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8일 화요일

사도적인 신앙의 계통 (요한복음 1:39∼51)



사도적인 신앙의 계통
- 요한복음 1:39∼51 -

요한복음 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기독교는 계통적인 신앙이 있는 것이니 이 계통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계통 (39∼45)

많은 사람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방 갈릴리를 찾아가서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벗삼고 기도하면서 고기를 잡는 생활에서도 양심을 살려 가며 기도의 한 클럽이 되어 벳세다 동네를 자리잡고 오실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이다. 이 때에 헤롯의 정치 부패, 바리새교의 영계 부패, 그 지도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으로 교통하는 한적한 곳을 찾아간 그의 신앙 믿음으로 사귀어진 친구들이 사도의 한 클럽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순수한 성경 본문 주의에서 기록한 그대로 될 것을 믿었던 것이다.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로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대로 믿는 신앙이라야 사도적인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이들은 나사렛 목수 예수를 볼 때 성경에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45절에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갈릴리 바다 옆으로 인도한 것은 그들은 자기네가 거기서 메시야를 영접하리라고 생각한 바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정 아래서 인도했던 것이다.

지금도 택한 사람은 자기가 계획한 바는 아니로되 하나님의 신이 인도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 동네에서 살 때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함께 사도가 되자는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메시야를 영접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들어 쓰기 위해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 클럽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2. 간사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46∼47)

신앙이라는 것은 조금도 간사함이 없는 자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니 나다엘이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간사함이 없다는 조건이다. 간사함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비밀을 알려 주기도 하시고 그를 들어 쓰기도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혈통에 관한 것보다도 사상, 정신, 양심에서 간사함이 없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를 찾으시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되므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간사함이 없는 자라면 그에게 사명을 맡겨 일할 수 있도록끔 지혜와 능력을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이다.

3. 하나님만 상대하는 생활이 있다 (48∼51)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님만 상대하는 숨은 기도, 숨은 봉사, 숨은 중심 성결이 있어야 된다.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알게 일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신이시다.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하되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중심 할 때에 놀라운 역사를 할 수 있는 영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도들이 완전한 권능을 못 받고 완전한 신앙 지식에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자라는 것을 주님은 인정하시고 그들을 부르셨던 것이다. 지금도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라면 주님은 그들을 통하여 재림의 주를 영접하도록 역사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것은 언제나 계통이 있는 것이니 사도들이 메시야를 영접할 때에 가졌던 계통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그 계통으로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은혜를 크게 받음으로써 바로 선다는 것보다도 바른 신앙을 가질 적에 큰 변화를 받게 되며 큰 역사를 받게 되므로 시대적인 역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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