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일 토요일

주 재림시까지 머물게 한 사명(요한복음 21:21~23)


주 재림시까지 머물게 한 사명
요한복음 21:21~23

금일에 기독교는 이 날까지 머물게 했던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대를 따라 종을 들어 쓸 적에 성경이 없이 들어 쓴 종도 있고,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들어 쓴 종도 있고, 기록한 성경을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들어 쓴 종도 있다. 먼저 성경이 없이 들어 쓴 종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들어 쓴 종은 첫째 모세니 이 사람은 몽학적인 율법을 받아 기록한 종이다. 그 때에는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모든 종을 들어 쓰되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있었다. 또는 언약의 말씀인 예언서를 기록한 종들이 있으니 이것을 선지 시대라는 것이다.

이 종들로 기록한 글은 몽학적인 교훈이 아니요, 여호와께서 앞으로 말세에 행하실 일을 묵시로 나타나 말함으로 기록한 자들이다. 그 시대에는 선지서를 가르치는 때는 아니었다. 오히려 율법을 가르친다는 성전에서 참된 선지들이 묵시로 받은 책을 반대하고 심지어 불살라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 때 사람이 이 글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시하고 배척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부터 재림 시까지는 율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고 선지서를 가르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선지서를 가르치는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선지서를 가르치는 사도들을 박해하는 때가 있었다

이 때는 소위 율법주의라는 자들이 율법을 가르치면서 선지서를 가르치는 일을 반대했던 것이다(사도행전 3:24~26, 4:1~3). 아무리 율법주의자들이 반대해도 담대히 선지서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때가 사도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성경을 해석해 주었던 것이다(누가복음 24:25~27, 44~47). 이렇게 성경을 깨닫도록 가르친 것은 사도들이 성경을 해석할 범위를 말씀하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성경을 가르친 것이다.

선지서를 깨달은 사도들은 4복음을 기록할 때에 선지서를 가지고 해석하면서 예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은혜 시대의 종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지식의 한계가 되었던 것이다(베드로후서 1:19~21). 어느 사도나 다 하나 같이 예언서를 들고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초대 교회 교훈이었던 것이다. 그 때는 신약 전서가 있은 것이 아니요, 성경을 가지고 증거할 때에 사도들은 율법을 가르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선지서를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동시에 예수 행적을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사도행전 13:27~30).

그 때를 지나 모든 사람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그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여 그대로 저술한 것이 복음서이다(누가복음 1:1~3). 그 때는 성경을 새로 기록한다는 목적이 아니고 성경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 행적을 썼던 것이다. 또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자는 성신이 오셔서 역사할 때에 선지서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편지서를 쓸 때에도 선지서를 증거하되 예언대로 은혜 시대가 왔으니 우리는 이루어진 십자가를 믿고 이루어진 성신의 역사를 받았으니 이리 저리 치우치지 말고 신앙 생활을 바로 해 나가라는데 대하여 권면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사도들이 기록한 책을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싸워 온 것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 날까지에 머물러 있는 사명은 사도가 쓴 성경해석 외에 해석을 더할 자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에 정통학설은 사도들이 해석하여 놓은 해석에 의하여 좀 더 변론을 세밀히 말한 것이 정통 신학의 학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신이 충만치 못한 사람들이 학설을 쓰게 될 때에 금일에 영들을 죽이는 쑥물이 된 것이다.

이 날까지 하나님께서 머물러 둔 사명은 이제 무엇이냐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복음도 예수님이 전한 천국 복음이 있고(마태복음 24:14),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한 복음이 있으니 이것은 천국을 목적한 복음이 아니요, 지상 왕국을 목적한 복음이다(요한계시록 11:15). 천국 복음은 베드로에게 맡긴 사명이요, 지상왕국이 오는 영원한 복음은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준 복음이다. 바벨론이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요한계시록 14:6~7, 20:1~3).

기독교에 머물러 있던 사명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고, 안 받으면 이 세상이 불타는 날에 남은 백성이 되어 새 시대 간다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선지서에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천당을 목적한 말씀이 아니요, 몸에 사망이 온 땅에 사망이 없는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이사야 25:7~8). 인간에 사망이 온 것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 죄를 없이 하고 사망을 없이하는 세상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종들로 큰 축복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의 재림이 임하는 날에 남은 종이 전하는 복음이다.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는 변화 성도가 전할 복음인 동시에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를 볼 때 인간 종말의 역사는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날 것을 보았고 자기가 받은 진리는 재앙의 날에 읽고 듣고 지켜야 될 말씀이라고 받았던 것이다.

이 재앙이라는 것은 인류 전멸의 재앙이다. 금일의 기독교가 머물렀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이 사명을 바로 찾아서 역사 하는 일이 없다면 극도로 위기를 만난 것이 71년도부터 오는 시기라고 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요한에게 이 계시를 보이기 전에 베드로가 묻는 말에 대하여 요한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러 두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선지서를 전하는 사명에 있어서 사도들은 선지서를 들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했지만 재림시에 남아 있는 변화 성도는 선지서를 들고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때부터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전하는 때가 왔으니 이 말 저 말 쓸데없는 학설을 듣지 말고 선지서 전체를 그대로 전하는 자로만이 새로운 역사를 받음으로 완전한 승리의 용사로 새 시대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선지서를 전하는 종들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선지서를 들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던 종들은 은혜시대를 이루었고 선지서를 들고, 심판과 새 시대를 증거하는 종들은 새 시대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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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의 응답과 역사 (누가복음 1:8~17)


제단의 응답과 역사
누가복음 1:8~17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제단의 응답이 있으므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전에 부패한 자들이 많이 있다 하여도 그 제단에 응답이 있으므로써 은혜시대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소위 제사장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부패했지만 그 성전 제단에 응답이 내리므로써 예수님을 위하여 앞서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을 낳게 되었다. 그러므로 참된 제사장 사가랴에게 응답이 오는 거기서부터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제단 응답과 역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간구한 기도가 있으므로 응답이 오게 됨 (8~13)

응답이라는 것은 사람 편에서 간구가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들이 없으므로 무조건 아들을 구했지만 그 기도가 상달됨에 따라 메시야를 영접할 마지막 선지를 그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몽매한 인간들이 구하지 못한 것이라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뜻이 이루어지도록 응답하실 때에 의심할 정도로 주시게 된다. 사가랴는 이미 자기가 간구한 바가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므로 의심했다는 조건에서 10개월간 벙어리가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제단에 응답을 내리시되 징계를 하면서라도 역사하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은 너무 부족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다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사장 사가랴에게 마지막 선지가 나게 되어 메시야를 영접할 줄은 사람으로써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하면서라도 알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이 아무리 황폐화 될 앞을 놓고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단에 응답을 내려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셨다.

구약 때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과 예수님과에 연결성은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과거에 율법적인 성전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성전이었으므로 그 제단의 응답으로 잉태된 요한은 메시야를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길을 예비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왜냐 하면 구약 시대라는 것은 완전한 역사가 아니요, 완전 역사가 올 것을 위하여 예비에 불과한 성전이기 때문이다.

2. 많은 사람이 기뻐할 일이 됨 (14)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은 언제나 택한 자에게 기뻐할 일로 오게 되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사모하던 이스라엘에게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세례 요한이 온다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든다면 귀한 손님이 올 때에 어떤 사람이 앞서 와서 저기에 기뻐할 사람이 오고 있다고 알려 준다면 그 소식을 들은 사람은 집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고 일어나 마중을 나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전할 사람이 나게 된다는 것은 인간들의 큰 기쁨이 된다.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할 사람은 외식하는 제사장의 가정에서 나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드리는 참된 제사장의 가정에 응답이 있으므로 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도 많은 사람이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지만 참된 기도를 상달시키는 종의 가정에서라야 그 소식을 나가 알려줄 사명자가 나오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같은 교회 안에 있다 하여도 기도가 상달되는 집도 있고 상달되지 않는 집도 있다. 그러므로 제단의 응답이라는 것은 참된 종의 상달되는 기도를 통하여서만 내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누구든지 다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고 기도가 상달되는 자라야 기뻐할 응답이 오게 된다.

3. 많은 열매가 있게 됨 (15~17)

신약 시대를 완전히 이루는 모든 사도들은 다 세례 요한의 열매라고 본다. 왜냐 하면 세례 요한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따라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열두 사도가 나온 것은 제단 응답이 있으므로써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한 사람만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대중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한 사람의 기도가 상달되므로 대중을 살리는 응답이 오되 제단을 통하여 오게 된다.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도 대중을 살리는 응답이 제단을 통하여 올 것을 이사야 19:19에 말씀했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전에서 부패한 교권주의자들이 세례 요한을 반대하고 예수를 반대하고 사도들을 반대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응답은 그들에게 내렸던 것이다. 오늘날 한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자 중에서도 재림의 주를 영접할 응답을 받는 자도 있고 오히려 모르고 반대하는 자도 있다.

결 론

아무리 사람들이 부패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적은 소수에게 응답을 내려 새로운 비밀을 알게도 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하게도 하시는 것이다. 많은 제사장들이 성전에 왕래하고 있었지만 오직 사가랴가 분향을 올릴 때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새로운 역사의 비밀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도 시대적인 비밀을 바로 알고 역사할 자는 다수가 아니요 적은 소수일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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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잉태시의 증거 (누가복음 1:8~17, 39~44)


세례 요한의 잉태시의 증거
누가복음 1:8~17, 39~44

서 론

세례 요한은 잉태시부터 메시야가 오시는 일을 영접할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낼 때에도 앞길을 열어주기 위한 선지를 내세운 것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던 성도들로 메시야를 영접하여 온전한 사도의 직을 받을 사람들을 찾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잉태시에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일이나 모든 이루어진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간구한 기도 응답 (8~13)

부친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에 주의 천사는 향단 우편에 서서 너의 기도가 응답되어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아들을 간구한 일이 있었는데 응답으로 수태 못하던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제사장족에서 세례 요한이 출생하여 마지막 예언자로 나타나되 이날까지 양을 드리던 제사는 메시야의 어린양의 피로 완전히 끝을 맺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하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나타나 지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던 것이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둘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세례 요한이니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선지가 되었고, 사도 요한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라는 예언적인 계시록을 받았다. 그러므로 요한이라는 이름 하에서 두 선지 사명이 나타났다.

2대지:주 앞에 큰 자가 됨 (14~17)

모든 선지 중에도 요한은 메시야를 직접 영접하도록 하는 선지이니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푼 자요 율법시대의 끝을 맺는 선지였다. 이는 모태로부터 성신이 충만함을 입었다고 한 것은 생령의 사람으로 잉태되어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세상에 나되 예수와 같이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 아니고 그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지의 영으로 역사를 마치는 완전한 영으로 났다고 본다. 자범죄가 없는 자이며 많은 사람을 준비시키는 사람으로 날 때에 성신 역사 시대가 오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영접할 신앙을 가진 자들이 영적으로 부패된 교계에 나와서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는데 모든 부족을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라고 한 것이다.

중생의 역사가 있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에게 깨우쳐 주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선지로서는 큰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시대의 종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이 되기 전 시대의 사람이니 회개를 외쳐도 베드로같이 큰 역사는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신이 내리는 때가 아니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에게 영접하도록끔 하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 말미암아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므로 열두 사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3대지:복중에서 뛰노는 증거가 있음 (누가복음 1:39~44)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6개월 된 태중에 있는 요한이가 기뻐 뛰노는 증거를 보인 것은 모태로부터 성신이 함께하는 증거이다. 이렇게 된 것은 마리아에게 더 확신을 주게 되었고 엘리사벳도 더 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사가랴에게 천사의 지시가 있은 것이나 마리아에게 지시가 있은 것이 꼭 같은 동시에 복중에 있는 아이가 기뻐 뛸 때에 분명히 마리아 몸에는 메시야가 잉태되고 엘리사벳의 몸에는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위한 선지가 잉태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주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예수님은 분명히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세례 요한은 잉태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세례 요한의 증거는 메시야를 영접할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선지로 났으니 만큼 예수는 완전한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이 일에 증인이 되는 세례 요한은 잉태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메시야를 영접할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제단에서도 증거가 있었고 메시야를 잉태하는 마리아에게도 큰 증거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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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집에 왕이 되신 예수님 (누가복음 1:26~33)


야곱의 집에 왕이 되신 예수님
누가복음 1:26~33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의 목적은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인데, 피조물된 인격으로는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룰 자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그 예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번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언적으로 이루어지는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 하는 다윗 왕국과 열매가 되는 그리스도의 왕국과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야곱의 집과 촛대교회와의 연결성

야곱의 집과 촛대교회와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과거에 야곱의 집이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운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 촛대교회도 성산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씨라도 축복을 등한시하는 에서는 아무리 사람이 볼 때는 강한 것 같으나 예언적인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고 사람이 볼 때 미약한 사람 같으나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야곱은 예언적인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강한 세력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산의 축복을 두고 싸우는 자는 극도로 미약한 상태에 있지만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믿고 싸우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은 언약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2) 야곱의 집에 시련과 촛대교회의 시련

언제나 마귀는 축복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시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축복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편이요, 축복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편이 되기 때문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했고 마귀는 얼마든지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피조물로 창조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신 것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니 화를 위하여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와 축복을 위하여 역사하는 성도의 역사와 대립을 시켜서 축복을 받기까지 싸우는 집을 야곱의 집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왕국은 야곱이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열매로 이루어졌고 영원한 이스라엘의 왕국도 촛대교회가 끝까지 싸우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야곱의 집의 왕권과 촛대교회의 왕권

야곱이 끝까지 싸우므로 예언적인 다윗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되었고 촛대교회가 왕권을 받으므로 세세 왕국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천사가 마리아에게 지시하기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한 것은 육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이 되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므로 왕 될 자격이 있다 (26~31)

첫째 아담이 마귀의 말을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은 그 피를 받은 사람으로는 그 몸이 썩지 않고 왕이 될 자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그 세력 아래 속했기 때문이다(로마서 6:17). 그러므로 예수님은 잉태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사람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잉태가 아니고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써 이루어지는 것을 말할 때에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면서 야곱의 집에 왕이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몸으로 왕 노릇 하는 것을 인생의 제일 큰 축복이라고 본다(요한계시록 20:6). 완전한 몸을 가지신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도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서 왕국을 이루는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순종한 자는 부활해서 왕이 되고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짐승과 거짓선지를 이긴 자는 살아서 변화를 받아 왕이 되는 것이다(요한계시록 20:4).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타락했지만 야곱과 같이 축복을 믿고 싸워 나가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2. 큰 자가 되므로 (32)

인류 역사상 제일 크게 된 자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여 빈한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피곤한 노방 전도를 거쳐, 쓰라린 심령의 고통을 주는 겟세마네를 거쳐, 쓰라리고 뼈가 저린 십자가의 사형을 거쳐, 캄캄한 무덤을 거쳐, 구름을 타고 올라가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어 기도하시며 성신을 부어 주시다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여 죽도록 충성한 종들을 부활시키고 쓰러지기까지 싸워 나가던 종들을 변화시켜서 영원한 왕국을 조직하여 이루시는 예수님밖에 더 큰 이가 없으니 우리는 그를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므로만이 복 있는 자가 될 것이다.

3. 왕국이 다함이 없음 (33)

세상에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한 때는 강했지만 바람 앞에 등불 같이 꺼지고 만 것이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야곱의 집에 왕국은 영원히 세세토록 왕 노릇하되 지상의 천년 왕국을 거쳐 천국에 들어가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요한계시록 22:1~5).

이러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신으로 잉태된 몸이 마귀와 싸우는 생활을 거쳐서 만왕의 왕이 된 것 같이 성신을 받은 종들도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싸움을 거쳐 왕국의 반열을 이루게 된다. 가장 복된 자는 왕국의 반열에 들어가는 자라고 보게 된다(요한계시록 19:9).

결 론

복 되도다. 다윗 왕국이여, 산 깊은 골짜기에서 양을 치던 목자 다윗이 만왕의 왕조가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나사렛 골짜기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던 나사렛 예수가 만왕의 왕이 될 줄 누가 알았으며, 갈릴리 바닷가에 그물 한 채를 씻고 있던 시몬이 세계적인 왕국을 건설하는 운동의 선구자가 될 줄을 누가 알며, 어부의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뒤를 따르던 요한이 지상 왕국을 이루는 마지막 역사의 선구자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낙심 말자, 우리의 소망은 여기 있다.

이 왕국 건설 운동은 너무나 크고 영원한 일이 되기 때문에 작은 일에 낙심하는 자나 잠깐인 고난을 참지 못하는 자는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로되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잠깐 동안인 고난을 참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에게는 인간이 볼 때에 실패자 같고 망하는 자 같으나 이 왕국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너무나 크고도 귀한 일이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모략적인 방법으로 까불어 보는 일이 없이는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까불어 보는 때에 인격을 골라내고 수가 찰 때에 일한 대로 갚아 주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끝까지 참는 자는 그의 반열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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