드시 받을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모든 성경은 세계 민족적인 구원을 가르친 것인 줄 깨달은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3. 금하는 사람이 없게 됨 (사도행전 28:30~31)
바울은 이태 동안을 자기 셋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다 영접하여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것을 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에서 자기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정확한 장소를 택하는 일이며,
둘째는 누구든지 오는 사람을 반가이 영접하는 일이며,
셋째는 담대히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담대하지 못할 때에는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역사를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하는 사람이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은 벌써 사단에게 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사람이 억지로 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신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서방으로 교회를 확장시키려면 로마에 복음을 전하여야만 되겠으므로 바울에게 무서운 환란을 만나게 했던 것이다. 이 환란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총 궐기하는 환란이었다. 유대인 중에도 바리새교인이요, 바리새교인 중에서도 최고의 열심이 있는 사람이 기독교를 전멸시키려 나섰던 것인데 다메섹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본격적으로 이방 중심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보다도 교회를 더 많이 세우고 율법과 은혜를 잘 구분시켜 유대적인 사상을 버리고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설 때에 아무리 따라 다니면서 유대인들이 방해를 해도 점점 더 강하게 일어나므로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만 오면 총 궐기하여 바울을 없애기를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나타난 것을 보고 유대인들을 전부 격동을 시켜서 죽이려 할 때에 바울은 로마 국적에 이름이 있는 사람이므로 유대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피해를 줄 수가 없게 되어 로마 황제에게 결판을 내어 달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이 이 일을 알아본즉 로마 제국에는 하등에 관계가 없고 단지 종교 문제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 바울은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고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환란을 일으킨 것은 오히려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전도의 문을 열어주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참된 종에게는 더 형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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