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하게 하신 예수께 감사할 일
디모데전서 1:12~17
기독교가 세계를 통일할 역사는 아무리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는 버리지 않고, 그 사람을 불러 능하게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피 흘리기까지 싸우도록 하는 것이 있으므로 아무리 원수가 많은 세상에서도 대 종교를 이룬 것이다. 생명의 종교라는 것은 율법과 도덕을 초월하여 사람을 능하게 만들어서 역사하게 하는 것이니 능하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충성되이 보시므로 (디모데전서 1:12)
주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것이니 사도 바울이 아무리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의 하나이었으나 주님이 보실 때에 충성된 사람인 것을 아시고 불렀던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없고 다 죄인이지만 주께서 보실 때에 충성되이 나가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깨닫게 해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고 지혜롭게 하시되 모든 일을 능하게 하도록 주님은 역사를 나리어서 쓰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 보시기에 충성이라는 것은 조금도 외식이 없고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디모데후서 1:3). 바울이 아무리 기독교를 반대하고 나왔지만, 바리새교인 중에도 외식하는 자가 아니요, 정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다. 누구든지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알지를 못하고 실수하고 넘어진다 하여도 주님은 그 사람을 찾아서 다시는 넘어지지 않도록 능하게 들어 쓰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할 때에 짐짓 알고도 자기의 욕망을 채우겠다는 것이 있는 자는 주님께서 절대로 응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주님을 따라오며 주를 위해서 일해 보겠다는 자라도 중심에 정욕을 따르는 자라면 그 사람은 오히려 주님께서 버릴 것이로되 몰라서 진리를 반대한다 하여도 옳은 양심으로 충성을 다 하려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그 사람에게 주님은 나타나는 것이다.
2. 긍휼함을 입은 자다 (디모데전서 1:13)
긍휼이라는 것은 완전한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니 인간이 충성을 다해 보다가 인간으로서 깨닫지를 못하고 쓰러지는 자라면 주님은 불쌍히 보고 그 사람을 깨닫게 해서 너그러이 용서하고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능하게 하셔서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 자요, 바리새 교인이요, 유대교의 가장 지나친 열심을 가진 자였다(갈라디아서 1:14). 우리는 주님 앞에 긍휼 함을 받는 것은 열심으로 힘을 다하여 나가던 자에게 있는 것이니 예를 든다면 누워서 잠자는 자보다도 넘어지더라도 열심 있게 나가는 자를 주님은 더 긍휼히 보시는 것이다. 바리새 교인을 보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던 주님은 바리새 교인 중에 하나인 바울이 기독교를 없애려는 폭행을 하며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은 공중에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으로 그를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오늘도 택한 종이 열심 있게 일해 나가다가 지나친 열심을 가지고 알지 못하는 도중에 실수가 있더라도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서 붙들어 주며 깨우쳐 주는 일이 있으므로만이 앞으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과거에 사도들과 대적이 되어서 성신이 충만한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고 나갔지만 강권으로 사도 바울은 사도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한 것을 보면 종말에 종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주님께서 직접 택한 자를 긍휼히 보시고 깨우쳐 주므로만이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도 진실한 종들이 기독교 종말관을 모르고, 이 진리 운동을 핍박하는 자가 있지만, 그 종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성된 자라면 불쌍히 보고 깨닫게 하므로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이다.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이 월간지를 이 시대에 발행하게 하는 것은 충성된 종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라고 본다.
3. 믿음과 사랑이 넘치게 하므로 (디모데전서 1:14)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은 인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누구든지 과거에 자기 부족을 절실히 깨닫고 충성을 다 하려는 자에게는 믿음도 사랑도 주시는 동시에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케 해서 그리스도만을 자랑할 수 있는 능력의 종이 되게 하신다. 우리가 넘치도록 받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충성된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누구든지 충성된 사람이라면 바울에게 주던 몇 배를 더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역사할 때보다도 더 악하고도 무서운 환란이 앞에 있으므로 충성된 종들에게 더 강한 역사를 부어 주시는 것이다(요엘 2:29).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넘치도록 주시는 때는 지금이라고 보게 된다. 아무리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당신의 종들에게 이슬과 단비같이 역사를 나리어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쓸 때가 즉 이 때라고 보게 된다(미가서 5:6~9). 왜냐하면 주님은 원수 세력이 강할 때는 당신의 종을 더 능하게 해서 들어 쓰기 때문이다(이사야 41:14~16, 25).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때는 능하게 쓸 때이니 자다가 마땅히 각성을 받고, 일어날 때다. 이사야 60:1이하를 보라, 우리는 강하게 일어나면 무한한 축복이 올 것이다.
결 론
가장 기뻐하고도 만족한 생활은 능하게 된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죄인 중에 괴수가 되는 바울이 그 손으로 성경을 14권이나 썼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오늘에 가장 복된 자는 모든 선지들이 쓰러지며 압박 속에서 묵시를 보던 심판의 다림줄이 우리 동방에 나타나서 가장 무식하고도 못난 지렁이 같은 종의 입을 통하여 얼마든지 진리의 변론을 말하도록 해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되는 일이다. 전부가 그리스도께서 나를 능하게 하는 일이라고 자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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