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4일 목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90124_D_예레미야27장~28장 말씀

[목 새벽 설교] 예레미야 27장~28장 : 바벨론에게 복종할 것 / 예레미야 vs 하나냐 2019/01/24 Thursday Dawn

2016년 2월 10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27장
제목 : 바벨론에게 복종할 것

1. 세계 민족들에 대한 경고 : 1~11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3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4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 』

"여호야김의 즉위한지 오래지 않아서" 받은 말씀인데, 선지자가 자기 목에 "멍에"를 메고 다니도록 하신 것은 유다의 맹방(盟邦)들도 장차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을 실천적 예언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침묵적인 설교요, 견학(見學)시키는 교훈이다. 하나님은 시국(時局)이 급박할 때는 이처럼 인상깊은 무언(無言)의 행동으로써 교회를 각성시키신다. 에스겔에게 행구를 준비하여 낮에 백성의 목전에서 이사하도록 명하신 것도 똑같은 예이다(에스겔 12:1~5). 선지자의 황급한 이사를 보면 "아무리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깨달으리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 3~4절 : "시드기야"를 찾아온 자들은 유다와 똑같은 위기 상황을 맞이한 인접국들의 사신이었다. 급부상한 강대국 바벨론의 팽창정책 하에서 상부상조하여 유대력을 강화해보자는 목적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유다를 돕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또한 도움을 받아보고자 찾아왔지만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므로 그 나라 왕들에게 동일한 메시지, 곧 "줄과 멍에"를 전달하라 말씀하신 것이다.

『 5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7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 8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

• 5~6절 :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유다와 그 맹방들에게 바벨론을 섬기며 순종하라는 예언을 주신 것(3~4)은 바벨론을 높이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북방 스스로가 잘나서 강성대국 바벨론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징계의 도구로 쓰시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니 그 나라에 순종하라 하심이다(이사야 10:5. 예레미야 25:9, 27:6, 43:10).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이사야 14:24~27, 사도행전 17:26절 말씀 참조.

• 7절 : 바벨론의 집권시기는 70년으로 한정하셨다(예레미야 29:10. 다니엘 9:2). 따라서 70년이 차면 메데 바사가 일어나 바벨론을 꺾고, 유다는 본토로 귀국할 것이다. 이 작정에 순종하는 자가 '좋은 무화과'요, 인본주의적 방법으로 징계를 피해가려던 자들이 '악한 무화과'였던 것이다.

• 8절 : 북방에게 순종하지 않는 나라들이 당하게 될 화(禍)에 대해 예언하셨다. 하나님이 세운 나라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행동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바벨론을 섬기지 않는 나라나 백성은 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문권을 바벨론에게 맡기셨다(에스겔 23:24). 그러나 당대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반대로 말하면서 억압받는 백성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

"너희 선지자"란 유다 땅의 거짓 선지자를 말하고 "복술"은 살촉을 던져 그 떨어진 위치에 의해 점을 치는 행위를 말한다. "술사"는 시일(時日)의 길흉을 점치는 자이다. "요술객"이란 주문을 외우는 자들로서, 이들은 모두가 다 이방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나온 자들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속이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류의 속이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한 것이다.

『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11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 10절 :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그 때에 유대인들이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들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않게 되니 그 죄값으로 필경 바벨론으로 잡혀 가게 된다는 것이다(이사야 9:16~).

• 11절 : 70년 간은 바벨론의 금머리 시대이니(다니엘 2:38) 왕에게 순종하는 나라가 평안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 셨는데 어찌 인간이 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징벌 내린 70년간은 포로살이를 순순히 당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된다. 예레미야 24장에서 순종하는 자를 "좋은 무화과"로 불순종자들을 "악한 무화과"로 비유하셨다. "내가"로 시작하시어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맺으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실 것을 선포하신 것인데, 하나님은 과연 진실하셔서 역사는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2. 시드기야 왕에게 경고함 : 12~18

『 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 13 어찌하여 왕과 왕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같이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 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며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리라 하셨나이다 』

이 부분은 예레미야가 앞서 전한 말씀(7~11)을 다시 한 번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는 대목이다.

"바벨론 왕과 그 백성을 섬기라"(12절) : 자기 민족의 왕더러 이방 나라의 왕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것은 선지자 자신도 원치 않았을 말이다. 말을 듣는 왕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처지가 되는 것임과 동시에 발언자 예레미야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따라올 일이므로 사실 위험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미안하고도 안 된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선지자는 '왕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대언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체면과 위신을 차린다면 하나님의 뜻은 선포될 수 없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시록 19:10).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들은 화를 받게 된다"(13절) : 그 환난은 "칼과 기근과 염병에 의한 죽음"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14~15) : 거짓 선지자들의 표어(motto)는 늘 항상 '평강'이다(6:14, 8:11). 백성(교회)들은 이미 "평강하리라"는 말에 현혹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하는 "회개하라"는 내용이 미친 자의 말로 들렸던 것이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의 사명은 회개해야 살 백성이 더욱 교만하도록 분위기를 사주하여 '사망'과 '음부'로 인도하는 것이다.

『 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집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

• 16~17절 :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에게"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 18절 : 진정한 선지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로 더불어 참되게 교통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긴 자들이라 임박한 환난을 감지하지 못하므로 성전 및 왕궁의 남은 기구를 보존해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없었을 뿐더러, 환난당할 백성을 위해서도 환난이 없다는 거짓말밖에 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그들은 선지자도 아니라는 뜻이다. 장차 될 일을 말할 수 있는 신은 여호와뿐이시므로(이사야 44:7. 계시록 1:19) 미래에 대한 예언은 오직 하나님의 대언자인 예레미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도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제단은 하나 뿐 일 것이다.

3. 성전 기구에 대한 예언 : 19~22

『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과 및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족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취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김을 입고 내가 이것을 돌아보는 날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옮겨 이곳에 다시 두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기둥들"에 대하여는 열왕기상 7:15절 이하를 참조하고 "놋바다"에 대하여는 열왕기상 7:23절 이하를, "받침들"에 대하여는 열왕기상 7:27절을 참조하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성전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진 것은 바벨론 군대가 세 번째로 침략한 때였다(B.C.587 / 열왕기하 25:9~10). 세 번째 침략에서 바벨론 군대는 성전의 모든 기구를 남기지 않고 옮겨 갔다. 대제사장들은 피살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눈알이 뽑혀 북방에 끌려 갔다. 모두가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대로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다시 예언하는 시대의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끌려갈 것인가? 예레미야서의 존재목적은 "구약 백성의 패역"을 판단하라 하심이 아니다. "이 패역이 종말을 사는 우리 안에 있으니" 다시 예언할 때 경고 받고 살라 하는 뛰어나고도 거대한 모략의 세계적 교훈인 것이다. 다시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동생들의 말을 들으면 살고, 듣지 않으면 시드기야와 같이 된다. 인간 종말에 되어질 일을 미리 보여준 신은 참 하나님 여호와뿐이시다(이사야 46:10. 히브리서 10:1. 고린도전서 10:6,11. 로마서 15:4).

지금 교회들은 영혼의 구원만이 전부인 줄로 착각하여 때에 맞는 양식을 배척하므로, 자연스럽게 나태와 비대함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애굽)으로 강하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가나안(천년왕국)만을 바라보고 돌진해야 할 모세(예수) 총회(기독교)가 남방 애굽 마귀의 물질권세와 북방 바벨론 마귀의 궤휼권세(정치, 종교)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 밤중의 시대이며(마태복음 25:1~13)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거짓 선지자들이 득실거리는 때이다.

교회가 이렇게 되었으므로 주님의 분노는 하늘까지 사무쳤다. 예레미야서 초반에 기록된 "끓는 가마솥"의 묵시를 기억하는가?(1:13~14). 가마솥은 펄펄 끓고 있었고, 남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예수님이 분노를 발할 도구로 택하신 것이 바로 북방짐승이다. 계시록 8장, 9장을 보라! 여기에 나타난 나팔재앙은 모두가 북방 무신론의 세력으로부터 시작되고 마감될 재앙들이 아닌가!

궤휼(뱀의 혀)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고 지독한 것인지는 이제 예레미야 28장에서 나타난다. 궤휼의 세력, 음녀의 씨들은 참 선지 예레미야를 핍박하나 하나님은 궤휼의 씨들을 다 죽여버리시고 예레미야와 같은 자들에게 승리를 준다고 예언하셨다(이사야 57:3~13). 협상 세력들은 28장의 '하나냐'를 보고서도 자신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 두 증인의 세력은 28장을 통해 참승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 : 예레미야 28장
제목 : 예레미야 vs 하나냐

1. 하나냐의 거짓말과 선지의 태도 : 1~9

『 1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에 대하여 거짓말로 예언할 때에 그 자리에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함께 있었다. 이는 하나냐가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 굉장히 담대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4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 』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거짓 예언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끝나고 있다. 예언의 내용은 달라도 형식은 참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과 똑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것이다. 하나냐의 예언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라 백성의 바램(소원)에 아부하는 인간적 소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21세기에 존재하는 '하나냐'의 혀는 어떠한 말들을 내뱉고 있을까?



1948년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창설된 W.C.C.(세계교회협의회) 헌장에는 "W.C.C.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친목단체(협회)이다"라고 선언돼 있다. 외형상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보면 저들의 용어는 성경적 용어와는 판이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이름난 감리교인이자 방송 연사였던 '훠스딕'씨는 『예수님 예배의 위험』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주신 모든 사랑의 원천으로 내 어머니 안(母性)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확신에서부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내 신앙을 고백할 때 내가 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뜻을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럴 듯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말의 속뜻은 전혀 딴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분별해야 한다. '훠스딕'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성경적 진리를 은근히 왜곡하여 '예수라는 한 인간의 사상과 행동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는 정도로 축소, 변개시키고 있다. W.C.C. 헌장에는 완전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라는 말씀이 한 군데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린도전서 15:3~4 바울의 기록을 참조하라).

하나냐가 내뱉은 류의 거짓된 감언이설은 W.C.C.라는 거대한 음녀 조직에 침투한 사단의 영을 통해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는데, 국내의 K.N.C.C. 회원교단이나 W.C.C.에 속한 세계 각국의 양 떼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거의 무지한 실정이다.  W.C.C. 회장 중 하나였던 "티•씨•차오"라 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시편 14:1, 53:1) 하는 중국공산당 소속의 공산주의자였으며, 그 당시 이 회의에서 나온 여러 가지 성명서의 내용을 살펴 보면, 이방종교의 지위는 높이고 '복음'(福音)과 '주 예수'의 지위는 낮추는 내용들로 꽉 차 있었다. 한 중국 대표는 "공자의 유교는 기독교의 신관(神觀)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의 본질 전부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고, 미국에서 온 '러퍼스 존스'라는 자는 "우리들은 이방종교들이 가진 선(善)이나 미덕(美德)을 기쁨으로 인정한다"고 발언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지도자', '선생', '이상적 인물'이라고는 칭하였지만, '구원자'라든지 '구세주'라는 말로는 단 한 번도 호칭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W.C.C.는 어느날 불쑥 생겨난 단체가 아니라, 에덴동산 때부터 있던 뱀의 후손들이 종말의 때가 가까우매 총결집한 단체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음녀 대장 가톨릭과 잡동사니 이방종교들까지 연합되면 성경대로 믿는 참 성도를 핍박하는 "피에 취한 음녀의 실체"(계시록 17:6)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1948년 이전부터 이미 교회연합 운동을 목적으로 대회(大會)회들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성경적 진리>에서 멀리 떠나 있으며,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구원된다는 복음적 메시지와도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이러한 자들이 <소유구조 개선 및 계급해방>을 통해 '지상낙원 유토피아'를 건설해 보자 하는 사회주의자들과 교묘히 야합되면서 결성된 거대 괴물이 바로 W.C.C.였던 것이다. 많은 양 떼들이 이를 분별치 못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거짓 복음의 단체는 중생받지 못한 채 외식적 신앙만을 추구하는 모든 쭉정이들을 한 데로 모으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하나냐의 거짓 예언이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모든 쭉정이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듯이 말이다.

W.C.C.가 거대한 인본주의적 종교기틀을 마련하여 이 땅의 양 떼들을 '후 3년 반'으로 인도하고 있는 이 '비밀'을 우리는 예언서를 통하여 깨달았다. 우리는 임박해 오는 양 떼들의 떼죽음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대로 다시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죽는 '정통'이 무엇에 유익한가? 오히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이단'이 되어 주님 다시 오실 때 "잘했다" 칭찬받는 신부가 되는 편이 훨씬 복되다.

이와 같은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 통합운동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진보신학자들'과 '종교철학자들'이다. 일반 성도나 보통 교역자들은 이 엄청난 사단의 모략에 대해 깜깜무지한 상태이다. 우리가 W.C.C.의 비복음적 사상 곧 거짓 선지의 쑥물을 비판하고 고발할 때마다 W.C.C. 내의 멋모르는 양 떼들이 우리를 욕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은 자기가 속한 교단의 '무서운 음녀적 비밀'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양 떼란 순진한 법이다. 목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고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 지도자들이 빛을 가장한 화려한 언어 혼란전술로 미혹시킬 때 넘어가지 않을 양 떼란 없는 것이다. 성경을 손에 쥐고 "주여 주여"를 외치고, 찬송가 펴 놓고 "예수님 찬양"을 부를 줄 알면 모두가 성도인가? 아니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의 인본주의적 발언(쑥물)과 싸우는 이 일을 진실하게 계속해 나갈 때, K.N.C.C.와 W.C.C.에 속한 많은 알곡들은 마침내 자기들이 몸담고 있던 거대한 '교회협의회'가 얼마나 가증한 단체이며, 얼마만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이탈해 있는 모임인지를 깨닫고 거기서 나오게 될 것이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W.C.C.에는 가증한 몇 가지의 계획이 있다. 첫째로 "개신교 교파들이 단일연합교회를 형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된 이후에는 "개신교 연합체가 정교회와 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단계까지는 이미 성취된 상태이다. 공산당의 통치를 받는 가짜 교회들까지 이미 버젓이 W.C.C. 정식회원으로 가입되어 우두머리의 자리(위원장)까지 차지한 현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대로이다. 여기까지 성취된 이후로 행해질 최후 단계가 바로 '개신교-그리스정교회-로마가톨릭'까지의 완전 통합인 것이다. 아직까지 로마가톨릭은 W.C.C.회원교단이 아니다. 그러나 실상 가톨릭이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현실과, 매 미사 때마다 행해지는 '본기도' 및 '여타 기도'에 <종교간의 대화와 타협을 위한 기도>가 빠지지 않는 것을 주목해 볼 때, 가톨릭은 기독교 계파뿐만 아니라 이방종교까지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에 주역을 담당할 것이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마지막 단계의 '초교파적 거대 통합'은 그리 먼 훗날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유명한 개신교 부흥사나 명망있는 목사들 중 "우리는 이제 어리석은 교파싸움을 종식하고 다시금 큰 집으로 돌아가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또한 기독교 방송 채널을 틀면 몇몇의 목사들이 로마가톨릭 신부들이 착용하는 '로만칼라'를 목에 두르고 나와 설교하는 모습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때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작은 징조들이다. 루터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빼내심'을 다시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 어찌 사단의 작품이 아니리요?

통합세력들은 오늘도 예수님을 이방종교의 여러 지도자들 중 하나 정도로 격하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거짓된 공산주의에서 나온 기독교 세력에 의해 <예수님의 보혈>은 오늘도 죄인인 우리를 속죄하는 생명의 피가 아니라, 정의와 사랑을 부르짖던 한 청년의 억울한 한(恨)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혁명의지'를 부추기는 붉은 색 자극제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마귀의 짓이다. 이 잘못된 보혈관은 오늘날 교회 속에, 사회 속에 침투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혁명운동에 사상적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노동조합이 명동 성당에 들어와 진을 치고, 대학생이 이 땅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노동자가 제 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자살하는 행태가 방송국 안에 진치고 있는 좌익세력에 의해 진리를 위한 거룩한 희생처럼 미화되는 일도 많다. 동료가 죽겠다 해도 말려야 할 판에 동료의 분신을 부추기고 그 헛된 죽음을 말리지 않고 방치하는 행위는 아무리 미화해 본들 사단의 행위일 뿐이다(MBC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큐멘타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년 4월 28일자 '91년 죽음의 배후'라는 동영상을 참조해보라. MBC는 좌파적 시각을 옹호하는 태도로 보도하고 있지만, 독자 여러분은 죽음을 선동하는 마귀의 정체를 꿰뚫어 보길 원한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며(요한복음 8:44)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적이다. 붉은 사상에 취한 사단의 자식들은 20대 초반의 철모르는 대학생들을 자기가 섬기는 마귀 앞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죽는 자나 죽음을 사주하는 자나 하나같이 그 죽음이 지상낙원을 앞당기는 순교자적 죽음이라 신앙하면서 그러한 행동을 저지른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신앙은 사람을 지옥불로 인도할 뿐이다. 신나에 몸이 타죽은 그 청년은 그 영혼까지 지옥불에서 고통받게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마귀의 속임수는 이토록 잔악하고 무서운 것이다.

1960년대에 W.C.C.의 신학적 대변자들은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신학(死神神學)을 선포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보아도 W.C.C. 안에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성경적 인도도 없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는 중생함도 없고, 하늘나라도 없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놓고는 아니지만) 교묘히 부인하면서,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미화시켜 선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열망케 함으로써 일종의 신기루 같은 거짓 종교를 유포시키고 있는 것이다. '후 3년 반'을 통치할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이 거대한 음녀단체와 규합하여 세상에 등장하여서는, 그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결국 이 돈많고 호사스럽고 탐스런 음녀의 살을 다 뜯어 먹고 그 뼈까지 불사를 것이다(계시록 17:16). 미친 짓을 하는 가련한 음녀는 자기의 운명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

성경을 믿고 중생받은 크리스챤이 되신 한국의 W.C.C. 산하의 K.N.C.C.교단 성도들이여! 그 무리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왜 하나님께 순종하여 친히 하나님이 명령 하 신대로 그 같은 거짓 종교에서 나오지를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인가? 그 안에서 무슨 탑을 쌓고 있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고린도후서 6:17~18 )

오늘 예레미야 본문 28장 1~4절을 읽으면서 이토록 길게 W.C.C.를 언급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하나냐와 그 무리는 컸고 예레미야는 작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W.C.C.와 K.N.C.C.는 크고 넉넉하여 압박받지 않고 있지만, 우리 스룹바벨선교회는 이단 아닌 이단이 되어 참말을 하고도 욕을 먹고 있다. 예레미야는 70년을 선포했는데, 하나냐는 바벨론이 불원장래, 즉 "2년 내에 멸망할 것"이라 하며 "유대인은 귀국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3~4). 겉으로 볼 때는 물론 달콤한 말이요, 애국 선지자다운 말이다. 그러나 지금 유다인은 죄값으로 매맞는 중에 있지 아니한가? 죄인의 귀에 달콤하다는 것은 뱀의 소리임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괴로운 식민지통치하에 있는 백성인지라 예레미야의 말이 달갑지 않게 들릴 수 밖에 없음을 안다. 하지만 에덴동산을 추억하여 보라! 창세기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본문의 하나냐의 말이나 오늘날 W.C.C.의 말이나 에덴동산의 간교한 저 뱀의 말이나 다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 않는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기록된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 교회가 거짓 평화공존에 하나같이 속고 있는 현실은 알록달록하여 어찌 보면 푸른 생명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시들어버린 황색 같기도 한 청황색말이 뛰노는 시대임을 뜻한다. 그러나 청황색말을 타고 있는 자의 이름이 무엇이던가? '사망'이 아닌가! 또한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무엇이던가? '음부'가 아닌가! (계 6:8). 한국의 알곡과 세계의 알곡은 본 제단에서 증거하는 생명의 예언서를 깨닫고 하루빨리 재림 주님을 영접할 신부단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참 선지와 거짓선지의 대결을 잘 보시라! 이 시대에 재연될 영적 대전쟁이니까 말이다!

『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할 새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오시기를 원하노라 』

예레미야도 하나냐처럼 자기 백성이 치러야 할 죄값이 적은 것이 좋지, 많은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민족을 아끼는 참 선지자의 순수한 마음이다.

『 7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

여기서 예레미야는 자기와 및 옛적 선지자들이 전한 예언이 그 원리(심판의 메시지)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신명기 28:15~29:29).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의 회개를 목적으로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의 귀에 듣기 좋은 말들만 한다. 반면에 참 선지자는 백성들의 진실한 회개를 위하여 쓴 소리라도 장차 임할 환난, 심판에 대해 서슴지 않고 말하는 법이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다!

『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

참된 선지자의 자격 성립은 그가 말한 예언의 성취에 달려 있다. 신명기 18:21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2.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다툼 : 10~14

『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타나 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발악을 하며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었다. 이런 행위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행동이다. "멍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70년 선포의 사명'이다. 자기 민족을 향해 바벨론 왕 밑에서 70년을 살라고 말해야 하는 가슴 아픈 사명인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처음부터 가라지(마태복음 13:25~28)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참 선지 예레미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는 사실 유다의 죄를 속하기에는 70년도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두 해가 차기 전에"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어 자기 민족을 고토로 돌려보낼 수 있다 하니 이런 예언을 사주하는 자가 마귀가 아니고 누구이랴!

하나님은 이미 70년을 선포하셨고(25:11), 한 번 더 선포하실 것이다(29:10). 또한 바로 전 장에서는 27:8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냐 같은 자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참 선지자는 마귀의 말같지 않은 말에 그저 침묵한 채 자리를 피하여 묵묵히 "자기 길"을 갔던 것이다. 말씀에 굳게 선 멋진 형님의 이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다시 말씀이 임했다.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하나냐에게 전하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의 경영'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이사야 43:13). 아무리 대적의 핍박과 훼방이 있어도, 기록된 말씀은 더욱 견고히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가 중동전쟁과 극동환난을 외치면 많은 이들이 듣기 싫어하며 욕을 한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탈냉전', '전쟁종식', '평화공존'을 진리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과 환난을 말하는 우리를 못살게 굴며 우리를 쥐어박으면 박을 수록 우리의 사명은 쇠 멍에 처럼 더욱 더 굳세어진다.

3. 예레미야의 예언과 하나냐의 죽음 : 15~17

『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을 하였음이라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칠월에 죽었더라 』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그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이 예언대로 하나냐는 그 해 7월에 죽었다. 거짓말하는 자는 죽는 법이다! 7월은 초막절기가 있는 달로서, 이 달에 유다 땅에서 펼쳐지는 이면적 초막절 역사로 인해 거짓말하던 정치방백, 종교방백, 그들의 쑥물을 먹고 취했던 자들이 많이 죽게 된다.

종말을 사는 우리는 구약 선지자들이 받은 모든 예언을 종말을 향한 투시기법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냐와 예레미야의 싸움이 담고 있는 참 뜻은 이러하다. 인간 종말에 신랑 예수를 저버리고 짐승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사상을 용납해주고 세상 금잔에 치우쳐 가련한 많은 양떼를 미혹시키는 하나냐 같은 음녀 세력(계시록 17:3~5)은 후 3년 반에 들어가 짐승에게 미움을 받아 참담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계시록 17:16).

그러나 계시록 13:11~15 "새끼양 같이 두 뿔이 나고 용처럼 말하는 짐승"은 "거짓 선지자"(계시록 19:20)로서 음녀와는 다르다. 많은 이들이 '음녀'와 '거짓 선지자'를 동일시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새끼양 같은 짐승'은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는 이적을 행하며 '후 3년 반' 동안 세상 사람들로 짐승과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도록 미혹시킬 자이다(단수로 1명이다). 그러나 '음녀'는 금잔을 손에 들고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가 되어 있는 거대한 종교 통합세력이다. 계시록 13장의 '거짓 선지자'는 '짐승=적그리스도' 1인의 동역자로서 그를 도와 함께 '후 3년 반' 동안 통치하다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백마를 타고 내려오시는 예수님께 심판을 받되 자기가 보필하던 '짐승'과 함께 잡혀 산 채로 불못에 들어가는 최후를 맞이할 자이다(계시록 19:19~20). 그러나 '음녀'가 심판당하는 시기는 '거짓 선지자'의 심판시기보다 훨씬 앞선다. 음녀는 짐승에게 미움을 받아 '후 3년 반'에 먼저 죽는다. 고로 '음녀'와 '거짓 선지자'는 최후를 맞이하는 시기도 다르고, 자신을 심판하는 대상도 다른 별개의 두 존재이다.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되는 붉은 용(600) + 짐승(60) + 거짓선지(6)라는 이 적마의 3세력(계시록 16:13)은 최종적이면서 가장 사악한 귀신단체로서 666의 진수이다. 구약 때부터 보여진 모든 적기독 정권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최후에 나타날 이들에 대한 예표 역할을 했을 뿐이다.

고로 이 땅의 참된 성도들은 붉은 옷과 각종 사치품으로 꾸미고 금잔을 든 채 짐승을 타고 취해 있는 가증한 음녀 세력과는 자리를 같이 해서도 아니 될 것이요(기독교를 사칭한 통합종교체제), 짐승을 위해 이적을 행하며 짐승 앞에 경배케 하는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도 아니 될 것이다(종교지도자 1인). 오직 예레미야 형님 편에 서서 예언서만을 묵묵히 대언해야 한다. 참 성도는 하나냐의 죽음을 지켜본 예레미야처럼 종말의 거짓 선지가 패망하는 것을 반드시 두 눈으로 목도케 될 것이다(미가서 7:7~10).

우리는 백성의 귀에 듣기 좋은 달콤한 말만 하는 하나냐 같은 인본주의적 발상을 배척하고 W.C.C.나 로마가톨릭이 쌓는 영적 바벨탑 사업에서 도피하여, 오직 "여자(음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신앙 정절을 지키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되자!

이 길을 가려 할 때 구약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방해를 하겠으니 우리는 종말의 '스마야'를 이기고 나갈 힘을 얻기 위해 예레미야 29장을 정독해야 한다! 참 종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환난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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