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일 목요일

욕심은 마귀에서 난 것이다(요한복음 8:42~49)


욕심은 마귀에서 난 것이다
요한복음 8:42~49

요한복음 8:42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낼 때에 사람에게는 양심을 주고 간교한 뱀에게는 욕심을 주었다. 그러므로 욕심을 받은 마귀와 양심을 받은 사람과에 대립을 시킨 것이니 이것은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욕심을 가진 마귀의 말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모든 영광을 주기 위한 작정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뱀이 역사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공연히 욕심을 내어서 속이도록끔 하는 본질을 가진 것이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란 것이다. 마귀도 하나님이 있는 줄 알고 천국도 지옥도 다 알지만 근본이 욕심으로 지은 피조물이니 도저히 그 욕심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떠날 수 없는 것이 마귀요, 양심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이제 욕심의 근본인 마귀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의 아들을 공연히 미워하는 일 (42)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마귀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이니 이유없이 미워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바리새교인들이 이유없이 예수를 미워할 적에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마귀 역사가 그 마음에 있을 적에 자동적으로 남이 역사하고 잘 되는 것을 보면 심술이 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마귀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바리새 교인들이 예수님이 아무런 역사도 하지 않을 때는 가만히 있었으나 예수님이 역사해서 많은 사람이 따를 때는 미워서 죽이려고까지 한 것은 마귀의 역사라고 본다.

지금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남의 교회가 부흥되고 남이 역사하는 것을 보면 공연히 그 사람의 흠을 잡아 보려고 하는 것은 바리새 교인에게 같이 하던 마귀라고 본다. 왜냐하면 바리새 교인들이 자기의 교권을 위하여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야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따라 갈 때에 그를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흠을 잡아 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따라갔던 것이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남의 흠을 잡아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공연히 남의 말을 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마귀의 자식이라고 보게 된다. 사도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에 속한 자라고 요한1서 3:10에 말했던 것이다. 지금 예수라 하면 누구든지 그 진리를 싫어하고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전체가 마귀가 주는 마음이라고 본다.

2. 진리를 들어도 깨닫지를 못함 (43)

언제나 마음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사상이 말씀과 맞지 않는 원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상은 자기가 목숨을 바쳐 남을 살리겠다는 것이요, 마귀의 사상은 어떻게 하든지 참된 하나님의 자녀를 죽게 하겠다는 것이 사상이니 하나님 말씀과 그 사상은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요한1서 4:7-8에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남을 살려보려는 마음을 가진 자라야 듣는 대로 보는 대로 깨달아지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교회에 성경을 들고 가르치는 자가 많지만, 욕심이란 것이 있는 사람은 그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마음에 맞춰서 말하게 되니 독주를 먹고 취한 자가 된다(이사야 28:7~8). 이러한 자들은 오히려 참된 진리를 바로 해석하는 것을 듣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비평하며 마귀와 타협을 하는 동시에 거짓을 행하여 자기의 위신을 세워 보려는 자들이다(이사야 28:14~15).

하나님의 말씀을 묵시로 받는 자들이 다 욕심이 없이 남을 살려보려는 마음으로 눈물 흘려 기도하다가 묵시를 받았고 그 진리를 바로 깨닫는 사람들도 남을 살려보려고 기도하는 자라야 그 묵시의 진리를 바로 증거할 수 있다.

3. 살인자다 (44)

살인이라는 것은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일이 첫째 아담의 집에서부터 가인이 동생을 죽였던 것이다. 간교한 뱀이 사람을 속여 선악과를 먹게 하므로 사망이 왔고 사망의 권세가 사람을 지배할 때에 사람을 죽이는 사회가 되고 보니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싸우던 싸움은 금일에 와서 세계 인류의 전멸이라는 비참한 살인적인 무력이 완비되는 흉악한 세상이 되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면 하나님의 일꾼이요, 남을 죽이면 마귀의 종이다. 그러므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도라면 이 십자가의 도를 반대하는 세력은 누구나 다 살인자라고 보게 된다. 살인도 3가지로 볼 수 있다.

말씀을 잘못 전하는 것도 살인이요, 남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요, 직접으로 남을 죽이는 살인도 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의를 위하여 죽이는 일이 있으니 이것은 살인으로 볼 수 없고 옳은 심판으로 본다. 이제 살인을 하지 않고 남을 살리던 자가 왕권을 받게될 때에 마귀의 자식들을 모두 죽여 없이 할 권리를 받게 된다(요한계시록 19:19~21).

4. 성신의 역사를 마귀라고 하는 일 (45~49)

언제나 마귀의 충동을 받은 자가 자기의 세력을 옳다고 내세우기 위하여 공연히 남을 마귀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음에 욕심이 있는 증거이다. 요즈음 교회가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가 마귀에게 속한 증거라고 보게 된다.

에덴 동산에서 간교한 뱀이 하나님을 거짓이라고 말하듯이 금일도 거짓 선지의 세력이 오히려 참된 종을 거짓이라, 이단이라, 마귀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귀는 언제나 자기가 옳다는 것을 내세우고 하나님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마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 론

참된 하나님의 종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아무리 억울한 욕을 먹고 훼방을 받아도 악으로 말하지 않고 정당한 진리만을 말씀한 것 같이 아무리 동역자의 비방을 받고 악한 자들의 모략을 받는다 하여도 거기에 탓하지 않고 진리만을 증거하는 것이 진리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떤 종이 남이 욕하면 같이 욕을 하고 내 흠을 말하면 같이 남의 흠을 드러내어 말하고 남이 권리를 내세우면 나도 권리를 내세워 보려고 한다는 것은 참된 하나님의 종이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언제나 세세 왕권을 바라보는 참 종이라면 금일에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설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부탁의 기도를 할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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