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3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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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금 새벽] 에스겔 9장 : 종말의 구원과 살육심판 2014/10/31 Fri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상도3동 323-4
323-4 5F Sangdo 3-dong, Dongjak-gu, Seoul, Korea

온전한 것을 이루는 사랑(요한1서 4:9~12)


온전한 것을 이루는 사랑
요한1서 4:9~12

서 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온전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당신이 먼저 자진하여 인생을 찾아오는 사랑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온전이 아니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온전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사랑도 있고,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는 사랑도 있으니 생명이 있는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형제를 사랑한다 하여도 하나님께로 온 사랑으로 준 것이 아니라면 그 속에는 생명을 주는 열매는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온 사랑을 먼저 받고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한다면 다음과 같은 열매가 있을 것이다.

1. 성령이 역사해 주는 것이다 (요한1서 4:13)

성령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께로 오는 사랑이 없는 교회라면 성령은 계시지 않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되 하나님께로 받은 사랑에 녹아진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면 성령은 강하게 역사할 것이다.

2. 하나님께로 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는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한다 (요한1서 4:17)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그 사랑의 법칙에 의하여 베풀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종이 남을 사랑한대도 인간적인 어떤 편파적인 사랑을 가진 종이라면 심판 날에 설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네가 참으로 남을 사랑했느냐 안했느냐는 것으로 심판을 나리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8:35).

3. 이와 같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환란이나 사망이나 그밖에 아무런 것도 그에게 두려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요한1서 4:18)

이것은 왜냐하면 모든 재앙은 사랑을 떠난 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랑 속에 있는 자라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보호와 축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결 론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며 형제를 미워한다면 이것은 자동적으로 외식의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형제를 미워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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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1서 4:16~2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1서 4:16~21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신 동시에 사랑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뜻을 만족히 채우기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부터 사랑을 목적하고 역사하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 외에는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피조물 자체에는 남을 사랑할만한 인격이 완전히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 끌려서 활동하는 것 뿐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을 목적한 것이요, 영계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을 목적한 것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순종하여 쓰여지는 도구가 될 것 뿐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요소가 있는 것이다.

1. 사랑 안에 거하는 자를 만족케 하심 (요한1서 4:16)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해 주시는 그 안에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만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이제 그 사랑 안에 들어오라고 죄인들을 부르는 것이니 누구든지 믿고 순종하며 그 안으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만족한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외에는 만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동물은 먹는 것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으나 사람은 먹는데 국한된 동물이 아니요,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졌으므로 하나님 안에 안기는 생활이 있으므로만이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기도 하며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만족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라는 것은 누구든지 사랑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만족함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을 십자가 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십자가이니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께 받게 되기 때문이다.

2. 심판 날에 담대함을 주심 (요한1서 4:17)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의 법을 완성하는 오메가 역사이다. 사랑의 시작은 누구든지 아들을 믿으면 다 사랑 안으로 들어와서 만족을 얻게 하는 것이라면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 안에 들어 온 자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종말적인 역사이니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배반한 자를 다 없애는 것이 심판이다.

누구든지 죄가 있으므로 심판을 받는 것보다도 그 사랑을 믿지 않은 조건으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 안에 들어오는 자를 온전하게 만들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어 남은 자가 되게 하는 동시에 심판을 나리기 때문에 심판이라는 것은 오히려 온전하게 된 자를 더 사랑하는 시대로 옮겨 놓기 위하여 심판하는 것이니 지금 이 세상은 사랑하는 자가 시련을 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시대이지만 심판은 사랑하는 자로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서 영광의 복락을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3. 두려움이 없게 하는 사랑 (요한1서 4:18~21)

인간은 죄를 질 때부터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게 되어 거기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항상 인류 역사가 두려운 전쟁, 사망, 고통, 재앙으로 내려온 것 뿐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에 빠진 인생들을 두려움이 없는 자리로 옮겨 놓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히브리서 2:14~15).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공포심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랑에서 온전함을 이룬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온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두려움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며 죽음을 돌파하고 나가는 인격이다.

어떤 사람이 믿는다 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사랑의 인격을 갖지 못한 자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인간에게 주시는 동시에 사람으로서 그 사랑 속에서 남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온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영생의 생명과 영광의 나라의 기업을 택한 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원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이 주고 싶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는 형식과 의식이 필요 없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 마음에 사랑이 불타는 심정으로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한 것이다.

이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지되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인격을 만들어 영원히 같이 영광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인 동시에 완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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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목 새벽] 에스겔 8장 : 교회의 가증한 행위 2014/10/30 Thurs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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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수 오후] 예레미야 34장 : 시드기야 왕에 대한 경고 2014/10/29 Wednes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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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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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인격(요한1서 4:17)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인격
요한1서 4:17

서 론

인생의 최고의 인격은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인격이다. 왜냐하면 스바냐 1장을 보면 모든 이방 종교나 정치인이나 모든 사람이 다 소멸될 때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만 남는다고 말한 것이다. 아무리 사람 앞에 옳은 것 같아도 심판 날에 서지 못할 인격도 있고, 아무리 사람이 볼 때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자가 있다는 것이 말세 교훈 중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이제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인격을 다음과 같이 성경에서 자세히 찾아보기로 하자.

1. 원망하지 않는 자다 (야고보서 5:9)

하나님께서 심판기가 올 때는 극도로 당신이 택한 종에게 원망스러운 일이 부딪혀 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략이니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한 훈련에 불과하다. 인생은 자체가 완전한 것은 못되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생각해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원망하지 않는 것 하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2.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이다 (야고보서 2:13)

하나님은 남을 살려 보려고 눈물 흘리며 올리던 기도와 소원을 다 풀어 주는 것이 심판이니 오히려 심판 날에 나서서 자랑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일로 원하는 것은 당신이 긍휼히 여기는 자를 같이 긍휼히 여기면서 애쓰는 사람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종이 양떼를 불쌍히 보는 심정이 없는 목자라면 심판대 앞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3. 작은 일에 충성한 자이다 (마태복음 25:21)

하나님은 충성이라는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보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일에 충성이라는 것은 하나님만 중심하는 일이 아니라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 앞에 크게 보이는 것만을 목적한다면 상을 이미 다 받는 일이 될 것이니 지극히 작은 일에 하나님께 대한 양심으로 일할 적에 숨은 사랑을 받는 종으로서 심판대 앞에는 전부 상급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4. 형제와 화평을 위하여 노력한 자다 (로마서 12:17~19)

만일 화평을 위하여 노력이 없다면 심판 날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수를 갚는 심판이니 원수를 맺는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어떤 종이 남을 공연히 판단을 했다면 자기도 판단을 받는다고 주님은 말했다(마태복음 7:1). 심판대 앞에 담대하려면 아무리 형제가 원수같이 나를 미워해도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 사람만이 심판대 앞에 설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기도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5.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종 (마태복음 24:45~46)

이것은 종이라는 것은 맡은 일에 충성을 하되 시대를 따라서 진리를 바로 증거해야만 된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심판은 복음대로 심판하는 것이니 은혜시대 종이 그 시대적인 진리를 바로 증거 못했다면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요, 환란 시대 진리를 바로 증거하지 못했다면 그 때 사람들의 생명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스승 된 자의 심판이 크다고 야고보서 3:1에 가르친 것이다. 진리를 증거한 종만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아끼고 아끼는 심정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주시는 것은 심판 날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인격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이라는 것은 당신의 사람을 위하여 심판하는 것이니 당신의 사람이 부족한 것을 그냥 두고 심판하면 하나님은 막대한 손해가 되기 때문에 강권으로라도 심판대 앞에 서게 하겠다는 것이 기독교 종말에 심판기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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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에 대한 징조와 확실한 예언(베드로후서 1:12~21)


재림에 대한 징조와 확실한 예언
베드로후서 1:12~21

서 론

우리는 주 재림을 믿는 신앙에 대하여도 확실한 징조도 있고 확실한 예언도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완전한 신앙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징조만 있고 확실한 예언이 없어도 불완전이요, 예언만 있고 징조가 없어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징조가 확실하고 예언도 확실하니 이것은 합법적인 진리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징조와 확실한 예언을 성경으로 다음과 같이 찾아본다.

1. 재림에 대한 징조를 봄 (16-18)

이 날까지 기독교에서 재림에 대한 확실한 징조는 보여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실한 예언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 자체도 징조는 내가 보았으나 확실한 예언을 분명히 모른다고 말했다. 베드로가 재림의 징조를 보았다는 것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변화산에 올라가서 직접 눈으로 그 영광도 보았고 주님의 자체를 보았고 똑똑히 음성도 들은 것이다. 이것을 보아서 확실히 주님은 강림한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또는 주님이 승천할 때 천사가 말했다(사도행전 1:11).

그러나 다시 온다는 징조는 친히 눈으로 보았으나 다시 올 때 예언은 계시록을 통해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어찌하여 재림의 징조는 있게 했으나 이 때까지 예언의 확실한 것은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있는 것이다. 이미 죽은 성도에게는 주님 다시 온다는 것만 알아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다.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이 신앙은 주님이 분명히 오신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왜냐하면 확실한 예언이란 주 재림을 살아서 환란 가운데 남은 종으로서 맞이할 자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다. 만일 죽어서 부활할 성도에게 예언을 지키라고 하면 이것은 이단설이 될 것이다. 이것은 때가 되기 전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날까지 예언을 들고 활동하던 사람이 실패한 것은 그리스도만을 바로 믿기만 하면 될 시기에 월권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2. 확실한 예언 (19)

사도들은 확실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말했으나 해석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언이란 인간의 사사로운 생각으로는 풀 수가 없다는 것이다(베드로후서 1:20). 예언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할 때 하나님이 바로 해석하도록 해 준다는 것을 베드로가 그 때 사사로이 예언을 풀었던들 그는 사도의 자격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사도의 직분은 그리스도 한 분을 바로 증거해서 믿게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확실한 예언을 증거하는 총 대지는 계시록 10:7일 것이다.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시기는 일곱째 나팔을 불 때니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한 말씀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이 옛날 선지의 전한 복음과 같이 성령으로 잉태되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고 성신이 강림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사명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사명자는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 선지의 예언대로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심판기의 종들이 전할 사명이다.

그러면 심판기에 남은 종들은 모든 환란과 재앙과 또는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선지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의 다림줄을 바로 쥐고 나가서 다시 예언하는 역사이다. 다시 말하면 미분명한 해석을 분명히 해석해 준다는 뜻이다. 만일 환란과 재앙이 올 때 확실한 예언을 증거 못한다면 기독교는 흑암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예언은 등불이라 할 것이다. 등불은 어두움이 오는 밤에 필요한 뜻을 가르친 것이다. 이미 태양빛 같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로 믿게 하는 시대가 빛의 시대라면 신랑이 밤에 온다는 말과 같이 주님 올 때는 빛의 시대가 아니고 흑암 시대다. 흑암 시대가 올 때까지 예언의 등불을 들지 못한다면 주님을 맞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확실한 예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촛대교회를 일으킬 수 없다. 촛대란 밤에 쓰는 등불이다.

우리는 사명적인 겸손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와 같은 심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확실한 예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믿으면 된다 하여 예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것도 교만이요, 자기 사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예언을 해석 한데도 교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께서 확실한 예언을 나가 하도록 해줄 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나가 증거할 것뿐이다(계시록 12:11).

결 론

하나님의 역사란 징조가 먼저 똑똑하고 예언은 글자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약 때 양으로 제사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징조를 보여준 것 뿐이다. 십자가의 속죄를 완성할 때 징조는 폐지된 것이다. 그와 같이 재림의 징조만을 믿던 신앙을 완전한 예언이 나올 때 징조만을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확실한 예언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주님 다시 온다는 징조도 다 있는데 믿으면 되지 무슨 예언이 필요 있느냐 할 때 이것은 시대를 모르는 어리석은 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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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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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수 새벽] 에스겔 7장 : 유다의 마지막 재앙 2014/10/29 Wednesday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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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림과 성경 해석 문제(베드로후서 1:16~21)


주 재림과 성경 해석 문제
베드로후서 1:16~21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해석할 수 없고, 주님께서 역사 하므로 만이 그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 뿐이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타락한 인생을 다시 구원해서 그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언약의 말씀이니 이 말씀을 사람이 함부로 해석한다는 것은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계약서를 쓸 때에 그 계약서를 쓴 사람이 책임을 질 글이므로 한 자라도 틀림이 없이 쓰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계약서를 써서 주는 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에게 계약서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세울 때에 말로만 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문서로써 기록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에 우리가 성경을 증거한 것은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실천하신 사실을 만민이 알도록 증거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에 대표적인 사도 베드로는 주 재림과 성경 해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재림에 대한 징조를 봄 (베드로후서 1:16~18)

베드로는 주님께서 재림하는 일에 대하여 자기가 변화 산에 올라가 본 징조를 가지고 재림하실 주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큰 위엄을 봄(베드로후서 1:16)

그리스도를 따라가던 제자들은 평소에는 자기네와 똑같은 사람이므로 침식을 같이 했고, 또는 역사를 할 때에도 그 역사에 동참해서 같이 수종을 드는 제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산에 올라가서 갑자기 그리스도의 몸에서 큰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희어지는 광경이 보이면서 감히 두려워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없는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무서워서 다 쓰러졌던 것이다.

이것을 본 베드로는 재림의 주가 올 때에 그와 같은 모양으로 오실 것이라고 증거한 것 뿐이다. 왜냐하면 초림의 주로 오실 때는 어린양의 제물로 나타났고, 재림의 주로 오실 때는 만왕의 왕으로 오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초림의 주는 양같이 온유한 모양이요, 다시 오시는 주님은 위엄을 가지고 나타나서 원수를 갚는 때이기 때문이다.

2) 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 (베드로후서 1:17~18)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소리가 들려 올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게 될 때에 분명히 인성만이 아니요, 신성을 가진 독생자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증거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분명히 참 메시야라는 것을 전하기 위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웠던 것이다.

2. 성경 해석에 대하여

1) 확실한 예언이 됨(베드로후서 1:19)

초림의 주가 올 때에도 확실한 예언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요, 재림의 주가 올 때에도 확실한 예언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증거할 사명을 맡은 베드로는 자기는 재림에 대한 징조를 본 것 뿐이고, 재림시에 될 예언은 더 확실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다시 샛별 같은 새로운 역사가 나타남으로만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할 때에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라고 말한 것이다(계시록 22:16).

2) 예언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함(베드로후서 1:20~21)

예언은 예언대로 역사가 있게 될 때에 그 성경을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것뿐이다(계시록 10:7). 만일 기독교 종말의 예언이 어떤 사람의 해석으로서 분명히 알게 된다면 그 해석을 끼고 얼마든지 마귀가 역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 미혹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재림의 주에 대하여 확실히 예언할 때에 선지서를 읽어보면 초림의 주가 올 것은 이사야 7:14, 9:1~2, 42:1~4, 53장, 61:1, 65:1에 나타나 있다. 이밖에 이사야 선지서 전체가 재림의 주가 올 때 될 일을 세밀히 말한 것이고, 스가랴 9:9, 11:10~14 이외는 전부가 재림의 주가 올 때에 될 일을 가르친 글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자기가 성경대로 십자가 부활을 증거한 외에는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금일에 와서 선지서나 계시록을 어떤 박사들이 주석을 쓴다는 것은 그 종들의 사명이 아닌 것이니 그 주석을 가지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없고, 우리는 이 시대에 와서 사도가 증거한 외에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때가 온 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우리는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당하던 그 시대를 만난 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시대 종교 부패, 정치 부패, 인심 악화, 경제 혼란, 북방으로 오는 환란. 이것이 금일에 우리가 당한 난국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와서 그들이 묵시로 예언한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때가 왔다고 본다. 지금 새로운 샛별의 역사가 나와야만 기독교는 성경을 바로 증거하는 동시에 난국을 돌파하고 남은 종이 되어 세계적인 성도 통치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종은 자기 사명과 성서의 한계를 바로 정해야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사명의 한계선을 성경에서 바로 획선을 긋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위험하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이라는 것은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자기가 증거할 말이 아닌 것을 잘못 증거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혼선시키는 과오를 범했기 때문이다(이사야 8:20).

그러므로 우리는 주 재림과 성경 해석에 대하여 특별한 사명적인 노선에서 바로 서야만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너무나 영계가 혼선되고 진리가 혼선된 것은 주 재림과 성경 해석에 탈선된 과오라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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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자는 이긴 자의 종(베드로후서 2:18~22)


진 자는 이긴 자의 종
베드로후서 2:18~22

우리 신앙 생활은 항상 싸우는 생활이니, 마귀에게 지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요, 마귀를 이기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허락하여 미혹하게 하시는 것은 이기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이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자 (베드로후서 2:18~19)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이기면 하나님의 종이 되고, 못이기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일을 하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 성신의 역사이다. 그런데 정욕을 용납하는 자유라는 것은 마귀의 미혹이다. 어떤 종이 정욕을 죽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정욕을 따라가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거짓 선지의 더러운 영의 역사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종된 자격을 갖추려면 먼저 정욕을 이기는데 목적을 두고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만 될 것이다. 정욕이라는 자체는 마귀이니, 이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항상 마귀의 종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신 것은 마귀의 정욕이 네게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던 것이다(요한복음 8:44).

2. 주님을 알고도 죄를 이기지 못한 자 (베드로후서 2:20)

만일 어떤 사람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죄에서 벗어남을 받았다가 다시 죄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진 자라면 나중 형편이 더 심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마귀를 대적하고 나가다가 마귀에게 다시 잡히면 더 무서운 마귀의 세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항상 십자가를 지고 죄와 싸워서 이기는 생활이 있어야만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에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마귀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타협적으로 나간다는 것은 무서운 화가 올 일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다면 순교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자가 되어야만 처음보다도 나중 열매가 더 많아지므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왕권 반열의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하여도 죄를 이기지 못한 자는 죄의 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에는 지옥을 면하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을 수는 없는 것이다.

3.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자 (베드로후서 2:21~22)

우리가 거룩한 명령을 받고 저버리는 자가 된다면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것이나 동일하다. 그러므로 거룩한 명령을 받은 자는 끝까지 순종해 나가야만 거룩한 명령을 받은 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거룩한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 오히려 큰 화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기는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니,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를 따라 가는 제자였지만,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예수님께 십자가를 피하라고 할 때에 “사단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마귀에게 지게 될 때에는 마귀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항상 거룩한 명령을 받은 자는 충성과 진실을 가지고 나가야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가련한 사람이라는 것은 거룩한 사명을 맡아 가지고도 마귀의 종이 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련한 사람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보다도 교회 안에 들어온 자로서 마귀에게 져서 마귀의 종 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일이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날마다 이기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하는 일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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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41028_에스겔06장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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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화 새벽] 에스겔 6장 : 협상죄(우상숭배)로 인해 벌받는 교회 2014/10/28 Tues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상도3동 323-4
323-4 5F Sangdo 3-dong, Dongjak-gu, Seoul, Korea

말세에 나타난 구원(베드로전서 1:3~7)


말세에 나타난 구원
베드로전서 1:3~7

베드로전서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말세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모든 선지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목적을 구원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베풀겠다는 것이 언약의 총 대지가 된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실수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자가 실수가 있어도 구원을 베풀어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택한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경륜이라고 보게 된다. 아담 하와가 범죄할 것을 모르신다는 것보다도 범죄 하더라도 구원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짓게 하는 신은 아니시다. 택한 자가 약해서 쓰러져도 다시 일으켜 주고 어리석어서 속아도 깨우쳐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말세에 나타난 구원이라는 것은 언약을 세워 놓으실 때에 실천적인 언약을 세운 것을 구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성민에게 여호와가 나타나서 말세에 구원할 일을 증거로 보여 주는 동시에 빠짐 없이 말씀을 받아 기록하게 한 것을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후에 행하는 일은 전부가 차별 없는 구원인데 이 구원은 말세에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1. 하나님의 긍휼 (베드로전서 1:3)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것은 어떠한 자에게 임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자기가 날 때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원죄 아래서 나게 되는 일을 하나님은 불쌍히 본다. 왜냐 할 때에 아담, 하와가 어리석어서 미혹 받으므로 선악과를 먹고 모든 인간들이 다 무조건 죽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에게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 우상을 공경하는 나라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몰라서 섬긴다는 것은 그 자손들에게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셋째 : 억울하게 마귀의 권세 아래서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게된 인간을 볼 때에 그들을 불쌍히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사람끼리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알지를 못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로 떨어져 내려간 사람을 건져 낼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둔다면 건져낼 힘이 있는 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는데 인간을 긍휼히 보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신이라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보되 아들을 대신 죽게 하고, 다시 부활시키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구원해 준다는 것은 말세에 나타난 마지막 방법이라고 본다.

2. 다시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주심 (베드로전서 1:4)

하나님께서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은 완전한 기업으로 준 것이 아니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는 일용품이라고 본다.

하나님 자체는 전부가 쇠하지 아니하는 것만을 가지고 계신데 이것을 주고자 할 때에 아무 사람이나 덮어놓고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다. 반드시 어떤 공로가 있어야만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로라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으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게 하되 완전한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내라는 것이 사람에게 맡긴 사명이다. 그런데 사람이 의로운 씨를 내지 못하고, 악한 씨를 내게 되므로 사람은 완전한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전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많이 생산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할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둘째 아담 예수를 나게 한 것은 영원한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내는 방침을 세운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맡은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로는 도저히 쇠하지 않는 기업을 얻을 수 없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공로를 세워서 그 공로를 믿음으로만이 그 기업을 얻게 하는 동시에 믿는 자는 무조건 그 기업을 받고 믿도록끔 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복음을 전하던 자는 남을 믿도록 했다는 공로에서 믿을 수 있는 공로를 세운 예수님과 같이 왕권의 기업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공로를 믿으므로 시민권을 받고, 십자가 공로를 믿도록끔 증거하기 위하여 순교의 생활을 한 사람은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썩지 않는 기업에도 왕권과 시민권이 있는 것이다.

3. 능력으로 보호하심 (베드로전서 1:5)

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은 어떤 의식이나 도덕을 따라서가 아니고, 다만 택한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능력으로 보호의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은 약한 인간을 보호해 주는 일이 아니라면 그 능력은 아무런 열매를 나타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는 그의 역사를 따라 수고한다고 하였다(골로세서 1:29).

하나님의 종에게 능력을 주는 것은 그 종을 위하여 주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능력으로 보호함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믿고 용기있게 나갈 때에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게 될 때 능력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4.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심 (베드로전서 1:6~7)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은 구원을 받는 자로서 완전한 영광을 왕권으로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같이 구원을 받아도 시험을 많이 당해서 이긴 자와, 시험을 통과해 본 일이 없이 평안히 나간 자와에 차별이 있되 시민권과 왕권으로 차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세에 구원을 나타내는 동시에 여러 가지 시험이 시련과 연단으로 닥쳐오게 하는 것은 주 재림시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는 자를 완전히 수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다.

결 론

아름답다! 구원을 받은 자여, 가장 복 있는 말세에 구원을 받게 된 자여, 모든 일에 감사하라. 항상 찬송하자. 무조건 감사하고 영광을 돌릴 것 뿐이다. 구원을 받은 자라면 하나도 원망할 일은 전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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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나타난 주님의 역사와 재림시의 역사(베드로전서 1:20~23)


말세에 나타난 주님의 역사와 재림시의 역사
베드로전서 1:20~23

서 론

말세라는 것은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세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 올 때부터가 말세라는 것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흘린 피는 세계 만민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다 하루같이 하나님은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기에 오시는 것이니 말세에 온 것이 아니고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나타난 일과 다시 오시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는 것이다.

1. 말세에 나타난 주님의 역사 (베드로전서 1:20)

1) 믿음과 소망을 위한 역사이다(베드로전서 1:21).

우리는 믿음으로써 되는 일은 말세에 종말의 세계적인 완전 구원의 역사이니 그리스도께서 말세에 나타나심이 아니면 세계 인류는 아무런 소망 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을 주려고 오신 것은 심판기에 구원받을 사람을 얻기 위한 목적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믿음과 소망을 주는 역사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세계를 심판할 권리를 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을 주는 일이 있는 다음에 심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와 사랑의 법칙이다.

2) 중생의 씨를 주는 것이다(베드로전서 1:23).

중생의 씨라는 것은 썩지 아니할 씨이다. 만일 주님께서 믿음과 소망을 준다 하여도 그 씨가 내게 와서 자라난 역사가 없다면 완전한 역사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영생의 씨인 생명을 중생으로 받아 들여 이것으로 말미암아 자라서 완전한 열매를 이루는 것이다.

2. 심판주로 오실 때의 역사 (계시록 22:10~13)

1) 예언의 말씀을 개봉한다(계시록 22:10).

심판기에는 중생의 씨를 받은 사람에게 예언대로 심판을 나리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의 씨를 받은 사람을 위하여 오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생을 받은 자라도 예언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예언이다. 이것은 재앙 속에서 살아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자에게 해당될 교훈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진노의 주님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봉한 책의 비밀을 그들이 알도록끔 전해주는 역사를 하게 된다.

2) 불의와 의를 갈라놓는 역사(계시록 22:11).

이때는 악한 자는 더욱 악하여지고 더러운 자는 더 더러워지고 의로운 자는 더 의로워지고 거룩한 자는 더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가을에 추수기가 임박하여 쭉정이는 완전히 쭉정이로 마르고 알곡은 완전히 알곡으로 굳어지는 것과 같다. 세밀히 말하자면 알곡 될 사람은 예언의 말씀을 꿀같이 받아먹을 것이오 쭉정이가 될 사람은 오히려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3) 일한 대로 갚아주는 역사이다(계시록 22:12).

갚아주는 일은 두 번 다시 없는 것이니 재림할 때에는 일한 대로 갚아주고 대심판 때에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는 것이다. 이것을 행위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한대로 갚아주는 것은 종된 자를 표준한 것이요 행위대로 갚아주는 것은 일반적인 백성에게 해당된다.

결 론

예수를 영접하므로써 중생의 씨를 받은 것이요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일한 대로 갚아줌을 받아서 왕국의 권세를 계급에 따라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중생의 씨를 받은 데서 끝을 맺는 것은 절대 아니다. 씨를 받은 자로서 맡은 일에 따라서 갚음을 받는 것으로써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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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41027_에스겔05장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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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월 새벽] 에스겔 5장 : 재앙과 형벌의 예조 2014/10/27 Mon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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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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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41026_예레미야33장10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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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설교 주일 오후] 예레미야 33:10~ 주 재림과 새 시대 2014/10/26 Lord's day(Sun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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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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