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서 4:1~10)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4:1~10

야보고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은혜를 주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인간을 찾아오기도 하시고 또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기 위하여 기다리고 사모하기도 하신다. 이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다.

1. 정욕으로 하려는 것이 없어야 된다 (야고보서 4:1~3)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되 그 사람이 이 은혜를 바로 간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느냐는 것을 먼저 보신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오히려 기도한다 하여도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니 은혜를 악용하지 말고, 은혜를 받아서 자아를 희생하고 순교의 생활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참으셨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는 것이니 은혜를 주는 자나 받는 자나 목적이 동등해야 된다. 사도들은 성신을 받아 가지고 그 때부터 피흘리기까지 싸워나갔기 때문에 하나같이 승리하고 왕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욕심이란 자체는 교만에서 오는 것이니 우리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않고, 욕심을 따른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은 택한 자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작정한 것인데 사람이 그 뜻에 순종치 않고, 자기라는 생각을 앞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동시에 조물주께서 우리보다 우리 사정을 더 아시고, 인도하시는 그 뜻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전부가 욕심이 될 것이다.

2. 타협이 없어야 된다 (야고보서 4:4~5)

하나님의 심정은 더 큰 은혜를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인데 이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것을 바라본다면 자동적으로 성신을 대적하는 일이 된다. 우리에게 온 성신은 밤낮으로 우리가 완전해 지기를 사모하는 신이다. 성신이 온 목적은 그 사람을 이 세상의 영광보다도 더 좋은 영광을 세세토록 받게 하자는 목적인데 세상 영광을 바라본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큰 과오라고 보게 된다.

누구든지 세상의 것을 분토같이 보고 하나님 나라에서 오는 것만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는 날마다 더 큰 은혜를 주어 이 땅에서도 부족함이 없고, 앞으로 오는 시대에 세세 왕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은혜라는 것은 그 분량에 따라서 주고 또 주시고자 하는 것이니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 성신의 인도를 따라서 행하는 자라야 될 것이다.

3.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야고보서 4:6~7)

순종이라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로서 아무리 마귀가 대적해도 마귀를 무서워 말고, 마귀를 물리치면서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절개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절개 있는 신부가 신랑에게만 순종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을 정절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간교한 마귀가 꾀어도 하와같이 끌리지 말고, 담대히 물리치고 나갈 때에 성령은 더 강하게 역사해 주신다.

성령의 인도라는 것은 마귀 시험이 없게 하는 것보다도 마귀를 대적하도록끔 하기 위하여 마귀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이다(마태복음 4:1이하). 누구든지 겸손하게 순종하는 자라면 모든 전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역사해 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라는 것이다. 진리라는 자체는 마귀를 대적해서 이기고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 진리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결 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항상 주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10). 이것은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마귀를 들어 역사하는데 사람들이 이 모략을 모르고, 자기 위신을 높이기 위하여 마귀를 대적하지 않을 때에 마귀는 물러가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수치를 당하고, 멸시를 받고, 쫓겨남을 당한다 할지라도 자기의 이익을 생각지 않고, 싸우는 자라야 자기를 낮추는 자라고 보게 된다. 누구든지 은혜를 받고도 자기가 불리하고, 명예의 손실과 자기 위신이 폭로된다고 해서 회피한다는 것은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라고 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므로 큰 역사가 인류적으로 이루어진 것같이 말세의 종도 원수를 무서워 말고,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는 자라야 겸손한 자에게 주는 은혜를 더 강하게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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