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예레미야 09장 -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받을 화(禍)와, 아는 자의 자랑할 일


성 경 : 예레미야 9장
제 목 :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받을 화(禍)와, 아는 의 자랑할 일

1. 교회의 거짓된 일로 인하여 슬퍼함 : 1~9

『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

예레미야는 교회가 당할 환난을 생각할 때 복받치는 슬픔을 눈물로써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머리는 물이 되고 눈은 눈물 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고백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선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 2 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행음하는 백성의 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선지자의 신앙절개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의 행음이란 영적 음행죄(우상숭배)를 말하며 "패역한 자의 무리"란 신실없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배신하기만 하는 유다 백성을 말한다. 언제나 타락된 시대에는 거짓된 것이 팽창하기 마련이다(시편 12:1~4). 오늘날 영적 유다 사회의 지도층에도 무신론 노동당원의 2세들이 많으며,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친북 이적단체들을 힘써 비호하고 있다. 게다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한국교회협의회(K.N.C.C.)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으니 이 같은 슬픈 현실은 오늘날이 크게 행음하는 시대임을 증거해 준다.

『 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하느니라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5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 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6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

"거짓"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궤휼"과 같은 말씀들이 8번이나 나오고 있다. "거짓"은 모든 죄악의 원천(원죄)이며 방법이자 결과이다.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린다는 것"은 그들이 거짓을 말하되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담대히 선포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그들이 진리를 위해서는 용감하지 아니하고"라고 해석하면 좋다(KJV). 타락한 인간은 악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데는 담대하고, 죄를 성사시키는 데 있어서는 오래 참을 줄도 안다. 하지만 진리를 위하여는 조금도 힘을 쓰지 못한다(사 59:7~9). 이것이 나면서부터 갖고 나오는 인간의 '전적 타락'이다(이시야 51:5. 에베소서 2:3).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선하게 지으셨으나 인간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꾀를 내므로 타락한 것이니 어떤 이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절대강자의 횡포'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 안의 많은 이들이 거듭나 영혼구원을 받으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고린도전서 10:12). 마귀의 미혹과 인간의 타락 부패는 거듭난 성도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말씀이다(고린도후서 11:3).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교회와 종들'에게(계시록 1:1,4, 22:6,16) 계시록을 주시며 "다시 예언하라"(계시록 10:11)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8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 9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하심은 징벌하시겠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기 죄를 깨닫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억울하다는 항변을 늘어놓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억울하기에 앞서 주님 앞에 천만 번 죽어 마땅한 것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아닌가! (에베소서 2:3).

2. 멸망의 원인은 불순종 : 10~16

『 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 11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

인간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자신들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환경까지 비참하게 만든다. 혹자들은 말하기를 "교회에 심판이 있을소냐?"라고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라는 저 말씀이 교회심판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베드로전서 4:17. 사 43:28, 66:6~). 심판기의 '진정한 사랑'은 멸망 받아 죽게 될 형제들을 향해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뿐이다(이사야 18:3. 예레미야 4:5~6, 6:1. 에스겔 33:1~5. 요엘 2:1, 15. 스바냐 1:16).

『 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廣布:널리 알림)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광포하는 자이다. 교회와 종들이 스스로 똑똑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지이다. 환난이 오는 원인은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하나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과, "바알들을 좇음"에 있다. 이런 죄악이 환난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바알신"은 가나안과 베니게에서 숭배되어 온 남신(男申)으로서 풍년이 들게 하는 신이라 하여 그 파트너 아세라(아스다롯)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그 조상 적부터 섬겨온 내력이 있는 대표적 우상이다(사사기 2:13, 6:28~32 / 왕족시대 - 열왕기상 16:31~32, 18:17~40).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다"는 것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깊이 뿌리박혀 온 역사적 죄악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성경을 상고하니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경배와 바알 숭배를 동일시하기도 했으며(역대상 12:5 '브아랴' = '여호와는 바알이다' / 역대상 14:7 '브엘랴다'와 사무엘하 5:16 '에랴다'는 각각 '바알은 안다'와 '여호와는 아신다'라는 뜻임),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신을 숭배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사사기 2:11~14, 3:7).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이 남녀 우상은 오늘날 개신교 안으로 침투하여 교회확장, 물질축복, 세속주의 신앙을 부추기는 귀신역사로 나타나고 있고, 가톨릭(구교) 안에서는 성체신앙, 마리아신앙으로 위장되어 숭배받고 있다(7장과 44장을 참조하라).

『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16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

여기서는 회개치 않는 유대인들을 크게 벌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말하노라" 하심은 "칼을 보내리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권위로 반드시 성취될 것을 뜻한다.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라 함은 교회가 회개치 않으니 심판하기 위하여 거짓 선지자를 보내어 쭉정이를 가려내겠다는 뜻이다. 거짓 선지자를 참 선지자 예레미야 앞에 보내시고는 예레미야에게 거짓 선지자의 쑥을 먹지 말라고 백성 앞에 외치게 하는 것은 에덴동산 때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뱀의 말이 충돌케 하여 당신께 대한 순종 여부를 알아보셨던 것처럼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를 충돌시키시면서 백성을 갈라내시는 것이다. 이는 백성 앞에 멸망의 올무를 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시기 위한 공의의 방편일 뿐이다.

2,600년 전,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자는 보호해 주고 그의 말을 버린 자는 북방 칼에 붙였던 사실은, 오늘날도 "다시 예언"되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는 자는 보호해 주고 멸시하면 심판해 버릴 것을 알려준다. 세력이 크고 외모가 화려한 W.C.C.나 로마가톨릭의 노선을 좇는 무리들은 '짐승과 10뿔'에게 붙여져 철저한 심판을 당한다는 뜻이다(이사야 1:19~. 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15~17). 오늘날 예레미야서가 읽히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곡들에게는 화를 피하여 새 시대 간다는 기쁜 소식이지만, (예수 이름만 불렀지) 그 피로 산 말씀을 무시하는 교회들에게는 심판의 나팔이 울린 것이나 다름 없다. 쑥물 먹은 교회들이 통곡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다.

16절의 말씀은 계시록과 예레미야서를 무시한 성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후 3년 반'으로 쫓겨들어가 짐승 칼에 진멸될 것을 예언하심이다(계시록 17:16. 예레미야 4:30~31. 에스겔 16:35~41, 23:22~30).

3. 교회의 멸망을 비통함 : 17~22

『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

"너희는 잘 생각하라" 닥쳐올 일을 깨닫고 비애를 느끼라는 말씀이다. "곡하는 부녀들"의 울음을 통하여라도 다른 사람들을 울음 가운데로 인도하라 하신다. 죄인들은 마땅히 울어야 함에도 울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① 교만한 까닭이며
② 강퍅한 까닭이며
③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철면피이기 때문이다.

『 19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

"이는"이란 말로 시작하여 유대인들이 울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북방칼은 올 것이니 울어야 한다. "아주 망하였구나"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헐었음이로다"란 울어야 할 이유들이다. 죄인의 살 길은 통회, 자복, 울음밖에 없다. 회개자의 모범인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하였다(시편 56:8) .

『 20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

"부녀들이여" 하심은 남자보다 여인들이 비교적 심령이 부드러워서 슬픔의 본을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21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22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오늘의 교회들은 우리가 아무리 "큰 환난이 일어나니 방비하라" 외쳐도 교회에는 심판이 없다고 우겨만 댄다. 참으로 속편한 착각이다. 구약교회의 심판은 모두가 은혜시대 종말에 있을 기독교의 심판을 보여주신 것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니 소경이라 책망을 받는 것이다(이사야 29:9~10, 42:18~20, 43:8, 56:10~12). 계시록 7:2~8, 11:1~12절 예언을 보니 제단 안에서 예언의 말씀으로 척량이 행해질 때 척량에 합격한 자는 인을 맞고 흰무리를 살려낸 후 짐승 손에 산 순교를 당하여 세세 왕권을 차지하지만, 척량에서 떨어진 자는 42달 동안 이방인에게 붙여져 철저히 짓밟히게 된다고 하셨다(계 13장). 예수님 피로 구원 받은 기독교회에 어찌 심판이 있을 수 있으랴 말하는 것은 2,000년 전, 요 9: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말하며 율법으로 세워진 유대교회가 가장 의로운 줄로, 또 영원할 줄로 믿었던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뭇"이란 '볏단', '짚단' 같은 '곡식단'을 의미한다. 인종 가을을 맞이하여 교회 성도들의 시체가 거리에 개똥같이 널부러질 것과 거두지 못한 곡식단같이 버려질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이사야 5:25). 교회에 심판이 없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 교회의 최고 교만이자 최대 오류이다. 마치 가톨릭이 교황에게는 오류가 없다 말하는 '교황 무류권'이 가톨릭 최대의 오류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황에게, 혹은 교황이 믿음과 권위로 처리하는 모든 일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그들의 논리가 정말 코웃음 칠 만한 일이라면, 중생받은 개신교회에 심판(재앙)이 올 수 없다고 믿는 것 역시 웃지 못할 희극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각자가 제 맘대로 지껄이지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4. 심판은 교회나 이방에나 구분이 없음 : 23~26

『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교회가 자랑치 말아야 할 것이 있다.

① 인간의 지혜를 자랑치 말라 - 인간이 자기 지혜를 자랑치 말 것은 이 땅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작정인 성경대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의 지혜는 땅 위의 역사를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다.

②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 여호와를 이길 자가 있겠는가? 용사 골리앗이 하나님의 종 다윗 앞에 거꾸러졌듯이, 종말에도 제 힘으로 신을 삼는 북방 공산당을 하나님의 종 스룹바벨이 이기고(스가랴 4:7) 돌이 태산을 이루어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1000년간 이루어진다(계시록 5:10, 11:15, 20:6). 인간 종말에는 땅의 정권이나 무력이 하늘 권세인 머릿돌 앞에 박살나고 마니 자랑할 자는 인 맞은 자가 되어 머릿돌을 자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라는 것이다.

③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 디모데전서 6:10, 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재물을 떠나 선한 일을 하늘에 쌓으라고 편지하였다.

자랑하는 자는 "이 땅에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시는 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만을 자랑하라 하신다.

『 2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

예레미야 시대에 이미 위 예언대로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이나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유대인이 너나 할 것없이 다 같이 북방 바벨론의 칼 앞에 멸망을 당한 바가 있다. 이는 인간 종말에도 회개치 않는 교회와 세상 불신자의 세력 모두가 기록된 예언대로 잔인한 군주(이사야 19:4)요, 이방 세력(계시록 11:2)인 '한 왕'의 백성(다니엘 9:26)의 손에 붙여져 심판을 당할 것을 예표해 준다. 지금은 세상 사람이건 교회의 성도건 남보다 경제적으로 부요해지고, 인간의 조직-단체가 탄탄해지고, 같은 값이면 높은 위치에 올라가 많은 이들을 호령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알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뒤집어 엎는 심판날이 되면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 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2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와 가모(家母)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이사야 24:1~) 하신 예언대로 세상 서열과 지위가 무색해지며, 교회나 이방 간에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헛된 경쟁에서 우승하여 자랑하는 자가 되지 말고,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아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이자! 기록된 말씀대로 걸어가려는 자를 세상이 막을 수 없도다.

아멘!







Copyright (c) 2002 Mahershalalhashbaz All rights reserved.
☎ 02-815-5126(교회), 011-9739-2782(담임목사),
☎ 82-2-815-5126(교회), 82-11-9739-2782(담임목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