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처음부터 죄를 범한 자는 마귀요,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자는 예수님이시다. 마귀가 없었으면 죄가 없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마귀를 창조했느냐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마귀는 하나님이 낸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같이 마귀도 스스로 있었다는 이원론을 말하는 자도 있다. 또는 천사가 타락해서 마귀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창조하신 것은 근본이 가장 간교한 뱀이다. 가장 간교하다는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이러한 기능을 준 것은 아무리 꾀이는 일이 있어도 가장 간교한 뱀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인줄 믿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죄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남을 범죄 하도록 꾀이는 죄도 있고, 꾀임을 받아 범하는 죄도 있는 것이다. 남을 꾀어서 범죄 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행동이요, 꾀임을 받아 범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꾀임을 받아 범죄할 때에 깨닫도록 해주는 일이 있으며, 그 죄를 용서해 주는 법을 세운 것이 속죄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죄를 짓게 꾀는 것이 옛 뱀인 용의 역사이다(계시록 12:9, 20:3).
이제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예수님의 역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죄를 없이 하려고 세상에 나타나신 역사 (요한1서 3:4~5)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세계 인류 가운데 택함을 입은 사람의 죄를 없이 하는 일을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모르고 흑암 속에 거하는 사람을 찾아 오셔서 행하신 일이다. 만일 사람이 연구할 수 있다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역사라면 인간의 죄를 없이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나라에 계시던 예수님이 죄를 진 인간들을 찾아 오셔서 그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법을 세우신 것이니, 이것이 만민의 죄를 대속한 십자가이다.
죄라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없이 할 수 없고, 죄를 범한 자를 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라야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죄를 벌할 권리가 있는 자라고 해서 법을 무효로 한다면 이것은 법을 낸 자를 멸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며, 법을 세운 자에게도 법대로 벌을 주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없애는 일을 하기 위하여는 독생자를 죄인을 대신해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셔서 역사 하는 것밖에 다른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3년간 이적을 행하게 하셨고, 아들이 십자가에 죽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골고다에 높이 달아 왕래하는 사람들까지라도 알게 하셨고, 아들이 완전 승리로 부활한 후에도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에게까지 나타나 만져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증거로 나타냈고, 십자가에 죽는 것은 세상이 알도록 하시었고, 부활하신 것은 친히 나타나셔서 보여 주셨던 것이다. 누구든지 나타난 예수를 의심없이 믿는 자는 그 죄를 없이하는 속죄의 은총을 주시는 동시에 다시 기억지도 않으신다.
인간의 죄 하나를 없애기 위하여 역사하신 일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일보다 더 큰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천지가 없어진다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없이 한 사람은 영원히 영생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는 역사 (요한1서 3:6)
주님께서는 인간이 과거에 지었던 죄를 없이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범죄치 않도록 성신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성신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역사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나게 될 때에 죄를 범하는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에 결코 범죄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는 행동이요,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을 벗어나는 행동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면서 죄를 범한다면 미혹을 받은 자라고 볼 수 있다. 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고, 한 교회 안에서 사는 것을 신앙 생활로 본다는 것은 아무런 산 체험이 없는 사람들의 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 있고 주님은 우리 안에 있어서 당신이 하실 일을 우리를 통하여 하시고, 당신이 받은 왕권의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고자 하시는 것이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요,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죄를 그냥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죄가 없는 동시에 죄를 없이하는 일을 하시고, 죄 없이 함을 받은 자를 들어 쓰시되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3.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역사 (요한1서 3:8)
예수님께서 먼저는 죄를 없이하는 일을 하여 마귀의 일을 이기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참으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므로써 죄가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평안히 살게 되는 것을 새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 마귀의 일을 없애지 않는 것은 마귀의 일을 이기는 사람에게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일을 허락한 것은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마귀의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일이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일이 없다면 마귀의 일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마귀의 일도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것은 마귀가 역사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큰 영광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마귀의 일을 용납한다면 그 시간부터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마귀의 일을 없이 하려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열매 없는 자가 되어 가인과 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고, 오직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있다.
결 론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는 동시에 죄를 용납할 수 없고, 죄를 용납지 않는 동시에 회개하는 자의 죄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하나가 되려면 죄를 없이 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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