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새벽 설교] 예레미야 19장~20장 : 파기(破器)의 상징인 교회의 멸망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2019/01/19 Saturday Dawn
2016년 2월 5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9장
제목 : 파기(破器)의 상징인 교회의 멸망
1. 힌놈 골짜기의 심판 경고 : 1~9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2 하시드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
"오지병"은 목이 좁은 병으로서 속에 담긴 액체를 쏟을 때에 "박뿍 박뿍" 하고 소리가 난다. 이 병은 토기로 만들었으며 오짓물을 발라 구어 윤이 나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병의 깨어짐과 같이 유다 나라(현 교회)가 깨어질 것을 실물교훈(實物敎訓)으로 보이신 것이다.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가라 하심은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어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시드 문"은 '태양의 문' 혹은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동편 문을 뜻한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편 골짜기인데, 하시드 문을 통해서 내려가면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나온다 하니 하시드 문의 정확한 위치는 예루살렘 성 남동쪽 모퉁이쯤 된다. 이 문은 바로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분문(糞門=똥문)과 동일시된다(2:13). 이 문이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 불리우는 것은 근처에 토기장이의 집들이 밀집된 관계로 많은 질그릇 조각 파편이 이 문 부근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유다 어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가는 이유는 앞으로 유다 땅이 '도벳'과 같이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을 실천적으로 예언하기 위함이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우상숭배로 더럽혔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도 유다 땅에 살육을 베푸시어 '도벳'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골짜기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 ※ 하시드 문 가까이에 있는 토기장이의 밭은 도벳=기드론 골짜기=힌놈 골짜기=살육의 골짜기 등으로 불리운다. 여기서 불법적인 우상제의가 행해졌으며 바알, 몰렉 등에게 어린아이를 잡아 바치는 악습이 자행되었다. 렘 32:35. 대하 28:3, 33:6. 예레미야 7:32). 이러한 예언을 읽고도 무심하여 계속 가증한 행동을 하게 되면 다시 예언되는 종말! 바로 지금 저 심판의 골짜기에 매장될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
이사야 30:33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이 심판을 벗어나는 방법은 3절부터 펼쳐지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 뿐이다.
『 3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죄책(罪責)이 "왕들"과 "거민들" 양쪽에 다 있다는 말씀이시다. 도벳과 같이 더러워진 "이곳" 유다 땅에 전쟁의 화를 보내시겠다고 하신다. 이때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한다고 하신 것은 엄청난 살육심판의 환난이 임한다는 소식을 듣는 자마다 놀라리라는 뜻이다.
『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죄"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시는 원인이 된다.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이란 '우상'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길은 모두 다 우상의 길이다.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다" 함은 선지자 시대에 참된 종들이 많은 핍박을 받아 죽임 당한 사실을 가리킨다(예레미야 2:34, 7:6, 22:3,17). 언제나 종교가 부패해 갈 때는 의인의 피에 주린 불의한 자들이 많아진다(시편 14:4~6). 앞으로 예레미야서를 들고 나가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이니 더욱 힘을 낼 일이다.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헛된 미신으로 떨어졌을까? 아들을 불살라 바침은 사람이 한 번 미혹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예언서 어디를 보나 구약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사단의 꾀임에 끌려간 흔적뿐이다. 이는 아담 이후의 인간 중 뼛골속 선악과의 질을 이기고 사단의 미혹을 받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결론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긴 자"가 되는 길은 오직 사단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와 새 일의 말씀에 연합하는 그것뿐이다. 영육이 누릴 지상 천년의 축복은 사단이 들어쓰는 거짓 선지자의 궤휼(오메가의 미혹)을 이겨야만 준다는 것이 종말의 법이다. 거짓 선지자는 교회를 살육심판의 도벳 골짜기로 몰아넣기 위해 존재하고, 144,000명은 교회를 도벳 골짜기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 6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7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謀計)를 무효케 하여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8 이 성으로 놀람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모욕할 것이며 9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
죄 값으로 받을 재앙의 선포이다.
① 교회가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의 악행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그곳은 "살육의 골짜기"가 되며(6절).
② 현세적, 육체적인 복을 바라며 행하던 유다인의 모계(謀計:계책을 꾀하는 일)는 실패할 것이며(7절).
③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져 지나가는 행인들의 놀람과 모욕거리가 될 것이며(8절).
④ 유다인이 적군에게 포위될 때 극도의 식량난으로 서로의 고기를 뜯어먹는 일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9절) : 이 일은 바로 '후 3년 반'에 떨어진 기독교인들에게 이루어질 일이다(신명기 28:52~57. 열왕기하 6:28~30. 예레미야애가 2:20, 4:10 참조).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유다 백성이 당할 환난의 비참함이 곧 그들이 행한 죄악의 비참함과 동질동량(同質同量)임을 깨달아야 한다. 21C 종말에 기독교가 무서운 '3대 화'를 통과하게 되는 것은 교회의 죄악이 그만큼 무섭다는 뜻이다.
2. 파기(破器)로 멸망을 경고함 : 10~13
『 10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동행자들의 앞에서 "오지병을 깨뜨려"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실물교훈(實物敎訓)를 행하라 하신다. 21C의 교회는 이 살아 움직이는 예언을 경청해야 한다. 사랑과 온유의 예수님이 무서운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촛대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들이 바로 이처럼 깨어지고는 다시 회복될 수 없는 형편에 처할 것임을 알려주신 예언이기 때문이다.
『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 곳과 그 중 거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
예루살렘은 이제 "도벳"과 같이 시체들로 더러워진 땅이 될 것인데, 성지(聖地)가 이렇게 시체들로 더럽게 되는 원인은 <우상숭배>이다. 에스겔 9장에서도 성소에서 어른들 곧 장로들로부터 시체가 될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 원인 또한 성읍(교회)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 곧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이사야 43:28, 66:6~ , ☞ 에스겔 9장 설교를 참조하라).
3.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예언함 : 14~15
『 14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
선지자는 성전 뜰에서 다시 예언하였다. 내용은 유다 민족이 받을 재앙에 관한 말씀이다. 종말에도 선지자 사명을 가진 파수꾼들은 예수님께서 "교회와 종들"에게(계시록 22:6~,16~) "이후에 마땅히 될 일"(계시록 4:1~)에 관하여 계시하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그대로 외쳐 예언해야 한다. 인봉개시(印封開始)된 이 말씀을 가감하면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이 임하리라고 예언하셨으니(계시록 22:18~19) 이 시대의 성도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계시록 1:3). 우리는 예레미야와 같이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 일에는 엄청난 시련이 따르는 것이니 20장을 통하여 교훈받지 않고서는 다가올 시련을 이길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 예레미야서를 읽는 우리 모두가 형님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을 묵상할 때 크게 깨닫고 각성하므로 큰 시련이 다가오는 그날에 더욱 담대히 나아가 예언할 수 있는 인격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성경 : 예레미야 20장
제목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1. 바스훌의 박해와 선지자의 예언 : 1~6
『 1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有司長)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
선지자는 언제나 자기 민족에게 임할 환난 재앙을 예언하고도 핍박을 받는 존재이다(미가서 7장 참조). 본문은 참 선지자가 유사장(성전의 질서유지 책임자)에게 매를 맞고 수금 당하는 모습이다. 유사장 곧 제사장의 두목이 폭행을 했다는 것은 당대의 종교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려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형식과 외식적인 교회활동을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러한 교계적 부패를 현실감 있게 증거라도 하라는 듯, 예레미야서 집필 중인 2003년 5월 25일 주일날 아침, 선지자들이 기록한 모든 말씀을 가감치 않고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하는 본 제단을 교인수 1위를 자랑하는 대형화된 거대교권이 폭언과 폭행으로 핍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 주소를 통하여 내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통화로서 끝인 줄 알았으나 저들은 통화 중에 했던 말인 "너희 교회 어디야? 가서 확 뒤집어버릴테니까... 죽고싶냐?"는 말을 실행에 옮기려는 듯, 통화 후 정확히 4시간 만에 우리 교회(스룹바벨선교회)에 도착하더니 검은 승용차 2대로부터 안전부장(교회의 질서유지와 안전을 담당하는 직책)과 그가 거느리는 키 180cm 이상되는 건장한 남자 4~5명과 무술 유단자로 보이는 험상궂게 생긴 무표정의 장정이 하차하여 교회의 오후 예배 준비성가 시간을 방해하였다.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지 않으면 교회가 북방세력으로부터 화를 당한다'는 전도지를 자기네 교회 장로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하여 그 여집사를 손봐주러 온 것이다. 오자마자 문을 부수듯 두드리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무슨 일로 찾아오셨느냐'고 물으러 나간 청년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해대는 모습이란 도저히 성령의 열매로 볼 수 없는 흑암 덮인 행위였다.
교회의 신앙생활의 요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다. 요한복음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예레미야는 자기를 "놓아주는 바스훌" 앞에서도 그 예언의 내용을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初志一貫)하여 전하므로 앞으로 임할 재앙에 대해 분명하고도 견고하게 예언했다. 이렇듯 참 선지자는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할 뿐이다.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바스훌'이란 '권세를 확장하는 자'란 뜻인데 이제부터는 그가 "마골밋사빕" 곧 '사방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우게 되리라 한다. 이 이름은 종말에 북방환난이 내려오는 날 '권세 있는 교회가 처하게 될 모습'을 예표한 것이다.
『 4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
4~6절은 예루살렘과 바스훌에게 임할 환난의 내용이다.
① 그가 그의 친구들이 칼에 죽는 것을 보게 됨(4절).
② 모든 소유와 보물이 원수에게 탈취당하게 됨(5절).
③ 그의 가족들과 그 자신도 바벨론에 사로잡혀가게 됨(6절).
지금은 예레미야서를 다시 읽어 전하는 시대이다. 이 때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멸시하며 압박하는 교회의 권세자들은 바스훌과 같이 모두 '후 3년 반'으로 들어가 기록된 저주의 예언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2. 예레미야의 기도와 확신 : 7~13
『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선지자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명기 12:32) 하셨다. 계시록 22:18~19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선지자는 주께 받은 사명으로 괴롭지만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11)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
선지가 말할 때마다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는다" 함은 입을 열 때마다 북방환난과 재앙의 내용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1장에서부터 '가마솥이 북에서부터 끓고 있으며 북방 모든 나라가 유다와 이 땅 모든 거민을 치러 내려온다'는 묵시를 받았다(예레미야 1:13~). 그러나 유다 정권과 교회는 듣고도 끝까지 불순종하였기에 결국 바벨론의 세 번째 침략을 당하므로 완전한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예레미야 39장). 그러나 그들은 붕괴를 당하기까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참 선지를 모욕하고 괴롭히기만 했던 것이다.
『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동족이 가하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괴로움 중에 다시는 여호와의 뜻을 선포하지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도 아니하겠다 하여도 선지자는 곧 "중심이 불 붙는 것같이" 뜨거워지게 되므로 다시 뛰쳐나가 예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권역사이다. 인간의 힘이 못당하는 성령의 역사이다(스가랴 4:6~ ). 이렇게 되는 이유는...
①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 말씀임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고 ② 말씀의 내용이 너무도 참되기 때문이며 ③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그 마음을 뜨겁게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마귀의 참소도 강한 법인데, 오늘날 예레미야를 다시 예언하는 종들도 다음과 같은 대적들의 훼방을 통과케 될 것이다.
『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
선지자는 자기가 당하는 모든 위험스러운 일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데, 곧 비방하는 일과 해하려는 음모들이다.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이 말은 원수들끼리 주고 받는 말인데, 예레미야에게서 무슨 허물을 찾으면 알려 달라는 말이며, 고소할 때는 함께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이다. 이들의 공동 목적은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는 것 한 가지뿐이다.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친한 친구들까지도 예레미야가 죄를 범하고 거꾸러지기를 원하리만큼 참 선지자의 길은 외롭고 고독하며 범인(凡人)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시편 55:1~16).
『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
본절에서는 예레미야가 10절까지에서 고백한 힘겨운 역경 중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원수들이 산더미같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휘두르는 장면들에서는 마치 하나님조차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의 긴박함과 위기감이 조성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시는 "두려운 용사"로 알았으며 원수들이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을 내다 보았다. "그들은...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예레미야는 자신을 박해하는 모든 자가 실패할 것을 확신하였는데, 이는 말세의 종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종말의 파수꾼들이 예레미야서를 들고 나갈 때 대적의 무리들이 죽일 듯 달려들테지만 그들은 큰 수욕을 당하게 되고 예레미야와 같은 144,000명의 용서들은 "두려운 용사" 하나님의 완전보호를 받게 될 예언이다.
『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
예레미야의 신앙을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그는 자기의 심사(心思)에 불의함이 없다는 사실과,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안도감을 갖는다. 13~ 극도로 위험한 때이지만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는 모습은 하박국 3:16~18절에 나타난 말세 종의 자세이다. 말세 종들은 세상 권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하다.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는 과거형 문투의 신앙고백은 마귀로부터 권세 받은 악한 종들이 말세 종들을 핍박하고 나올 때 큰 위로의 말씀이 될 것이다. 과거형 문투 예언은 이미 그렇게 이루어진 줄 믿고 나아가라는 강한 권고의 말씀이다. 우리는 "구원하셨음이니라" 이 한 말씀으로 인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소망의 열매는 이처럼 달다. 하지만 인내의 과정은 쓰다는 진리가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된다.
3. 선지자가 자기 생일을 저주함 : 14~18
『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그의 출생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한 자까지도 저주를 받았더면 좋았으리라고 하고 있으니(14~15)... 선지자 예레미야의 연약한 체질이 감당키 어려운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핍박이 덮쳐왔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저주의 탄식은 선지자의 믿음이 하급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너무 강하므로 나오는 탄식인 것이다. '출생하지 않았더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운 환경은 말세 종 144,000명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이 예언이 기록된 것은 참 선지의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가를 알리는 데 있지 누군가를 저주하는 데 있지 않다.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한 바 있다(열왕기상 19:4).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대항할 말세 종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러한 환경을 거쳐가야 할 것이다.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이것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공포의 소리를 의미한다.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여기서 "그" 는 하나님이시다. 원망하는 말이 아니고 선지자의 길이 이러한 말이 나올 만큼 험하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그의 삶 전체가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는 만큼 그 인생에서는 기가 막힌 일들이 수없이 발생케 된다. 욥기 3:1~26절에서도 기가 막힌 말을 많이 함을 볼 수 있다. 이사야 29:1~4절에도 말세 종은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하신 상태가 된다고 예언돼 있다. 우리가 비껴 갈 수 없는 필수관문의 예언들이다.
이사야 48:10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 이시야 119:67~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신데, 왜 택한 종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고난의 풀무를 지나게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종들에게 세세 왕권을 주시기 위함이다. 세세 왕권을 주시되 강한 마귀와 싸움을 붙여 이기는 자에게 준다는 것이 '공의'(公義)이므로 "고난"이 필요한 것이다. 고난은 주님의 '모략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49:2~ 종을 "마광한 살"같이 아프게 갈아 전통에 감추고 꼼짝 못하게 하시는 것도 다 원수 마귀를 이기게 하기 위한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핍박과 고통을 도리어 축복으로 알고 감사만 하자! 그것이 진정한 파수꾼의 인격이요, 그가 걸어야 할 신앙의 정로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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