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과 유익
디모데전서 4:6~16
디모데전서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着念)하라"
인생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이라는 것은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고,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령의 사람으로 창조했지만, 죽은 영이 된 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 아담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로 우리 죽은 영을 생령이 되게 하고, 생령된 사람으로서가 전부가 아니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데 따라서 나날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생령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연습과 유익에 대해서 본문으로 알 수가 있다.
1. 선한 교훈을 받는 일이다 (디모데전서 4:6)
아무리 중생을 받은 자라도 잘못된 교훈을 받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거요, 좋은 교훈을 받아서 양육을 받을 때에 옳은 진리 가운데서 날마다 마귀와 싸우는 생활이 있으므로 나날이 연습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연습이라는 것은 몸에도 필요하고, 영적으로도 필요 한데 가장 유익이라는 것은 영적 씨름이라고 본다(엡6:12).
하나님께서 중생 받은 자를 언제나 악령과 싸우는 생활에서 날마다 일취월장 하도록 연습적인 생활을 시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중생을 받았다 해도 아무런 연습이 없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면 그 생활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2. 수고하고 힘을 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4:7~10)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중생 받은 사람은 소망을 하나님께 둔 것이니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망에 필요 없는 말이나 교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니 진리라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니 역사라는 것은 진리를 따라 있고, 진리를 따르는 역사는 목적을 진리에다 두고 수고하며 애써 힘을 다하는 자라야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열매를 이룰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 하여도 가만히 있는 자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역사 하되 수고하고 힘을 다하는 자에게만 역사 하는 것이다.
3. 본이 되고자 하여야 한다 (디모데전서 4:11~15)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언제나 실천적인 본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같이 될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인격을 이루는 것이니 진리를 가르치는 자가 인격을 상실한다면 생명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고 했고, 항상 조심해서 전심전력을 다하며 진보적인 사람이 되라고 눈물겨운 부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청년이라는 것은 진보적인 사람이 되어야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종이 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볼 때에 어떠하든지 모든 일을 바로 해보려고 애써 연습하는 자에게 바로 되도록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령은 완전한 신이지만, 원치 않는 자에게 역사하는 신이 아니요,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만 역사하는 것이니 연습과 유익은 사람의 할 일은 성신의 역사가 합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것은 아니로되 연습하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몸도 연습에 따라서 유익이 있는 것인데, 몸의 연습에는 성신의 역사가 필요 없고, 영적 진리의 경건을 위하여 연습하는 데는 초 인간적인 신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디모데후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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