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전 설교] 이사야 06장 : 하나님의 종 이사야의 일 2019/03/31 Lord's day(Sunday) Morning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이사야 6:1~13
제목:하나님의 종 이사야의 일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왕국 건설에서는 쓰임 받는 종들의 인격이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연단(鍊鍛)이 필요하다. 율법의 대표자 모세도 40년간 미디안에서 그러했듯이, 말세 종들도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해서는 3대 무장(사랑무장, 말씀무장, 능력무장)이 필요하다. 사단과 싸우는 연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또 시련의 역사가 없고서는 말세 종이 될 수 없다. 종말의 역사는 구약의 역사보다 7배나 강하다(이사야 43:18, 30:26). 다니엘 3장을 보니 하나님은 7배 강한 역사를 위해 7배나 뜨거운 풀무불을 예비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세상일에 꼭 붙잡힌 자가 너무나 많다. 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자기의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2,700년 전에 이사야가 한 일은 ' 큰 구원'에 관한 일이니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사야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북방환난을 외쳤으니 종말의 본보기이다. 이사야 20:3~을 보니 3년간 “벗은 몸”, “벗은 발”로 수치를 당했다. 우리에게도 전 3년은 수치를 당하는 기간이다. 이사야 때에도 연대 때문에 수치를 당하였다면, 종말도 다시 예언이니 당연히 수치를 당하게 된다(이사야 7:9∼ 유다는 65년 내에 회복. 스가랴 1:12 유다의 70년 회복의 축복).
1. 하나님 앞에서 떨게 됨:1~5
『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이사야가 보좌 세계를 보고도 떨지 않는다면 참 종이 될 수 없다. 모든 예언서는 보좌에서 온 것인데, 어느 말씀을 보든지 떠는 자만이 사명자요, 떨지 않고 오히려 남을 간섭하는 일에 열심인 자는 시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사야처럼 직접 보좌를 보지 않아도 성경의 아버지 말씀이 꿀같이 달면 정통적인 노선인 것이다. 영계의 보좌를 보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은 아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자국을 봐야만 믿겠다 하였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셨다(요한복음 20:24∼29).
언제나 말씀에 떠는 자만이 정통 신앙인이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주님의 변화를 보았던 수제자였다. 그러고도 훗날 부인한걸 보면,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란 결론이 나온다! 오직 기록된 말씀대로 따르는 것만이 제자된 자세이다. 그러니 이를 경험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베드로후서 1:16~19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豫言)이 있어 어두운 데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라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私私)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 임이니라” 베드로도 변화산이 문제가 아니고 예언의 등불이 문제라고 했다.
종말에도 이사야 66:1∼6절에 기록된 것처럼 말씀에 떨지 않고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말씀에 떨지 않는 교회는 대적이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말씀에 떠는 사람은 주님께서 권고하신다 하였고, 구로하는 즉시에 자민을 순산하게 되어 나라가 하루에, 민족이 순식간에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아담도 말씀에 떨지 않다가 선악과를 먹었다면, 지금도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떨지 않는 자는 그대로 아담의 운명처럼 된다. 시대가 다를 뿐 창세기의 전쟁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니 살 길은 예언의 말씀뿐이란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서 믿으려고 하지 말고, 이미 완전 계시로 기록된 말씀만 믿자! 그래야 사단을 이길 수 있다. 오늘 이 제단이 많은 미혹을 이긴 것도 오로지 말씀만을 의지한 연고이다. 마태복음 4:4~ 예수님과 사단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은 다른 능력을 행치 않으셨다. 오직 “기록되었으되” 이 한 마디로 승리하셨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4:6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으니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 많은 미혹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마귀를 이기는 무기는 보좌에서 주신 예언서뿐이다. 마귀에게 끌려 다니는 자가 있다면 그 원인은 하나! 말씀에 떨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사단이 최후 발악하여 미혹이 기세를 부리는 이 종말에 머릿돌, 다림줄 말씀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으니 9·24 제단은 승리의 제단이다. 인간의 힘과 능(能)이 낄 자리가 없다. 오직 여호와의 신(神)으로 되는 역사이다(학개서 2:10∼23, 스가랴 4:1∼11)
2. 깨끗함을 받음:6~7
『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火箸)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과 더불어 인격이 장성되어야만 역사할 수 있다. 수 십 년간 말씀을 읽고 들으며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입에서 그 먹은 말씀이 나오지 않고 엉뚱한 말이 나온다면 입이 깨끗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되 시대적으로 나와야 타인을 살릴 수 있다. 도덕도, 군자도, 윤리도, 철학도... 그 어떤 것도 세상을 살릴 수 없으나 지렁이같이 짓밟히는 이사야의 입은 살리고도 남음이 있다. 교만하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유명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비록 못나고 무식하고 바보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떨면서 인간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세운 제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민족과 세계를 살리려는 심정을 가진 자의 확실한 입(사상)이 승리한다.
말라기 2: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12∼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아담 타락 이후로 인간 중에서는 “완전한 입술”이 하나도 없기에.., 이사야 59:16∼ 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이상히 여기시며 여호와께서 친히 역사하시되 동방 사람에게 신을 주심으로 어두운 세계를 밝히게 된다는 것이 이사야 60장의 내용이다. 사람으로서는 아니되니 이 일을 이루려면 하늘에서 친히 권세를 주셔야 하는데,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에 죄악을 하루에 제하는 역사가 바로 하늘에서 행하는 강권역사이니(스가랴 3:9)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래 묵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리라는 말씀도 위(하늘)에서 친히 이루실 것이다(이사야 25:6∼8).
3. 보내심을 받음:8
『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세계적으로 3대 화가 올 때 ‘완전한 인격’이 아니고서는 완전한 역사를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내는 종도 완전하게 개조시켜서 보내게 된다. 9·24 제단은 사람이 주장하는 제단이 아니다. 그때그때 하나님이 역사해 오신 제단이다. 그러니 여기에 나타난 말씀도 완전한 말씀이라야 완전한 역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충 떼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인(印)인 스룹바벨의 역사로 민족과 세계 교회를 살리게 되니(계시록 9:4, 학개서 2:23), 이 때에 우리는 이 시대의 이사야가 되어야 한다. 은혜 시대의 종은 먼저 자기가 중생 받은 후 나가서 타인을 중생시켰고, 종말에는 먼저 권세의 말씀을 받은 자가 선구자적인 권세 종들을 일으켜 초막절이 올 때 홀연히 나타나 양 떼를 살리게 된다. 동방역사란 책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책에 없는 이적은 사단의 역사다.
4. 전도 기간과 열매:9~13
『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세계적인 예언이란 5개월 환난 때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소멸하는 역사인데, 누구든지 권세 종을 해하려 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셨다(계시록 11:3~5). 다림줄의 진리는 버림받을 자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여 염려하셨다. 즉 말씀에 떨지 않는 자들의 눈과 귀를 막으신 것이다(이는 가장 가혹한 심판이다-징계를 하실 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소망이 있단 말이다. 그러나 눈과 귀를 막으실 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뜻이니 가장 무서운 심판인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물었다.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다시 예언』의 사명을 마치는 날까지이다. 5개월 환난의 끝은 3차 전쟁이 일어날 때이니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토지는 전폐하게 된다. 곧 이 땅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라는 것이다. 열매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그루터기같이 숨겨 두셨다. 이사야 10:22, 스바냐 3:12, 로마서 12:2∼12절같이 하나님의 선택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8:7∼8절의 예언대로 유다 집에 북방환난이 10일간 일어날 때엔, 선지 국가 시민으로 합당한 사명자만 남겨 놓고 쭉정이는 모두 청소하신다. 북방은 쭉정이를 청소하는 빗자루! 곧 심판의 몽둥이란 말이다. 계시록 9:1∼12절 예언같이 5개월 황충 떼 환난을 통해 세계적으로 144,000명의 변화성도가 나오게 된다. 계 16장같이 7대접을 쏟을 때는 선(善)만 남고 악(惡)이 제하여지는 때이니, 계시록 20:4∼6절같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리스도와 1차 부활에 참예한 자(순교자, 변화성도)가 더불어 1,000년간 왕 노릇하게 된다.
말씀으로 출발한 기독교는 말씀으로
끝을 맺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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