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5일 일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5_D_예레미야07장 말씀

[주일 새벽 설교예레미야 07장 : 외식된 신앙고발과 회개요구(하늘황후 우상) 2018/04/15 Lord's day(Sunday) Dawn

2015년 5월 27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7장
제 목 : 외식된 신앙고발과 회개요구

1. 외식보다 공의를 실천하라 : 1~7

『 1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

• 2절 : "여호와의 집 문에서 선포하라" 하심의 종말론적 의미는 계 22:6, 16절같이 '종들'과 '교회'(행 20:28)에게 다시 예언하라 하심이다(계 10:7~11).

• 3절 :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양식을 먹고(마 24:45)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받지 말고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만 들으라는 뜻이다. 신앙 양심이 하나님을 향했다면 언제나 참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도 올바른 신앙양심을 가진 자는 이 예레미야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 사람은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바돌로매라 불리었다(요한복음 21:2. 마태복음 10:3. 누가복음 6:14).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앙양심과 영적 방향이 하나님을 향한 자는 나다나엘같이 결국 바른 길을 찾게 된다.

『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

"이것"이란 성전을 가리키는데, 3번씩이나 반복함은 (그들이 생각하기를) 그들이 믿는 성전 자체가 지극히 신성하여 장차 어떠한 환난이 와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맹신하는 모습을 역설(力說)하여 꼬집은 것이다. 건물이 웅장하다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환난과 궁핍이 많아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모이는 진실한 교회만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거짓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은 참 선지자의 진리를 배척하고 단지 그들 육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다는 사실로부터 안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같이 형식, 외식에 치우친 신앙자들은 거짓 선지자의 거짓 평강에 속고 만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실성'이 결여된 채 다만 종교의 의식과 외형에서 안도감을 얻는 행위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바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건물모양과 소속교단의 건재함을 따져 보고 안정감이 드는 교회로 출석교회를 삼는 자들이 많은데, 잘못된 태도이다.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셨고, 사 66: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하셨는데, 이렇게 교회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것은 종말의 성도들이 하나같이 종교적 제도와 교권(敎權)을 의지하며, 하나님(진리) 자체와 계시록(공의) 알기를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사랑과 위로만을 찾는 젖먹이 신앙에서 공의와 진리를 찾는 장성된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함이 심판의 원인이 된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도 젖만을 고집하는 아이는 곧 죽게 될 아이다(히브리서 5:13~14). 영적으로도 때를 따라 양식을 먹지 못하면 마태복음 24: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하신 말씀에 걸려들게 된다.

외식된 자들이 모여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그 곳(변질된 대형교단)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심판받게 될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하였다. 에스겔 9:4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

"참으로 바르게 하면" 산다고 하신다. 이는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고 그 열매가 참된 생활의 변화로 나타나는 진실한 회개를 뜻한다. "묵은 땅을 가는 것"이요, 외식을 벗어던지고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다(예레미야 4:3~4). 종말의 교회로 보자면 예수님이 주신 "처음 사랑"을 다시 되찾으라는 뜻이다(계시록 2:1~7).

• 7절 :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백성이 진정으로 회개만 하면 바벨론에 잡혀가 죽지 않고, 조상이 축복으로 받은 이 땅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는 약속이다. 종말의 기독교회 역시 우상을 받아들이는 협상적 노선(W.C.C., 로마가톨릭)에서 돌이켜 참된 길(새 일)로 나아가면(예레미야 31:21~22)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이 땅(가나안=천년왕국)에 영원 무궁히 거하게 되리라는 예언인 것이다.  

2. 범죄하면서도 구원을 기대함 : 8~16

『 8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

• 8절 : "무익한 거짓말"이란 틀에 박힌 기도문과 성전 봉사 의식(儀式)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말이다. 헛된 예배 노선을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무익한 거짓말이다(이사야 29:13~16).

• 9절: 십계명을 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 10절 :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란 성전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우상에게 사로잡힌 생활을 청산치 못하고 성전에 들어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함은 실로 가증한 일이다.

『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도적의 굴혈" 저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말씀을 도적질하고(예레미야 23:30) 저희의 범죄를 계속하면서도 위로 받는 방편(方便)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도용(盜用)하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신본주의(神本主義)로 나아가지 않고 인본주의(人本主義)로 치우치는 자들은 모두 다 기독교 성전 안의 도적떼들이다.

『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

"실로"는 법궤가 있던 곳이다(여호수아 18:1~. 사사기 21:19. 사무엘상 1:3). 그러나 엘리 아들의 부패와 잘못으로 법궤는 블레셋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사무엘상 4장). "실로에 대해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하심은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주시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솔로몬 성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피로 산 은혜 교회도 심판의 다림줄(예언의 말씀)이 없으면 실로와 같이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

"그 모든 일"이란 8~10절까지 기록된 저들의 모든 악행을 가리킨다. 불회개(不悔改)의 결과는 징벌 받는 것 밖에 없다.

『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 14절 : "실로에 행함같이" 모리아산에 세워진 솔로몬 성전은 B.C.606년의 1차 환난, 598년의 2차 환난, 587년의 3차 환난을 당하므로 실로보다 비참한 심판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 15절 : "에브라임 온 자손"은 북 이스라엘 10지파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므나헴 왕 때(B.C.771) 앗수르 왕 불에게 1차 환난(열왕기하 15:17~22)을 당하여 잡혀갔고, 베가 왕 때(B.C.740) 디글랏 빌레셀에게 2차 환난(왕하 15:27~29)을 당하여 잡혀갔으며, 마지막으로 호세아 왕 때(B.C.721) 살만에셀에게 3차 포로가 되어 잡혀가므로(열왕기하 17:1~9) 북조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망하였다.

『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

이렇게 말씀하심은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듣지 않으므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징계뿐이라는 것이다.

"간구하지 말라" 기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진리, 특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곧 기록된 말씀 안에서 행해질 때만 상달되는 것이다(11:14, 14:11~12 참조)

3. 무효의 기도 : 17~20

『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이란 예루살렘 백성이 기탄없이 하나님께 공공연하게 행하는 범죄들을 말한다. 시편 119: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유대인들은 가족 구성원 전부가 우상숭배에 총동원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은 <은혜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단 2장을 보면 우상의 발이 철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발가락 시대인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시대적인 우상에 연합하여 땅의 것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정치는 거짓된 '평화공존'에, 종교는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력에 의해 완전히 놀아나고 있는 현실이 그 증거이다.

• 18절 : "하늘 황후"는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온 종파신(宗波神)인데, 그 때 사람들은 그 여신이 자연계의 생식력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였다(열왕기하 21:5). 지금도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 근접한 위치에 놓고, 애써 이를 부인하며 실제적으로는 신도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행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마리아를 모든 은총의 보고(보물창고)라고 믿고 있으며, 마리아 신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은혜, 온전한 구원으로 다가갈 수 없다고 가르치며 믿게 만든다. 다음 23가지 문장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1』(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작, 하 안또니오 신부 옮김. 푸른군대 한국본부 펴냄) 에 담겨진 내용들을 발췌 나열한 것이다. 글의 번호는 편집자가 임의로 메긴 것이나, 각 문장은 위 책 본문과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고 같은 것임을 밝혀둔다.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하늘 황후"를 섬기는 사상이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념하며 이들의 주장을 잘 들어보시라!

✦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1권> 내용 고발

1.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으니 역시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신다."

2. "마리아는 천주 성심의 지성소이며 안식처이므로,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는 것이 우주의 어느 훌륭한 곳이나, 케루빔(그룹) 대천사가 시중을 드는 그의 어좌에 있는 것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지극히 마음이 깨끗한 인간일지라도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은총이 필요하다."

3. "마리아는 새로운 아담(예수)의 지상낙원으로서, 그 속에서 성신의 권능으로 예수께서 사람이 되시고, 신비의 기적이 일어났다. 마리아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무한한 보화로 가득한 하느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세계이므로 그 곳(마리아) 안에는 천주의 자비가 흐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품 속에 품듯이 독생 성자 예수를 마리아의 품 속에 품게 하시고, 예수와 더불어 존귀한 모든 것을 또한 같이 지니게 하셨다."

4. "마리아의 공덕이 하느님의 어좌에까지 다달았으므로 감히 쳐다볼 수도 없고, 마리아의 사랑은 이 세상보다 더 넓으므로 가히 측량할 수 없으며, 마리아의 능력은 하느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므로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으며, 마리아의 겸손과 성덕과 은총의 깊이는 너무 깊어서 상상할 수도 없다."

5. "전 세계가 특히 그리스도 신자들의 나라가 마리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많은 나라와 지방, 교구와 도시를 보호하는 주보가 되었으며, 마리아의 이름으로 축성된 대성당도 수없이 많고, 거의가 마리아에게 바쳐진 제대가 있는 성당이고, 여러 가지 죄악을 모면하고, 또 여러 가지 축복을 받는다는 기적의 성모상이나 상본을 모시지 않는 나라가 없을 만큼 마리아의 이름은 널리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지옥에 있는 마귀들조차 마리아를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있지 않는가!"

6. "그러나 지금까지도 마리아가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 마음에 차 있는 기쁨의 영감에서 지금까지 모든 것을 써 왔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려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이 세상에 보내고 그분에게 다시 영광을 돌려보낸 성모 마리아가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마리아의 왕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무서운 것이 마리아론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공경하는 차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천주교의 교리에서 마리아는 재림론과 새 시대 건설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는 44장 "하늘 여신"에서 더 상세히 다루었다.

7. "천주 성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 태중에 잉태케 하였으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최고위(最高位)의 사신(使臣)을 보내어 마리아의 승낙을 받으셨던 것이다."

8. "천주 성부께서는 모든 물을 한 곳에 모으시어 바다라고 부르신 것처럼 모든 은총을 한 곳에 모으시어 마리아(St. Antoninus, Summa. p.Ⅳ  Tit. 15, cap. 4, no. 5.)라 일컬으셨다. 위대하신 천주께서는 빛나고 아름답고 귀중한 모든 것과 심지어는 당신의 독생 성자까지도 한 곳에 담고 계시는 풍성한 보고(Idiota, In contemplation  B.M.V.)를 가지고 계시니 이것이 바로 마리아이시다."

9. "천주께서는 생활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얻은 무한한 공로와 놀라운 성덕을 모두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넘겨주셨으며, 또 성부로부터 받은 모든 유산을 마리아께서 관리하고 분배토록 맡기셨으며,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의 공로와 성덕과 은총을 당신의 지체인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해주신다. 예수께서 잔잔하고 풍성한 당신 자비의 물을 흘러 내려보내주는 수로(水路)이며 신비 가득찬 운하(運河)가 바로 마리아이시다."

10. "천상의 선물로서 마리아의 손을 거치지 아니하고 지상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11. "은총이 자연의 완성이며 하늘의 영광이 은총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것과 다름없이 하늘에서도 마리아의 아들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든 어머니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훌륭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모든 아들 가운데서 완전한 아들로서의 존경과 복종을 하늘에서도 계속하고 계실 것이다."

12.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자이다."

13. "마리아는 영혼들 안에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신다."

14. "마리아는 성인들을 만드신다."

15. "그리스도의 왕국은 마리아를 통하여 온다."

16. "우리는 마리아의 종이다... (중략)... 하느님의 권력과 특권이, 은총에 의해 하느님의 권위 다음으로 마리아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느님 같은 뜻과 하느님 같은 권력에 참여하심으로 또한 그같은 부하들과 노예들을 가지고 계시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둘 중 한 분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은 바로 다른 분에게도 봉헌하게 된다는 것이다."

17. "우리는 중재자 예수께 이르기 위해서 다시 한 중재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직접 나설 만큼 충분히 결백한 것일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성부의 노를 푸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보속하기 위하여 구원자가 되고 중재자가 되셨다 해서, 그분의 위엄과 거룩함에 알맞지 않는 존경을 해서 되겠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위대하심과 우리 자신의 비천함을 비교해 볼 때, 우리 죄인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기에 두려우면,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의탁하고 그의 도움과 전달하심을 부탁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에는 꼼짝 못하신다..... 하느님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세 계단이 있다. 그 첫 계단은 우리에게 제일 가깝고 우리의 능력에 제일 알맞는 마리아이시다. 둘째 계단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셋째 계단은 천주 성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기도의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거쳐야 하고, 영원한 천주 성부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구원의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해야 한다."

18. "우리가 우리의 모든 선행을 성모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하느님께 바치면, 마리아는 그것을 정화시켜 주시고 꾸미셔서 당신의 아들에게 의합하게 하신다. 우리의 모든 선행과 공덕이 정결되고 축복된 마리아의 손 안에 들면 우리가 바친 공로의 불완전한 것과 불결한 것을 모두 깨끗이 씻기어 버린다. 마리아의 손은 결백하고 또한 항상 부지런하셔서 마리아가 접촉하는 것은 즉시 깨끗하게 된다."

19. "마리아가 있는 그곳에는 악마가 없다. 성령과 더불어 교회가 선언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이단을 물리치는 이는 다만 마리아뿐이시다."

20. "마리아 신심은 우리의 선행을 꾸준히 계속하게 한다. 죄인들이 회개한 후 쉽게 번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자칫하면 다시 죄를 범하게 되는가? ..... 사람들은 이미 죄에 물들었고 미약하여 의지가 굳세지 못한 반면에 자기 자신의 힘만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없는 것을 자력으로 하려 하고, 은총의 보화와 성덕과 공로의 보화까지도 자신의 힘으로 간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신심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바 모든 것을 신뢰하올 동정녀 마리아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만이 우리의 자연적 및 초자연적 모든 재산을 위한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마리아를 신뢰하고 마리아의 힘에 의지하고 마리아의 자비와 모성애에 우리 자신을 바치면 마리아는 우리의 성덕과 공로를 확보하고,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를 따르는 착한 아이처럼, 또 주인을 따르는 충실한 종처럼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대가 맡은 것을 잘 간수하십시오(디모데전서 6:20), 나의 사랑하올 모후 마리아여! 나는 오늘까지 당신의 전구하심으로서 내가 봉사하는 이상으로 많은 하느님의 은총을 얻었나이다. 나는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았고 이 보화를 극히 파손되기 쉬운 그릇에 담았으니, 그것을 보관하기에는 너무나 내 자신이 가련함을 절감하나이다. 나 비록 어리고 멸시당하나(시119:41) 원컨대 나의 가진 모든 것을 받아 들이시어 그것을 당신의 성실하심과 당신의 힘으로 보호해 주소서. 당신이 나를 붙들어 도우시면 나는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고, 당신이 나를 보호하시면 나는 결단코 나의 원수에게 지지 않겠나이다.""

21. "일찍이 선조들과, 예언자들, 사도들 및 모든 성인 성녀들의 신앙보다 더욱 컸던 마리아의 신앙을 성모 마리아는 너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제 마리아는 하늘 나라에서 통치하시기에 그러한 신앙은 필요없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이제 영광의 빛에 의해서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명백히 직접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이 위대한 신앙은.... 예수 스리스도의 모든 신비와 인간의 최고 목적 및 천주의 마음 속까지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열쇠와 같은 민첩하고 예민한 신앙이며, 또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큰 일이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시작하여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용감무쌍한 신앙이며, 그녀는 너의 찬란한 횃불이며, 너의 신비로운 생명이며, 지혜의 기묘한 보화이며, 또 전능한 무기가 되는 신앙인 것이다. 죄에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너는 이 신앙으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황금같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냉담한 사람들을 태울 것이다. 너는 관대하고 힘찬 말을 통해서 바위와 같이 굳은 마음을 움직이고, 레바논의 삼목을 뒤흔들며, 끝내는 구원의 원수와 악마들을 물리칠 것이다."

22. "끝으로 네가 마리아를 생각하기만 하면 마리아는 너를 위해서 하느님을 생각하고, 네가 마리아를 찬미하고 공경하기만 하면, 마리아는 너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것이다."

23.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마리아와 더불어, 모든 것을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 안에서 살게 되는 은혜로,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해서 해야 한다..... 충실된 종이며 어진 하인으로서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이 숭고한 여주인을 위해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모 마리아의 특권이 어떤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을 때에는 어떠한 공박에도 항변하며 그 특권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가 마리아에 대한 이 모든 봉사의 값으로 마리아에게 바라는 것은 사랑하올 여주인 마리아의 종이 된 영광과 현세와 영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굳게 결합되어 있는 행복 이외에 아무 것도 있어서는 아니된다.

마리아 안에서 예수께 영광이여!
예수 안에서 마리아에게 영광이여!
오직 하느님께 영광이로소이다!

여러분들은 사단의 교묘한 논리를 잘 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듯하면서 하늘 황후 마리아에게로 모든 영광과 지혜와 존귀와 보배를 수렴시키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하늘 황후" 우상숭배 사상은 이 시대에도 예수를 믿는다는 가톨릭 교회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마귀의 간교한 언어혼란 전술과, 예수를 인정하는 듯하면서 예수께 범죄하게 하는 이 고도의 책략 책동은 무서운 누룩이다! 우리는 예언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시대의 영적, 사상적, 정치적 혼잡(바벨)을 분별해 낼 도리도 없고 이겨낼 힘도 없다. 예레미야에게 죽일 듯 덤벼들던 유대인들 속에 역사한 마귀의 영이 오늘날도 살아 역사하는데, 바로『레지오 마리애 운동』(마리아를 사령관으로 받드는 기도부대)과 『다락방운동』(마리아 사제운동을 이끄는 '곱비' 신부가 주관)을 통하여 감취어진 듯, 그러나 무섭게 역사하고 있다(이 2가지 운동에 대하여는 44장을 참조하라).

예언서란 시대를 초월하는 얼마나 섬세하고 무서우며 놀라운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신 말씀(이사야 46:10)임이 확실하다. 우리는 가톨릭의 우상숭배 모습을 통해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며 속임수의 천재임을 알 수 있다(요한복음 8:44). 가톨릭은 자신들의 마리아 숭배가 우상숭배인 것을 인지하는 일말(一抹)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십계명 중 제2계명을 삭제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서에는 2계명이 그대로 들어 있는데, 어찌하여 인터넷과 각종 출판물 및 조각물에서는 제2계명을 삭제하는 것인지 그 어리석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의 변명인즉 이러하다. 제2계명은 제1계명과 의미상 중복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하나님이 그 정도도 구분 못하시고 모세에게 친히 새겨 주셨을까? 가톨릭은 하나님을 가르치려 드는가? 십계명은 인간이 받아적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새겨 주신 것임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출애굽기 24:12). 가톨릭 교회에서 발간되는 모든 '기도서'나 '판촉물', '십계명 액자' 등을 확인해 보라! 제2계명이 삭제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10계명이 인쇄되어 있다.

- 가톨릭 십계명 -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4.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5. 사람을 죽이지 마라.
6. 간음하지 마라.
7. 도둑질을 하지 마라.
8.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위 내용은 다음의 가톨릭 사이트의 주요기도문 7번째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계명을 삭제하였는데도 9계명이 아니라 10개의 계명이 되는 것은 왜일까? 위장하기 위하여 10번째 계명을 다시 2개로 쪼개어 놓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마귀는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모양이다. 말씀가감! 그것은 마귀의 주특기이자 지상사명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은 저들은 자신들이 보는 가톨릭 공동번역 성서에서 제2계명을 확인할 수 없는가 하는 점이다. (공동번역) 출애굽기 20:3~5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명백한 성경 본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2계명이 삭제된 십계명으로 모든 책자와 인터넷에 출판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그들의 양심과 눈이 사단에게 정복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우상숭배자의 눈은 자기 죄로 인해 가리워져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된다. 성경을 잘 읽지 않는 그들은 자신들이 외우고 있는 십계명이 자신들이 보는 성경과 다르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교회의 어르신들이 결정한 것(주교회의를 말함)'에 순종해야 한다며 오히려 지적자를 타이르곤 한다. 기록된 말씀을 이렇게도 거뜬히 무시하는 그들이 교황권으로부터 내려오는 피라미드식 권력구조에는 얼마나 벌벌 떨며 순종적인지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예레마야 5:30~31).

이제 예레미야 7장의 예언이 이 시대에 다시 예언될 때가 왔다. 이에 외치는 자의 마음은 예레미야처럼 애타는 심정이 될 것이고, 듣는 자들(약 9억의 가톨릭 신자)의 마음은 유대인처럼 강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풀 속에 사자같이 강한 그 세력! 당할 자가 전혀 없는 자유로운 권세자들! 곧 144,000명이 일어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 그들을 도우실 것이다.

종말의 순종자들이 이 '하늘 황후'의 실체를 다시 예언함으로써 미혹된 무리 중 많은 이들이 살아나올 것이다. 택함받은 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살아나올 것은 택자가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숨어 있든 하나님은 '알곡의 마지막 한 알갱이'까지라도(아모스 9:9)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저 가톨릭의 무리에는 주님이 예정한 자가 많이 섞여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목숨바쳐 외쳐야만 그들이 회개하고 나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의 마지막 종들은 겸손히 모든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주님이 도구로 써 주실 그날까지 무장하며 기다리자. 만대는 이미 명정되었고(이사야 41:4, 65:6. 마태복음 26:24,31) 모든 일은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주권하에 진행 중에 있다(이사야 43:13). 승리는 만유의 대주재시요(미가서 4:13. 사도행전 4:24. 계시록 6:10), 만사의 경영자시요(이사야 14:24,27, 46:11), 만왕의 왕이신(다니엘 8:25. 디모데전서 6:15. 계시록 17:14, 19: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으니 군사된 자의 믿음으로 우리의 대장 예수님만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자! 아멘!

『 1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그들의 범죄가 하나님께 손해를 끼치기 보다는 자기 자신들에게 "수욕"을 가져오는 행위가 될 뿐임을 말씀하시므로 그들의 범죄가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신다.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라는 말씀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유다 땅에 미칠 전쟁의 피해를 가리킨다.

4. 복 받는 길 : 21~23

『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

• 21절 : "너희 희생의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하신 말씀은 "너희의 희생제물에 번제물들을 합하여 그 고기를 먹으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모든 제물들 가운데 있는 고기를 저희가 다 먹어 버려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제물을 신앙으로 드리지 않고 외식으로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저희 자신의 육체적 사욕을 위한 것이니 이미 속화(俗化)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22절 : 하나님은 번제나 희생을 요구치 아니하신다. 시편 40:6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하나님은 시편 50:8~14절의 내용같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하셨다.

• 23절 :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이와 같은 관계는 모든 신자의 목적하는 바이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이 관계가 바로 영생인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 되시기 때문이다(이사야 12:2).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함과 그가 명한 모든 길로 행함은 그를 믿고 순종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순종한다 함은 결코 생명없고 기쁨도 없는 규칙따위에 순종하는 수준의 율법주의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사 성령을 부어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축복받는 길이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행하실 일은 새 일이니(이사야 42:9, 43:19, 48:6. 예레미야 31:22) 이 교훈을 도적맞지 않고 전 세계의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하는 자가 큰 복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계시록 10:7~11, 11:1~12).

5. 화 받는 길 : 24~28

『 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의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

이 부분은 모세 때 시내 광야에서의 불순종을 들어 선지 시대의 불순종을 경고하고 있다. 광야에서 60만 명이 죽은 일을 기억하고 화를 받지 말라 예언하심인데, 과거 광야의 범죄보다도 현재의 범죄가 더욱 크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

여기서부터는 유다 민족(民族)이 순종할 소망이 전혀 없음을 내다보시며 말씀하신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유다를 불순종의 국민으로 판정하셨다. 그들에게 진실이 없어졌다 하셨는데, 진실이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리킨다. 종말에도 세계교회 중에 진실한 자는 144,000명뿐이요 그 외에는 협상노선에서 쑥물을 먹고 육체가 죽어야만 하는 게 법이다(흰옷 입은 무리는 진실함을 인정받은 인 맞은 종들이 아니고 새 시대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택하여 정결케 하신 다수의 무리들이다. 계시록 7:9~17. 이사야 4:4~6 ).

6. 유대교회에 임할 재앙과 통곡성 : 29~34

『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니라 3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

• 29절 :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나실인은 머리털을 기르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된 자임을 표했었는데, 만일 더럽힘을 당하면 머리털을 밀어 버렸다(민수기 6:9~12). 고로 "머리털을 베어 버리라" 함은 거룩히 구별된 예루살렘이 하나님 앞에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종말의 음녀화된 교회가 더 이상 소망이 없어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예표된 '아마겟돈 전쟁'에서 전멸당할 것을 암시한다. 구약 때는 일시적 멸망 뒤에 회개와 회복이 뒤따랐지만, 인류 종말의 심판은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여지나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최종적인 심판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편한 때 회개하지 않으면 '후 3년 반'으로 들어가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 30절 :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집" 곧 성전에 가증한 우상을 두며(열왕기하 21:4~7),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사른" 큰 죄악을 말한다. 이것은 이방신을 위하여 '도벳'이란 곳에 제단을 쌓고 아이를 제물로 드리던 극악한 풍속을 말한다(열왕기하 16:3, 23:10. 예레미야 19:5, 32:35. 에스겔 16:20~21). 모압 왕도 전세가 불리해질 때 자기 아들을 번제로 바친 일이 있다(열왕기하 3:27). 신약에 이러한 기사가 없는 것은 로마가 이런 제사를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 때에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자녀를 우상 앞에 불살라 바치는 악습이 비일비재 하였다. 이방은 그러해도 참 신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 3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

이 부분에서는 유대민족(교회)이 당할 전쟁의 화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들이 복을 받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던 장소는 결국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큰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며, 그 나라에 기쁨과 경사(慶事)스러운 일이 아주 끊어지게 되어 황폐케 되리라는 경고이다.

종말에도 이와 같다. 이 시대의 교인들도 세계평화공존 정책과 종교 간의 협상이 축복받는 길인 줄로 알고 따라가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죄로 인해 환난이 올 때 그들은 재앙을 피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1,260일 다시 예언할 때 불순종했던 성도들의 통곡성이 42달 동안 천지에 사무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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