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 월요일

(특강) 성경분해원리


성경 분해 원리

1.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을 구원코자 하시는 사랑에서 약속의 말씀을 인간에게 완전히 알도록 하시되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이 완전히 나타나기 전에도 그 시대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을 개인적으로 준 것이 있으니 대표적인 사람에게 알려서 그 말씀을 진행하신 것이다.

(1)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 한마디가 교훈이 된 것이다. 이것은 향상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이 향상보다도 도리어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피조물에는 사람을 위한 피조물도 있고 하나님을 위한 피조물도 있으니 하나님을 위한 피조물은 아담 하나만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한 목적에서 당신을 위하여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것이다. 영광을 주기 위해서는 "너는 법을 지키라"는 것이 당신을 위한 사람에게 준 말씀이다. 법을 주는 동시에 법을 방해하는 피조물을 두었으니 이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적을 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모략적인 방법으로 둔 것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신이신 동시에 모략적인 신이시기 때문에 선한 모략으로 사람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2) 여호와 하나님은 법을 지키면 향상시키는 것에도 거짓이 없고, 법을 범하면 타락한다는 것에도 거짓이 없는 참 신이시다. 그러므로 법을 범한 인간에게 용서 없는 사망이 오게 된 것이다. 사망이 왔지만 사랑이라는 법이 있으니 이것은 사람이 실수가 있어도 용서해 준다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 동시에 그 법에 따라서 당신 앞에 제물을 바쳐 예배하는 것을 사람에게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희생의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 종교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3)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된 제사를 받기를 기뻐한 것이 사랑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가 많은 인간이라도 회개하고 그 대신 피의 제사를 드린다면 받으시고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모세 5경에 쓴 이스라엘에게 준 교회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구원을 인류에게 준 교회는 못되고 한 법을 가르치는 종교에 불과했던 것이다.

(4) 입법적인 교회가 서는 동시에 이 교회는 단일 민족의 종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이방의 피가 섞이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 율법적인 그 민족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이 민족은 성민이라고 성호를 가지고 내려온 역사이니 그것도 성경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던 것이다. 성경이 될 가치가 있는 것은 그 민족이 죄가 있으면 용서 없이 처벌을 내리되 회개할 때까지 벌하였고, 회개하면 다시 부흥시켜서 복을 내리도록 된 역사이기 때문에 성민의 역사는 하나님이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체험적인 종교로서 인류에게 알려준 것이다. 하나님이 그 민족에게만 관할하시고 다스렸기 때문에 그 민족의 역사를 모아서 하나님의 역사적인 존재를 알리게 된 것이다.

(5) 하나님은 율법적인 진리가 있는 동시에 그 민족에게 법으로 다스렸고, 또는 법으로 다스리는 그 사실을 들어서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 선지서라 하는 글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말씀의 법으로서 용서 없이 온다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 승천과 성신 강림으로서 세계적인 인류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을 가르치는 예언과, 말씀대로 오는 심판과 또는 말씀대로 오는 보호와 축복과 새 시대에 되어질 사실을 기록한 것이 예언서의 대지가 되며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됨으로서 성경이라는 책이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여 세상에 나타낸 성경이 이루어진 것을 가르쳐 그리스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적에 세상 죄를 진 어린 양이라는 제물로서 세상에 탄생하신 것을 도성인신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들에게 요구하는 제사를 속죄의 피로써 완전히 이루게 한 방법이다.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예언적인 제사에 불과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는 예언적인 제사를 열매로 탄생시킨 영원한 속죄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속죄의 보혈은 세계 인류를 다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가치를 이루게 된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은 소망 없는 죽은 영들에게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주는 승리의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의 승리를 가져오게 된 것은 은혜시대의 성도의 자격을 이루는 씨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씨가 들어간 영들은 나날이 장성할 수 있는 생명의 종교를 이루게 된 것이다.

(3) 성신의 역사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義)로만 오는 은사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 기독교의 성신의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와 같은 역사는 천국 건설의 왕국을 이루게 하는 역사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이 왕권으로 누리도록 하기 위한 데까지 한계를 두고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활동이다. 이것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 신약전서라 하는 것이다. 신약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이루어진 사실을 증거한 것을 4복음과 편지서라 하는 것이다.

(4) 그리스도는 다시 오는 역사가 있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서 심판기라 하는 것인데 이 때는 인종을 전멸시키는 혼란이 오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보혈을 믿고 자기의 백성된 자만을 평안히 안식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친 것이 계시록이다. 이 계시록이라는 것은 환난과 재앙으로 심판이 올 때에 그리스도를 왕권으로 맞이할 자의 되어질 일과 지상강림하는 그리스도를 백성된 자격으로 맞이할 자를 가르쳐서 마땅히 읽고 듣고 지켜야 할 진리를 기록한 책이 계시록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본 심판과 새 시대의 진리가 전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3. 주 재림기의 역사

(1) 주 재림기의 역사라는 것은 증인권세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전 세계 인류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의 능력과 권세로만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죄값으로 잃었던 백성을 다시 찾는 방법이다. 죄의 값이라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피가 없이는 탕감할 수 없다는 것이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재림기의 증인권세 역사라는 것은 이미 속죄의 은총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몸이 원수의 피해를 당치 않고 재앙을 받지 않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데까지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그러면 이 권세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만민을 죄 아래서 구출시키는 역사라면 증인권세 역사는 환난 가운데서 양 떼를 살리기 위하여 마귀와 대적하여 싸워서 마귀를 물리치고 그 양떼를 영과 육을 아울러서 살도록 끔 인도해 주는 역사이다.

(2) 이 때는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권세를 주어서 인간에게 큰 화가 오는 때이니 만치 마귀 권세를 물리치는 권세를 받은 자 외에는 나가서 역사할 수 없는 때를 가르친 것이다. 권세라는 것은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는 것을 목적으로 주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종말적인 심판의 다림줄을 쥔 진리에 의하여 심판하는 것을 증인권세라 하는 것이다.

(3) 이 역사는 일반적인 역사가 아니다. 성신의 은사는 일반적이었으나 이 권세 역사는 기독교 종말에 정확한 진리의 다림줄을 바로 쥐고 싸우는 자에게만이 해당되는 권세이다. 아무리 은사를 받은 종이라도 다림줄을 바로 잡고 싸우는 종이 아니라면 권세 역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를 따라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은사를 받는 진리가 있고 권세를 받는 진리가 있으니 은사는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값없이 오는 은사요, 권세 역사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택한 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은사시대는 심는 역사라면 권세 역사는 알곡을 모아들이는 타작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4) 이 권세 역사는 기독교 종말의 끝을 이루는 심판기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역사인 동시에 새시대를 완전히 이루기까지 싸워서 승리하는 역사이다. 철장으로 질그릇 치듯이 불의의 세력을 깨뜨려 버리는 것으로만이 기독교 끝을 맺기 때문이다.

4. 재림시의 변화성도의 형편

변화성도라는 것은 재림시까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들을 가리킨 것이다. 이 종들은 시대적인 말세 비밀의 진리를 하나같이 깨닫고 이것을 가지고 거짓 선지와 싸우는 영적 군대들이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므로 중생 받은 성도의 자격을 초월하여 말세 증인권세의 역사에 한 단체의 감람나무를 이룬 14만 4천의 용사들이다. 이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일어나는 역사이다. 동방역사라는 것은 말세의 부패한 교계를 바로잡고 혼란한 영계를 바로 서게 하는 동시에 기독교 종말에 진리 통일의 대승리를 이룬 파수꾼들이다. 이들은 권세 새힘을 받음으로 그 자체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강권 역사인 새로운 새 일의 역사의 열매가 된 변화성도들이다. 이들은 사명 분야에서 움직이되 다음과 같다.

(1) 돌진의 용사적인 사명이 있다. 이들은 선구적인 역사를 하는 활동 부대다. 이들은 개교회로 중심한 사람들이 아니고 세계적인 적그리스도 국을 대항하는 북진 용사들이다.

(2) 목자적인 사명 분야에서 개척 교회를 파수하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며 종족을 위한 촛대교회를 파수한다. 또는 교회의 정치, 목회, 사업을 중점한 사명자들이다.

(3) 사생활에서 가정을 돌보며 자녀를 양육하며 이웃에 덕을 세우며 개교회에 내적 모든 일을 살피며 촛대교회에 불순분자가 없도록 모든 일을 세밀하게 보살펴 주며 교회 질서를 바로 유지하는 사명이 있는 종들이다.

5. 들림 받는 종의 형편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 할 때는 북방의 무서운 환난이 날 때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그 환난을 막을 수 없는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대환난이다. 이 때는 권세 역사의 종이 아니고는 도저히 나서서 바른 진리를 말할 수 없는 환난이다. 이 환난은 어떤 국경을 다투는 환난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을 사단으로 격동을 주어서 발악적인 무질서한 행동과 교회 안에 부패한 거짓 선지 앞잡이들이 참된 종을 대적하고 일어나는 폭행과 중동 사건이 극도로 혼란한 것은 아프리카의 흑인종이 대대적인 활동을 하되 중동 문제를 자기네가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북 통일을 목적하고 나오는 폭동 또는 습격 반란을 일으키는 야수적인 행동에서 중동 사태는 도저히 평화의 질서를 보전하기가 어려운 난관이 올 것이다.
이 때에 아무리 거부권을 가진 나라도 도저히 그 혼란과 폭발되는 반란을 수습할 수가 없는 난관이 봉착되는 것이다. 이 때에 거부권이 무효 되는 국제적인 문제가 올 것이니 그 때에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운다는 이사야 33:7이하의 말씀이 응할 것이다. 이것은 북방 침략자의 궤휼적인 행동에서 되어지는 반란이다. 그러므로 권세 역사를 하는 종이 아니고는 도저히 나설 수 없는 때에 모세 때보다 7배나 강한 역사가 증인권세 역사로 나타날 것이다.

그 때에 자유 진영의 모든 돌진의 용사들은 한국으로 구름 떼같이 모여든다. 이 때에 한국은 세계를 움직이는 권세 역사의 국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북방 세력은 중동에서 승리를 이루나 동북에서 일어나는 극동 문제를 떨지 않을 수 없는 자리로 들어간다. 이 때에 거짓 선지는 최후 발악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되 누구든지 자기의 주장하는 법령을 가지고 대대적인 행동을 할 때에 부패한 교계의 악당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천군을 동원하여 촛대교회를 옹호하므로 신령한 교회는 악당의 피해를 당치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역사가 있을 것이니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된 일과 같은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이 때에 증인권세의 거성이 되는 사람들이 북방을 치고 들어갈 적에 재앙으로 땅을 치는 역사는 대표적인 한 사람을 통하여 천지가 진동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택한 백성을 환난에서 구출시키기 위한 강한 역사이다. 이 기간은 반년 동안 기간이 오는 것인데 자유로운 권세 역사가 세계를 움직이는데 그 역사의 본부는 동방 땅끝의 해 돋는 데서부터 활동 본부가 될 것이다. 이 때는 사람들이 다 미혹을 받을 만한 환경에 이르게 되므로 거짓 선지는 세계통일의 위력을 가지고 모든 국민의 사상 정신 생활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 외에는 거짓선지의 유혹적인 사단의 세력을 막고 빛의 역사를 할 교회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한 것은 미혹이 극도로 심하므로 미혹을 이기고 절개 있는 신앙을 가진 자는 극히 소수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 때에 환난 중에서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될 자는 자동적으로 하나같이 뭉치게 되니 이것을 가르쳐 감람나무 촛대라 하는 것이다. 마치 예를 들면 강한 타작기가 돌고 있는 앞에 알곡만 모여지는 것같이 될 것이다. 이 때를 당해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1) 권세 받은 종의 강한 역사가 뚜렷이 만민이 알도록 나타난다.

(2) 오늘의 교회가 완전히 갈리되 알곡만 모이는 교회가 나타나므로 자동적으로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신자가 촛대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3) 아무리 교회 밖의 사람들이라도 옳은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양심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피난처를 찾아 촛대교회로 찾아들 것이다. 이들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그 때를 당할 적에 자기는 죽어도 사상 정신만은 잃지 않겠다는 불타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오직 가야 할 곳은 촛대교회란 것을 알고 모여들 적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준다.

(4) 은혜시대의 신앙을 가진 자로서 증인권세의 역사를 등한히 알고 있던 무리들은 벌벌 떨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숨어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무리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촛대교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 양심적인 신앙만을 보전해 보겠다는 데서 개인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5) 거짓 선지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의 모든 것을 자기 주권에 넣어 보려고 폭행 또는 협박 공갈 훼방 악선전을 하면서 당파를 지어서 최후의 수단 방법을 쓰고 나오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6) 어린 학생으로서 사상 정신을 분명히 분간할 수 없으나 부모님의 간곡한 기도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주일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되는 교회에 하나님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A. 하나님은 휴거를 시키는 일이 있다.

휴거를 받을 자는 생명을 내걸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거짓선지와 싸우면서 증거하는 종들 외에는 휴거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휴거를 받는 자는 왕권에 가입될 자격이 있는 자라야 되기 때문이다. 왕권이라는 것은 신앙 중심에서가 아니고 그가 행한 일에 따라서 받기 때문이다. 휴거라는 것은 그 몸이 썩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들은 신과 같이 쓰여지는 자이므로 신의 역사에서 그 몸을 영체로 완전히 이루게 된다. 이 몸은 피가 성결케 된 몸이니 죄악의 근성의 피는 몸에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했지만 증인권세 역사를 통하여 그 몸을 개조시켜서 변질적인 몸이 되는 것이니 변질이라는 것은 죄악의 질이 없어지는 것을 가르쳤고 절대적으로 피곤이 없고 또는 원수의 피해가 몸에 들어올 수 없고 절대 영생의 질로서 완전 개조 변화를 받은 것이다. 이들은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인격을 권세 역사를 통하여 받게 된 것이다. 절대 신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인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이 된다.

B. 완전 변화체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사상, 중심, 양심이 바른 자로서 말세 예언을 따라 순종하고 살길을 찾아보려는 사람은 강권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죽지 않도록 보호 양육이 있는 것이니 이들을 위하여 피난처의 보호가 있게 된다.

피난처 보호라는 것은 증인권세의 역사가 필요 없고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마귀 떼를 쫓아내는 동시에 지상 마귀를 따라 내려와서 피난처에 택한 백성을 몰아넣고 그 경계를 정해 놓고 마귀의 피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택민 보호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택민은 권세 받은 사람은 아니로되 하나님의 자녀이니 환난에서 신앙 절개를 지킬 수 있는 보호와 악당의 피해를 당치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b] 내리는 재앙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에 지역을 정하고 한 데 집결 단체로 예배하며 자유롭게 하나님을 공경하며 영적 신앙을 기르도록 해주는 것이다.

[c]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사단의 역사를 없이하고 새 시대의 거룩한 시온의 아들딸이 되도록끔 만들어 놓는 역사가 피난처 안에서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신앙 생활을 하지 못했던 자라도 믿고 순종해서 말세 복음을 따르는 자라면 무조건 그곳에 들어가서 양육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은 강권역사 하여 주는 것이다.

[d] 이곳은 절대 질병이나 재앙이 들어오지 못하되 성민이 될 신앙을 가진 자 외에는 그 지경 안에서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징벌이 내리되 애굽 땅에서 나올 때 유월절과 같은 일이 있으므로 그 지경 안에는 악인의 씨가 하나도 있을 수가 없는 재앙이 내려서 거룩한 지경을 이루어 놓고 사방의 촛대교회의 양 떼를 그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e] 여기서 생활 방법은 계급이 없는 생활이니 하나님께서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는 땅이다. 절대적인 보호와 양육이 있되 3가지로 있다.

(a) 하늘에서 만나 같은 양식이 내리는 곳도 있다. 또는 그 경내에 우순풍조하여 아름다운 생산도 있을 수 있다.

(b) 절대적인 하나님의 역사에서 모든 생활 제도가 균일되도록 하되 조금도 무엇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니 아무리 어린 유아라도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질서에서 움직인다.

(c) 그 안에서도 지도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모든 어린 자들을 교육하고 인도해 주는 자를 하나님은 쓰게 된다. 그러나 이 지도자는 변화성도는 못되었으나 능히 그 안에 있는 대중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로서 하나님은 역사하게 한다. 이 사람은 종족을 인도하는 지도자이다.

[f] 피난처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a) 이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마귀에게 맡길 때이니 참된 백성을 버린 세상에 그냥 둘 수 없고 오직 당신의 예비한 예비처 안에 알곡 될 주의 거룩한 성남 성녀들을 모아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같이 살도록 비를 주고 일용할 양식을 먹도록 하였지만 이 때는 진노의 날이니 악한 자를 없애자는 재앙을 주니만큼 악인들이 사는 그 동네에 의로운 씨를 섞어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앙을 내리기 때문이다.

(b) 이 때는 하늘에 있는 마귀가 땅으로 쫓겨와서 누구든지 자기 앞에 굴복치 않은 사람은 무조건 피해를 주는 환난이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하늘에서 이날까지 참소하고 있었지만 왕권 받은 종들이 영계 싸움에서 대 승리를 보고 그 수가 차게 되어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뤘기 때문에 마귀는 천사들에게 패전을 당하여 땅으로 쫓겨 내려오니 만치 마귀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때이다. 그러므로 예비처 밖에는 전부가 귀신의 처소가 된다. 하나님은 절대로 예비처 밖에는 간섭을 하지 않고 마귀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c) 하나님은 심판을 나릴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그 마귀에게 경배한 자는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몽땅 없이하는 심판을 내리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으로 신앙 절개를 지켜 나가는 동시에 그 생명을 보전시켜 심판날에 심판을 면하도록 하기 위한 예비처가 있게 된다.

(d) 새 시대에는 이 세계를 불로 사를 때에 불에 피해를 당치 않는 자라야 남은 백성으로 종족이 될 것이니 그 불의 피해를 당치 않는 자격은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고 절대 죄악의 질이 없이 된 자로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세계가 불타는 날에 남은 백성이 될 것이다.

(e) 새시대의 종족은 사상, 정신, 마음이 하나같이 성결하여야 되는 것이니 완전 성결을 받는 자 외에는 거룩한 씨가 될 수 없으므로 성남 성녀가 완전히 되기 위해서 예비처의 양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영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몸을 영생하도록 하는 동시에 이 사람들은 변화체는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죄악의 질이 그 몸에서 없어진 자로 거룩한 땅에서 축복 받은 백성으로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번창하는 족속을 이루는 근본의 종족이 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증인권세 역사는 변화 승천할 사람을 위하여 '전 삼년반'에 권세 역사를 나리는 것이요, 예비처의 양육은 새 시대의 거룩한 백성을 이루기 위해서 보호 양육하는 것이니 전자는 왕권이요 후자는 백성이다.

6. 심판기의 형편

심판기라는 것은 변화성도와 부활성도가 함께 공중 재림의 주를 맞이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들어가 질서 정연한 완전 조직의 왕국을 이루어 가지고 지상왕국 세계 통치의 역사를 하기 위하여 지상 강림하는 때이다. 지상강림이라는 것은 완전히 성도의 나라를 이루어서 평화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시온산을 중심한 지상 강림이 되는 것이니 이 때에 주와 같이 세계의 악의 세력을 쳐 없애는 자는 부활성도가 아니고 변화성도의 14만 4천이 부활성도의 억울한 피값을 갚아 주는 전쟁을 하게 된다. 변화성도의 통치 왕국을 위한 전쟁의 형편은 다음과 같다.

(1) 이 전쟁이라는 것은 아마겟돈 전쟁이라 하는 것이다. 이 전쟁의 시기는 후 삼년 반의 말기인 즉 1260일 예비처의 양육이 있고, 다음에 7대접을 땅에 쏟는 재앙이 나리는 동시에 덫과 같이 임하는 즉 원수를 전멸시키는 전쟁이니 이것은 원수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예비처에만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될 때 이 세상을 바벨론이라 하는 것이다. 바벨론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극도로 혼란해진 사단의 처소가 된 세상을 말한 것이다. 즉, 자기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미혹을 받은 사람만이 살고 있는 땅이다. 그 세상을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볼 수 없고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극도로 사치하고 음란한 도성인 것이다. 이와 같이 된 것은 공중재림 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걷혀 가고 택한 백성은 한 데로 모아 예비처에 집결 양육이 있는 동안에 거짓 선지의 세력에게 완전히 먹힘을 당한 세상을 말한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다 혼취한 정신에서 무엇을 똑똑히 분간할 줄 모르는 세상이므로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2) 변화성도가 지상에 오는 것은, 번개같이 올 때에 하나님은 사단의 발동으로서 세계의 정치적인 요인을 한데 모으게 한 후에 도둑같이 내려오면서 그 세력을 쇠뭉치로 질그릇을 치듯이 때려부수는 것을 아마겟돈이라 하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다같이 인도하되 무서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인도하는 곳이 있다. 예비처의 양육이라는 것은 마귀의 박해를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심판기에 인도하는 땅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 즉 인종 전멸의 재앙을 당치 않도록 하는 인도이다. 이것은 오래도록 피하는 것은 아니로되 약 1개월 내에 일곱 대접의 재앙이 땅에 쏟아지는 때이다.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해변에 신육지가 나오는 변동이 있고, 둘째는 깊은 산 속에 밀실과 같은 장소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때에 아무리 재앙이 나리고 세계 인류가 전멸되어도 그들이 있는 위치에는 절대적으로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 인류 전멸이라 하는 심판이다. 그러나 노아 때의 심판에 불과하다. 행위심판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따라 오는 심판이다.

(3) 이 재앙은 조금도 인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니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피해볼래야 어디 있든지 악한 자는 죽어 버리는 재앙이다. 이 때에 오는 재앙은 절대 오랜 기간이 필요 없는 잠간 동안에 오는 재앙이니 이것이 있으므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고 식물, 동물까지 전부 피해를 당하되 하나님께서 특별히 동물, 식물도 다시 변동을 시키는 때이기 때문에 사람이 남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보호에 있고, 만물도 다 그와 같이 희생시키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오는 재앙이다. 그러므로 이 때는 전부 개조를 시키는 방법에서 오는 재앙이다. 절대적으로 필요치 않는 것은 다 소멸되는 재앙을 가르친 것이다.

(4) 하나님께서 14만 4천명을 들어서 쓰는 것은 순교자의 피값을 갚는 군대로 쓰는 것이니 이 군대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나섰던 짐승의 군대와 거짓 선지를 쳐 없애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싸우는 것이니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네가 그 재앙을 피해 볼 최후 노력을 쓸지라도 백마를 탄 군대 앞에서 다 전멸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악한 사람이 아무리 계교를 꾸며도 도저히 변화성도 앞에서 당할 수 없이 전부 전멸되고 마는 것을 아마겟돈 전쟁이라 하는 것이다.

7. 새 시대의 형편

(1) 새 시대라는 것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인간의 본질과 또는 근본적인 생활의 축복, 근본적인 만물의 본질을 다시 찾아 놓는 것을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3대 요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a) 그 영을 마귀의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을 주는 구원이다. 사람이 범죄하므로 죄의 권세를 잡은 마귀의 사망의 법에서 그 영이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서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을 믿음으로, 믿는 즉시에 그 영이 사망의 세력을 벗어나는 것을 속죄 구령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피의 공로가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b)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시에 변화성도로 받는 구속이 있으니 이것은 속죄구령의 진리와는 다른 법이다. 이미 속죄를 받은 영이 자라서 용사가 되어 결말에 사단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하는 자리에 도달하는 자만이 받는 구속이다. 첫째 아담은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므로 그 육체가 죽었지만 이 변화성도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의 영과 싸우되 말씀의 칼로 싸워 이긴 승리자인 동시에 왕권을 부여받고 그 몸이 죽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구원이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을 권세 있게 증거하는 증거하는 종들이 받는 구원이다.
c) 온 세계가 하루아침에 불로 살라지는 진노의 심판이 나릴 적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백성된 자격으로 그 몸이 살아서 새 시대 가는 구원이 있으니 이것을 가르쳐서 종족적인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변화성도가 예언한 말씀이 즉, 이 구원을 목적하고 환난 중에서 증거하는 것이다. 이 구원은 모든 선지가 다 하나같이 목적하고 말한 구원이 다 이것을 가르쳐서 새 시대를 이루는 완전한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2) 새 시대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a) 첫째로 족속의 축복이 있다.
이 족속이라는 것은 왕권을 가지고 변화성도가 된 (자들의) 자손이 받는 축복이다. 변화성도의 자격으로 수많은 생명을 환난에서 구출시키는 자의 자손은 특별히 새 시대의 축복을 받되 왕족적인 큰 축복을 받아 새 시대의 축복만이 아니라 무궁세계의 축복도 받도록 하는 특별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계명의 말씀에 의하여 수천대까지 복을 준다는 말씀은 무궁세계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왕족이 아니요 특별한 사명자의 전도에 따라서 아무런 공로 없는 자들이 예비처를 거쳐 새 시대 들어간 족속(왕족 아닌 백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족속이라는 것은 공로자의 피의 계통이 아니고 이방적인 혈족이지만 그 때 전도를 받고 순종한 조건으로 받게 된 종족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족속은 완전히 축복 받은 족속이 아니다. 이 족속 중에서 다시 미혹을 받는 무리가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년왕국 말기에 마귀를 다시 놓아줄 때 될 일이다.
b) 생활의 축복
생활에 대한 형편은 절대적인 자유의 생활이다. 이 자유라는 것은 죄가 없는 시대에서 있는 자유이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맑은 양심, 사상, 정신에서 움직이는 자유다. 어떤 사람의 구속을 받아 억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 때 모든 사람은 이상적인 신성한 자유를 가진 사회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는 축복 속에서 슬픔과 탄식이 있을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이사야 35:10, 51:11). 사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또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피해를 주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누리는 자유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 신이신 동시에 인생에게 진정한 자유를 소유하도록 하는 축복된 생활이라 하는 것이다.
c) 이 때의 사람의 식탁이라는 것은 절대 영양이 부족한 식물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열매가 다 축복의 열매로 사람에게 공급되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늙거나 병들거나 하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이 때에 사람들은 그 몸이 저주받고 있는 생활이니 그 몸에 피곤이나 괴로운 증세라는 것은 추호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에 식물이라는 것은 사람을 극도로 아름답게 이루어 놓는 가치를 발휘해 주는 것이다.
d) 사업의 축복
이 때의 사업은 영적인 사업보다도 축복 받은 사업에서 피차 교제를 이루는 목적에서 둔 것 외에는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교제라는 것은 최고의 미를 이루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건설적인 사업이니 내냐 네냐 하는 영리적인 욕망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같이 미의 생활을 하자는 목적에서 모든 사업을 하되 공동적인 활동 결합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e) 교육의 축복
그 시대 교육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지혜와 지식의 신이 같이하는 역사가 있는 동시에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 다음과 같이 교육한다.
(a) 역사를 배워 주는 교육이 있다.
이 역사라는 것은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의 역사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은 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마음과 더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열중을 두게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도 크니 하나님께 예배하자는 정신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자녀를 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마음이 더 강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을 적에 그들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존귀하게 알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만 하는 것만을 목적두라는 교훈이다.
(b) 생활 교제적 교훈이다.
이 때의 죄의 본질은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서로 사랑하며 연락하며 또는 피차의 미의 생활을 이루는 풍속 예법 또는 생활 방법을 중점으로 한다. 이것은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피차에 거룩한 교제, 사랑의 미를 이루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c) 장래를 가르치는 교훈이다.
이 장래라는 것은 앞으로 이 천지는 영구한 시대가 아니고 불로 사름을 당할 것이며 이 시대 말기가 있으니 이 말기에는 다시 과거 역사와 같은 미혹이 올 것이니 이 미혹을 받으면 영원히 멸망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는 지금보다도 더 좋은 신천 신지 무궁세계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보다 건설적인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차에 열심으로 일을 하게 하는 교훈이니 전부가 의의 열매가 있되 더 많아지도록 끔 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다.
(d) 모든 생활 방침을 배워 준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 더 발전이 되고 이런 방법으로 해야 된다는 그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 주는 것이다. 그 때에도 하나님이 준 축복의 물질을 가지고도 더 바로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준다. 그 때 기술이라는 것은 남을 해코자 하는 방법은 없어도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건설적인 재능을 배워 주는 것이다. 그들의 재능은 지금 사람들과 비할 수 없는 재능이 하나님께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억지로 피곤이 넘치는 활동 기술이 아니고 피곤 없는 활동에서 미로 이루어지는 기술이다. 다시 말하면 미술적인 기술이다.

f) 정치적 활동
이 때의 정치라는 것은 의로운 통치를 말한 것이다. 의로운 통치는 다음과 같다.
(a) 국경의 한계를 다시 정한다. 지금 국경이라는 것은 변동이 있지만 그 때의 국경은 변동 없는 한계다. 이 국경이라는 것은 어떤 적대시한 국경이 아니고 왕권을 가진 왕권의 권리적인 한계를 그리스도께서 정해 주실 것이다. 이것은 영광을 누리는 왕권으로 피차에 더 좋은 발전을 위한 것 외에는 아무런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왕권에도 계급을 두되 세계적 통치적인 통치의 권리는 그리스도께 있는 것이요 다음의 그리스도 앞에 국경을 정한 권리에도 그 권리에 따라 국경이 넓고 좁은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세왕권의 계급인 동시에 계급을 따라 되는 한계를 두는 것이다.
(b) 정치 분야에 있어서 나라를 통치하는 왕권도 있고 또는 그 지역을 맡아서 다스리는 권리도 있는 것이다. 이 때의 정치라는 것은 악인을 위한 치리는 필요 없되 의로운 사람으로서 질서 정연하고 방침이 가장 진보적이고 또는 연락의 긴밀한 관계와 사업적인 방면에 조금도 지장이 없도록 해주는 일과 이상적인 사회 건설에 속도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뿐이다.
(c) 화려한 도성을 이루되 그 백성이 살기에 복되고 아름답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창조의 효과를 발휘하는데 전력을 둔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목적이다. 이 천지를 창조할 때 피조물을 통하여 받고자 하는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정치이다.

8. 천년왕국 종말의 형편.
이 때는 지구 땅덩어리에 사람이 안 사는 곳이 없이 편만하게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 때는 기후까지 변천이 되므로 어디나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는 지구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나 하나님의 창조적인 원리의 효과를 발휘시키는 것이다. 이제 종말의 인류가 팽창할 때에 되어지는 일은 다음과 같다.

(1) 극도로 발전된 사회가 온다.
이 발전이라는 것은 땅 위의 피조물된 만물이 전부 효과를 발휘하되 지상에 있는 식물이나 지하에 있는 광물이나 다 그 민족에게 큰 축복으로 쓰여질 적에 황금 보석으로 궁궐을 짓고(이사야 54:12) 변화성도가 왕래하는 정치 요인의 활동 본부와 지부가 되는 것이다. 변화성도의 자격과 부활성도의 자격의 활동은 다같이 동일한 왕권을 가지되 변화성도의 혈손이 세계를 다 정복하되 왕권 받은 종들의 자손이 따로 있고 그의 혈통은 아니로되 이방적인 혈통의 자손이나 그 땅에 들어가는 자는 왕족적인 혈통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족적인 혈통보다 이방적인 혈통의 자손이 더 팽창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할 때에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14)가 권세의 종의 전도를 받고 따르기 때문이다. 비례를 들자면 왕족은 1/100의 수가 되고 그 밖의 족속은 99/100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2) 정치적 발전의 열매라는 것은 많은 사람을 생육 번창시킬 때에 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지도, 또는 양육하여 무궁세계로 들어가기까지 지상통치를 하는 것이다.
이 통치라는 것은 불가불 변화성도와 부활성도가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왕권 받은 자격으로서 책임적인 통치에 불과하다. 왕권의 영광은 천년왕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무궁세계인 새 예루살렘에 가서 완전히 누리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이방족이 미혹을 받고 멸망할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는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적인 섭리가 이루어지는데 불과한 지상왕국이다.

(3) 큰 미혹이 와야 할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a)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시니 그 시대에 확장된 민족을 한번 마귀로서 까불어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궁세계로 들어갈 자격은 시험을 통과한 자라야 되기 때문이다. 만일 시험이 없이 한다면 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라는 것은 시험을 해도 이기는 것을 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b)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신천 신지의 영원한 천국이니 완전한 것을 소유할 자격은 3 가지로 되어 있다.
첫째 :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서 영혼이 구원받는 자와
둘째 : 환난에서 말세 증인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고 영,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자와
셋째 : 천년왕국 말기에 마귀의 미혹이 있어도 미혹을 받지 않는 자와 아울러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국이라는 것은 완전한 영생으로서 다시 사망이 없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4) 미혹을 받고 안 받은 자의 형편은 다음과 같다.
변화성도의 왕족의 피의 계통은 절대 미혹을 당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적인 혈통은 다수가 미혹을 당하게 된다. 이 미혹이라는 것은 성도의 왕권을 대항하는 반항심을 가르친 것이다. 마치 고라당이 모세를 대항하듯이 왕권 가진 성도의 은공을 모르고 불평을 두고 자기네가 왕권을 세워 보려는 야심적인 행동이 나올 때 그 때에 하나님은 성도의 왕권을 권리로 맡겼기 때문에 그 정권을 무시하는 자를 무조건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족들은 미혹을 당치 않는 것이다.

(5) 이 때의 혼란이라는 것은 기독교 종말의 혼란과 같다.
기독교 종말에 미혹을 받은 신자들이 참된 변화성도들을 대항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중생을 받았다 하더라도 말세 증인의 권세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몽땅 죽은 것과 같이 그 시대에도 성도들의 왕권을 대항하는 미혹 받은 사람은 몽땅 대 심판날에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6) 이 때의 심판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a) 불이 내려서 지구를 태우는 동시에 미혹을 받아서 성도의 왕권을 대항하는 자는 그 불에 전부 소멸을 받는 것이다.
b) 행위심판이 있으니 그것은 행한 데 따라서 갚아 주는 보응을 말한 것이다. 이 행위심판이라는 것은 왕권 받은 자 외에는 다 거치게 되는 것이다.

(7) 심판과 부활
a) 사람의 부활이라는 것은 왕권의 부활도 있고 시민권의 부활도 있고 멸망자의 부활도 있다. 그러므로 왕권의 부활은 1차 부활이니 처음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은혜시대의 종으로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불타는 심정에서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순교적인 생활을 하던 무리들이 받는 부활이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 또는 변화성도와는 다르다. 이것을 1차 부활이라 하는 것이다.
b) 심판시의 생명의 부활사망의 부활이 있으니 생명의 부활이라는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받는 것이다. 이 생명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로서 아담 때부터 심판기까지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 심판록이 있으니 여기에는 지옥 갈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니 이것도 대 심판까지 다 포함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부활을 받아서 영생할 자나 사망의 부활을 받아서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나 다 같이 부활을 받게 된다. 부활이라는 것은 물체 속에 잠긴 질이 전부 뽑혀서 어느 사람의 몸에든지 지구에 잠겨 있는 질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다.
c) 부활 받은 자의 행위에 따른 보응은 다음과 같다.
(a)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했으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온 사람의 받는 보응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 속에서 옳게 살아보려는 양심에서 그 시대에 법에 따라서 처리하는 것이니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사는 생활에서 양심적인 생활을 한 자라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 힘이 그들에게 미쳐지는 일도 있다. 십자가라는 것은 아담 때부터 재림 시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에게는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둘째 아담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탄생했으니 이 타락이라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사망이 온 타락이다. 그러므로 사망에서 부활을 받게 될 때에 영혼이 죽는 죄를 범한 자 외에는 다 생명의 부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죽는 죄라는 것은 고의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해치려는 죄는 영혼이 죽는 죄인 것이다. 아무리 십자가의 복음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어떻게 하든지 옳은 정의를 따라 보려는 사람들이 약간의 실수가 있다 하여도 십자가의 피는 전부 미쳐지는 것이다.
(b) 그 영이 마귀에게 지배를 받고 악질적인 행동을 하는 무리는 신, 불신을 막론하고 그 영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에 있을 때 받지 못해서 확실한 진리를 몰랐다 하더라도 그 영이 예수님께 속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십자가의 보혈의 의가 그 영에게 해당되므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신자라 하여도 종말에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 짐승의 표를 받아 예언의 말씀을 대항하는 자는 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속하는 영에게는 행한 대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보상에도 왕권의 보상이 있고 시민권으로 받는 보상도 있다.

9. 신천 신지(천국)의 형편

신천 신지라는 것은 물질계를 가르친 것이 아니고 물질계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전혀 없어지고 영체의 사람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영원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고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여 인격을 훈련하되 간교한 사단을 두어서 시험을 하여보고 승리한 자로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것을 신천 신지라 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은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내고 사람은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해서 완전한 영체를 이루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영생할 나라에 만물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신천 신지의 모든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 나라의 기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12진주 보석으로 쌓은 도성이 있다.
이것은 최고의 왕권을 가질 사람에게 분깃이 되는 것이다. 이 도성은 최고의 왕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동시에 그 안에는 완전한 조직을 이룬 왕국이 배포된 것이다.

(2) 이 도성에 조직은 행위 보상에 따라 계급은 정하여 있다.
그러므로 같은 도성이지만 나라의 조직을 이루었으므로 완전한 정치의 영원한 조직이다. 예를 든다면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조직에 비할 수 있으나 이것은 거룩한 왕국에 변동이 없는 완전한 조직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이 도성은 완전한 것으로서 이룬 도성이니 인간의 물질을 초월한 영원한 것으로서 이루어진 도성이다.
다시 말하면 영체의 사람이 영원히 복을 누릴 처소가 된다. 이 도성에는 절대적인 불완전한 것은 있을 수 없고 만물이 전부가 완전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체의 사람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물이다.

(4) 그 나라의 법도
이 나라의 법도라는 것은 전부가 계급을 정하여서 사랑의 교제적인 법도를 세운 것이다. 교제적 법도를 가르치는 것은 아름다운 미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최고의 왕권을 가진 사람을 옹호하는 반열이 있고, 다음에는 각 부서가 조직되어 있는데 그 부서라는 것은 행위 보상에 따라 반열로 나뉘어져 있다. 반열이 높으면 그 반열의 최고자의 영광을 옹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니 그 영광이라는 것은 완전한 안식의 복락의 만족을 누리는데 필요한 조직적인 반열이다. 이 반열이라는 것은 애호 협력에 미를 이루는 반열이니 화창한 노래를 부르는데도 반열이 있고, 아름다운 생활의 가치를 이루는데도 반열이 있고, 또는 피차에 연락 교섭의 필요에 따라 조직이 있다. 이 반열의 법도는 혼선이 이루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 영광의 가치를 발휘시키고 생활에 쾌락한 만족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가장 고상한 지위에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데, 전부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통일적이다. 그 영광을 누리는 반열의 계급은 차이가 있다. 반열을 이루는데 그 보상에 따라서 계급적인 반열이 있다. 계급적 반열이라는 것은 최고의 직위를 가진 자가 반열의 주재 아래서 움직이되 반열에 따라 계급에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억지로 구속시키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최고의 쾌락을 이루는 만족과 기쁨을 이루기 위한 것뿐이다.

(5) 생활 제도
이 생활 제도라는 것은 전부가 완전한 영체의 사람으로 생명과 생명수를 사용하되 이것은 아름다운 교제에 넘치는 쾌락을 이루는 것에서 이루는 동시에 영생의 생명과와 생명수를 마시는 것이다. 생활의 방침은 반열적인 제도에 의하여 있되 서로 만족한 미를 이루기 위한 데서 필요한 것뿐이다. 하나님은 미의 하나님이시니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독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창조의 원리이니 여기 생활이라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완전한 사랑으로서 서로 화답하며 교제하며 영광스러운 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혼선이 없고 영원히 동거 동락하는 반열이 된다. 이 영체의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몸인 동시에 완전한 교제완전한 쾌락의 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생활에는 생육 번창은 필요 없되 서로 완전한 기쁨과 완전한 평강을 누리는 일을 서로 협력하는 사랑의 세계다.

(6) 왕권의 배치는 다음과 같다.
이 왕권이라는 것은 어떤 남을 구속시키는 권리를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도록 하는 것 뿐이니 모든 영광이 왕권을 통하여서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는 것은 일반이지만 영광의 가치를 누리는 것은 계급이 있되 왕권의 영광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다음가는 지위의 영광을 말한 것이니 그 위치에 모든 설비가 왕권 가진 사람에게 계급을 따라 있게 된다. 여기서 누리는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 위치에 따라서 그 만큼 영광되리만큼 설비해 놓은 것이니 세상의 무엇으로 비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의 위치를 하나님께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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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4장 -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교회의 죄


성경 : 예레미야 14장
제목 :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교회의 죄

여호야김 왕 때 임한 극심한 가뭄을 놓고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삼중 중보기도를 드리게 된다. 깊은 죄병을 앓고 있던 유다 동포, 재앙을 만나도 회개는커녕 원망과 절규밖에 할 줄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것이다. 뜨거운 동족애가 담긴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는 유다 백성들의 깊은 죄악상과는 실로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백성을 돌이킬 소망이 없음을 알아차린 예레미야는 주의 거룩한 이름과 신실한 언약에 매달렸다. 참된 기도란 인간적 소망이나 생각을 뒤로하고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하여 호소하고 탄원하는 간구이다. 이러한 기도를 올릴 자는 먼저 자신부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구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한재(旱災)의 참상 : 1~6

『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옛날부터 유다 땅에는 한재가 많았다(창세기 12:10, 26:1~, 42:1~2. 신명기 11:10~17, 28:23~24. 룻기 1:1~. 사무엘하 21:1~. 열왕기상 8:37. 학개서 1:9~11). 한재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죄악을 범할 때 임하던 징벌이다(레위기 26:19. 신명 11:17, 28:23). 구약 때는 모든 것을 육적으로 계시한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본문의 재앙을 영적, 육적 양면으로 깨달아야 한다. 종말의 교회가 예수의 계시를 무시하면 예배시간에 말씀의 이슬과 성령의 단비가 끊쳐지게 되므로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하여 자기도 모르게 이방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된다(마태복음 24:49. 하박국 2:5). 한재 재앙은 종종 '땅이 슬퍼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예레미야 4:28, 12:4. 이사야 3:26), 실은 죄통에 빠져있는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이며, 작게는 공의의 심판을 당할 때 곤비케 될 백성 자신들의 슬픔이기도 하다.

『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

예레미야서는 현재의 '기독교'를 책망하는 예언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구약백성'의 구원을 목적하여 주신 예언도 아니요, '종말의 불신자'들을 책망하신 내용도 아니다. 애통할 자도 교회요, 한재로 부르짖게 될 자도 종말의 교회임을 계시한 예언이다. 화려한 교회와 그에 딸린 부속건물들! 물량주의와 교세확장이 어느 새 목회성공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 교회 안에 부자 교인들이 점점 증가하고 세상 성공을 위하여 때마다 모여 예수님께 축복을 간구하는 모습! 세상에서의 출세가 거리낌없이 '간증'이란 이름으로 자랑되어지는 현실!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부르짖음'으로 변할 것이다. "슬퍼하며... 곤비하여... 애통하니"라는 구절은 육적 한재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묘사해주는 표현이나 종말의 성취 때에는 부패한 교회의 성도들이 당할 3대 화의 고통이 된다. 이렇게 백성이 슬퍼하며 놀랄 재앙을 당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 역시 심히 상하여 슬픔 중에 놀라게 된다(예레미야 8:21). 이런 비참한 상황은 '얼굴이 숯보다 검게 된 것'으로 표현되기도 했다(예레미야애가 4:8~9).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재앙으로 인한 부르짖음인데, 회개의 기회를 한없이 제공해 주시며 기다리신 끝에 내려진 재앙이므로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라 선포한 대로 이 부르짖음은 무시된다(예레미야 11:11). 종말에도 재앙의 장소인 '후 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은 아무리 회개해본들 하나님은 그들의 육체를 짐승 칼에 붙여 버리신다.

『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6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

귀인들이 구하여도 "물을 구하지 못하고 빈 그릇으로 돌아오는" 일이나(3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 머리를 가리움"은(4절) 도움을 원하나 응답받을 수 없는 절망의 상태를 뜻한다. 인간의 죄로 인해 짐승들까지 기갈을 당하며 "헐떡이는 모습", 새끼에 대한 애착심이 여타 동물보다 뛰어난 "암사슴"이 풀을 찾기에 갈급하여 자기의 "새끼를 내어 버리는" 모습은 참상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한가를 뛰어나게 묘사해 준다. "시랑"과 "들나귀"까지도 풀이 없어 헐떡이다가 시력이 쇠한 모습으로 나타남은 생명 가진 피조물 중에 한재의 화가 미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보여주는 육적 시대에 이러하였다면 이 예언이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되어 이루어질 때, 그 화가 얼마나 극심한 재앙으로 확대되어 나타나게 될 지 묵상해 보라! 구약 백성에게 임한 한재의 고통이 종말의 기독교 성도들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 비극의 절정이 바로 계시록 13장의 세계이다.

계시록과 모든 선지자가 받은 묵시는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예수님의 재림 때 전 세계 교회를 배경으로 다시금 성취되도록 작정돼 있다(이사야 46:10).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받으신 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셨는데, 요한에게 이 작은 책 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전 세계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계 10:7~11). 종말에는 육체적 한재와 기근이 더 비참한 모양으로 임하되 그에 앞서 먼저 영적 기근이 찾아오리라고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다.

아모스 8:11~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양식)을 먹지 않던 미련한 자들이 재앙이 임할 기미를 깨닫고 뒤늦게 말씀을 구하러 이리저리 헤매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양 가련할 뿐 그 비틀거림의 끝은 북방 칼에 처절히 쓰러지는 것이다(마태복음 24:45~50). 옛날 유대 민족이 모든 선지자의 예언을 버리고 우상 국가와 타협함으로써 심판 받았듯이, 오늘날의 영적 이스라엘도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결코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새 언약(렘 31:31)의 피는 믿으면서, 협상반대와 멸공을 외치며 다가올 천년안식을 준비하라는 새 일 교훈(이사야 42:9, 43:1~19, 48:6~, 예레미야 31:21~22)은 멸시하는 자들이 위와 같은 재앙으로 떨어지게 된다. 새 일 반대가 큰 죄라는 뜻이다. 심판의 대상자인 공산국가와 협상하며 양 떼에게 쑥물을 먹이고 있는 W.C.C.와 K.N.C.C.의 가르침은 오메가적 미혹인데, 많은 양 떼들이 W.C.C.의 쑥물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있으므로 쑥물을 먹이는 목자나 무분별하게 받아먹는 양 떼들이나(예레미야 5:30~31) 모두가 대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계시록 17장. 18장. 19장). 이런 일을 당하지 말라며 '새 일'을 증거하는 제단은 스룹바벨 제단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수인데 교회가 "물이 없는 우물"(3절)이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 스스로가 웅덩이를 팠기 때문이다(=인본주의). 이런 웅덩이는 곧 물 없는 우물이 되고 만다(예레미야 2:13). 예레미야 2:26절에 웅덩이를 판 지도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 수치는 영영히 잊지 못할 수욕이라고 예레미야 20:10절에서 밝혀 주셨다.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짐"(4절)은 하늘이 철과 같이 되고 땅이 놋과 같이 되어(레위기 26:19) 땅이 아무런 산물도 내지 못함을 뜻한 표현이다(레위기 26:20). 신명기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신명기에서는 불순종한 백성의 온 땅은 유황이 되고 만다고 하셨다(신명기 29:23). 인간의 죄로 인해 자연계나 가축까지 고통 받게 되는 것은 이미 창세기 3:17절에서 예언하신 바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 노아가 저주받은 세상을 뒤엎고 새출발시키시는 데 있어 하나의 의로운 씨가 되었듯이,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을 믿는 것이 종말 기독교의 최후의 소망이다.

• 창세기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 계시록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이와 같이 죄로 인한 저주의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예수 안에 있되 '두 가지' 길로 약속되어 있다.

하나는 새 언약(유월절)으로서, 곧 예수님의 보혈이다(이사야 42:1~4, 53:1~12, 49:8上, 61:1~2上, 예레미야 31:31~34).
다른 하나는 새 일(초막절)로서, 곧 예수님의 피로 산 '하나님의 심판책'이다(다니엘 7:10~, 계시록 5:1~10, 10:7~11, 11:1~12, 22:18~19).

이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여 증거를 마치는 길만이 영, 육이 살아 저주가 거치운 아름다운 새 시대(에덴)에 들어가는 길이다. 만일 피로 산 책을 가감하고 우상과 타협하면 육체는 노아 때같이 죽고 그 영까지 천년간 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베드로전서 3:19~20). 구약은 곧 종말이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기 때문이다(이사야 46:11. 마태복음 24:37).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양의 피로 제사하던 의로운 셋의 계통이라도 홍수 심판기를 당해 육체가 사망할 때 그 영까지 옥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종말을 향한 중요한 교훈이다. 오늘날도 영혼구원 얻은 교회가 '중생'으로 말미암은 '천국 시민권'만을 주장하며 교만할 이유가 없다. 새 언약(천국복음)으로 인한 영혼구원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백보좌 심판 때 영생의 부활로 나올 조건일 뿐이요, 환난을 피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가 사망 없는 몸으로 천년을 살 조건은 '영원한 복음' 곧 '새 일 교훈'의 순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로 산 예언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은 인간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의 역사로만 이루어진다 하셨다(스가랴 4:6). 아무리 거듭난 성도라 하더라도 원죄의 타락이 뼛골 속에 박혀 있으므로 피로 산 말씀에 한마디도 순종할 수 없는 것은 사도요한과 다니엘이 재림주 앞에서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다나엘 8:17~18, 10:8~10, 15~18. 계시록 1:17).

2. 예레미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 7~12

『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

한재의 참상으로 인한 선지자의 기도이다.

① 선지자는 백성을 대표하여 죄를 자복할 때 민족적 죄악에 대해 연대적 책임의식을 느끼며 "우리"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환난을 당한 민족의 목자가 갖춰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② 그는 하나님께 빌기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하였다(7절). "주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그가 자비롭고 은혜로운 구원자이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재앙으로 벌하신다 하여 그의 이름에 오욕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나, 다만 한없는 긍휼을 다시 한 번 청하여 용서해주실 것을 청하는 죄인의 마음인 것이다. 8절의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란 성호(聖號)가 위 ①번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③ 8~9절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데, 왜 이스라엘에게 "거류하는 자"나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과 같이, 또 "구원치 못하는 용사"같이 방관만 하고 계시느냐고 탄식하며 기도하는 부분이다(8~9). 이 의문점에 대하여는 10절에서 답하셨다.

④ 하나님께 유대 민족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며 버리지 말아주실 것을 구하고 있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죄악을 지었어도 이 민족이 하나님의 '친 자식'이 아니냐는 호소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남은 백성 곧 경건한 무리들에게만 해당되는 명칭이다. 선지자는 자기 민족의 죄악을 인정할 때 ① 허물이 주 앞에 심히 많다는 것과(사 59:12) ② 죄악 때문에 넘어진다는 것과(호세아 5:5) ③ 민족적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로 나타남을 고백하였다(호세아 7:10) . 선지자는 주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다. ' 우리는 악하나 다만 주의 이름을 인하여 용서하소서'(시편 25:;11)라는 맘으로 말이다. 우리를 용서하시어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시편 115:1)라는 심정으로 심판의 뜻을 돌이켜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 자신들의 타락함이 많음을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다. 백성은 이미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까지 타락되었으므로 예레미야는 더욱 찢어지는 마음으로 중보하고 있다. 백성의 죄목은
. 푸른 나무 아래서 행음한 것(예레미야 3:6).
. 패역이 심한 것(예레미야 5:6).
. 주의 율법을 거역한 것 등으로 나타났다(느헤미야 9:34).

『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백성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조 있는 충성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백성에 대한 확실한 보호를 보장치 않으신다. 백성이 여호와 앞에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우상을 섬기기도 하는 2중적인 태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가 주어진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비례식보응(比例式報應)의 반응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매한 사람들로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시편 18:25~26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이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친 자식(백성들)의 죄악을 확실히 기억하신다(호 8:13. 렘 17:1~4). 또한 원수의 죄악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사무엘상 15:2).

『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

여기서는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주신다.

① 선지자더러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하심.
② 그들의 "금식" 기도를 듣지 않겠다 하심 - 그들의 금식은 외식이고 겸손한 회개와 자책(自責)이 아니며, 또한 정욕(情慾)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금식했다 하는 공로를 세우려 함이니 미신(迷信)적이라는 것이다(스가랴 7:5~14).
③ 그들의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겠다고 하심(사무엘상 15:22).
④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하심(12).

창조주의 발언이 이러하니 이제 유다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레미야 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이렇게 된 이상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듣지 않으신다.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종말을 사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인명, 지명, 국가 등의 모든 재료들은 나를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성경에서 모압은 롯의 딸이 롯과 동침하여 나은 자식, 또는 그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이름이지만, 이것이 예언서에 등장할 때에는 '모압사상'을 가진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즉 모압의 사상을 가진 자가 하나님 백성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16:12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불행하게도 현실 기독교회는 모압의 길을 걷고 있다(이사야 16장 참조).

3.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선고: 13~18

『 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

거짓 선지자들은 교만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평강을 주시리라"는 거짓말을 민중 속에서 외치고 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의 저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시려는 하나님의 악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15~40). 거짓 선지자들의 존재 이유자체가 공의의 심판을 앞두고 백성을 미혹해보기 위함이므로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말을 주시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지 않은 말은 모두가 어두움이다. '복술'도 그러하고 '인간의 마음의 생각'도 그러하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는 반대로 하나님은 그들이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5절).

에덴동산 뱀의 사상은 거짓 선지자 계통을 타고 내려와 오늘날 교회와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사상을 퍼뜨리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평화공존', '탈냉전', '전쟁종식', '사랑', '진리는 하나',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종교적 타이틀들이다. 성경은 분명히 북방환난을 말씀하고 있다(예레미야 1:13, 4:6~, 6:1~, 에스겔 1:4, 38:1~9). 또한 끝까지 전쟁이 있다는 것이다(다니엘 9:26~27). 그러나 종말의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평화공존, 교회일치운동)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예레미야 6:14~15). 이런 자들은 새 일로 강하게 때려부수어야 한다. '평강'은 예수님께만 있으므로 그분만이 줄 수 있다(이사야 9:6. 누가복음 24:36. 요한복음 20:19,21,26. 로마서 16:20. 빌립보서 4:7. 골로세서 3:15. 데살로니가전서 5:23. 히브리서 7:2. 계시록 1:5). 그런데도 1,200만 한국교회가 일치-연합 운동과 평화공존으로만 나아가며 북방의 영적 대적들에게 이용당하고만 있으니 사명자들의 마음은 아프다!

『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

예레미야는 민족을 위하여 밤낮 울고 있다. 참 선지자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인격)이 그의 선지자 된 생활에서 증표로 나타난다. 사단은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고 원하지만, 참 선지자는 민족을 사랑하기에 심판을 보고 원통히 여긴다.

• 예레미야 8: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 예레미야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 시편 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 예레미야 52:6 "그 사월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 스가랴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금식에 대하여...
시드기야 11년 4월 9일에 기근이 임하고 성이 함락(예레미야 39:2~).
시드기야 11년 5월 10일에 성이 불탐(예레미야 52:12~).
시드기야 11년 7월 그다랴 총독의 피살(예레미야 41:1~).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성읍이 포위(예레미야 52:4)>.

• 예레미야애가 1: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 예레미야애가 4:9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이와 같은 참 선지자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종말에도 이 민족과 세계를 위한 참 선지자들의 호소가 하늘에 쌓이고 있다(새일성가 9장).

4. 백성을 대표한 참 선지자의 애소(哀訴) : 19~22

『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

선지자의 기도 내용은

①자기 백성의 참상(종말론적으로는 기독교가 당할 일)을 놓고 애소(哀訴)함이며(19절).
②민족(民族)의 죄를 책임지고 자복 기도함이다(19~21). 다니엘 9:3~23 참조.
③또한 자기 민족에게는 의(義)가 없으므로 하나님 자신의 의(義)를 위하여 돌아보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21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돌아보아 달라는 것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영광의 위"란 하나님이 나타나기로 하신 성전의 장소를 가리킨다.
• 레위기 26:11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 예레미야 3: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 예레미야 17: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언약을 기억하시고"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선지자가 "언약"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이상 거기에 해당하는 축복과 약속을 필경 실현하실 것을 전제로 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실성과 변치 못하는 속성을 붙잡고 늘어지는 배짱있는 기도이다. 백성은 패역하여 주님 말씀을 어겼을 지라도 "이렇게 해주마" 하신 분이 당신이니까 당신 이름 위해서 하나님이 져달라는 것이다. 백성을 보면 축복의 언약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니, 아시고 약속한 당신이 당신 영광 위하여 이루어달라는 것이다.

시편 106:45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백성은 무지하여 범죄하나 선지자는 이렇게 눈물 흘리며 동족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였다. 시대적인 대표 종의 사명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하나님이여 유다 민족을 미워하지 마시옵소서"(21절).

위의 말씀들을 볼 때, 유다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고난의 풀무를 통과한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것이다(스가랴 13:7~9).

• 22절 : "비를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 예레미야 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 예레미야 10:13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 고로 인간은 복종할 따름이다. 복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복종할 기회를 한 번 더 마련해 보고자 우는 자가 선지자이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한 선지자의 중보도 하나님의 뜻은 돌이킬 수 없었다(15장). 백성의 죄악이 하늘까지 사무쳤기 때문이다. 이같이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이 종말의 기독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예언서의 참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예레미야의 신앙노선을 택할 것인가? 거짓된 다수의 '평강노선'을 따라갈 것인가?

21세기 대다수의 교회가 '사랑과 평화', '일치와 연합', '용서와 화해'를 말하며 뱀의 후손들에게까지 '하나 되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우리 제단의 사상은 구시대적 발상이며 시대에 역행하며, 하나님의 뜻과도 반대된다며 멸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평강노선'을 걷는 교회의 백성과 지도자들은 <면할 수 없는 재앙과 벌>로 떨어질 것을 15장에서 예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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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6장 - 새 시대에 들어갈 인격(왕권)


성경:이사야 26:1~21
제목:새 대에 들어갈 인격(왕권)

새 시대는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이니 예수님의 인성을 닮아 신부자격(왕권)을 얻어야 들어갈 수 있다.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격자가 되어야, 자격이 있어야 들어가게 된다. 원래 창조 때에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창조하셨으나 아담이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자유를 향상·진보에 사용치 못하고,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 받은 선악과를 따먹는 타락의 길에 사용하면서부터 인간은 비인격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 이시다. 그래서 타락한 비인격 자에게 완전한 인격자 예수님을 보내시사 택한 자를 접붙여 완전인격의 포도나무 가지를 만드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세 왕권까지 주시려고 피로 산 책까지 주셨다(계시록 5:7).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면 변화체가 되어 완전한 인격자가 된다(사 25:6~8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예언서)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죽음이 없는 자라야 만이 예수님같이 완전한 자라 말할 수 있다.

● 19절『주의 죽은 자들(순교자)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변화성도=계시록 11:1~13)들은 일어나리이다』
이들은 완전한 인격자이다. 전 세계가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 들어갈 때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자들이다. 이들은 오직 주님만 위하여 일하다가 쓰러졌기에 주님께로 완전한 인격을 부여받은 자들이다 (독자분들은 자신이 다음 두 질문 중 어디에 해당하시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① 예수님의 가지가 되어 위로 받고 은사 받고서 환영과 대접과 높임 받는 것을 낙(樂)으로 아십니까?
② 주님을 위하여 성경대로 고생하고 핍박받는 것을 낙(樂)으로 아십니까?

우리의 할 일은 이 생명이 스러지기까지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생기를 받아 구름 타는 길 밖에는 없다(계시록 11:1~12). ☞ 다시 예언의 사명!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함과 같이 은혜 때는 영적으로 장성했으나, 환난 때에는 육체에까지 완전한 인격을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 책의 기록된 구원의 단계이다.

1.심지가 견고한 자:1~4

『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3절:“심지 견고한 자” -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과 뜻을 오직 예언의 말씀에만 두어 어떠한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인격자를 말한다. 아담·하와 같은 자는 왕권을 받을 수가 없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면 먹지 않아야 하는데,이 이것만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 할 때 분수도 모르고 따먹었으니 심지가 견고치 못한 자였다. 우리는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감람나무 가지 끝에 2,3개 4,5개 남는 과실같이 되어야 한다. 환난 중에 남은 자가 되어야만 새 시대에 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

●1절:“그 날”은 앗수르의 환난이 오는 날인데, 한국은 영적인 유다이니 시대적 사명이 크다. 사 24장의 1절 말씀같이 뒤집어엎을 때가 오면, 16절 말씀같이 동방 땅 끝에서부터 “의로우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 하며 외치고 나오는 자들! 이들이 바로 심지가 견고한 자들이다. 이들은 환난 날에 역사할 종들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여 택하신 종들이다(이사야 43:1).

2. 정직한자:5~7

『 5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

정통적인 신앙은 여호수아, 갈렙같이 60만이 쓰러지는 시련·고난·미혹의 역사 속에서도 법궤만 의지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신앙이다. 사울 왕은 정직하지 못했기에 결국은 자살하여 버림을 당했다. 하나님 말씀을 정직하게 믿지 않고, 부득이한 사정을 대며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다가 망했다. 제사는 제사장을 통해 드려야만 하나님이 받으신다. 자신이 왕이므로 무엇이든 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아무리 왕이라도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건 교만이므로 버림을 당한다는 교훈이다. 웃시야 왕도 제사법을 어기다가 저주의 문둥병이 들렸다(역대하 26:19).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제사법을 가르친 레위기 1장 이하와 민수기 18:5~ 이하에 제사는 반드시 레위 지파인 아론의 계통이 맡도록 되어 있는데, 아론 계통이 아닌 자로 제사(예배)를 드리다가 북방에게 다 잡혀갔다.

오늘도 환난에서 양 떼 살려 주라는 주님의 부탁으로 세운 9·24 성전에서 정직하게 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각자 흩어져서 고집을 부리는 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열왕기하 13:1~ 사마리아의 여로보암 왕이 벧엘의 제단에서 제사하다가 저주를 받았다. 사마리아의 제사는 우상을 향한 제사이므로 요시야 왕이 나타나서 종교개혁(우상철폐)을 단행할 것을 예언하셨다.

3.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8~10

『 8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이 교회와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겠다는 것을 보이신 『심판의 다림줄 말씀』만
정직하게 붙잡고 기다려야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있다.
노아는 120년을 방주만 건축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홍수의 환난을 이겼으니 주께서 인자가
다시 올 때는 노아 때와 같으리라고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24:37).

이사야 30:18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종말의 큰 환난에서 승리할 인격은 스승(예수님)의 음성(말씀)을 듣고 기다릴 줄 아는 인격이다.

4. 주만 의지하는 자:11~15

『 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였음이니이다  15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

은혜 때에는 비록 몸은 죽을지라도(히브리서 9:27)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끝까지 싸울 때 순교의 축복을 주셨다. 그러나 종말에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책’만 굳게 잡고서 생명을 아끼지 않고 증거할 때 살아서 새 시대의 왕권을 받아 누리는 축복을 얻게 된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는 산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계시록 11:1~12절에 두 증인이 철장권세 받아 1,260일간 다시 예언하고 3일 반 죽었다가 생기를 받고 공중에서 재림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예언하셨는데, 이 길이야말로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축복의 길이다. 이들은 계시록 14:4절에도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증거되었다.

5. 해산(解産)수고 하는 자:16~17

『 16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

계시록 12:1~5절같이 종말에 완전 인격자가 되려면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形像)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외쳤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도 사도들은 10일간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도로 부르짖었으므로 성령을 받아 세계 민족들에게 영혼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였다. 우리 조상 야곱도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죽기까지 매달리므로 천사가 야곱을 이기지 못할 줄 알고 그의 환도뼈를 쳐 위골시켰다(창세기 32:25). 하나님은 죽기까지 싸워 이긴 야곱에게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이름을 주셨다.

계시록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예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예수의 교훈을 목숨 바쳐 지키지만 예수를 사랑치 않는 자는 겉으로는 하는 체하나 속으로는 순종치 않는다.

미가서 4: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사야 66:7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 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독자 이삭을 낳아 전 세계가 그 자손으로 복을 받게 되었고, 한나도 해산의 수고로 아들 사무엘을 얻었으며 처녀 마리아도 생명을 바쳐 주의 명령에 순종하므로 예수님을 탄생하게 되니 세계 이스라엘이 이로 인해 복을 받았다. 이제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 말세 종들도 예언대로 일곱 머리 10뿔 짐승과 싸워 이기게 될 때 약속한 왕권의 반열(班列)에 들게 된다.

예레미야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 이 예언은 계시록 12:1절과 같은 예언인데 해를 입은 한 여자는 예언서 전체를 햇빛같이 밝히는 애굽 땅 중앙제단이다. 이 제단은 모든 예언서의 연대와 날짜를 짝 맞추어 한 점도 모나거나 주름살 없이 밝혀 증거하는 마지막 사명의 제단이다. 여기서 밝힌 말씀으로 무장된 철장 든 아들들이 나타나 다시 예언의 증거를 마치고 구름 타고 올라가는 것이 바로 계시록 11:3~12절 역사이며 144,000명의 갈 길이다.

기독교는 아들을 낳는 종교이다. 구약 때는 보여주실 때라 육적인 역사를 펴셨지만, 종말에는 그 모든 것을 이면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시니 말씀으로 무장된 영적 아들을 낳아 원수를 소멸시켜야 왕권자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해산 수고하여서 사망을 영원히 벗어버리고 예수님같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자!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다(마태복음 24:19).

창세기 35:9~11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이 약속이 성취된 땅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6. 희생적인 사람:18~19

『 18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

복음을 들고 아골 골짜기에서 원망도 후회도 없이, 오직 양 떼를 살리려는 심정 하나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바친 천천만 성도들의 시체가 티끌에 있으나, 이들은 모두 우리 주님 공중 재림하시면 1차로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일어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자들이다.

순교자 이외에는 2차 부활 때 일어난다(계시록 20:4~6). 세상에서 그럭저럭 주님 이름 팔며 편안하게 대접받고 영광되이 살다가 나이 많아 늙으매 약이나 먹다 죽은 교역자·신자는 이 영광스러운 1차 부활에 참여치 못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주의 죽은 자들”은 왕권 받을 죽음을 죽은 자들이요, “우리의 시체”는 하나님의 인 맞은 144,000명의 변화성도이다. 계시록을 보면 7:2~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라 했는데 여기 하나님의 종들은 이미 은혜 시대에 성령의 인 치심을 받은 자들이다(자녀권세, 요한복음 1:12).

계시록 14:1~5절에서는 하나님의 인(印)을 맞은 144,000명(변화성도)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① 정절이 있는 자며 ②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③ 입에 거짓말이 없고 ④ 흠이 없는 자들이요 ⑤ 땅에서 구속함을 얻어 처음 익은 열매들이라 하셨다.

에베소서 1:13~ 성령의 보증의 인(印)은 영혼 구원의 표이다. 지금 세계 교회 안에는 성령의 인(印)을 맞은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이 중에 정절을 지키고, 어린 양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며, 그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즉 하나님의 인(印)을 맞을 자들은 144,000명뿐이라는 것이다. 신학자들이 말하듯 무슨 “12지파×12,000=144,000 ∴ 이는 완전수요, 구원받을 무수한 이스라엘이요...” 하는 소리는 제 맘대로의 해석이다. 이들은 왕권이 뭔지, 왕 노릇이 뭔지를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다. 엘리야같이, 모세같이, 바울같이 순종한 종들은 그 수가 적었던 귀한 존재들이다. 일반성도와 순교자와는 분명한 차이가 난다. 종말에도 은혜를 전하는 사도와 모든 예언을 빠짐없이 증거하는 144,000은 엄연한 차이를 갖는 것이다. 이들 144,000은 순교자의 동무 종이요, 함께 왕권을 받을 자들이다. 계시록 11:1~12절처럼 증거를 마치고 나서 하늘로 올라갈 자들이다.

고린도전서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 때가 바로 이사야 25:6~8절의 예언이 성취될 때이다. 바울은 소망했으나 보지 못하고 죽었다.

7. 보호를 믿고 순종하는 자가 될 것:20~21

『 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  21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

이 예언은 종족 백성의 구원이다. 이들은 새 시대에서 예수님과 왕권 받은 자의 통치를 받으며 그들과 더불어 새 땅의 안식을 누리되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완전히 이루게 된다.

다니엘 12장에서는 환난의 순서를 계시하셨는데 :11절~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후 3년 반)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1290-1260=30, 이 30일은 계시록 16:1~11절까지의 예언이 실현될 때로서 다섯 개의 대접재앙이 쏟아지는 기간),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290일에서 1,335일까지는 45일로서, 이 기간은 6째, 7째 대접을 쏟는 기간이다. 즉 유브라데 강가에서 아마겟돈 큰 전쟁이 벌어지는 기간이다. 이 때가 바로 악을 제하고 선을 택하는 시기이다(이사야 7:15, 시편 34:14).

"다니엘아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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