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한 종에게 되는 일
갈라디아서 1:11~17
갈라디아서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하나님의 택한 종이라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이루어지므로 오직 하나님만 영화 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택한 종에게 되어지는 것은 연구했거나 노력을 했거나 또는 인간의 혜택을 입은 것이 아니요, 홀연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사람이 볼 때는 소망이 없는 것 같아도 뜻밖에 놀라운 일이 있기도 하고, 사람이 볼 때는 악한 것 같아도 홀연히 의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 택한 종에게 되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택한 자라도, 인간이 볼 때에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는 것같이 역사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택한 자가 죄 되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죄를 짓지 않도록 방지하지 않으시고, 자유로운 행동을 하도록 버려 두셨다가 갑자기 택한 자를 바로 만들어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제 택한 종에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증거하기로 한다.
1. 계시로 말미암아 되는 일 (갈라디아서 1:11-12)
택한 종이 일을 하게 되는 일은 인간 지식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도 아니요, 인간 도덕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도 아니요, 인간의 어떤 인도를 받아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므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극도로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나 다메섹 광야에서 홀연히 계시를 받아 그 즉시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종이 연구해서 된다는 것은 완전한 종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 될 적에 완전한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종이 되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의 역사가 인간 두뇌로 연구해서 된다면 이것은 생명의 종교라고 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볼 수도 없다. 왜 냐 하면 사람의 연구 안에 있는 것은 전부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계시를 받아 되어진 일은 오늘까지 세계 인류에게 큰 열매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계시를 받지 않고 되는 종은 택한 종이라고 볼 수 없다.
2. 은혜로 부르심을 받게 되는 일 (갈라디아서 1:13-15)
아무리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은혜로 부르셨다. 이것은 바울이 알지 못해서 핍박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택한 자에게 깨닫도록 할 책임이 있으므로 그를 책망하는 것보다도 은혜로 부르신 것이다.
누구든지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면 알지 못해서 죄를 지은 일은 있으나 깨닫게 될 때에는 그 즉시에 옳은 일을 하게 된다.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한 것은 너무나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는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핍박한 이유는 유대교 외에 다른 교가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통을 가지고 내려온 유대교를 기독교가 무시한다는 오해를 가졌으며, 유대교를 없이하고 예수교가 우세하게 된다면 자기의 정통은 다 쓸데가 없다는 생각에서 유대 교권으로 기독교를 반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를 모르므로 행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은혜를 깨닫도록 역사 하셨던 것이다. 언제나 택한 종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다스리신다. 깨닫지 못할 때에는 깨닫도록 지혜를 주시며 약할 때에는 이기도록 능력을 주시는 것은 택한 자에게 은혜로 역사 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3.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일 (갈라디아서 1:16-17)
사명이라는 것은 모태로부터 택할 때에 어떻게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으니, 아무리 사람이 애를 써 보아도 그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대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농부가 장기를 손에 잡고 일할 때에 그 장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농부가 하고자 하는 대로 쓰여지는 것과 같다.
택한 종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사람으로서 감히 스스로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이 그 명령에 순종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를 박해 하던 바울이 교회를 제일 많이 세웠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택한 종에게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조금도 인간의 무엇이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이것을 신령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는 택한 종이 있으므로써 있게 되는 것이니, 만일 택한 종이 없다면 교회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가장 귀중한 일은 택한 종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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