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30630_에스겔30장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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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주일 새벽] 에스겔 30장 : 애굽의 멸망과 황폐 2013/6/30 Sun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상도3동 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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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1장 - 이스라엘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성경:호세아 11장
제목:이스라엘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은 야곱을 복중에서 택하시고, 잘못을 책망하시어 종국에는 구원하시니 야곱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신다.

1.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에 주심:1~4

『 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2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

●1절 :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사실을 소급(溯及)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어렸을 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 초기를 가리킨다. 또한 1절의 말씀은 마태복음 2:15절에도 인용된 바 예수님의 어렸을 때 헤롯을 피하여 들어간 애굽에서 헤롯이 죽자 출애굽한 사건을 예언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예언의 동시성(同時性)이다. 선지자는 당대의 상황을 보고 외치거나 과거의 사건을 소급하여 외치지만 후손 세대에서는 외친 그대로 곧 축자영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니 다른 말로 실천적 예언이라고도 한다(이사야 설교집 46:8~10 참조).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에덴동산 찾아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다. 창세기 13:14∼17절의 축복과 창 15:13절의 말씀대로 모리아산을 중심하여 동서남북을 기업으로 받으려면 400년 후에 출애굽이 있어야 할 것이고, 최후에는 70년이 찰 때 출바벨론이 있어야 이 세상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계시록 11:15).


이 말씀이 영적(이면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예수가 유월절 양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거대한 에덴을 회복하시기 위한 실질적(이면적) 사업의 시작으로서 에덴 타락 후 4,000년(69이레에 기름부음 받으심-다니엘 9:25)만에 손수 나서신 하나님의 거룩한 현현(顯現)이다. 즉 구속사업의 실질적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애굽에서 피난생활을 하시고 약속의 땅 모리아로 오셨다(마태복음 2:15). 우리도 예수님의 포도나무 가지이니 나무가 가는 곳에는 가지도 따라가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서 은혜의 세계로 나오는 것을 영적 출애굽이라 하는데, 이는 예수의 피가 내 마음 안에 진정으로 들어오고,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은혜 시대 종말에는 강한 영적 흑암(바벨사상)이 왔으니 이를 이기려면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나오는 출바벨론(계시록 18:4, 스가랴 2:6∼7) 역사가 또한 이면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이는 흑암의 세력을 말씀의 불로 소멸시키는 스룹바벨의 머릿돌 역사로 성취될 것이다(스가랴 4:7∼11).

은혜 받은 모든 영적 이스라엘에게 예수님께서는 계시록 10:7∼11절 말씀을 주셨다. 내용인즉 “작은 책(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말씀이니 친히 부탁하신 이 귀한 말씀을 버리고, 정 반대로 행하여 우상국가인 북방 공산주의 국가와 손을 잡고 거짓된 “평화공존”에 속아 영적인 우상숭배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 세계의 피로 산 교회라는 것이다. 지금의 이러한 종교 상태가 바로 호세아 선지가 예언할 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구약은 그 때를 사는 그들에게는 실제상황이나 종말에 있을 영적 이스라엘에게는 종말의 정황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언이 된다(실천적 예언).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하나님의 완전 예지).

●2절:모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숨바쳐 외치기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였으나(열왕기하 17:13, 예레미야 7:25, 25:4, 스가랴 1:4)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예레미야 2:31). 그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로서 가나안에 입주(入住)한 후 선지 시대까지 행한 저들의 상습죄(常習罪)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겸손하여 감사하기보다는 도리어 은혜 귀한 줄 모르고 교만하여 악한 심리의 발작으로(인간성) 말할 수 없이 강퍅(剛愎)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자는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이 같은 침해(侵害)를 받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 경계하여야 한다.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고백하며 바울은 항상 겸손하게 생활하였다.

●3절:“걸음을 가르치고” -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행보(行步)를 가르치듯이 그들을 훈련시켜 오셨다(신명기 1:31, 32:11∼15, 민수기 11:12). 이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길러주신 그를 순종하지 않음은 대단히 무지하고 악한 일이다.
이와 같은 무지(호세아 4:6)는
① 실상 그들의 모든 난관을 제해 주시는 하나님(출애굽기 15:26)을 몰라보는 배은망덕이다.
② 또한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는 의원의 병 고치는 일에 비유되었던 바(마태복음 9:12∼13) 죄 가운데서 죽을 자를 살려 놓았더니 은혜 귀한 줄도 모르고 도리어 자기의 구세주, 구원자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우매의 극치라고 본다.

●4절: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심에 있어서 사람이 가축을 인도함같이 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하셨다. 곧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강하신 보호의 팔을 (목동이 그의 가축을 인도하는데 사용하는) 줄에 비유하셨다. 목동에게 양이 귀하듯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그만치 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줄은 속박의 줄이 아니고 “사랑의 줄”이라고 그 내역(內譯)이 밝혀져 있다. 보통 사람이 짐승을 줄에 묶어 인도할 때는 사랑보다는 속박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하나 당신만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는 것이다.

“목에서 멍에를 벗김”은 소나 가축이 여물을 먹기에 편하도록 배려하는 행위이다. 주인은 이렇게 그 짐승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그 앞에 먹이를 준다. 그만큼 주인은 그 짐승의 입장에 서서 긍휼을 베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행하신 그의 태도는 (특히 긍휼의 측면에서 볼 때) 가축에 대한 목자의 배려(사랑)와 유사하다는 것이 본문의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하시기는 하나, 자비와 긍휼 없이 그리하신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그의 사랑과 병행한다.

그 사랑은 그가 이스라엘과 은혜로운 계약을 맺은 것(출애굽기 24:3∼7), 그가 저들에게 식물(食物)을 주신 것, 또는 희생제물을 드려 사죄 받을 수 있도록 제사를 알려주신 것 등에서 나타난다.

2. 예수님 사랑을 배반하면 북방의 밥이 된다:5~7

『 5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7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

●5절:이스라엘은 벌써 오래 전에 애굽에서 구원받았으므로 다시 그리로 돌아갈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다시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될지니, 곧 앗수르 왕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과 같이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이미 구원(영혼 구원)얻은 자가 다시 그 구원을 빼앗길 수는 없으니(로마서 6:4, 8:2), 다만 환난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일뿐인데, 하나님이 환난으로부터 이 백성을 보호하시려고 당신의 새 일 교훈을 베푸실 때 청종치 않아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한, 북방 로스(러시아)에게 붙이신다는 것이다.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종말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이요, 말세종의 특권이며, 또한 환난을 면하고 새 시대의 거룩한 씨로 들어갈 성도의 자격요건이 된다.

●6절: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칠 때같이 종말에 공산국가가 남침하여 세계 교회를 침략 할 때(다니엘 9:26∼)에, 성읍이 파괴되며 그 성문의 빗장이 부숴지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저희의 계책”이란 교회들이 하나님의 새 일을 신뢰하지 않고 저들 자신의 지혜대로 외국을 의지한 것을 가리킨다(에스겔 17장에 시드기야가 애굽을 신뢰하다 결국 눈알이 뽑혀 잡혀감-예레미야 39:).

●7절“결심하고... 물러가나니”라는 것은 “떠나는 죄에 결부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저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태니 그 타락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일컫는 것이다. 오늘도 캄캄한 사단의 세력이 1958년 3월부터 허락받고 나와서 43년간 미혹의 활동을 한 결과, 세계 교회가 평화공존의 술책에 넘어가 단단히 잡혀 있는 상태이다. “탈 냉전”이니 “전쟁 종식”이니 하는 말은 사단의 궤변이다(다니엘 9:26∼27).

“돌아오라 할지라도...” - 선지서를 아무리 증거해도 깨닫는 자가 없다. 시련의 시기에는 믿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하박국 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3.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교회를 아끼시나 교회는 미혹을 당함:8~12

『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

●8절“아드마”“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받을 때에 함께 멸망한 도시들이다(신명기 29: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 도시들같이 멸망에 내어버리지는 않겠다고 하셨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 이 말씀은 마음이 변동되셨다는 뜻이다(요엘 2:15∼20). 그 변동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긍휼이 불붙듯”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죄를 호되게 꾸짖어도 끝 날에 가서는 약속대로 긍휼을 베푸신다.

●9절:“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 - 사람들은 자기가 품었던 목적을 변개시키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택민)을 절대 멸망시키지 않으리라’고 한 번 정하신 뜻은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말라기 3:6, 계시록 7:3∼8, 이사야 54:7∼8).

사무엘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라”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그러하니 종말에 뒤집어엎는 날, 스룹바벨로 인(印)을 삼아 쓰시겠다고 한 번 정하셨다면(학개서 2:23) 이는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변역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율법과 은혜도 말씀에 기록된 법대로 행하셨다면, 재림 전의 엘리야 사명도 모든 예언에 기록된 대로 이루실 것이다. 스가랴 4:7~9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스룹바벨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종말의 머릿돌 역사는 스룹바벨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스룹바벨의 사명을 모른다면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다.

●10절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이스라엘과 유다가 종말에 회복의 때가 되면 다 돌아올 것을 예언하심이다.


이사야 66:7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2:9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 창세기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 오셨다. 계시록 5:5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예수님의 재림 때에, 택한 종들이 사자같이 일어나서 주께로부터 받은 철장권세를 행하여 원수를 진멸하고, 야곱의 12지파에서 144,000명을 일으켜 이미 받은 영혼의 구원 위에 순종의 상급이 더하여져 그 육체까지 구원을 받게 된다(로마서 8:23. 에베소서 4:30, 계시록 14:4). 그 백성이 “떨며 온다” 함은 그들이 너무 기뻐서 진동할 것을 의미한다.

●11절:“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 마지막 시대에 부름받은 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빨리 돌아올 것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각 집에 머물게 하심”은 일한 대로 왕권을 받고 황금 보석 집에서(이사야 54:11) 천 년을 살게 될 것을 가리킴이다.

●12절: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이 행했고, 유다도 하나님 앞에 진실치 못하며 변함이 많았지만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로(호세아 1:7) 육체까지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본 예언은 결국 구원을 향해 가는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역사 노정에 있어서 완전한 구원이란 백성의 의(義)가 아닌(이사야 64:6)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만이 완성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하나님은 어떻게 하여서라도 저들을 구원하여 주심으로 당신의 일을 마감하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할렐루야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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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1장 - 남북 대립과 동방 역사



성경 : 다니엘 11장
제목 : 남북 대립과 동방 역사

본 장은 다니엘 8장 22~23절의 해석임과 동시에 7장에서 보이신 '신약 종말'을 더욱 상세하게 예언하는 복합구조를 갖고 있다. 11장 안에 신구약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종말의 사명용사들이 구약 당시의 남북관계와 북방 왕의 사명을 깨달아 종말의 남북관계와 북방 왕을 잘 뚫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구약 역사는 종말에도 그대로 재연될 것이다. 구약은 종말의 거울이다(이사야 46:10. 로마서 15:4. 고린도전서 10:6,11).

본 장에서는 '고레스' 왕 3년부터 시작하여 수리아(아람)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죽을 때까지인 약 370년간의 역사가 계시되었는데, 바사국의 역사와 헬라(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역사, 그리고 그의 사후(死後) 나뉘어진 4분국, 수리아와 애굽 간의 장기간 충돌, 그리고 종말의 작은 뿔을 예표한 '에피파네스'의 궤휼과 폭행 등의 역사가 상세하게 예언되어 있다. 이는 구약 종말에 관한 예언인 동시에 인간 종말에 남북간의 대립과 하나님의 동방역사로 뻗어나가는 철장권세 앞에 북방이 번민하다가 망하게 될 역사에 대한 2중적인 예언이다.

『1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돕고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

하나님은 메대 왕 다리오를 강하게 하여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을 굴복시킴으로 왕위에 올라 2년간(BC 538) 왕 노릇하였다가 죽고, 그의 사위 고레스가 메대와 바사를 합병함으로써 통치하게 된다.

『2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 국을 칠 것이며 』

바사의 '세 왕'은 ① 고레스(바사국의 초대 왕 538~529년 재위)와 ② 캄비세스(529~522) ③ 다리오 1세(522, 에스라 4:24)를 말하며, 그 후 '넷째'는 아하수에르(크세르크세스=Xerxes  485, 에스라 1:1)를 뜻한다. 이 왕은 부친 다리오를 힘입어 부친 때부터의 숙원인 '헬라 정복'의 야욕을 품었었다. 그는 헬라를 침공하였으나(BC 479년),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나라의 국고가 바닥나게 되었다. 결국 살라미(Salamis) 전투에서 헬라(알렉산더)로 말미암아 패전한 뒤 국력이 차차 약하여 가다가 끝내 바사는 망하였다(주전 332년).

『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4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니라 』

'한 능력 있는 왕'이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다(주전 356~32). 마케도니아 왕 재위기간(주전 336~323)에 근동 제국을 정복하여 공전 대제국을 수립하였다. 고린도에서 헬라 연맹 총회를 소집하고 테베를 토벌하였으며, 바사를 원정하였고 튜로스, 시리아, 애굽까지 평정하고 바벨론, 수사, 페르세, 폴리스에 입성하여 후에 바크로리아, 소크디아나, 판잡 일대를 점령하였다. (☞ 알렉산더의 일대기)

"그가 강성할 때 나라가 갈라져" - 헬라 나라가 천하 사방에 나뉜다 함은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에 죽고 네 신하가 그 나라를 분국하여 이어갈 것을 예언함이다. 알렉산더는 바벨론에서 유프라테스 강의 관개시설을 개량하고 페르시아 만 해안지방에 정착촌을 만드는 사업계획으로 분주하던 중에 장시간의 연회와 술잔치 끝에 갑자기 병에 걸렸다. 10일 후인 BC 323년 6월 13일 그는 33살의 나이로 죽었다. 이후 그 나라는 다음 네 신하에 의해 분국된다.

1. 돌래미(Ptolamy) - 애굽(남방 왕).
2. 리시마커스(Lisimachus) - 트리키아.
3. 케산더(Cassander) - 마케도니아.
4. 실루커스(Seleucus) - 시리아(북방 왕).

『 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

남방 왕은 애굽의 돌래미 왕인데, 강한 왕이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군(君)들 중 시리아(아람)를 다스리는 실루커스는 돌래미보다 강하였다. 실루커스 왕조는 주전 300년~65년까지 26명의 왕이 다스리다가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

『 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

이것은 애굽 왕 돌래미 2세 필라델피스(Philadelphus 주전 285~247)와 수리아 왕 안티오코 2세와의 화친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실루커스가 죽은 지 30년 후 남방 왕 돌래미의 딸 베레니스(Berenice)를 북방 수리아 왕 안티오코 2세에게 아내로 주었는데, 후에 베레니스는 안티오코 2세의 본처인 라오디스(Laodice)로 말미암아 그 아이와 함께 피살되었고 안티오코 2세 역시 라오디스에 의해 독살되었다.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이 실패로 돌아가고 남북은 전쟁발발의 긴장관계로 접어들었다(주전 250년).

『 7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이기고 』

이것은 돌래미 3세 곧 베레니스의 남동생 유엘게데스(Euergetes 선행자란 뜻)가 수리아를 침략해 들어갈 것을 예언한 것이다(2차전 : 주전 247~222).

『 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

후일에 역사는 이 예언대로 성취되어 유엘게데스는 수리아에서 금 4,000 달란트와 200개의 우상을 가져왔다고 한다. 동생이 누나(베레니스)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 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 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 가리라 』

이 예언대로 주전 240년 수리아 왕 실루커스 칼리니커스(Callinicus)가 해군과 육군으로 애굽을 침략했으나 실패하였다.

『 10 그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

'실루커스 칼리니커스의 아들들'은 셀루쿠스 3세인 '소테르'와 안티오쿠스 3세인 '마그누스'를 가리킨다. 이들이 남쪽을 대항하여 싸웠으나 또 실패한다. 고로 남쪽 애굽은 심히 교만하게 되었다(오늘날로 보면 미소 냉전구도에서 사실상 승리한 미국의 교만에 비길 수 있다). '소테르'는 B.C. 227년경 왕위에 올랐다가 소아시아 전쟁에서 동료들에게 살해되었고, 그 동생 '마그누스'가 왕위를 이어 남방 왕에게 빼앗긴 영토와 재물을 되찾기 위해 원정을 나서게 된다. 초반에는 강성하여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치고 들어간다.

『 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리라 』

이 예언과 같이 크게 노한 남방 왕 돌레미 4세는 안티오쿠스 3세인 '마그누스' 군대를 반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남방 왕 돌래미 4세(유엘게데스의 장남) '필로파트로'가 북방 왕 '마그누스'를 대패시켰다. 이것은 라피아(Raphia)란 땅에서 된 일이다(217년 폴리비어스 책에 기록).

『 12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

이것은 남방 왕 돌래미 필로파트로가 교만해질 것에 대한 예언인데,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자 굉장히 교만해지므로 수만 명의 시리아 포로군들을 사형에 처한다. 동시에 그 교만이 확장되어 유다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이르러 율법을 멸시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죄로 인하여 그는 세력을 더하지 못하고 쇠패의 길로 접어든다.

『 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

남방 왕의 교만이 재기해서 힘을 모은 북방 왕의 침공으로 꺽이게 된다. 안티오쿠스 3세(마그누스)는 대군을 거느리고 남방 왕을 다시 공격해오므로 이 예언이 성취됐다(주전 205).

『 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 』

곧 실루커스의 안티오쿠스 3세가 돌래미 4세를 침략하러 가는 길에 유대인들 중 어떤 자들이 거기 합세할 것을 예언함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므로 다니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 전쟁이 일어날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의 속국처럼 되었던 터라 남-북간의 관계를 이용하여 애굽 세력을 축출하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친 헬라파(실루커스) 유대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계획은 돌레미 왕조의 '스코파스' 장군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 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취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

안티오쿠스 3세 '마그누스'가 애굽을 쳐서 대승하고 교만하여 임의로 행동하였다.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들을 취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폈기에 남방 왕 돌래미 5세인 '에피파네스'는 북방 수리아 군을 당해 낼 수 없었다.

『 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임의로 행하리니 능히 그 앞에 설 사람이 없겠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 』

유다 땅까지 들어와서 많은 유다인을 죽였는데, 이렇게 된 것은 그 당시 애굽군대가 이스라엘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유다는 많은 고난을 당했다. 오늘날 영적 유다인 한반도의 현실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다시 예언함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과 경륜 속에서 신약종말의 한국은 구약종말의 유다와 동일한 사명으로 택정된 것이다.

『 17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 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

'화친'한다 함은 팽팽한 남북간의 소모적인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안티오쿠스 3세가 낸 꾀를 가리키는데, 당시 애굽은 로마와 동맹을 맺었던 상황이다. 당시의 로마라 하면 유럽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급부상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북방 왕은 전술을 바꿀 수밖에 없던 터였다. '화친'이란 곧 '궤휼'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미-소 관계를 살펴보면 '궤휼'이라는 단어의 진의미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클릭하라). 러시아에서 시작된 모든 '평화운동'은 전부가 가짜이며, 미국이 말하는 '동반자적 관계'도 모두 다 거짓이다. 그 이유는 바로 다니엘서 11장의 내용이 말해주는 것이다.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은 참으로 대단한 거짓말이었다. 모든 궤휼이 이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군이 시리아를 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딸(클레오파트라)을 애굽 왕(돌레미 에피파네스; 당시 7세)에게 준 것은 애굽을 지배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으나 열매맺지 못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자기 남편을 사랑하므로 오히려 애굽과의 동맹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 18 그 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많이 취할 것이나 한 대장이 있어서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

안티오쿠스 3세는 관심을 로마로 돌려 로마의 식민지가 많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침략하여 일시적인 승리들을 거두지만 '한 대장' 로마의 장군 '루시우스 스키피오'(Lucius Scipio)에 의해 대패한다(주전 190년  '막네시아'<Magnesia> 전투). '루시우스'로 인해 로마는 수욕을 씻었고, 승전국으로서 시리아에 대해 여러 가지 무리한 사항들을 요구했다 한다.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에 갚을 패전 배상금 확보를 위해 각 지역의 신전들을 찾아가 닥치는 대로 수탈하였다 하며 엘리마이스에 있는 벨 사원의 보물을 약탈하려다가 그곳에서 그의 자객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언제나 성민(유다)의 대적은 자기 죄로 인해 동무의 칼에 엎뜨러지는 것이다.

『 20 그 위를 이을 자가 토색하는 자로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요 』

안티오쿠스 3세가 죽은 후 장남 실루커스 필로파트로(185~175)가 그 왕위를 계승할 예언이다. 이 자가 '토색하는 자'인 것은 재무장관 '헬리오도루스'를 시켜 전국을 순회하며 세금의 명목으로 약탈을 행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갚지 못한 전쟁 배상금 때문이다. 이 토색자는 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보물들까지 빼앗아 오게 하였다. 그러나 '필로파트로는' 결국 자기의 부하 '헬리오도루스'에게 피살되었다.

『 21 또 그 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궤휼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2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을 입어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23 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적은 백성을 거느리고 강하게 될 것이며 』

여기서부터는 아주 중요하다. 구약과 신약을 넘나드는 성경의 구조에서 연결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천한 사람'이란 종말의 '작은 뿔'을 상징하는 안티오쿠스 4세인 '에피파네스'이다(주전 175~). 이 '비천한 자'는 다니엘 8:8~14, 23~26절에서 헬라국이 4분국된 후에 등장할 작은 뿔로서 예언되었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성소를 헐고 우상을 세우고 2300주야 동안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할 구약의 '적그리스도'로 예언된 자다. 그러나 종말로 볼 때에는 다니엘 7:8절과 11절을 이루고 24~27절의 운명을 맞이할 자다. 이는 인류 최후의 궤휼자로서 신약 교회 종말에 계시록 17:11절의 '여덟 째 왕'으로 일곱 중에 속하여 멸망으로 들어갈 자이다. 8장은 구약종말의 4대강국 시대에 등장할 작은 뿔이고, 7장은 신약종말의 4대강국 시대에 등장할 작은 뿔이며, 이 둘을 2중적으로 연결해 놓은 장이 바로 지금의 11장이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은 다니엘 9:27절을 이룰 것이며, 계시록 17장과 13장을 이룰 종말의 적그리스도이다. 우리가 구약 적그리스도의 행적을 살피는 것은 인류 최후의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눈을 얻기 위함이다(이사야 46:10, 로마서 15:4).

구약의 에피파네스는 매우 천하며 왕자적인 기품을 지니지 못한 인물인 까닭에 '비천한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역사를 보면 원래 그는 안티오쿠스 3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가 로마에 패배했을 때 로마로 잡혀가 14년간의 인질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한다. 서열상으로도 그러했으나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장했다는 점도 그가 '비천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늠케 해준다. 그는 피살당한 '필로파트로'의 동생으로서 형님을 피살시킨 부하 헬리오도루스가 왕위를 찬탈하려고 대항하였으나 에피파네스에게 도리어 패배당했다. 실루커스 4세의 맏아들인 '메미트리우스'는 로마에 인질로 잡혀가 있는 상태이고, 둘째 아들인 실루커스 5세는 겨우 다섯 살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숙부 '에피파네스'는 어린 조카를 섭정한다는 구실로 안디옥으로 돌아와 자객을 보내 조카 실루커스 5세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궤휼로 나라를 얻을 것이라" 한 것은 기회를 보다가 조카까지 죽여가며 왕위를 얻는 잔인하고 궤휼적인 그의 성품을 말해준 것이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 이웃 나라를 정복할 때에 맨 먼저 '거짓된 평화 조약'을 맺어 화친관계를 맺어놓은 후 평화롭다 여겨지는 안정기가 도래하면 불시에 공격해 점령하는 비겁한 전술을 구사하였다. 그는 궤휼과 전술에 능한 자로 아무리 홍수와 같은 힘을 가진 군대의 세력도 그의 궤휼과 전술 앞에서는 깨어졌으며, 동맹을 맺고 왕위에 오른 왕들도 다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같은 방법으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고 많은 재물을 약탈하여다가 그것을 백성들이나 군사들에게 분배하는 형식으로 인기를 얻었다(다니엘 11:24).

『 24 그가 평안한 때에 그 도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 열조와 열조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며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모략을 베풀어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정치 기반이 약한 사람이므로 많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많은 무리에게 약탈한 재물을 분배해주는 정책을 썼다.

인간 종말에도 청황색 말인 공산당 궤휼정책은 '평화'라는 간판을 들고 나와 협상의 제스쳐를 취하므로 많은 사람을 속여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원래 '무신론 공산주의'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표방하던 세력인데, 그러한 그들이 갑자기 기독교를 인정하며 성경을 손에 쥐고 나와 세계교회협의회(W.C.C) 속으로까지 침투했다는 것은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20세기 종말의 가장 큰 궤휼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양 떼들이 죽음으로 인도될 것인지 상상이 가는가? 구약 때도 에피파네스는 '아폴로니우스'라는 자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거짓 평화 협상을 말하다 갑자기 돌변하여 예루살렘을 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우상에게 절하도록 강요했다(유대인 8만명 사망, 4만명 포로).

이와 같이 종말에도 진리를 몰라 협상하는 단체(에큐메니칼 세력)는 수많은 양 떼를 죽이는 살인단체이다. 인류 최후의 적그리스도는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로마가톨릭이나 W.C.C.와 같은 거대 음녀조직을 이용해 '평화'와 '공존'을 외치며 세상을 속일 것으로 볼 수 있다.

『 25 그가 그 힘을 떨치며 용맹을 발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략을 베풀어 그를 침이니라 』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남방 애굽을 침략할 때(주전 169년) 모략적으로 행할 것을 예언함인데, 과연 이대로 애굽에 와서 많은 모략을 행하였다.

『 26 자기의 진미를 먹는 자가 그를 멸하리니 그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자가 엎드러져 죽으리라 』

이 예언대로 애굽 왕 돌래미 6세는 측근자들로 말미암아 배신을 당한 일이 있다. 종말에도 남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기독교 위선자들과 더불어 협상 정치를 취하다가 결국은 속아서 실패할 것이 예언된 것이다. 남북 대립 시에는 가까이에서 도와주는 자들 중에 원수가 있는 것이니, 주변을 삼가야 한다.

『 27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코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에 미쳐서 그 일이 끝날 것임이니라 』

다니엘서 역시 "다시 예언하라" 명하신 예언서 중에 하나이므로, 구약 종말이나 신약 종말이나 남북의 대립 상황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북의 총체적 대립은 하나님의 작정된 기한까지 미쳐야 끝날 것이다. 남북 간의 협상은 헛물켜는 인간의 방법이지, 안식을 주는 성경의 길이 아니다(다니엘 2:43. 이사야 33:7~8).

『 28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리며 임의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 』

『 거룩한 언약을 거스리며...』 이는 그가 유대인을 미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모독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종말에도 영적 유다의 참 선지자는 미움을 당한다. 『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1958년부터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 정책에 속은 자본주의 정치의 패배를 가리킨다. 1917년부터 1950년까지 땅 삼분의 일을 점령했고 1958년부터 사상적인 전쟁으로 세계 각국에 많은 공산 사상을 심은 북방정권에서 최후의 '작은 뿔'이 나타나면 1958년부터 시작된 '평화공존'의 궤휼바람이 결국 최후의 '작은 뿔'에게 사상적 기반과 정치적, 종교적 토대를 마련해준 꼴이 된다는 것을 만천하가 깨닫게 될 것이다.

『 29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

에피파네스는 깃딤(구부로)을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까지 진군했으나 로마의 간섭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깃딤은 그 당시 로마를 가리킴이다.

종말에도 에피파네스같은 적기독은 침략적 정책으로 극동 아세아에서 남침을 하되 중공과 몽고와 북한를 잡아먹고서(이사야 8:5~8) 한국 땅에까지 들어왔다가 하룻밤에 185,000명이 송장이 되어 패전하고 한국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으로 되는 하나님의 동방 역사이다(이사야 37:30~38).

1958년부터는 공산주의 궤휼정치와 기독교 백마 2차승리의 세력 간에 사상전쟁이 시작됐다. 학개서와 스가랴서의 예언대로 마귀 미혹을 이기는 순금등대 교회를 다리오왕 2년 9월 24일에 세워 주심으로(1974. 9.24) 마귀의 앞잡이인 공산주의 정권의 '궤휼'이 모두 다 폭로된 것이다. 흑암을 이길 수 있는 동방의 예언의 등불이 밝아진 것이다. 최후의 작은 뿔이 북방 계통에서 등장한다 하여도, 하나님은 학개, 스가랴서로 세워진 1974.9.24 제단에게 그를 이길 징조를 여러 가지로 주셨으므로, 백마의 승리는 확정된 바다. 비록 마귀로부터 허락을 받고 나오는 공산당의 세력을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으나 하나님의 권세 제단인 스룹바벨 제단이 원수를 물리치고 세계의 양 떼를 살릴 <하나님의 인(印)>을 받아 놓았으니 인 맞은 자는 두려워 떨지 않고, 수풀 속의 사자처럼 담대하게 되는 것이다(미가서 5:7~9).

가장 큰 강대국 소련을 가장 작은 한국이 이겨서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은 다윗의 물맷돌이 골리앗을 이긴 역사로 이미 보여졌다. 스룹바벨 제단의 머릿돌 말씀이 북방의 사상적 궤휼과 무력적 군대를 모두 물리치게 된다. 영권(靈權)은 언제나 뱀의 미혹과 육적 무력을 능가하는 법이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인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으니(요한복음 8:32) 스룹바벨 제단에 연합된 종들은 인간이 풀지 못할 난제 투성이의 세상을 살아도 그 심령만큼은 담대하고 자유롭다.

『 30 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며 거룩한 언약을 한하고 임의로 행하며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길 것이며 』

구약의 에피파네스를 막을 자는 로마이지만 인간 종말에 북방 궤휼주의를 막을 자는 백마 용사뿐이다. 북방이 다시 돌아가서 붉은 용의 최고 앞잡이인 거짓 선지자를 더욱 높여 찬양하며 길러내어 중히 여길 때가 바로 5개월 환란 때이다. 한국에서 소련이 패전함은 성경대로 원수를 이기고 다림줄을 잡은 자들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초막절”이 있기 때문이다. 7월 15일부터는 여호와의 초막절기이다(스가랴 14:16~).

공산당을 심판의 막대기로 들어서 전 세계의 은혜받은 교회의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고 막대기로 쓴 공산당을 심판한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의 작정이다.

구약 때에도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는 친헬라주의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로서 안티오쿠스의 간첩이 되어 그 앞에서 많이 아첨한 자들이다. 그런 고로 인간 종말에도 세계교회협의회(W.C.C) 속에 거짓 선지가 있어서 북방 왕의 간첩 행위를 할 것은 분명하다.

『 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

계시록 13장같이 후3년 반의 시기가 올 때이니 대환란의 준비이다.

구약 에피파네스는 육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곧 성소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며 미운 물건을 세웠다. 에피파네스는  “제우스” 신상을 성전에 세우고 돼지고기로 제육을 삼고 돼지 피를 성소에 뿌렸다. 인간 종말에도 영적 이스라엘 제단에 종교 협상의 쑥물이 들어와서 전 3년의 시작점부터 5개월까지 세계 교회는 "영적으로" 우상에게 경배하게 된다. 66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144,000명이 변화를 받고, 그들에게 이끌린 흰무리가 예비처로 들어가면 알곡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타는 불심판(아마겟돈) 속에서도 피해가 없는  인격이 된다. 고로 권세 받은 종들과 흰 옷 입은 무리에게만 육체 구원이 있고, 협상한 교회들은 대환란인 후 3년 반에 빠지게 된다. 후 3년 반에는 영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인 전쟁에서 소경으로 실패하였기에 재앙은 "육적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실생활에서 짐승이 만든 우상 앞에 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량도 구매할 수 없으며 모든 사회활동이 차단당하기 때문이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6)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60) 앞에 세계 거민들로 절하게 하는데, 우상으로 말도 하게 하고 심지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까지 하니(계시록 13:11~18)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모든 이들은 다 그 앞에 절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단, 절할 수 없는 자가 있으니 바로 성령은 받았으나 '영원한 복음'인 '새 일'을 무시하다가 짐승의 본색이 드러나자 뒤늦게 깨달은 <미련한 처녀들>이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절하지 않으므로 짐승 칼에 죽지만, 이는 순교가 아니요 도리요 천년간 옥에 들어갈 행위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중생받은 자들이므로 피 공로로 인해 백보좌 심판 때 부활하여 '무궁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설립되었다. 이 회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방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61:1~, 누가복음 4:16~이하의 말씀을 악용하여 노동자, 농민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방시킨다는 것은 마귀의 말이다.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 목숨이요, 목숨보다도 귀한 것이 신앙이다. 이 귀한 신앙 사상을 무너뜨리려고 마귀가 공산당을 이용하여 거짓된 평화공존을 들고나오니 이 미혹을 이기게 하려고 다니엘서를 주신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생명위협과 식량수급을 놓고 행해지는 짐승의 표는 '후 3년 반'에 들어가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게 되겠지만은, 전 3년 반 동안은 육안에 보이는 표는 없고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행하는 쑥물(거짓)을 받아 들이는 것이 영적으로 표 받는 행위가 된다. 이 것을 깨닫는 자들이 심히 적다는 것이 교회가 화 받을 조건이 된다.

마태복음 24:14~15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 34 그들이 쇠패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은 궤휼로 그들과 친합할 것이며 35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패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

에피파네스가 유대인 배교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던 궤휼을 가리킨다. 핍박 당시에 이렇게 배도한 자들도 있었으나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하였듯이 참 종은 담대하게 사람들을 바른 데로 인도하였으며, 무서운 핍박을 당하는 자들도 있었다(히브리서 11:36~38).

이 때에 수난을 당하며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민중을 지도했던 인물들이 마카비 일파들이다. 이 때에 맛디아(Matadia)라는 노지사가 의용군을 일으켜서 북방 왕과 싸우다가 주전 166년에 죽고 그 아들 유다가 대신하여 2년간 싸운 결과로 수리아 군대를 구축하고 성전을 청결케 하니, 사람들이 이를 '마카비'라 이름했다. 이 이름의 뜻은 “철장”이다(계시록 2:26~).

주전 165년 12월 25일에 성전을 다시 봉헌하고 예배하니 에피파네스가 죽던 날이요, 유대인에게는 “수전절”이라 불리우며 지켜지고 있다(요한복음 10:22). 인간 종말에도 많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의 쑥물에 취하므로 그의 궤휼에 친합할 것이나, 동방에서부터 권세받은 철장 든 종들이 나아가 짐승과 싸우며 흰무리를 끌어낼 것이다. 은혜 시대의 종들 중에 144,000명만 남게 되며 나머지는 '후 3년 반'으로 떨어지니 이러한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잠언 9장대로 예수(지혜)께서 짐승을 잡기 위하여 '한 여종'을 보내어 포도주를 배합하여 잔치상을 벌이고 어리석은 자들(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기독교)에게 외치게 하셨건만 지혜 없는 자들은 배척하므로 '후 3년 반'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잔치상이 텅 비니 귀한 수 144,000명만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새 시대 천년왕국은 육이 들어가 번성할 새 땅이므로 예수를 영접지 못한 이방족 중에 양심이 바른 사람들이 144,000명이 외치는 '영원한 복음'을 통하여 예수 피에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하므로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육체의 구원까지 받게 되어 천년을 살게 된다. 중생 받은 기독교인 중에는 소수만이 흰무리에 가입될 것이다. 교권에 힘에 그만큼 기독교가 강하게 묶여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작정하신 북방을 때려부수는 동방역사요, 알곡을 모아들이는 초막절 역사이다. 종말에 행해질 이 역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다니엘 11장을 통해 구약종말을 거울로 보여주신 것이다. 북방 에피파네스의 궤휼정치와, 남방 돌래미 왕조 사이에 위치한 유다민족 중에 신앙을 지키며 용맹을 발한 유다인도 있었고, 궤휼과 친합한 변절자들도 있었다는 것은 종말의 17억 기독인 중에 북방 궤휼정권에 속아 '후 3년 반'으로 떨어질 자도 있고, '전 3년 반'의 종이 되어 사상적으로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기고, 많은 이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할 별과 같은 종들도 있을 것을 뜻한 것이 아닌가! 이로 볼 때 구약이 종말의 거울이라는 것은 확실한 진리 아닌가? (이사야 46:10).

『 36 이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쉴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7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 열조의 신들과 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아무 신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나 』

에피파네스는 그 당시 자신을 제우스(Zous) 신이라 하며 화폐에 기록하였다. 그는 모든 다른 신들을 무시하였다. 무신론자였다(다섯째 머리 짐승에 속함). 다섯째 짐승에 속한 '에피파네스'와 같은 자가 일곱째에서 8째 왕으로 나와 이 예언을 이루게 된다. 이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로스(러시아) 땅을 중심으로 관찰 되어져야 한다. 항간에서는 종말의 적그리스도를 'EU의 통합지도자'로 보지만은, 러시아가 배제된 그러한 접근은 위험하다. 무신론 짐승국가인 '러시아'를 배제한 채 성경에 접근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위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지금도 솔로몬 성전 통곡에 벽에 기대어 '이스라엘'을 세계에 우뚝 서게 해 줄 '메시야'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고로 유대인의 메시야 대망과 적그리스도의 궤휼이 만나 어우리지게 될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혈통이 유대계통이 아닐까 하는 예측을 조심스레 해 볼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일곱째 머리 무신론 짐승국가인 러시아(로스)를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로 영접될 정치-종교적 궤휼자가 나타나 어떻게 '세 뿔'을 어떻게 복종시키며 10개의 위성국가를 거느리게 될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풀 필요가 없는 것이 성령께서 때가 이르면 우리로 보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산주의 정책이 궤휼정치인 것은 그들은 근본적으로 '종교는 아편, 신은 없다' 하면서도, 자신의 짐승사상을 감추어 기독교의 탈을 쓰고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계시록 8장 첫째 나팔에서부터 넷째 나팔까지에서는 기독교를 말살하며 불태워 놓고는, 다섯째 나팔부터는 기독교를 속여 손잡자 하며 이용하고 나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정신을 차려야만 미혹을 이긴다. 1958년 3월부터는 세계적으로 영적인 검은 연기가 덮여서 하나님의 종들이 소경 귀머거리가 되었다(이사야 42:18~25).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가 마음에도 없는 터무니없는 거짓 평화공존을 말하니 세계 교회는 좋다고 함께 모인다. 이것은 거시안적 해석이다.

거시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야 '작은 뿔' 곧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때 그것이 거짓인 것을 강하게 증거할 수 있다. 쓴 것을 단 것이라, 빛을 흑암이라, 흑암을 빛이라 하는 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될 때(이사야 5:20) 한 마디도 외치지 못하던 종은 이후에 '작은 뿔'이 등장하여 '비상한 말'로 만왕의 왕 예수를 대적할 때 역시 그를 쳐서 예언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는 그들의 신조 제1항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생은 묘지에서 끝난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세계 교회를 속이려고 나왔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소경이므로 절대로 적그리스도(작은 뿔)의 손에 순교할 수 없다(계시록 11:7).

『 38 그 대신에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

북방은 세력의 신을 공경하게 되나 실은 붉은 용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뿐이다. 강대 국가의 무력은 과학적(물리적)으로는 힘이 될지언정 신학적(영적)으로는 힘이 될 수 없다.  이사야 54:16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우리는 믿는다. 인간 종말에는 과학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인류난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권세 역사로만 모든 문제의 해결을 보게 된다.

이사야 11:9절을 보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세계가 통일될 것이 예언돼 있다. 일곱 머리 짐승들은 자기 힘(세력의 신)만 믿다가 차례대로 멸망해 왔다. 첫째 짐승 애굽이 모세에게 망한 것처럼, 이제 마지막 짐승 로스(러시아), 메섹(모스크바), 두발(토발스크) 왕 곡이 스룹바벨의 머릿돌 진리 앞에 경각간에 망하면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

『 39 그는 이방 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취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주기도 하리라 』

전 세계를 42달간 다스리며 열 뿔에게 땅을 나누어준다는 것이다(계시록 13장, 17:12). 구약 에피파네스도 라시아스(Lasias)를 시켜서 모든 이족들로 하여금 그들 나라의  해안 지방에 살도록 하고 또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도록 하였다.

『 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42 그가 열국에 그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므로 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

에피파네스의 애굽 원정 중 제3회째이니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애굽이 먼저 도전하였다. 저가 애굽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성성(聖城)에 침입하여 각국의 군인을 학살하는 중에 에돔, 암몬 사람들은 탈거하였다 한다.

"동북의 소문"은 바벨론, 페르시아, 알메니아 등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하는 소문인데, 이를 듣고 돌아오는 중에 화풀이로 유다인을 학살하고 유대 땅를 점령하였으나 필경은 멸망하였으니 유다를 건드리고 사는 법은 없음을 보여준다.

구약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남북(미국, 소련)이 오랫동안 대립하다가 북방이 정한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내려오게 되어 있는데(요엘 2:10), 이 일은 남방이 찌름으로써 촉발된다. 남방이 찔러 북방이 내려오되 일부는 중동쪽을 통과하여 아프리카 쪽으로 내려가고 일부는 극동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 때 "동북의 소문"으로 번민하게 되는 것은 이사야 37:36절같이 185,000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로스 군대가 한국 땅에서 송장이 되는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가 요엘 2:20절이 성취되는 때이다. "은총, 은총" 하며 모여들 세계의 알곡이 모집되기 위해서는(스가랴 4:7) 이와 같은 거대한 사건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막절의 서두이다.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 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북방 왕(작은 뿔)이 말단 세포적 조직구조를 가진 황충 떼를 내보내어 세계를 유린시키는 것도 바로 동북의 소문으로 말미암는 최후 발악적인 행동일 것이다.

북방은 세력의 신을 섬기는 강대한 짐승나라이다. 사단 600 이 종으로 쓰는 60 과 6 의 결집체가 바로 북방과 그게 연합된 정치-종교 세력인 것이다. 북방은 또한 '철의 장막'이다. 예레미야 15: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이 시대는 철과 진흙이 대립되는 발가락 시대요(다니엘 2:34~), 미혹의 시대요, 흑암의 시대이나 동방 땅 끝 해 돋는 곳에서부터 다른 천사의 사명 가진 종들이 예언의 등불을 들고 나가면 흑암은 자동적으로 물러가고 알곡들이 모집되어 새 시대가 성취된다. 이것이 자랑스런 초막절, 동방역사의 스토리이다.

한반도에서 엄청난 살생을 당한 북방 군대의 왕(적 그리스도)은 5개월 동안 이어지는 인 맞은 자들의 승리행보에 속수무책일 것이지만 144,000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많은 도륙을 자행할 것이다. 그 절정이 바로 "3차 전쟁"이 일어날 때이니 "전무후무한 환란"은 이 때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전 세계가 짐승에 손에 들어가는 이 전쟁에서 "예비처"만큼은 미가엘 천사의 보호로 피해를 당치 않게 된다(한반도는 전체가 예비처이므로 할례받지 않은 자, 곧 거룩지 못한 자의 통행이 제한 받는다).

3차 대전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종들이 작은 뿔의 졸개들인 황충 떼와 싸우며 흰 무리를 끌어내며 북방까지 진출하는 역사가 선행되고, 이 5개월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못한 교회의 종들은 죽음보다 괴로운 고통 중에 처하게 된다. 황충 떼의 첫 째화가 끝날 무렵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바람집을 잡아라" 외쳤던 인 맞은 종들이 북진역사를 마치고 그 권세가 걷히우게 되므로 짐승이 이들을 이기고 이들을 죽이게 된다(계시록 11:7).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잠시 뿐, 3일 반 후에 생기가 들어가 하늘로 올라가니 이 때가 자랑스런 1차부활이 있을 때이다(계시록 11:11~12, 계시록 20:4~6). 인 맞은 종들이 공중으로 들림받은 후에 즉시 계시록 9:14절같이 정해진 년, 월, 일, 시가 이르러 유브라데 강가에 결박된 4천사가 놓이게 되니 세계는 20억이 살생당하는 전쟁의 도가니로 변하게 된다. 여기서 승리한 '작은 뿔'은 계시록 13장 같이 '후 3년 반'을 보수로 받게 되고 음녀와 미련한 처녀들과 불신자들을 지배하게 된다.

중동 유대 땅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구약의 역사가, 극동 유대 땅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오늘날의 세계시사와 이토록 일치하는 것은 성경을 기록하시고 기록한 그대로 만대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모략과 경륜 가운데 되어지는 일이니,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본문을 읽고 전하여 짐승 사상 앞에 굴복지 않는 '마카비'의 신앙사상으로 짐승을 물리치고 온 세상을 구원하는데 큰 일꾼으로 쓰임 받자!

다니엘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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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3장 - 교회의 교만 죄


성경 : 예레미야 13장
제목 : 교회의 교만 죄

1. 썩은 띠(요대)의 비유와 멸망 : 1~11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

예레미야의 손에는 썩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게 된 "베띠"가 쥐어져 있다. 제사장들이 허리에 띠는 '모시 베띠'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세계 인류 중 유일하게 제사장적 사명을 가진 나라임을 상징해 준다. 이는 영화로운 직분이요, 귀한 사명이었다. 하지만 그 베띠를 이제 유브라데 강물에 던져 버리라 할 것인데, 이는 제사장 직분을 수행해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 죄악의 물에 빠져 버렸음을 비유한 것이다.

첫 아담도 선악과를 먹고 이 강가에서 버림을 당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갈대아 우르 땅에서 빼내시고 이 큰 강(유브라데)을 건너오게 하여 복을 주셨건만 그 자손들이 아담에게 물려받은 원죄의 패역으로 말미암아 아담같이 다시 그 강가에 버림을 당하게 되는 형편이 "베띠"의 묵시로 나타난 것이다.

인류 종말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원죄(패역)의 본질을 해결치 못한다면 아담같이 망하되 유대교, 개신교,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두 그 육체가 바벨론의 손에 붙여져 죽게 된다(계시록 13장, 18장). 신령하고 은비(隱秘)한 하늘의 하나님의 새 일(민수기 16:30. 이사야 42:9, 43:19, 48:6. 예레미야 31:22) 양식을 버리고 땅의 것만 좇아 살다 보면 반드시 죄악의 땅과 함께 썩어버린다. 6절에 가보니 베띠는 썩어 버렸다. '썩은 베띠'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으로 '짠 맛을 잃은 소금'과도 같다(마태복음 5:13). '썩은 베띠'가 다시 건져진들 그것이 당할 일은 불에 태워지거나 버려져 짓밟히는 일뿐이다. "베"라는 옷감은 성경에서 '정결함'을 상징하는데(사무엘상 2:18), 거룩한 제사장들의 옷감과 허리 띠, 속옷 등의 재료에는 전부 '베'가 쓰여졌다(출애굽기 28:39,42, 39:27. 레위기 6:10 - 세마포는 베옷이다).

1~2절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베띠"를 사서 물가에 두지 말고 허리에 띠되 "값을 주고 산 띠"로 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민 가운데서 구별하여 내실 때에 거저 구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시되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고귀한 보배피로 그들을 사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띠를 사서"라는 표현은 당신 생명으로 '우리'를 사셨다는 것이다(이사야 43:3. 에배소서 1:7.  계시록 5:9~10. 이사야 53:4~10).

선지자에게 그 띠를 "허리에 띠라"고 명하신데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허리는 몸에 부과되는 모든 힘을 받아내는 제 1기둥이다. 운동선수를 보라! 여타부위의 부상은 곧잘 극복해내지만, 허리가 상하는 경우에는 선수로서의 생명이 바로 끝장나고 만다. 모든 힘이 허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거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는 모습을 비유할 때 흔히들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허리의 중요함과 허리띠의 요긴함을 잘 나타내 준다.

"베띠를 허리에 두른다"는 것은 그 띠를 주인이 직접 취해 자기의 몸에 밀착시킴을 의미한다. 즉 띠를 사용하는 자가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했다'는 자체에서 큰 의미가 발생한다. 몸 아닌 것이 몸에 와 붙어 몸의 일부처럼 쓰여지기 때문이다. 베띠가 주인에게 취해지는 순간부터 주인의 가장 요긴한 부분을 두름과 동시에, 이제 그 띠가 없으면 주인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질 뿐 아니라 힘을 써서 일을 하려할 때도 옹골지게 해낼 수가 없는 점... 이 점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당신과의 관계를 '베띠의 묵시'로 보이신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세상 백성 중에서도 특별히 구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하여 자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당신 몸의 일부와 같이 귀히 여겨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허리띠를 졸라메시고 당신의 영광된 구속사업을 성실히 수행하셨던 것이다. 타락된 땅을 재개발하는 건설주가 이 대사업(이사야 58:12~)에서 특별히 유대 민족을 허리띠로 삼은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에덴동산이 얼마나 행복한 장소였던가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저주가 에덴을 삼켜 버렸다. 이 저주로 떨어진 동산을 회복시키는데 있어 빛의 도구로 불리움을 받았다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터인데, 유대인은 아담과 같이 뱀의 말을 따라가 또 다시 범죄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본문의 '베띠 비유'인 70년간의 바벨론 유수(幽囚)를 선언하신 것이다.

지금 이 시대! 피로 산 세계 기독교회를 향해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라는 것!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시다(계시록 10:7~11). 그러나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한탄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교단에서 배척받아 더러워진 위치에서도 죽을 자들로 깨달아 살게 하기 위해 목숨바쳐 예언을 증거하는 단체가 '우리'이다. 우리가 외치는 이 예언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치 않으면 구약 솔로몬성전의 운명처럼, 기독교 종말의 운명도 "썩은 베띠"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이름난 목사가 다음과 같이 설교하는 걸 들어보았다.

"소경이 낭떠러지로 가는 것을 보면서 무관심하다거나 기어 풀린 차가 뒤로 밀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덮치려 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맞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 살인자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게다. 본 제단은 살려보려는 마음 하나에서 다시 예언하고 있다. '후 3년 반'이라는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교회! '북방환난'이라는 기어 풀린 자동차에 치어 죽을 운명의 교회! 이러한 교회들을 향해 생명의 경고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 생명이라도 이 책의 말씀을 읽고 깨달아 돌이킨다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계시록 9:14~ 정해진 년, 월, 일, 시에 유브라데 강가에서는 3차 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또한 동일한 장소 유브라데 강가에서 최후의 대중선악전쟁인 아마겟돈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계시록 16:12~). "유브라데"는 구약이건 종말이건 '썩을 자'가 모여드는 심판 장소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민에게 거룩한 율법을 주셨으나 백성은 1,000년도 채 못되어 타락하여 북방 칼에 붙여질 수밖에 없었던 구약종말의 형편처럼, 거룩한 성령께서 단장시켜 주시고 신령한 은사를 부어주신 기독교 역시 2,000년이 채 못되어 타락하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본문의 예언대로 다시금 북방 칼에 붙여져 심판받는 일뿐이다. 피로 산 백성에게 이와 같이 행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그 심정을 안다면 어찌 다시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니라 』

선지자가 실제로 "유브라데"로 간 것이 아니다. 13장은 묵시 중에 진행되는 일이다. 베띠를 "바위 틈에 감춤"은 하나의 행동계시(行動啓示)로서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갈 비천(卑賤)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본문의 "물가"라는 표현에서 "물"이란 죄악과 사단의 권세가 횡행하는 현 세상을 상징한다. 계시록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이 여자는 해를 입은 촛대교회인데 사단이 아무리 강한 권세로 공격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게 될 것으로 계시되어 있다. 계시록 17:1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17:15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큰 음녀가 앉은 "물"'바벨 사상'으로 점령된 말세의 죄악세상을 가리킨다.

사단이 역사적으로 이용하는 강대국들은 7머리 10뿔인데, 하나같이 짐승의 마음을 받은 국가들이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유대민족의 시드기야 정권은 출애굽하여 나온 첫 번째 짐승 '애굽'을 의뢰하다가(에스겔 17장) 셋째 짐승인 '바벨론'에게 눈알이 뽑혀 잡혀가고 말았다(예레미야 39장). 하나님의 교회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 물"에 거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준 사건이다. 지금 기독교회는 무엇을,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 북방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의지하고 있는가? 북핵 문제를 막아보려고 다자간 협상, 즉 중국, 러시아, 일본을 의지하는가? 만일 교회가 세상 정치꾼들과 같이 이러한 노선을 택하여 기도한다면, 그 종국은 시드기야의 운명과 같이 될 것이다.

"바위 틈에 감추라" 기본적으로 바위 위의 갈라진 틈을 가리키나, 여러 바위나 절벽 등에 나 있는 사이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바위는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할 '피난처'로 쓰였지만, 본문에서는 예레미야의 허리에 띤 띠를 숨겨 둘 장소 이상의 뜻은 없다. 고로 "감추라" 하신 것에는 '보호'의 뜻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관계단절'의 의미뿐이다.

『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더라 』

"여러 날 후에"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된 것"을 보게 된다. "썩은 것"은 유대민족의 영광이 쇠락했음을 비유한다. 유대인은 "띠"와 같이 하나님께 밀착되어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만의 하나님이셨다(아모스 3:1~2). 그러나 저희가 충성치 않으므로 이렇게 "썩어져 쓸데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속에 물들어 버릴 때 아무리 하나님이 값 주고 산 띠라도 '70년간' 내어버림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스런 결과로서 종말의 우리에게도 귀중한 교훈이 된다. 예레미야의 띠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벨을 상징하는 '유브라데 강가'에 있었기에 썩는 것은 당연하다(이사야 8:6~8).

교회가 세상 것에 마음을 두면 그 마음이 세상 것에 의해 부패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우리 육신이 세상에 거하는데 어찌 세상 물을 초월하랴"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닷물은 짜지만 살아 있는 고기의 살은 결코 소금물에 절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고기에는 살은 짭잘하게 소금기가 베어든다. 영적으로도 똑같다. 우리 인간은 세상에 속하여 살아도 말씀(생명)과 동행하는 한, 세상 물이 우리를 점령할 수 없는 법이다. 유대민족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마음에 품어들였다. 또한 주변 물질문명 강대국의 힘(원조)을 동경하며 기웃거렸다. 그 결과 하나님은 떠나시고 유다는 죄악 문명에 물들게 된 것이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바벨론)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현재의 세계 교회도 유대 교회의 종말과 같이 썩어짐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협상, 종교협상의 쑥물을 단물인 줄로 착각하여(이사야 5:20) 북방과 그가 이용하는 거짓 선지의 거짓 평화 앞에 대다수가 쓰러지고 말았다(이사야 51:17~. 예레미야 23:15~. 계시록 9:1~). 세계적으로는 W.C.C.(세계교회협의회), 국내적으로는 K.N.C.C.(한국기독교협의회)가 그러하다. 구약 유대민족은 하나님을 떠난 협상죄로 인하여 70년(예레미야 25:11, 29:10)간 북방에 잡혀가서 모든 육체가 썩어졌다가 70년 후에 스룹바벨 단체가 약 5만명을 이끌고 돌아와서야(에스라 2~3장) 무너진 솔로몬성전 터에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였다(에스라 6:14~15).

이렇게 구약 종말의 선민이 받은 심판이 예레미야 서책을 통하여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종말을 향해 살아있는 이 교훈을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가 깨달아 예수님 재림 시(時) 예언의 등불을(베드로후서 1:19. 마태복음 25:1~13) 높이 들지 못하면 계시록 13장같은 대 환난에 빠져서 모든 육체가 노아 때와 같이(마태복음 24:37), 롯의 때와 같이(누가복음 17:28~) 심판받아 죽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표면적 바벨론을 치고 나온 구약 스룹바벨의 역사가 인간 종말에도 이면화되어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하여 예정해 두신 제단이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지대 놓은 스룹바벨 제단이다(학개서 2:6~7, 10, 18, 20~23. 스가랴 4:9).

『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같이 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稱譽)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제 하나님께서 "베띠"의 계시를 해석해 주신다. "교만"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영예' 혹은 '아름다운 장식'을 의미한다. 11절의 "이름", "칭예", "영광"이 바로 그 뜻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으므로 모든 민족 가운데 주님의 자랑거리가 되기로 작정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예는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을 썩게 하리라" 이렇게 징계하심은 사랑 때문이다(히브리서 12:8~).
① 세력을 인한 교만은 꺽는다 하셨고(레위기 26:19).
②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하셨다(잠언 16:18, 야고보서 4:6). 이렇게 유다가 썩어 무익하게 되기까지 '다른 신'을 좇으며 강퍅한 대로 행하게 된 것은 아담 때부터 내려오는 뼛골 속 '원죄' 때문이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긍휼을 한 몸에 받던 자라도 이처럼 '원죄'악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원죄 문제 해결책은 예수님의 피로 사신 새 일 교훈 속에 녹아져 고침 받는 길 외에는 없다(이사야 42:9, 이사야 43:1~5). 그러므로 새 언약으로 거듭난 기독교가 지상 천년안식을 앞두고 그곳에 들어가라고 주신 말씀인 '새 일'을 멸시한다는 것은 "썩은 베띠"의 운명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이다.

이사야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여호와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유다는 열방 어떤 민족보다도 우등한 자리에 있었으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가장 비천한 신세(포로민)가 되었다.

2. 포도주의 비유와 장래 고난 : 12~17

『 12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13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

"포도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육체가 먹는 포도나무 열매와 포도주가 있고(창세기 9:20~27, 누가복음 22:17~18), 다음으로는 영혼이 먹는 극상품 포도나무와 포도주가 있다(이사야 5:2, 25:6~8, 55:1~. 요한복음 15:1~). 셋째로는 영혼이 먹되 먹고 죽는 사단의 거짓말 곧 진노의 포도주가 있다(예레미야 51:7. 계시록 14:18~20, 17:2, 19:15).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여기서는 세 번째 뜻으로 쓰였다. 교회에 죄악이 가득 차게 됨에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 또한 가득 차게 되는 형편을 비유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되는 것은 끝까지 회개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악 가운데) 내어버려 두셨기 때문이다(로마서 1:24, 26, 28). 그러나 교만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하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라고 한다. 불신앙의 무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평이(平易)한 교훈에 감춰진 신령한 뜻을 깨닫지 못하므로 조롱하게 된다. 말씀을 조롱하는 것은 곧 멸망케 될 자들이 상습적으로 범하는 죄악이다.

예레미야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이처럼 말씀이 사람되어 오셨어도 유대인들은 청종치 않았다. 요한복음 7: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러나 진정 율법을 모르는 자는 이 말을 지껄인 자신들(바리새인)이었다. 진리를 오해하여 발설한 저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갔기에 바리새인은 지옥의 아랫목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7:27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천만에...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안다 하는 대로 예수님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으면 좋겠거니와... 예수님은 히브리서 7:2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하신 바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을 초월한 곳에서 오신 분이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의 교만은 '무지의 강가'에서 제 잘난 줄 알고 물장구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예수님께 고침받은 한 소경이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는 멋진 신앙고백을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며 교권을 행사하여 그를 쫓아내었다. 이렇게 유대교권이 범했던 연속적인 교만의 죄들은 오늘날에도 자칭 정통, 장자 교단이라고 하는 계층에서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당대 유대나라는 이처럼 부패했었다. 창조주를 멸시하고 내어쫓는 지경까지 부패하고도 멸망치 않을 나라가 어디 있으랴! 죄악이 관영한 뒤에는 하나님의 벌(심판)이 임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상고할 때, 오늘날의 기독교는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 내의 행위들을 살펴야 할 것이다.

『 14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간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됨" 유대민족이 내란으로 인하여 망할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술취함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깨어나게 되지만 사단의 영적 미혹에 취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깨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51:21절"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셨으며, 여기서 '이 말'이란 선지서(예언서)의 내용을 뜻한다. 인간종말에 '살 길'은 예언서를 읽고 듣고 지키는 일뿐이다(계시록 1:3). 이렇게 해야할 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교회'라는 점을 명심하라! 이제 황충떼의 환난(계시록 9:3~5)이 일어나면 교회 내부에서부터 충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일본귀신이 교회를 치고 들어오니 교회 내부로부터 분열이 났고(옥중성도 vs 신사참배), 공산당 귀신이 교회를 치고들어올 때(W.C.C.)도 교회가 두 동강 났었다(에큐메니칼 지향의 진보교단 vs 보수교단). 포도주병에 대한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유대 민족이 결국 70년간의 산 지옥을 경험한 것처럼(예레미야 39:1~11)... 예언의 내용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고, 고하고 들려줘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7배나 강한 산 지옥 "후 3년 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본문에 담긴 종말의 비밀이다.

『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

"들을 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는 하나님의 부탁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탁하시는가? 살려주고픈 사랑이다. 힘 세신 분이 강권으로 살리면 될 것 아닌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자기의 전 생애를 바쳐 순종하기 전에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인간 스스로 알 수도 없고, 알아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는 주님이 정하신 순서가 있다. 다음과 같은 자세가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님의 뜻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듣고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즉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 칠 때라야 비로소 주의 뜻이 계시된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유대교권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세가 없음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교만의 극치'이다.

• 마태복음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마태복음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 마가복음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이러한 교만 앞에서 예수님은 마음 속 깊이 탄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마가복음 8:12). 그럼에도 표적을 보여달라는 주문은 끊이지를 않았다. 누가복음 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본 의미를 상실한 채) 강도의 굴혈이 된 것을 보시고 성전정화를 행하셨을 때에도 교만한 유대인들은 이것이 주께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시편 69:9. 요한복음 2:19)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요한복음 2:18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말하는 교만함을 보였다. 마귀의 자식들에게는 도무지 각성하는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표적 보는 것 자체'는 영생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될 수 없다.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증명되고 있다.

요한복음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이 표적을 행하셨을 때 무리가 보인 최초의 반응은 그럴 듯했다. 요한복음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나 이들은 메시야가 왜,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를 알고픈 마음이 없었다. 단순히 자기들에게 빵 좀 주었다 해서 예수로 그 자리에서 임금을 삼으려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6:15).

빵을 얻어 먹음과 동시에 큰 이적을 체험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탁월한 장사꾼적 기질을 발동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행할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가 자기들의 손 닿는 곳 가까이에 있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께만 붙어 있으면 빵조각은 확보되겠구나라는 계산이 돌아가던 터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거기서 그분을 놓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신 예수를 찾아 하루동안 방황했던 그들은 이튿날 예수를 다시 만나게 되자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기나 하냐'는 듯 원망 섞인 탄성을 쏟아낸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

그들이 예수를 애타게 찾았던 것은 예수와 함께 진리를 위해 순교하기 위해서였던가? 그것이 아니었음이 예수님의 다음 답변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또다시 반문했고, 주님은 이에 이렇게 답하셨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여기서 웃지 못할 희극이 연출된다. 독자인 성도여!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까? 자문해보기 바란다.

요한복음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지금껏 행해졌던 질문중에 가장 우문(愚問)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지금껏 보았던 이적은 다 무엇이던가? 무엇이었기에 또 표적을 찾는 것일까? 돈을 주고 이렇게 질문하라 해도 정상인이면 할 수 없는 질문을 이리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무지(無知)가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한 백성들을 믿게 하기 위하여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신들 무리의 반응이란 이토록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뿐 이었으니, 당시 안타까운 예수님의 마음을 어찌 우리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아무리 표적을 보여준들 택한 자 외에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주님은 불택자들을 향해 요한복음 6: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셨고, 이미 요한복음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며 책망하신 바가 있다.

표적을 보이라 요구하는 유대인들의 교만한 모습을 신약에서 찾아보았다. 유대인은 지겹도록 요구했고 예수님은 이에 다 응해주셨다. 그러나 결론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다음 말씀이 응하기 위함이다.

요한복음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이사야 53:1~3)

위에서 언급한 유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거듭난 우리의 모습임을 그 누가 깨달을까?

『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

15절 말씀은 바로 거듭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구약과 2,000년 전 유대교회를 상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예언서 속에 담겨진 주님의 심정을 더 잘 느끼기 위함이다. 15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음이 곧 교만임을 알 수가 있다. 교만을 떠나려면 먼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마태복음 18:2~4).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것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교만>에서 비롯된다(요한복음 9:34. 누가복음 18:11~). 또한 <죄악을 사랑하여 단호히 끊어버리지 못함>도 숨은 교만의 범주에 들어간다(시편 64:6~7. 이사야 5:18~23).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선지자도 백성을 향하여 주님의 심정을 대언할 때 이사야 46:12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하였으니 진실한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 16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

말씀을 들려주어도 끝끝내 회개치 않는 자의 앞길은 흑암 뿐이다. 흑암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며 점점 극심해진다.

① 1단계는 하나님께서 불순종자에게 "흑암을 일으키는" 단계이다. "흑암"은 재앙을 비유하는데 그것을 "일으키신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회개치 않는 죄인에게 재앙 내리는 일에 착수하시는 단계를 말한다.

② 2단계는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는" 단계이다. 회개치 않는 죄인에게 재앙이 첩첩이 계속되므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음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밤중에 길 모르는 자가 첩첩산중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꼴과 같다.

③ 3단계는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는" 단계이다. 자기들로서는 "빛"을 바랐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반대로 "사망"에 이르는 "그늘"(재앙)을 조성하신다. 즉 일이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치명적(致命的) 상황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 상태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오는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앙화(殃禍)이기에 피하려 한들 피해볼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아모스 5:18~27). 이렇게 된 자들을 죽여 버리기 위하여 내보내는 무리가 바로 '북방 짐승 세력'이다. 오늘날에는 '북방 무신론'의 무리라고 할 수 있다(7째 짐승에서 난 '작은 뿔'과 '10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피할 수 없는 재앙이 오기 전, 즉 기회가 있을 때 어서 돌이켜 회개하라는 것이다. 종말에도 무서운 흑암세계 '후 3년 반'이 오기 전 자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일찍이 이 길을 택한 자들이 바로 144,000명의 기름 예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이며, 마지막에 가까스로 이 길로 접어드는 자들이 바로 세계적인 '흰 무리'이다.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하신 처지(대환난)로 떨어지게 된다(이사야 8:21~22 = 미련한 다섯 처녀).

『 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선지자는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동족의 불순종(교만)으로 인하여 - 기도하는 중에 은근히 곡하게 된다. 선지자의 마음 속에는 이처럼 자기 백성을 아끼는 사랑이 흐르고 있다. 내 편을 사랑하는 일은 쉬워도 나를 대적하는 교만한 자를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만'이란 말은 높아짐을 의미하는데(욥기 33:17. 다니엘 4:37), 여기서는 스스로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무시하는 교회적인 죄악을 지적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이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가 남아 있을 때, 유다가 어서 회개하여 살기를 원했고, 다시금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백성을 위하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회개를 촉구했던 것이다. 선지자가 눈물을 흘린 까닭은 백성을 회개시키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도 미약했기 때문이다. 눈물은 진실이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거짓말할 자는 마귀밖에 없다. 이렇게 선지자의 눈에서 진실하고 뜨거운 눈물이 떨어져도 백성은 교만하여 듣지 않았고, 그들의 굳은 마음은 풀릴 줄을 몰랐다. 이사야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이러한 고집때문에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잡혀간 것이었다(B.C.606, 598, 587). 하나님은 심판하고 싶어 안달나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래도록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긍휼 자비가 넘치는 신이시다(베드로후서 3:8~9). 언제나 문제는 기회가 와도 회개치 못하는 인간 편에 있다.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역시 눈물로서 권고하여 다시 예언하는 자들의 촉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종말의 교회는 5개월 환난(계시록 9:1~12)이 끝날 때까지 회개치 아니하면 '후 3년 반' 대 환난에 떨어져 멸망 당하기로 작정되어 있다. 역사는 주님의 작정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70년 포로기간을 통해 확인한 바 있으니(예레미야 25:11, 29:10), 계시록 9~13장까지 기록된 말씀이 주님의 작정인 줄 믿는다면 지금은 결코 잠잘 때가 아니라 계시록 10:7절의 말씀을 깨닫고 11절처럼 전해야 할 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진실로 믿는 자라면 자다가도 머리를 들 때가 지금이다!

3. 왕궁에 원수가 침입할 예언 : 18~21

『 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19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뇨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

이 부분은 끝끝내 회개치 않다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가게 될 비참한 광경을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솔로몬 성전에 임한 심판은 모두가 '피로 산 은혜 교회'가 받을 심판을 미리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① 왕과 왕후가 높은 자리에서 떨어짐(18절).
② 바벨론 군대의 습격을 당하여 남방 애굽 성읍들로 피난하려고 해본들, 허락되지 않으므로 결국 사로 잡혀감(19절).
③ 유대민족(양 떼)은 북방 끓는 가마솥 세력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됨(20~21절).

유대민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바벨론을 친구로 삼으려 한 적이 있었던 고로(20절), 바벨론 왕을 가리켜 "너의 친구"로 표현한 것이다. 21세기에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영적 유다의 정치와 교회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교회가 앞장서서 북방 무신론 국가와 손을 잡고 그들의 '거짓평화'에 동조해주고 있다는 것이다(K.N.C.C.계열). 북한과 '한 민족'임을 운운하면서 (뒷전으로) 악한 일을 도모하는 그들을 지원해주고, 이제는 아예 공개적으로 손을 내뻗어 '민족공조'를 이루자는 저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까지 하는데..., 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4월 23일자 연합뉴스 기사 한 편을 소개한다.




북한이 최근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기도'를 주장하며 <민족 대단결>을 눈에 띄게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저해, 남북대결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북침 핵전쟁'을 노리고 있는 만큼 <민족공조>를 통해 이를 타개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22일 `민족 대단결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절박한 요구' 제하의 보도물을 통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기도가 실천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며 "민족의 대단결은 오늘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가장 절박한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미제가 북침 핵전쟁을 도발하면 그 피해는 북과 남의 우리 민족이 당하게 된다"며 "지금은 사상과 제도, 이념을 논하거나 민족공조를 외면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방송은 또 "조선반도에서 외세와 공조한다는 것은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뜨리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평양방송은 이에 앞서 지난 20일과 21일 잇달아 미국이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북 `핵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북한방송은 17일 동족끼리 싸우면 어부지리를 얻는 것은 외세 뿐이라며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을 지켜 나갈 것을 촉구한 데 이어 18일에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배정책에 민족 공동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 '민족 대단결'을 요구했다.

북한이 '민족 대단결'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 대단결 5대 방침' 제시 5주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 98년 4월 18일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50주년 기념 중앙토론회에 서한을 보내 민족자주 원칙 견지, 남북관계 개선, 외세의 지배와 반 통일세력 반대 등을 골자로 하는 `민족 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핵 3자회담'에 북한측이 남측의 참여를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북측은 오는 27일부터 평양에서 제10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전화통지문에서 <민족공조>로 우리 민족끼리 남북관계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출처 : 서울=연합뉴스, 2003. 4. 23 >




'한 겨레'이니 '한 민족'이니 하는 말의 이면에는 진정한 동포애와 통일을 위한 염원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 '한 민족', '통일'의 개념은 남한 백성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뱀은 원래 혓바닥이 두 개이며, 뱀이 들어쓰는 공산주의자들은 '용어혼란전술'의 천재들이다. 북한과 남한 내의 좌익세력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의 실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예언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한이 친구 삼은 자 북한 및 좌익들의 용어 개념
변혁(變革)
개혁(改革)
북한 조선말사전 :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낳게 하는 급격한 변화나 전화를 일으키는 것' (고로 그들이 변혁, 개혁하자고 하는 것은 '혁명'하자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민주(民主)
'민족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을 지지하는 남한 NL계열 운동권학생들은 한국사회의 구조를 ①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지주, 매판 자본가, 반동 관료들을 한 축,  ② 노동자, 농민, 도시 부르주아, 청년, 학생, 지식인, 민족자본가를 또 다른 한 축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저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란 ②의 세력이 ①의 세력을 몰아내고 백성이 된 '사회주의 국가'임을 알아야 한다. 저들은 남한 정부가 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에 의해 유지되는 식민지적 사회 정체제도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 구조는 오직 혁명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民' 곧 백성이란 위의 ②번의 '붉은 세력'과 그 친화세력들로 제한된 표현임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친일파 청산'을 사회 이슈화시키고 '친북좌익활동'을 정당화하며 배고픈 북한 백성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나몰라라 하는 정책을 쓰는 자들이 모두 저 출신들이다.

참고로, 'NL'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에 입각하여 한국사회를 공산화하려는 세력이다. 이들의 명칭은 다양한데, NLPDR파, NL(민족해방)파, '주사파', '친북운동세력' 등으로 불려지며 국내 좌익권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이 출신들이 정치권에 포진하여 2004.4.15 총선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저들이 국회장악에 성공하면 우선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완전철수'부터 진행시킬 것이며, 남한 민중과 교회 성도들은 저들이 장악한 매스컴의 영향력과 빛을 가장한 궤휼에 속아 더욱 더 타락케 될 것이다.
민중(民衆)
민주(民主)
민족(民族)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정치기구를 송두리째 전복시키기 위한, 소위 <민중, 민주, 민족 혁명운동>이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남한 내 자생적 공산주의자들과 친북세력들에 의해 '한국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한 노선'인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어 이미 용어혼란전술에 성공하고 있다. 거물간첩 송두율이 '민주화투사'로   초대되는 것이나, 좌익들의 일체행위가 이미 '민주화 운동'으로 각인되어 있는 실정이다.

저들은 이들은 모든 기업체의 노동자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임금인상 슬로건'을 내세워 선동함으로써 노사분규를 일으키게 한 주체세력이며, 5공에서 6공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노사분규를 극대화시키며 분신자살을 사주한 세력인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 순진한 대학생들이 마귀미혹에 속아 줄줄이 분신하던 사건은 생각하기도 싫다. 무신론 공산주의 사상은 사람의 생명을 도구화하는 잔인한 사상으로 마귀에게 속한 사상이다(요한복음 8:44). 이들은 말단 세포적인 방침으로 청와대서부터 남한 사회 어느 곳이든 다 주둔해 있다.

이 운동을 하는 자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계급을 <매판독점자본가, 신중산계급, 중소상공업자, 부농, 노동자, 빈농, 영세상인 및 도시 빈민>의 7계급으로 나누며 지배계급은 <매판독점자본가, 신중산계급, 중소상공업자, 부농계급>이며, 나머지 <노동자계급, 빈농, 영세상인 및 도시빈민>을 피지배계급으로 본다. 혁명적 민중은 '노동자, 빈농, 영세상인 및 도시빈민'의 3계급이지만, 실천적으로는 여기서 다시 '상층노동자' 계급을 제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즉 '가지지 못한 자''민중'으로 보며, 한국사회를 크게 2계급으로 나누어 하부층이 상부층을 타도하는 것을 '혁명'으로 본다. 따라서 진보계열 신문이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무리들이 즐겨쓰는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용어에는 이 붉은 무리의 철학이 상당히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학생때부터 전경에게 쫓겨다니며 감옥에 드나들며 다져진 사상은 정치판에 들어가건 노동판에 들어가건 강하게 살아 있는 법이다. 방송도 믿지 말고, '평화''민주'와 같은 단어도 듣지 말아야 할 시대이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한치 앞도 분별할 수 없이 속고마는 '혼란'의 시대가 지금이다.

본 선교회를 찾아온 한 탈북자의 진술을 들어보면 북한은 지도층이나 백성이나 '머지 않아 전쟁은 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발전'이나 '민생안정'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전쟁 나면 다 같이 파괴될 것인데, 국가발전에 더 많이 발전(투자)한 쪽이 어리석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당과 백성 사이에 만연해 있다 한다.

남한은 전쟁이 나면 피해가 큰 쪽은 이쪽이니 어찌하든 전쟁만은 막아보자는 쪽에서 통일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를 까부수고 위대한 수령동지의 염원인 <남조선 인민의 해방>을 위한 통일을 이루어보자는 취지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남북한의 교류가 옳은 열매를 맺을 확률은 0% 인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모르면 전쟁이 두려워 그들(독사)의 협박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고, '남북통일축구'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운동을 통해서라도 긴장을 완화해 보려는 인본주의가 꽃피게 된다. 2002년 9월 7일에 열린 남북통일축구 경기장에는 태극기 반입이 철저히 저지됐다. '민족화합'이라는 속임수 이벤트를 위해 '민족의 얼' 태극기를 희생시킨 사건이다. 북한은 태극기를 분단의 상징으로 보고 있고, 민족화합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 저들 사상에 우리가 동조해준 꼴이 된 우습고 하심한 사건이었다. 북한이 굳이 ‘태극기가 있는 곳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우리는 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평양경기장에 인공기가 걸렸다고 해서 우리 측이 경기를 포기하겠는가? 남한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우리는 못하는 것들을 저들은 자신있게 한다. 북쪽의 사상은 철같이 강하며, 남한의 사상은 진흙같이 무르다는 뜻이다.

'한 민족', '한 핏줄'을 운운하며 '민족공조'를 외치는 것은 감정(민중선동)에 호소하는 북측 전술 중 하나임을 소개했다. '핏줄'을 논하자면 우리 모두가 노아의 후손으로서 인류 모두가 다 '한 핏줄' 아닌가? 400만이 살상된 6.25를 일으켜 놓고도 회개치 않는 그들이 무슨 '핏줄'을 알겠는가? 다 뱀의 소리일 뿐이다. 무신론 '짐승사상'이 망하고 예수의 나라가 오기로 작정된 이 마당에 '단일민족'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한 핏줄'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두가 마귀의 언어혼란전술에 불과한 것인데, 정치나 교회가 이를 분별 못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북방에 일곱째 머리 소련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이미 세계는 심판기로 접어든 것이다. 북한 역시 본질적으로 저들의 무신론-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출발한 나라로서 자본주의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이란 단어는 입에만 올려도 당장 총살형에 처해진다고 한다(2004년 현재 탈북자 ХХХ씨 증언). '한 겨레', '한 민족'을 운운하는 북한 지도부는 '한 민족', '한 겨레'의 목에 총칼을 들이 대고 피비린내를 풍긴 1950. 6. 25. 동란을 아직까지 회개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땅굴을 파고 있다. 400만을 희생시킨 전쟁을 벌여놓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그들은 결코 '한 민족', '한 겨레'가 아니다. 더구나 "신이 없다"는 그들의 사상은 영락없이 뱀의 사상이니 이 사상에 교회는 절대로 손을 잡아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 '뱀 한 마리'가 등장할 때 하나님이 6일간 아름답게 창조하신 에덴이 황무지로 변하였음을 기억하자. 오늘 저 북방의 무신론 정권은 그 뱀의 마지막 후손인데 어찌 그 입에서 나오는 평화공존(1958. 3. 18)과 민족공조라는 말이 참말일 수 있겠는가? 다니엘 9:26절 이하에는 장차 '한 왕'이 일어나서 끝까지 전쟁을 일으키다가 멸망할 것이 예언돼 있다. 또한 본문 13:21절에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하셨다. 예언대로 구약 예루살렘 성전을 치러 '북방 군대'가 내려왔던 것처럼 이제 21세기의 타락한 기독교를 치러 '북방 군대'가 다시 한 번 내려올 것이다. 이것이 구약 종말을 통하여 인류 종말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모략과 오묘이다(이사야 46:10).

『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뇨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회개치 않는 교만한 교회가 당할 '확실한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이것을 뒤에서 다시 '구스인''표범'의 예로 설명하셨다. 구스인과 표범이 그 피부와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악에 익숙해져 있는 유다도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23절). 이유는 원죄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오랜 죄악의 관습에 물들어 타락하고 썩어져 이제는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선과 악도 구별치 못하는 취한 백성이 된 것이다(이사야 5:20). 이같이 영적으로 취한 유다에게 다가올 일은 '멸망'뿐이다. 하나님이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처럼 유다 백성을 유랑자로 끌고 가시겠다는 것은 '멸망'시키겠다는 의미이다(24절).

멸망의 원인은 늘상 '한 가지'! 조상적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시편 51:5) 곧 패역뿐이다. 유다의 확실한 멸망을 말씀하실 때 한 번 더 유다의 죄악을 지적해 주시면서 그 멸망이 유다인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임을 "분깃"이라는 표현으로 알리셨다.

다시 말하지만 멸망의 원인은 원죄(패역) 때문이며, 이 원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의지해야 할 하나님보다 강대국가를 의지한 것이 멸망케 될 화를 자초한 것이다. 참 선지자가 외치는 진리의 말씀은 제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버리고, 있지도 않는 '평강'을 외쳐대는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유혹을 힘써 의지한 모습! 그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을 종말의 교회는 깨닫고 배우라는 것이다. 북방에서 오는 자들이야 제 욕심 이루려고 치러 오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대인을 징계할 심문권을 맡겨 내려보내신 것이다.

에스겔 23:24 "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쌀지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독자들이여! 세계지도를 펴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 북방의 무신론 공산국가들을 살펴보라!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심문권이 보이는가?

보인다면 당신은 말세종이요,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들의 심문을 피할 수 없는 자이다. 셈의 장막을 보라.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북한... 모두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나라들뿐이다. 20세기 종말에 공산당이 나온 것은 '교회심문' 그 목적밖에 없다. 이제 심문당할 일만 남아 있다. 이 때 교회를 살려 보려는 마음을 가진 자라면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편이요(왕권), 이 말에 감동을 받는 자들은 흰무리요(백성), 이도 저도 아닌 자들은 패역한 구약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대언자들을 배척하는 일에 동참했다가 멸망할 자들이다.

종말에 세계 교회를 향해 다시 예언하게 되는 144,000명은 예레미야서를 먹지 않을 수 없다. 먹지 않으면 순교자의 동무종으로서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1,260일은 선지자로서 슬픈 경고의 예언을 하고, 3일 반 동안은 제사장으로서 자기 생명을 바쳐 의로운 제물이 되었다가, 공중재림시 들림받아 '후 3년 반'이 지나면 만왕의 왕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강림함으로써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대선지자, 대제사장, 만왕의 왕 삼직분을 완성하신 것같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던 종들(144,000)도 그의 가지로서 이 삼직분에 동참케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4. 재난의 원인은 범죄에 있음 : 22~27

구스인의 피부색과 표범의 반점이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죄악도 주님께서 새 일로 고쳐주시는 그날까지 '패역'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 22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

유대민족이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가게 될 원인을 진술하고 있다. 원인은 그들의 죄악이 너무 크고 완고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악에 익숙"하여 강퍅하고 회개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로 접어 들었다 한다. 교회의 죄악상이 이쯤 되면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일뿐이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은 북방의 침략전 앞에 패전(敗戰)하여 나라가 당하게 될 모든 능욕이다. "발뒤꿈치가 상한다" 함은 신발이 없어서 발뒤꿈치가 드러남이니, 곧 맨발로 도망함과 잡혀감을 뜻한 표현이다(이사야 20:4~). 교회가 우상을 섬긴 죄(협상)와 회개 없는 예배(새일 멸시)로 인하여 육체 심판을 받게 되는데 있어서

먼저는 성도의 하체가 드러날 것이며
이사야 3: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성도의 볼기도 드러날 것이다.
이사야 20: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성도의 부끄러운 것까지 보일 것이다.
이사야 47:2~3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면박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네 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흩으리로다 2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네 응득(應得)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연고라 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

유대민족이 비참하게 사로 잡혀가도 그들의 죄 때문인 고로 당연하다는 것을 두 차례나 강조하셨다. ① 그들이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흩어질 것"과 ② "치마를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하신 이 두 가지 말씀은 "간음과 사특한 소리 곧 비루하고 가증한 음행" 때문에 당하는 "응득이요, 분깃이라" 하신다. 이러한 보응을 받는 것은 아담 후손 속에 역사하는 원죄의 패역을 이기지 못하여 뱀이 꾀일 때 창조자를 버리고 "거짓을 신뢰한 연고"이다. 원죄에 물든 인간은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사단의 공격 앞에 백전백패하고 만다. 원죄 때문에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게 되어 우상을 섬기는 것이며(예레미야 10:14), 원죄 때문에 눈이 가리워져 거짓 것으로 피난처를 삼고 허위 아래 자기 몸을 숨기는 것이다(이사야 28:15). 원죄가 역사하니 정치가와 판사 같은 두령들이 돈을 밝히는 것이며, 원죄가 역사하므로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치면서 '평강'을 외치는 것이다(미가서 3:11).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600년 전에 드러내었던 수치를 오늘날 다시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죄에 물든 인간의 사회는 그 모습 그대로이다. 새로 발견되는 악이 없으며, 더 나아지는 점도 없다. 예수님께서 정결케 하신 교회만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선지서는 바로 교회 안의 백성이 그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예레미야애가 1: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교회가 이방인들 앞에 수치당할 것을 에스겔 16:37, 23:29절에서도 예언하셨다. 원인은 한결같으니 음행! 곧 우상숭배 때문이다.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예루살렘에 화를 선포하는 것은 예레미야 4:13절을 다시 예언함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하셨는데, 패역으로 인하여 무시하고 듣지 않으므로 결국 바벨론이 성을 포위하여 식량이 끊겨, 연약한 부녀(婦女)가 자기 자녀를 잡아먹게 되는 비참지경의 화를 당하였다(예레미야애가 4:10). 인간이 짐승같이 되어버리는 '화'를 당한 원인은 "피 흘린 성읍, 곧 예루살렘의 죄악"에 있다(에스겔 24:6).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한국의 기독교회여!(K.N.C.C.), 세계의 기독교회여!(W.C.C.)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한국교회는 일본우상과 행음한 사실을 교단적, 민족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세계교회는 붉은 말이 위장하여 나온 청황색말이 장악한 W.C.C.로부터 어서 빠져 나와야 한다. 한국 교회가 과거 신사참배 골짜기 속에 새겨져 있는 자신의 발자국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여 회개치 못할 때, 더욱 큰 우상소굴인 W.C.C. 골짜기로 기어 들어가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현재 K.N.C.C.에는 대한민국 8개교단이 가입하고 있다).

예레미야 4: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육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한국 교회는 위와 같은 비극을 당하기 이전에, 즉 10일 환난을 당하기 전까지(세계교회는 5개월 환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회개할 기회가 있다. 그 안에 다시 예언하는 말씀 앞에 굴복하고 회개하면 살려니와, 끝까지 완고하면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하신 말씀에 그대로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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