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9일 목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50219_D_요한계시록02장 말씀


[성회 설교 목 새벽] 요한계시록 2장 : 촛대 교회가 되자 2015/02/19 Thurs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영적 유다나라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의 재림 주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 경 : 계시록 2:1∼29, 3:1∼22
제 목 : 촛대교회가 되자

2~3장은 주님께서 촛대교회 사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하나님의 종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명시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촛대교회가 되지 못한다면 과거의 생활이 무효로 돌아간다.

이사야 16:12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완전한 율법으로부터 죄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완전한 십자가의 공로로써 속죄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주 재림기에 예언의 등불을 밝히지 못한다면 주님을 영접치 못하고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

이사야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란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예언의 등불'은 기독교의 종말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법이다. 불법자는 예수님께로부터 버림받는다 하셨으므로(마태복음 7:23) 예언의 법을 지키는 촛대교회가 못 되면 천년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피로 산 교회가 막판에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이 편지를 보내신 것이다.

1. 에베소 교회에 보내신 편지 : 1~7

『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에베소 교회는 서 아시아의 중심지에 위치한 교회로서 아시아의 모교회가 될만한 교회였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수고와 인내와 철저한 교회관리를 칭찬하셨다.

『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그들에게는 참는 힘과 열심과 부지런함도 있어 큰 교회로서 움직여져 내려 왔지만, 처음 사랑을 버린 점을 책망받게 되었다. 많은 칭찬을 받은 교회라도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가진 장점들로써 단점을 덮어 지나가 보려는 못난 기질이 있는데, 주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장점은 잠잠히 감추라 하신다. 그리고 잘못된 점은 확실히 찾아 깨닫고 주 앞에 고백하여 회개하라 하신다. 그러면 고쳐준다는 것이다.

『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어디서부터 "처음 사랑"이 떠났는지를 신앙의 양심으로 생각하면서 회개하라는 경고이다. 만일 지적받은 이 점을 회개치 않을 때엔 아무리 여러 면에서 잘했다 하여도 주님이 다시 올 때 촛대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회개치 아니한 교회는 '후 3년 반' 동안 짐승 통치에 맡겨져 대환란을 겪게 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로서 "처음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게 된 인간을 불쌍히 보시어 아들 예수께 우리의 죄값(사망)을 대신 지우셨다. 말로 다 형용치 못할 이 십자가의 사랑이 "처음 사랑"의 본질이다. 기독교의 간판을 달고서 이 사랑을 잊는다면 우리는 남을 사랑할 수도, 전도할 수도, 핍박을 무릅쓰고 주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개포도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 종교의 구원을 운운하는 이 혼탁한 에큐메니칼 시대에 우리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간'을 위하여 내어 준 사랑이 아니고 큰 죄를 짓고 죽게 된 인간을 보시고 살려주자는 데서 시작된 불타는 사랑이다. 이것이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남을 살려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없다면 기독교는 이미 변질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이 계명 잊는다면 잘해도 소용 없다. 아무리 잘해 본들 사랑의 촛점! 이거 하나 잘못되면 성령의 역사는 떠나가고 말기 때문이다. 교회 정치 잘하고, 교회 교리 올바르고, 교회 사업 부흥된다고 성신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란 남을 살려보겠다는 불이 심중에 타오를 때만 일어나게 되어 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조금도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만을 감찰하신다. 유형적인 교회가 아무리 외적으로 확장,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조금의 외식이라도 섞여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를 인정치 않으신다. 외식이 있는 곳엔 성령이 숨쉴 수 없다. 우리 기독교의 사랑은 도덕적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이라는 것은 싫어도 꾹 참고 노인을 공경할 때, 음란한 맘이 들어도 꾹 참고 행실을 단정히 할 때 표창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즉 껍데기만 관리하면 인정받는 허술한 체제이다. 하지만 저 사람을 살리겠다고 대신 죽겠다는 사랑에 어떻게 외식이나 껍데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성령이 함께 하시면 이러한 인격이 되며, 그러한 인격자의 발걸음에 성령은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참는 사랑이다. 아무리 시작을 바로 했다 하여도 끝까지 난관을 돌파하고 참는 자세가 없는 사랑이라면 하나님께로서 온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불변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성령은 역사를 안 하신다. 한번 무슨 일을 한다 할 때 그대로 밀고 가는 진실성이 있어야 성령은 기뻐하신다. 한 번 기도하고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성령은 떠나시는 것이다.

위 세 가지 곧 "불타는 사랑", "진실한 사랑", "불변의 사랑" 이것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신은 기독교에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가 되려면 "처음 사랑" 곧 사랑의 본질을 저버리지 않아야만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아무리 도덕이 높고, 교리가 밝고, 정치가 밝다 하더라도 예언서를 완전하게 무장하여 온전한 인격이 되게 해 달라는 불타는 마음이 없다면 이 책을 읽는 이 시간도 성려은 역사하지 않는다.

처음 사랑 잃지 않으려면 예수님만 묵상하면 된다. 아무리 무리가 욕을 하고, 핍박을 하고, 때리고, 침 뱉고, 데려다 못을 박아도 예수님은 불평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이것이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다. 즉 이 사랑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세계 정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수 많은 순교자가 다 이 사랑의 불길 안고서 오지로, 사지로 뛰어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사랑의 불길이 안 붙는다면 무신론 공산당과 싸울 수도 없고, 적 그리스도의 궤휼 정책에 영원한 복음으로 맞서 싸울 수도 없다. 처음 사랑의 불길을 가진 자는 "나를 죽여도 주의 복음을 전한다"는 사상으로 전진하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랑의 본질인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몇 %나 사랑의 불길로 활동하고 있는가? 이 불길이 거의 다 꺼져가고 있다. 환란 날에 역사하는 촛대교회로서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가 있으려면 "처음 사랑"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 시작점은 "내가 처음 사랑을 도둑 맞았습니다" 하는 겸손한 인정과 회개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된 사랑 없이 모이는 단체는 겉으로 아무리 떠들어 대도 그것은 마치 무당들이 북치고 꽹과리 치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구제도 순교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주신 그 사랑이 없이 행할 때엔 자동적으로 외식이 된다는 것이다. 불쌍한 형제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사랑하고 도왔어도, 예수님 이름이 빠진 채 '내 자아'가 행했다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다. 촛대교회를 이룰 성도는 모든 일의 시작에 '예수님의 사랑'이 자리 잡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사랑은 너무도 불완전하다. 인간의 사랑은 대가를 바라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도 대가를 기다리는 맘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이다. 주님의 사랑은 가장 큰 은사이며, 세상 제일의 보배로운 가치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최고의 덕이다. 사랑은 율법을 완성이며(로마서 13:8) 모든 도덕의 기본이며 총괄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9가지 은사는 모두 봉사 사역에 관계하나 사랑만큼은 그 사람의 생명과 생애 전체에 관계된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인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시다. 예수님을 값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가장 큰 그 사랑말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무신론 공산장막을 지원하거나 이방종교인들과 서로 관용하며 평화를 유지해 보자는 인정적인 사랑의 실천이 아니다. 사랑할 자는 사랑하고 미워할 자는 미워하는 공의의 사랑(고린도전서 13:6)을 실천해야 한다. 미워할 자를 사랑해도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되고 사랑할 자를 미워해도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피로 산 교회가 마땅히 미워할 것은 니골라당의 행위이다.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은 것은 이것이다.

니골라는 본시 안디옥 사람인데 유대교에 들어갔다가 후에 예수를 믿고 예루살렘 교회에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사도행전 6:5). 이 당은 한 번 믿은 후에는 어떠한 행동이라도 범죄됨이 없다고 주장하는 당이다. 이유는 “모든 죄는 믿을 때부터 용서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도 복음 교회(평신도 복음회)에서 이 주장을 한다. 현 “구원파”의 교리와 같음.

은혜받은 교회는 마귀의 미혹을 이겨야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된다. 천년 왕국에는 은혜 받은 자들 중에 마지막 마귀의 미혹인 666을 이긴 자들만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계시이다.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인정(인본주의=거짓사랑)적으로 하는 사랑은 음녀적인 사랑이다. 마귀는 인정적으로 여러 사정에 얽매이도록 하여 말씀을 범하게 한다. 말씀을 떠나도록 미혹시키는 이것이 마귀의 간계이다(계시록 17장)

2. 서머나 교회 : 8~11

『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촛대교회가 되려면 먼저 시련이 있어야 한다. 고난은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구약 때에 역사하던 종들도 겉으로는 쫓겨나고 짓밟히고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앙망케 함으로써 결국은 원수를 크게 이기게 하셨다(다윗, 요셉).

새 언약으로 세운 서머나 교회에 환란과 궁핍이 많은 것은 크게 연단을 시켜서 북방환 10일간 올 때에 예언의 빛을 밝히는 촛대교회로 쓰실 목적이시다.

“자칭 유대인”이라는 외식자들에게 훼방을 받으면서도 주님이 주시는 계시록을 끝까지 지켜서 3대 화를 피하도록 역사하는 교회가 복 있는 교회이다. 교회는 돈이 많다고 축복이 아니요 사람이 많다고 승리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종말의 교회는 예수님의 계시를 지켜서 실상으로 말씀의 부자가 되어야 촛대교회가 된다. 촛대교회가 되는 것이 축복이요 승리이다.
은혜 받은 교회들이 종말에 물질과 마귀 미혹에 취하여 거짓 사상과 타협하면서 멸공진리를 증거하는 여호와 새 일(신앙문답 5, 신앙문답 75)을 이단시하니 이들이 곧 과거에 예수님을 반대하던 유대인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이들은 이 시대의 유대인이다.

북방 앗수르 환란이 올 때에 다락방에서 부르짖으므로 하룻밤에 공산당이 185,000명이 시체가 된다는 것이다(이사야 37:36).

이렇게 크게 역사할 교회가 자칭 유대인들에게 억울한 훼방을 받고 있으니 이것은 사단의 회인 교권에게 압박을 받아 표면적으로 큰 활동은 못하고 있으나 주께서 보실 때에 영적 방면으로는 큰 부자라는 것이다.

이제는 마지막 환란이니 죽기까지 싸우면 생명의 면류관이요 협상하면 황충이 떼에게 밥이 된다(계시록 9:1~11).

유월절, 오순절로 세워진 서머나 교회가 마지막으로 축복 받는 초막절기를 지키므로 영육이 완전한 구원을 받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3대 절기). 초막절은 레위기 23:34~44절에 보면 7월 15일이라 하셨다. 세계적으로는 3차 대전이요, 종교적으로는 첫 번째 화 (말세비밀의 원리 中)로 북방 앗수르(소련)가 내려오는 환란이다(계시록 8:13, 9:1~12, 11:1~12).

북방 환란이 유다(한국)의 목에까지 찰 때에 임마누엘 역사로 소련(태산)이 평지가 된다(이사야 8:7~, 스가랴 4:7~).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죽이듯이 동방 머릿돌로 북방을 멸하고 승리한다(사무엘상 17:49).

실상으로 부요한 자는 누구일까? 에서가 부요한 것 같으나 실상은 야곱이 부요한 자이다 (육안으로 볼 때에는 사울 왕이 부요한 것 같으나 실상은 다윗이 부요한 자이다). 바리새 교인이 부요한 것 같으나 실상은 갈릴리 어부들이 부요한 자이다.

오늘 날에도 크나큰 협상주의 교회(W.C.C, K.N.C.C=정통파)가 겉으로 부요한 것 같으나, 예언서를 밝힌 새 일의 순의 제단(애굽 땅 중앙교회)에 비교치 못한다. 이 세대, 즉 21세기에 주님이 보실 때 실상 부요한 자가 누구일까...? 이번에 북방(무신론 사상-간교하게 교회 안에 파고들어 세계 교회를 잠식해 가는 주체)을 이기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게 된다. 영적으로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들은 들어(깨달아) 복을 받자!

3. 버가모 교회 : 12~17

『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은혜 시대 교회가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 할지라도 종말에 불의의 삯을 용납한 발람의 교훈이 있다면 책망을 받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이란 거룩한 믿음이니 조금이라도 인정, 사정에 끌려서 불의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예수님께 대하여 음녀적인 행위가 된다. 교회란 말씀의 교훈을 중심한 것이니 조금이라도 말씀 사상에서 탈선된다면 주님의 대적이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 우편 강도는 믿는 즉시에 영혼이 구원을 얻었지만, 환란 날 주 재림 때에는 마태복음 25:1~13절 내용같이 기름 준비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환란에 빠진다. 환란 때는 영혼 구원이 아니요 육체 구원이란 것이다. 노아 때에도 육체 구원의 문제가 아니었는가!(마태복음 24:37).

기름이 없어 흑암을 밝히지 못해 망한 다섯 처녀는 스가랴 4장의 순금등대 교회가 되지 못하여 환란에 빠진 교회이다. 이 교훈을 잘 새기자!

주님의 재림이란 기록된 말씀대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심판 주 앞에서 사랑을 논하며 응석부릴 때가 아니다. 오직 말씀의 법에 순종하는 촛대교회가 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발람과 니골라당의 미혹을 이겨서 감추었던 만나가 되는 진리 말씀을 먹고 흰 돌과 같은 왕권의 새 이름으로 영원한 축복을 받으라는 것이다.


발람의 교훈이란?...

발람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모압 왕 발락에게 매수된 거짓 선지이다. 물질만 준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더러운 자다. 발락은 마귀의 앞잡이로서 모세를 저주한 자인데, 그에게 동참을 했으니 그 결국은 모세의 칼에 죽는 길뿐이었다(민수기 31:8).

바로 진리를 대적하는 공산당 무리들이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있는 곳인데 새 시대의 상징이다. 주 재림 때 새 시대 들어가는 진리의 단체를 저주하는 공산당의 미혹에 빠져서 그들의 궤휼에 속아 동참죄를 짓는 종교 협상주의자들이 바로 이 시대에 발람이 되는 것이다. 계시록에 왜 지나간 역사인 발람의 교훈이 등장하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라!

계시록 1:1~ 이쯤이면 독자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의 의미를 아실 터이다. 계시록은 헛된 꿈이 아니다! 또 너무 어려워 만져서는 안 되는 무서운 책도 절대 아니다! 혼란한 이 시대에 마귀의 흑암을 뚫고 새 시대에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사랑 깊은 충고일 뿐이다. 이 비밀의 말씀을 받아 이 시대에 전하는 것이 바로 스룹바벨 촛대교회의 머릿돌·동방역사 사명인 것이다.


◈ 그렇다면 오늘날로 볼 때 모압 왕 발락은 누구이겠는가?...

발람의 교훈은 공산당 궤휼과 종교 협상주의가 등장할 것을 보여주는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한 말씀이신가! 여호와의 새 일은 이단시하면서 종교, 정치, 평화공존의 미혹을 받아 예언서에 없는 탈선의 길을 가고 있는 교권의 행로가 바로 오늘날의 발람의 길인 것이다!

하나님은 강한 이방을 심판하신 후 새 시대를 주시려는데(이사야 2:4) 예수의 종된 자들이 강한 이방 공산주의가 겁이 나서 인위적인 거짓 평화공존에 속아 살고 있으니, 우리는 계시록을 들고 싸워야 한다(이사야 2:1~4, 미가서 4:2~).

"모압(오늘날의 공산당 사상)이 폐망할 예언"이 이사야 15장~16장, 예레미야 48:, 에스겔 25:8~에 예언되어 있다. 공산당은 성경대로 멸망하고 이스라엘은 성경대로 승리한다. 사도들을 대적하는 니골라당은 심판의 대상이다. 예수님께서 니골라당을 미워하시니 마땅히 우리도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는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13:6). 이 시대의 기독교는 이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4. 두아디라 교회 : 18~29

『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鐵杖)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피로 산 교회가 이세벨의 교훈을 용납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이세벨은 누구이며 21세기 현실에서 “이세벨”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먼저 구약의 이세벨을 보자!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처인데 두로 왕 엣바알의 딸이다(열왕기상 16:31).
이세벨은 이스라엘 종교적 지도권을 장악할 뿐 아니라 정권도 농락하였으니 곧 종교적으로는 바알과 아세라를 대대적으로 선전한 결과 850명의 거짓 선지를 길러냈다.

저가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하였고(열왕기상 18:4), 죄 없는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게 한 것은 놀랄만한 간악이며 잔인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열왕기상 21:14). 그 보응으로 자기의 식탁에서 먹는 850명의 선지는 엘리야 앞에서 죽었고, 자신은 예후의 손에 처참히 죽어 개의 밥이 되었다(열왕기상 19:1~, 열왕기하 9:30~37).


오늘날의 이세벨은 엘리야와 같은
말세 종들을 대적하는
간악한 협상주의자들이다.


구약에서도 거짓 선지들이 들림받을 엘리야를 대적했듯이, 재림 때에도 여호와의 새 일을 전하는 순의 제단(구름 타고 다시 오실 재림주를 소개하는 말세 엘리야 사명)의 역사를 반대하며 영적 간음(종교통합, 협상, 금잔)으로 치닫는 자들이 이세벨 사상에 떨어진 자들이다. 아무리 부흥이 크게 된 교회라도 이세벨 사상을 받아들이면 큰 환란이 올 때에 교회나 가정 전체가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나 반대로 이세벨과 싸워서 우상을 이기고 협상주의를 이기는 자는 철장권세를 주시어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은 권세로 만국을 치게 하신다.

권세에는 믿는 자가 받는 자녀권세가 있고(요한복음 1:11), 예언을 지켜서 받는 철장권세(계시록 2:26)가 있으니 누구든지 이 권세를 받아야 들림을 받게 된다. 예수님도 예언서대로 순종하시고(마태복음 26:24, 누가복음 24:44)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후 보좌에서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 철장권세이다. 믿는 자라 하여 철장권세를 주심이 아니고 거짓 선지와 싸우되 엘리야와 같이, 다니엘 세 친구와 같이 마귀 앞에 굴복지 않고 강하게 주만 의뢰하는 자에게, 곧 이기는 그에게만 철장권세를 주시니, 우리는 옛 선지 엘리야 형님같이 싸워서 승리해야 하고, 또 은혜 때 엘리야 사명으로 와서 싸운 세례 요한같이 싸워야 할 것이며, 또한 타락한 오늘날의 교회 현실에서 스룹바벨 성전 건축의 사명이야 말로 마지막 종들이 완수해야할 사명이니 이것으로서 무너진 데를 보수하여 새 시대를 건설하는 재림 주를 맞을 엘리야의 사명이 완수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시대는 더 볼 것도 없이 우리가 다 같이 3대 무장(사랑, 능력, 말씀무장)을 갖추어 강하게 싸울 때인 것이다. 새일성가 32장 . 정치, 종교 협상은 마귀의 미혹이며 쑥물이다. 아멘!

촛대교회는 흑암을 물리치는 사명의 교회이다! 세계적인 공산당이 거짓 선지를 이용, 이들을 교권에 침투시키고 있으니 영적 눈을 크게 뜨고 싸워야 할 때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 한국 교회 모두는 부끄럽기 짝이 없도다!
양심을 속이지 않을진대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와 신사참배 가결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 27차 총회 때 일본 신을 교회가 받아들였다. 소화 13년(1938년) 9월 9일 오후 8시,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 27회 총회가 평양 서문 밖 예배당에서 열렸다. 219명의 총회 참석자가 모여든 가운데(27개 노회. 목사 86명, 장로 89명, 선교사 35명 - 이는 총 등록숫자 223명 중 4명이 불참한 수임. 이외에 경찰관 97명 방청객 500여명이 넘는 대회였다) 다음과 같은 배역의 성명서가 교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다


성명서..........................................................
『 아등(我等)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本意)를 이해하고 신사 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國家儀式)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 솔선 장
려(奬勵)하고 추(追)히 국민 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期)함 』
회장 홍택기 목사와 부회장 각 노회장으로 본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신사참배를 실행하기로 총 가결하다.


복음의 불이 붙은 한국 교회에 일본의 천조대신 우상이 들어왔을 때, 목사님들이 싸우지는 않고 일본 기독교 연맹에 가입하여 신앙의 정조를 빼앗기고 말았다. 한 편 옥중 성도들은 피를 흘리며 싸웠다(고려파).

선지자는 마귀 우상과 싸우는 것이 사명인데 “타협”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이를 회개치도 못한 채, 이제 종말에 공산당이 기독교에 들어오니 공산당 기독교 연합 곧 세계 교회 협의회”(W.C.C)란 간판에 속아 다시금 더 더러운 음녀적 노선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우리의 기독교 실태인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암세포처럼 활동하고 있는 이세벨 사상인 것을 모두가 잠이 들어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은 언제나 옥에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세상이 악하므로..... 그러나 이기는 자에게 새벽 별 같은 왕권을 주실 것을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5. 사데 교회 (3:1~6)

『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촛대교회가 되려면! 』

① 예수님만 사모해야 한다 : 열정이 식어질 때 영적 생활은 시들고 신앙은 껍질밖에 남는 것이 없다. 부부간에도 연정이 끊어질 때는 벌써 부부가 아니요, 친자간에도 애정이 끊어질 때 부자는 형식이요, 친구간에도 우정이 식어질 때는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 연정, 애정, 우정, 열정, 감정, 감격 등 고상한 정서가 식어져 버릴 때에, 인간이란 돌과 같은 폐물이 되고 만다. 신앙이란 예수님만 사모하고 앙모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앙모가 끊어질 때 영적으로 시들고 힘은 떨어진다. 그러나 예수님만을 사모할 때 우리는 새 힘을 받게 된다(이사야 40:31).

② 전심 귀주(全心歸主) : 십계명의 제일은 너희 마음과 뜻과 성품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계명의 새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요한일서 2:7~11). 구약 때 우상을 사랑하고 여호와를 버린 이스라엘을 향하여 갈멜산상에 선 엘리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열왕기상 18:21) 하니 오늘도 은혜받은 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는 것이다. 오직 전심전력으로 예수께만 돌아와야 할 것이다.

③ 회개 : 교회가 통회의 눈물이 없다면 서로 간에 다음과 같은 악의 열매가 맺힌다. 원망과 시비, 폄론, 중상, 교만, 자긍, 책략, 수단..., 또한 의리가 사라지고, 무자비해지며, 허영심이 발동하니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통회하며 겸손해야만 촛대교회가 된다(요엘 2:13~20).

이사야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 같이 말씀하시되...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푸른 새 순같이 항상 새로운 역사가 있어야 한다.

④ 집중 : 오직 주님께만 집중해야 한다. 구약 사사 시대에 율법 교회가 부패하고 이방화됐을 때 사무엘은 사무엘상 7:3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異邦)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하였다. 사울 왕의 신앙이 사데 교회의 신앙과 비슷했다.

사무엘상 13:5~14 제사란 제사장만이 드려야 하는 것인데 사울은 자신이 제사 드린 사실을 부득이한 사정을 대며 합리화하였다. 이 범죄가 사울이 버림받은 원인이며,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신 명령을 거역하고 살진 양과 소를 가져온 불순종의 죄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결국 끝 날에 자살하고 말았다.

사무엘상 15:22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데 교회는 완전한 열매를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씀에 깊이 생각함이 없고 회개함이 없다는 뜻이다.

6. 빌라델비아 교회 : 7~13

『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 교회는 영적 방면으로 신령하여 열린 문이 있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최선의 힘을 다하여 예언의 말씀을 지켰으며 마귀의 미혹과는 절대 타협치 않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승리라는 것은 말씀 안에서만 있는 것이니 이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미혹을 이겼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세계적으로 은혜를 주셨으니 또한 종말에는 세계적으로 시험도 오는 것이다. 은혜를 받은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께서도 그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신다.

"인내의 말씀"이란 계시록 10:9~11절에 작은 책인 계시록이다. 계시록은 먹을 때에는 꿀같이 단데 배에서는 쓰다고 하신 말씀이다. 이 책은 마귀를 이 땅에서 쫓아낼 때에 이루어질 책이기 때문에 마귀가 제일로 싫어하는 책이다. 고로 계시록을 먹으면 가장 가까운 자를 통하여 반대가 생긴다. 처자나 친척이 이 말씀을 반대하여도 끝까지 싸워 이기며 참아내야 5개월 환란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

어느 교파든지, 어디에 속한 누구든지 장차 오는 5개월(계시록 9:4)의 환란을 이겨야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재림 주께서 주신 책 예수의 계시를 주님 오실 때까지 굳게 잡고 싸워 이겨야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다. 싸워 이긴 자들은 훗날 예수 앞에 나설 때 큰 위로와 평강과 상급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예정 속에서 택한 자의 영혼의 구원은 마귀가 빼앗아가지 못하지만 일한 대로 얻는 면류관은 마귀가 얼마든지 빼앗아 갈 수 있다. 우리는 마귀의 어떠한 방해도 겁내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예언의 말씀을 지켜 증거 마친 후, 공중에 다시 오실 우리 신랑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되자!

종말에 많은 신자들이 말씀은 좇지 않고 교파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안다. 이렇게 잘못 알고 교파만 따라 간다면 큰 일이다! 교파만 믿고 따라가는 자들, 즉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에 가담한 교인은 쑥물을 먹게 되기에 재림의 주님을 절대로 영접할 수 없게 된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주님께서 “나오라” 명하셨으니 나오면 산다. 이 말씀에 순종치 않는다면 바벨 교회에서 죽게 된다. ☞ "북방 사상에서 나오라"

"인내의 말씀"은 큰 시험을 이기게 하는 마지막 말씀이다. 아브라함 모리아 산에서 독자를 바칠 때에 인간 편에서 생각지 않고 말씀 중심으로 순종하여 큰 시험에 합격했듯이,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말씀대로 될 줄 믿고 끝까지 “절대 순종”만 하자!

동방의 의인 의 인내도 꼭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같은 종이 되도록 이 생명을 다 하자!

7. 라오디게아 교회 : 14~22

『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일곱 교회 중에 이 교회가 가장 화려한 교회이니 인간의 육안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교회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무런 역사가 없는 가난하고 벌거벗은 교회이다. 이 교회는 유명무실한 교회이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이런 교회도 살려 주시려고 책망하신다. 20세기 종말에 물량주의 교회들이 많아지는데 외적으로는 훌륭하고 유명하나 예언의 등불 여호와의 새 일 교훈을 깨닫지 못하면서, 오히려 예언을 증거하는 새 일 교회를 반대하니 모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어가고 있다.

사업도 잘 되고, 생활도 부요하고, 교인 수도 많고, 헌금도 많이 나오니 육적으로는 만족하겠으나 재림의 주님이 오실 때는 계시록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하신 말씀 같이 될 것이니, 주 재림의 날에는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복이 아니요, 말씀대로 예언을 읽고 듣고 지키는 영적 인격자가 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성도가 복이 있다.

교회라는 것은 신령한 역사가 없다면 자동적으로 주님의 입에서 토함을 받는 것이다("참된 교회" ). 그러나 주님께서는 문을 두드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재촉을 하고 계신다. 주님은 이러한 잠든 교회에게도 승리의 왕권을 주고 싶은 사랑에서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말씀으로 돌아오자!

회개는 때가 있으니 이사야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셨다.

하나님이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데는 시대마다 교회를 세워서 역사하시니 광야 교회를 통하여 모든 죄를 가르쳐 주셨고, 은혜 시대는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에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제 피로써 용서받은 교회들이 재림 때 역사하는 오메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여 시험에 빠지면 아담같이 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종류, 시대변론)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신령한 교회가 촛대교회이다. 즉 마귀와 타협치 않고 말씀대로 예배드리는 것을 영적으로 신령하다 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큰 것들은 각을 뜨고 준비를 했으나 작은 새 한 마리를 그냥 드리다가 하나님께서 열납치 않아 책망을 받고 그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간 종살이하게 되었다(창세기 15:13). 이와 같이 종말에도 제단이라고 무조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과 잘 맞아야 축복의 제단이 된다. 만일 은혜받은 교회라도 예언을 가감하여 방종하면 이방의 객이 되어서 천년간 옥에 간다는 것이다(예언의 법).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 하심은 심판을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 의 계통이라도 노아에게 심판의 법으로 세운 방주를 타지 않으면 물 속에 장사지낸 바 되어 육체는 물 속에서 썩고 영혼은 옥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영들을 구원해 주셨으니, 이는 종말에도 예언을 가감하면 새 땅 에덴 축복을 받을 수가 없으나 영혼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와 그것을 믿는 믿음의 법에 순종하였었으므로 무궁 안식에는 들어가게 된다(베드로전서 3:18~). 이를 깨닫지 못하므로 오늘날의 많은 교회가 십자가의 법으로서 기독교의종착역을 삼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 베드로후서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하신 마지막 법! 예언의 법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8. 결 론

아시아 일곱 교회를 들어서 편지를 보내심은 교파를 초월하여 주의 재림을 맞이할 교회로서 신앙의 참된 정로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 신앙문답 3 (신앙의 정로)

그러므로 찌꺼기같이 믿음이 가라앉은 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열심히 회개하여 주와 같이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일성가 7장 『승리의 기도

귀가 있거든 성령님의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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