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담대한 바울
빌립보서 1:12~24
서 론
주님께서는 택한 종을 쓰시는 방법은 온전히 담대한 종을 만들어 쓰겠다는 것이 사랑하는 자에게 목적을 둔 비밀이다. 인간이 볼 때는 실패, 낙망, 공포, 수치를 당하게 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은 사랑하는 종은 완전히 담대한 사람을 만들어서 더 큰 역사를 할 수 있는 영계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제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온전히 담대한 바울이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진보가 된 줄 생각하는 마음이다 (빌립보서 1:12)
이것이 사도 바울이 넓고 높고 깊은 영계를 체험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자유를 잃고 로마 옥중에 있는 것이 복음 전파에 퇴보 같으나 바울은 더 진보라고 깨달아졌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환경이냐 할 때 형제 다수가 바울이 매임을 당할 때 겁 없이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빌립보서 1:14). 또 어떤 자들은 그와 반대로 시기하고 분쟁으로 악평적인 말로써 선전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어떻게 되었든 악평으로 말했다 해도 그리스도를 알려 주니 고맙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것은 악화를 시켜서 쓰는 일도 있고 성령으로써 담대히 만들어 쓰는 것이니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일에는 진보가 되리라는 것을 그는 믿었던 것이다.
2.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될 것을 믿고 나아갔던 것이다 (빌립보서 1:19)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성신의 역사만이 떠나지 않으면 필연코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있어야 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환영을 하고 천사같이 대접해도 성신의 역사가 아니라면 아무런 승리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니 바울은 이러한 때를 당하여 더 큰 힘을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 온전히 담대하게 되는 원동력이다.
3. 그리스도만 존귀하게(케) 된다면 무엇이든지 유익으로 아는 바울이었다 (20)
죽어서 존귀케 된다면 죽어도 좋고 살아서 존귀케 된다면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종은 죽고 사는 문제에 국한되어 있다면 큰 담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도 저것도 다 내게는 만족이라는 것밖에는 없다. 내가 살고자 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죽고자 하므로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만이 온전히 담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 가운데 내가 세상에 있어서 좀 더 일하는 것이 양떼를 위하여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빌립보서 1:24). 하나님의 종은 살아도 남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살아보자는 것밖에는 딴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만일 어떤 종이 “세상이 귀찮으니 어서 세상을 떠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합당치 못하다. 이건 왜냐 할 때 양떼를 아끼는 마음이 없는 종이기 때문이다.
담대한 힘을 얻는 것은 절대 하나님이 나를 쓰려고 죽지 않게 한다는 것을 믿고 나서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내 양심을 아신다는 데서 오는 힘일 것이다(빌립보서 1:8).
결 론
온전히 담대하다는 것은 사도 바울과 같은 정신과 사상 양심이 있는 자에게만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말세 비밀을 증거하기 위한 사도 바울 정신을 모방하고 그를 따르는 후계자가 되는데서 온전히 담대한 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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