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31일 토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90831_D_예레미야01장 말씀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90831_D_예레미야01장
[토 새벽 설교] 예레미야 01장 : 하나님의 작정과 선지자의 권세 2019/08/31 Saturday Dawn

2015년 5월 21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1장
제 목 : 하나님의 작정과 선지자의 권세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친 예언의 골자는 유다 나라가 부패(腐敗)하여 끝까지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않게 되면 북방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지내고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였다.

계시록 10:7~1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시고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셨으니, 우리는 종말에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주 재림 때에 복 있는 자가 될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선민으로 택하신 구약 교회가 당한 비참한 멸망은 당대의 거민에게는 역사이자 현실이었지만, 신약 교회의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 된다. 유다 왕국의 종말은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사도행전 20:28), 즉 은혜로 다시 택한 교회의 종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그림자)이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0:1). 독자들께서는 예레미야 1장부터 52장까지 읽어나가실 때에 "이것이 곧 내가 사는 21세기 기독교의 모습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것이다(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제 우리가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을 이 시대에 가감없이 다시 예언(계시록 10:11)하면 계시록 11:1~12절같이 공중에서 재림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

1.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것 : 1~5

『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잃어버린 에덴 낙원을 다시 찾아 주시려고 하나님은 만대를 명정하셨고(이사야 41:4), 그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지ㆍ예정 속에서 시대마다 종들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오늘날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신다(예레미야 23:20, 30:24).

①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요한복음 1:17), 그러나 율법은 택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갈라디아서 3:24).

②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 버림돌 역사로서(마태복음 21:42) 유월절 양의 사명 때문에 혹독한 십자가에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다(이사야 53:5~6). 예수님이 택하신 12사도가 천국복음을 전파하여(마태복음 24:14) 이 복음이 동방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다.

③ 이제 동방 땅 끝에서 나가는 '영원한 복음' 곧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는 심판의 역사는 스룹바벨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인권(印權)과 머릿돌로 하신다(학개서 2:23. 스가랴 4:7~10).

계시록 7:1~8절은 "구원의 목록" 중 왕권자들에 대해 계시하셨는데, 영적 이스라엘 중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 144,000명을 뽑아내고 그들이 말씀권세로 세계를 휘저어 흰무리를 이끌어 내면 '짐승'이 그들을 미워하여 그들과 싸워 이겨 그들을 죽일 터인데(계시록 11:7 / 3일 반 쓰러짐),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올리시려(휴거) 공중에 재림하신다(계시록 11:1~12).

2. 선지자는 심지(心志)가 겸비(謙卑)할 것 : 6

『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

하나님의 택한 종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법이다.

• 출애굽기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사사기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이사야 6:5 "그 때에 내(이사야)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 아모스 7:2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참 종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연약성을 깨닫고 겸비했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은 모름지기 주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법이니 겸비(謙卑)는 하나님 집의 일을 맡은 종이 지녀야 할 첫째가는 조건이 된다. 하나님의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말고 주인의 마음으로 가지고 일해야 한다.

3. 선지자는 담대히 전할 것 : 7~8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데 그 이상의 안전보장(安全保障)이 어디 있겠는가? 선지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을 위한 종이니 자신의 생각,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실상 무용지물이다. 만일 종이 주인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주인의 뜻에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일한다면 그 종은 주인의 일을 망쳐 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법에 인본주의를 섞어 말씀을 변질시키는 모든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 할 수 있다(예레미야 6:13~15, 27:9~10, 15~18).

역사를 볼 때 열방의 선지자는 언제나 한 두 명뿐이고 그 나머지 다수는 항상 거짓 선지자의 편이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계시록 10:10~11)에 절대 순종만 하여 결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린도전서 4:6. 마태복음 26:24).

4. 선지자는 특권이 있음 : 9~10

『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

물이 못 당하고 불이 못 당하였던 하나님의 권세는 종말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새일성가 26장 4절)

이사야 43장에서도 말세 종의 특권을 예언하셨다.

① 물과 불이 못 당하는 권세(출애굽기 14장. 다니엘 3장).
② 사람을 지배하는 권세(이사야 43:3~7).
③ 열방 민족을 깨우치는 권세(이사야 43:8~13).
④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이사야 43:14~18).
⑤ 새 땅을 정복하는 권세(이사야 43:19~21)
⑥ 절대적인 용서를 받게 되는 특권(이사야 43:22~26).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영광을 위하여 만대를 명정하셨으며, 그 명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시대 시대마다 들어쓰시는 종들에게는 '특별한 권세'를 맡기신다. 어느 시대의 종이든지 그 종은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요한복음 4:24)의 대행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세 준 그 종은 그 시대의 기준이 됨과 동시에 그 종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대역죄인이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연약한 인간이 마귀와 맞서 그 시대의 기준이 되는 법을 외치려면 위로부터 오는 특권을 받지 않고는 일할 수 없다.

미디안의 패배와 앗수르 군대 185,000명의 하룻밤 멸망(이사야 37:36)은 종말에 태산같은 적기독 세력이 스룹바벨 머릿돌 앞에서 멸망할 것을 앞당겨 보여준 것이다(스가랴 4:7)

새 일은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이다! 말세 종들은 일어나라!  권리행사 큼이로다 ! 70장 2절

예레미야는 유다를 중심으로 하여 흩어져 있는 이방 여러 국가들의 멸망까지 예언해야 할 큰 사명자이므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파괴적인 사명자'라고 역설(力說)하셨다. 하나님께서 '열국 심판'을 작정하시고 이 큰 뜻을 예레미야에게 먼저 보이신 것은 예레미야가 자신의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사명자의 특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말세에 일어날 종들의 특권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이사야 55:8).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아이와 같은 자들을 택하시어 강하고 힘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므로(고린도전서 1:19~20. ☞ 마태복음 11:25, 요한복음 7:46, 야고보서 2:5) 부름받은 종은 그 소명의 첫 순간에 하늘의 뜻을 이해하기가 힘든 법이다.

그러므로 종이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할 점은 자기의 힘으로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참 종은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 첫 마음을 떠올리며 자기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힘이 없음을 생각하고 두려워함이 옳다(6절). 그것이 겸비이다. 종이란 하나님의 일에 순종키 위해 부르심을 입었지, 그 일을 책임지라고 선택된 것은 아니므로 종에게는 '겸손'과 '순종'만이 요구되어지는 덕목의 전부가 된다. 종에게는 아무런 주권이 없음을 망각지 말자.

그러나 옛날부터 지금까지 거짓 종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처신해 왔다. 우리는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할 따름이다. 참 종이라면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복종케 된다(스가랴 4:6~). 아멘!

5. 살구나무와 북방환난의 이상을 봄 : 11~16

『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

"살구나무"는 '깨어 있다'라는 뜻의 히브리 원어 '솨케드'와 같은 음운을 지닌다. 하나님의 말씀은 깨어 있어서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실현되고야 만다. 이는 종말의 심판도 예레미야서대로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을 사명자들은 깨달아 알라는 뜻이다. 민수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지팡이 하나씩을 취해 증거궤 앞에 두게 하시며,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라고 말씀하셨다(17:5).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린 것은(8절) 그에게 제사장 사명이 있다는 뜻이요, 이 표징대로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의 대제사장으로 오시어 유월절기를 이루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로 본문의 살구나무는 모든 언약의 말씀을 어김없이 이루시는 예수님이시요, 가지는 그 종 선지자 예레미야를 뜻한다. 종말론적으로 볼 때는 순금등대 촛대역사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출애굽기 25:31~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라 하실 때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명하셨다. 이는 종말에 흑암을 물리치는 순금등대 촛대역사가 기록된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역사"임을 의미한다(스가랴 4:6).

야곱은 양 떼를 물가로 인도하여 살구나무, 버드나무, 신풍나무 그늘을 보게 하여 얼룩무늬 양을 출산케 하였는데(창세기 30:37~), 이로 인해 야곱은 양 떼가 심히 풍부해짐과 동시에 많은 약대, 나귀와 더불어 다수의 노비까지 거느린 부자가 되었다(창세기 30:37~43). 여기서 살구나무는 전술한 바대로 '예수님'을 뜻하며, 버드나무는 '성부'로서 시냇가에 심기워진 생수의 말씀을(시편 1:1~3), 신풍나무(플라타너스)는 껍데기가 벗겨지는 나무이니 우리의 구습(옛사람)을 벗겨주시는 성령을 상징한다(시편 1:1~3).

『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

"끓는 가마"는 바벨론 북방환난을 비유함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만 내리면 속히 유다를 치러 올 태세를 묵시적 예언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사야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북방은 우상 숭배하는 선민(교회)을 징치할 몽둥이다(이사야 10:5). 구약의 교회로 대표되는 솔로몬 성전은 70년간 포로살이의 징계를 받아야 했는데(25:11, 29:10), 그 이유는 우상숭배에 있었다. 우상을 통해 들어오는 간교한 사단의 미혹(공격)에 나라 전체가 쓰러진 것이다. 마치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고 넘어져 에덴 전체를 망가뜨렸듯이, 구약 교회도 그렇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1천번제를 드렸으며, 겸손한 기도를 올렸던 솔로몬! 그가 지혜를 받아 건축한 솔로몬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넘치도록 충만하였었건만(열왕기상 8:11), 이 성전 안에 우상이 들어서므로 그토록 비참히 훼파될 줄을 그 누가 알았던가! 택함받은 민족사 안에 이렇게 우상숭배로 무너진 화려한 성전이 있었던 것은, 신약 교회의 종말도 그와 같다는 것을 미리 보이신 것이다(히브리서 10:1).

에덴 때 그러했고, 선지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종말에도 뱀이 들어쓰는 짐승국가인 7째머리(북방 공산권)에서 「평화공존」이라는 궤휼이 나타날 때 이를 분별치 못하고 미혹되어 쓰러진 W.C.C.와 K.N.C.C.라는 개신교 세력은 이방종교에도 진리의 빛이 깃들여 있다고 말하므로(이는 기독교의 유일신론과 요한복음 14:6절의 진리를 허물기 위한 마귀의 물꼬트기 작업이다) 실상 타 종교를 통한 구원을 인정했다. 로마가톨릭 역시 마리아의 위상을 하늘 모후(황후)의 위치까지 격상시켜 놓고, 성체(성찬식)를 미사의 핵심에 위치해 놓으므로 고대의 앗세라(아스다롯) 여신 및 태양신 숭배 사상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기독교 안에 이 같은 두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은 예수를 믿는 종말의 교회가 그 성전 안에까지 우상(쑥물)을 받아들였음을 입증해 준다(에스겔 8장). 우리는 이 거대한 두 세력이 장차 어떻게 교류하며 어떤 형태로 연합해 갈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계시록 17:3~6).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 솔로몬 성전의 종말이, 어찌 21세기의 기독교 현실의 예표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구약은 (무조건) 종말을 미리 보여 준 사건이다(이사야 46:10, 48:3上). 또 전에 기록한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하셨으니(로마서 15:4) 예레미야 1장의 북방환난은 우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영혼구원 때의 우상은 내적인 탐심이지만(골로세서 3:5), 종말 육체구원 때의 (정치적) 우상은 다니엘 2장에 나온 신상의 발가락 부분, 곧 북방 공산주의 정권(소련=철)과 남방 자본주의 정권(미국=진흙)이다. 이 두 세력은 한 밥상에 앉아 거짓말을 하다가(다니엘 11:27) 남방 왕이 찌르면 북방 왕이 많은 병거를 데리고 중동(Middle East)과 동북아(North East)로 내려올 것인데, 결과는 남방 왕의 완패다(에스겔 29:19~20, 30:21~26). 남방 왕은 이 사실도 모른 채 현재 열심히 찌를 채비(差備)를 갖추고 있다. 3차대전은 반드시 '중동'과, '극동'이라 불리우는 동북아의 난제들이 곪아 터지므로 발생한다. 그러나 극동에서 먼저 터진다. 근거는 겔 21:19~32절이다. 희생의 간을 살펴 먼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전멸시키고, 그 다음 성전이 없는 '암몬'을 치라고 예언되어 있다(28~). 이 예언대로 종말에는 '영적 유다'가 존재하는 극동아시아부터 환난이 오고, 연이어 중동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동북아전쟁은 이사야 7:17~20, 8:5~8, 다니엘 11:44절에 기록되어 있고, 중동 유브라데 전쟁은 계시록 9:13~19, 다니엘 11:40~43절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제사장국가', '선지국가'가 되어 144,000명을 움직이는 본부가 되고, 5개월 환난에서 많은 양 떼를 살려낼 수 있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동북아전쟁'에서 '시온성회'의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여호와께서 유다 땅에 큰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다(요엘 2:20. 이사야 37:36, 8:8). 다니엘 11:44절을 보면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북방 왕'을 번민케 한다고 하였는데, 이 '소문'은 '유다 땅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문이다(이사야 19:17). 소문의 내용은 북편 군대가 전멸하여 '동해'와 '서해' 바다로 수장되는 것! 화가 난 '북방 왕'은 나가서 많은 무리를 도륙, 진멸코자 하는데(다니엘 11:44), 이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번짐을 의미한다. 초막절기가 있는 7월이 되면 중국과 북한을 앞세우고 한국을 치러 내려온 로스(러시아) 연합군대가 한국 땅에서 하룻밤에 시체가 되어 버린다(예레미야 50:24). 이 엄청난 소문으로 인하여 애굽인(세상사람)들이 놀라 떨고 지렁이 같던 유다는 비로소 일어나 세계로 뻗어 나가며 "영원한 복음"의 빛을 발하게 된다(이사야 60:1~). 이것이 곧 여호와의 '새 일' 역사요, '동방' 역사다. 이 예언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현재 극동 아시아에는 엄청난 군비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진리)을 사모해야 할 유다가 강대국의 정치력,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에 속한다. 또한 종교적 쑥물! 곧 비진리를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의 무리와,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실천하는 거대교권들도 다 우상숭배자의 무리에 속한다. 이들 세력과 그 사상은 우리의 철천지(徹天之) 원수이다. 1958년부터 재앙의 본부 소련에서 외친 '평화공존'의 메시지를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 기독교가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작금(昨今)의 현실(예레미야 6:14, 8:11)은 놀랄 만한 일이다. 전쟁을 위하여 군비는 끝임없이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 '평화공존'이 웬 말인가? 우리는 성경 밖의 얘기는 아무리 듣기 좋아도 배격할 줄 알아야 한다(골로세서 2:8). 성경에 반하는 인본주의의 망령된 말을 좇는 행위자의 결말은 멸망과 황폐뿐이다(예레미야 8:15~17. 잠언 14:12).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그러므로 우리의 살 길은 우상의 지배권(600=영권, 60=정권, 6=교권)에서 탈피하여 공중에 뜬 돌(머릿돌) 단체가 되는 길이다. 그것만이 천만인이 쓰러지는 환난날에 육체가 임마누엘 나래 밑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시편 91:7). 보호받지 못하는 육체는 새 시대를 볼 수 없다. 영혼구원을 얻은 이 시대의 생존성도들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서 6,000년 만에 친히 회복시켜 주시는 에덴동산 땅(계시록 5:10)을 살아서 발로 밟는 것 말고는 없다. 밟되 왕권으로 밟느냐 백성으로 밟느냐를 놓고 충성을 다 할 시기가 '지금'인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육체의 생사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말씀하셨다.

6,000년간 인류를 휘감고 조여온 뱀의 세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파쇄되면(계시록 19:19~20:3) 우리는 평화로운 임금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이 땅에서 1,000년을 살고(지상 천년안식) 그후 백보좌심판을 거쳐 영원한 무궁안식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먼저 정치바벨(짐승)과 종교바벨(거짓선지)이 심판 받는 일이 우리 시대에 있을 것이니, 현재 나의 영적 소속이 '바벨'이냐 '뜬 돌'(시온)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다니엘 2:34~35). 만일 지금까지 잘 모르고 음녀(창기) 단체에 속해 있었다면, 바로 이 순간 발을 빼고 소속을 분명히 하여 예수님의 명령대로만 정진(正進)해야 할 것이다(고란도전서 6:15~16. 고린도후서 6:17~. 계시록 18:4).

6. 선지자는 준비하고, 예고하고, 주님만 의지할 것 : 17~19

『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18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허리를 동이고"란 표현은 예언을 선포할 준비태세를 비유한 것이다. 출애굽기 12:11, 열왕기상 18:46, 열왕기하 4:29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 항상 허리띠를 동여 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일꾼은 에베소서 6:14절처럼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일해야 한다.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다 고하라 함은 한 마디도 가감치 말고 기록된 예언대로 100% 온전하게 고하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26:2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하셨고, 계시록 22:18~19절에서도 예수님께서 같은 말씀을 예언하셨다. 이렇게 예언하심은 창세기 3:15절 말씀같이 궤휼자 뱀의 계통에서 말씀을 흐트러뜨리며 최후로 발악하여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득세할 때에는 '완전무장'하여 주만 의지하지 않고서는 모두가 쓰러지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기록된 대로 끝까지 순종한 종들은 계시록 11:1~12절 말씀같이 1,260일 다시 예언하고 3일 반 쓰러졌다가(원수들의 조롱을 받다가) 생기를 받아 승천하게 된다.

선지자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 같은 권세의 종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사야 43:13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폐할 수 없는 특권이다.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아멘.

종말의 사명자들이여! 우리는 우상이나 협상을 배격하고 하나님께만 절대 복종하자! 종들에겐 절대 월권(越權)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께서 시편 40:7절대로 오시어 마태복음 26:24절대로 걸어가셨으니, 우리는 이 모습을 본받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만 충성하자. 그리하면 주 안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으며 수고하다 마침내는 완전한 승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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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90830_예레미야14 장 말씀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90830_예레미야14장
[금 오후 설교] 예레미야 14장 :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교회의 죄 2019/08/30 Fri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4장
제목 :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교회의 죄

여호야김 왕 때 임한 극심한 가뭄을 놓고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삼중 중보기도를 드리게 된다. 깊은 죄병을 앓고 있던 유다 동포, 재앙을 만나도 회개는커녕 원망과 절규밖에 할 줄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것이다. 뜨거운 동족애가 담긴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는 유다 백성들의 깊은 죄악상과는 실로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백성을 돌이킬 소망이 없음을 알아차린 예레미야는 주의 거룩한 이름과 신실한 언약에 매달렸다. 참된 기도란 인간적 소망이나 생각을 뒤로하고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하여 호소하고 탄원하는 간구이다. 이러한 기도를 올릴 자는 먼저 자신부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구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한재(旱災)의 참상 : 1~6


『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옛날부터 유다 땅에는 한재가 많았다(창세기 12:10, 26:1~, 42:1~2. 신명기 11:10~17, 28:23~24. 룻기 1:1~. 사무엘하 21:1~. 열왕기상 8:37. 학개서 1:9~11). 한재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죄악을 범할 때 임하던 징벌이다(레위기 26:19. 신명 11:17, 28:23). 구약 때는 모든 것을 육적으로 계시한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본문의 재앙을 영적, 육적 양면으로 깨달아야 한다. 종말의 교회가 예수의 계시를 무시하면 예배시간에 말씀의 이슬과 성령의 단비가 끊쳐지게 되므로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하여 자기도 모르게 이방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된다(마태복음 24:49. 하박국 2:5). 한재 재앙은 종종 '땅이 슬퍼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예레미야 4:28, 12:4. 이사야 3:26), 실은 죄통에 빠져있는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이며, 작게는 공의의 심판을 당할 때 곤비케 될 백성 자신들의 슬픔이기도 하다.


『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


예레미야서는 현재의 '기독교'를 책망하는 예언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구약백성'의 구원을 목적하여 주신 예언도 아니요, '종말의 불신자'들을 책망하신 내용도 아니다. 애통할 자도 교회요, 한재로 부르짖게 될 자도 종말의 교회임을 계시한 예언이다. 화려한 교회와 그에 딸린 부속건물들! 물량주의와 교세확장이 어느 새 목회성공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 교회 안에 부자 교인들이 점점 증가하고 세상 성공을 위하여 때마다 모여 예수님께 축복을 간구하는 모습! 세상에서의 출세가 거리낌없이 '간증'이란 이름으로 자랑되어지는 현실!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부르짖음'으로 변할 것이다. "슬퍼하며... 곤비하여... 애통하니"라는 구절은 육적 한재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묘사해주는 표현이나 종말의 성취 때에는 부패한 교회의 성도들이 당할 3대 화의 고통이 된다. 이렇게 백성이 슬퍼하며 놀랄 재앙을 당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 역시 심히 상하여 슬픔 중에 놀라게 된다(예레미야 8:21). 이런 비참한 상황은 '얼굴이 숯보다 검게 된 것'으로 표현되기도 했다(예레미야애가 4:8~9).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재앙으로 인한 부르짖음인데, 회개의 기회를 한없이 제공해 주시며 기다리신 끝에 내려진 재앙이므로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라 선포한 대로 이 부르짖음은 무시된다(예레미야 11:11). 종말에도 재앙의 장소인 '후 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은 아무리 회개해본들 하나님은 그들의 육체를 짐승 칼에 붙여 버리신다.


『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6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


귀인들이 구하여도 "물을 구하지 못하고 빈 그릇으로 돌아오는" 일이나(3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 머리를 가리움"은(4절) 도움을 원하나 응답받을 수 없는 절망의 상태를 뜻한다. 인간의 죄로 인해 짐승들까지 기갈을 당하며 "헐떡이는 모습", 새끼에 대한 애착심이 여타 동물보다 뛰어난 "암사슴"이 풀을 찾기에 갈급하여 자기의 "새끼를 내어 버리는" 모습은 참상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한가를 뛰어나게 묘사해 준다. "시랑"과 "들나귀"까지도 풀이 없어 헐떡이다가 시력이 쇠한 모습으로 나타남은 생명 가진 피조물 중에 한재의 화가 미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보여주는 육적 시대에 이러하였다면 이 예언이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되어 이루어질 때, 그 화가 얼마나 극심한 재앙으로 확대되어 나타나게 될 지 묵상해 보라! 구약 백성에게 임한 한재의 고통이 종말의 기독교 성도들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 비극의 절정이 바로 계시록 13장의 세계이다.


계시록과 모든 선지자가 받은 묵시는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예수님의 재림 때 전 세계 교회를 배경으로 다시금 성취되도록 작정돼 있다(이사야 46:10).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받으신 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셨는데, 요한에게 이 작은 책 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전 세계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계 10:7~11). 종말에는 육체적 한재와 기근이 더 비참한 모양으로 임하되 그에 앞서 먼저 영적 기근이 찾아오리라고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다.


아모스 8:11~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양식)을 먹지 않던 미련한 자들이 재앙이 임할 기미를 깨닫고 뒤늦게 말씀을 구하러 이리저리 헤매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양 가련할 뿐 그 비틀거림의 끝은 북방 칼에 처절히 쓰러지는 것이다(마태복음 24:45~50). 옛날 유대 민족이 모든 선지자의 예언을 버리고 우상 국가와 타협함으로써 심판 받았듯이, 오늘날의 영적 이스라엘도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결코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새 언약(렘 31:31)의 피는 믿으면서, 협상반대와 멸공을 외치며 다가올 천년안식을 준비하라는 새 일 교훈(이사야 42:9, 43:1~19, 48:6~, 예레미야 31:21~22)은 멸시하는 자들이 위와 같은 재앙으로 떨어지게 된다. 새 일 반대가 큰 죄라는 뜻이다. 심판의 대상자인 공산국가와 협상하며 양 떼에게 쑥물을 먹이고 있는 W.C.C.와 K.N.C.C.의 가르침은 오메가적 미혹인데, 많은 양 떼들이 W.C.C.의 쑥물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있으므로 쑥물을 먹이는 목자나 무분별하게 받아먹는 양 떼들이나(예레미야 5:30~31) 모두가 대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계시록 17장. 18장. 19장). 이런 일을 당하지 말라며 '새 일'을 증거하는 제단은 스룹바벨 제단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수인데 교회가 "물이 없는 우물"(3절)이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 스스로가 웅덩이를 팠기 때문이다(=인본주의). 이런 웅덩이는 곧 물 없는 우물이 되고 만다(예레미야 2:13). 예레미야 2:26절에 웅덩이를 판 지도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 수치는 영영히 잊지 못할 수욕이라고 예레미야 20:10절에서 밝혀 주셨다.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짐"(4절)은 하늘이 철과 같이 되고 땅이 놋과 같이 되어(레위기 26:19) 땅이 아무런 산물도 내지 못함을 뜻한 표현이다(레위기 26:20). 신명기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신명기에서는 불순종한 백성의 온 땅은 유황이 되고 만다고 하셨다(신명기 29:23). 인간의 죄로 인해 자연계나 가축까지 고통 받게 되는 것은 이미 창세기 3:17절에서 예언하신 바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 노아가 저주받은 세상을 뒤엎고 새출발시키시는 데 있어 하나의 의로운 씨가 되었듯이,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을 믿는 것이 종말 기독교의 최후의 소망이다.


• 창세기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 계시록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이와 같이 죄로 인한 저주의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예수 안에 있되 '두 가지' 길로 약속되어 있다.


하나는 새 언약(유월절)으로서, 곧 예수님의 보혈이다(이사야 42:1~4, 53:1~12, 49:8上, 61:1~2上, 예레미야 31:31~34).
다른 하나는 새 일(초막절)로서, 곧 예수님의 피로 산 '하나님의 심판책'이다(다니엘 7:10~, 계시록 5:1~10, 10:7~11, 11:1~12, 22:18~19).


이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여 증거를 마치는 길만이 영, 육이 살아 저주가 거치운 아름다운 새 시대(에덴)에 들어가는 길이다. 만일 피로 산 책을 가감하고 우상과 타협하면 육체는 노아 때같이 죽고 그 영까지 천년간 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베드로전서 3:19~20). 구약은 곧 종말이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기 때문이다(이사야 46:11. 마태복음 24:37).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양의 피로 제사하던 의로운 셋의 계통이라도 홍수 심판기를 당해 육체가 사망할 때 그 영까지 옥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종말을 향한 중요한 교훈이다. 오늘날도 영혼구원 얻은 교회가 '중생'으로 말미암은 '천국 시민권'만을 주장하며 교만할 이유가 없다. 새 언약(천국복음)으로 인한 영혼구원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백보좌 심판 때 영생의 부활로 나올 조건일 뿐이요, 환난을 피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가 사망 없는 몸으로 천년을 살 조건은 '영원한 복음' 곧 '새 일 교훈'의 순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로 산 예언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은 인간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의 역사로만 이루어진다 하셨다(스가랴 4:6). 아무리 거듭난 성도라 하더라도 원죄의 타락이 뼛골 속에 박혀 있으므로 피로 산 말씀에 한마디도 순종할 수 없는 것은 사도요한과 다니엘이 재림주 앞에서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다나엘 8:17~18, 10:8~10, 15~18. 계시록 1:17).


2. 예레미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 7~12


『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


한재의 참상으로 인한 선지자의 기도이다.


① 선지자는 백성을 대표하여 죄를 자복할 때 민족적 죄악에 대해 연대적 책임의식을 느끼며 "우리"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환난을 당한 민족의 목자가 갖춰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② 그는 하나님께 빌기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하였다(7절). "주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그가 자비롭고 은혜로운 구원자이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재앙으로 벌하신다 하여 그의 이름에 오욕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나, 다만 한없는 긍휼을 다시 한 번 청하여 용서해주실 것을 청하는 죄인의 마음인 것이다. 8절의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란 성호(聖號)가 위 ①번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③ 8~9절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데, 왜 이스라엘에게 "거류하는 자"나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과 같이, 또 "구원치 못하는 용사"같이 방관만 하고 계시느냐고 탄식하며 기도하는 부분이다(8~9). 이 의문점에 대하여는 10절에서 답하셨다.


④ 하나님께 유대 민족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며 버리지 말아주실 것을 구하고 있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죄악을 지었어도 이 민족이 하나님의 '친 자식'이 아니냐는 호소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남은 백성 곧 경건한 무리들에게만 해당되는 명칭이다. 선지자는 자기 민족의 죄악을 인정할 때 ① 허물이 주 앞에 심히 많다는 것과(사 59:12) ② 죄악 때문에 넘어진다는 것과(호세아 5:5) ③ 민족적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로 나타남을 고백하였다(호세아 7:10) . 선지자는 주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다. ' 우리는 악하나 다만 주의 이름을 인하여 용서하소서'(시편 25:;11)라는 맘으로 말이다. 우리를 용서하시어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시편 115:1)라는 심정으로 심판의 뜻을 돌이켜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 자신들의 타락함이 많음을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다. 백성은 이미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까지 타락되었으므로 예레미야는 더욱 찢어지는 마음으로 중보하고 있다. 백성의 죄목은
. 푸른 나무 아래서 행음한 것(예레미야 3:6).
. 패역이 심한 것(예레미야 5:6).
. 주의 율법을 거역한 것 등으로 나타났다(느헤미야 9:34).


『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백성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조 있는 충성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백성에 대한 확실한 보호를 보장치 않으신다. 백성이 여호와 앞에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우상을 섬기기도 하는 2중적인 태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가 주어진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비례식보응(比例式報應)의 반응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매한 사람들로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시편 18:25~26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이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친 자식(백성들)의 죄악을 확실히 기억하신다(호 8:13. 렘 17:1~4). 또한 원수의 죄악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사무엘상 15:2).


『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


여기서는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주신다.


① 선지자더러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하심.
② 그들의 "금식" 기도를 듣지 않겠다 하심 - 그들의 금식은 외식이고 겸손한 회개와 자책(自責)이 아니며, 또한 정욕(情慾)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금식했다 하는 공로를 세우려 함이니 미신(迷信)적이라는 것이다(스가랴 7:5~14).
③ 그들의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겠다고 하심(사무엘상 15:22).
④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하심(12).


창조주의 발언이 이러하니 이제 유다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레미야 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이렇게 된 이상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듣지 않으신다.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종말을 사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인명, 지명, 국가 등의 모든 재료들은 나를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성경에서 모압은 롯의 딸이 롯과 동침하여 나은 자식, 또는 그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이름이지만, 이것이 예언서에 등장할 때에는 '모압사상'을 가진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즉 모압의 사상을 가진 자가 하나님 백성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16:12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불행하게도 현실 기독교회는 모압의 길을 걷고 있다(이사야 16장 참조).


3.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선고: 13~18


『 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


거짓 선지자들은 교만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평강을 주시리라"는 거짓말을 민중 속에서 외치고 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의 저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시려는 하나님의 악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15~40). 거짓 선지자들의 존재 이유자체가 공의의 심판을 앞두고 백성을 미혹해보기 위함이므로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말을 주시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지 않은 말은 모두가 어두움이다. '복술'도 그러하고 '인간의 마음의 생각'도 그러하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는 반대로 하나님은 그들이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5절).


에덴동산 뱀의 사상은 거짓 선지자 계통을 타고 내려와 오늘날 교회와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사상을 퍼뜨리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평화공존', '탈냉전', '전쟁종식', '사랑', '진리는 하나',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종교적 타이틀들이다. 성경은 분명히 북방환난을 말씀하고 있다(예레미야 1:13, 4:6~, 6:1~, 에스겔 1:4, 38:1~9). 또한 끝까지 전쟁이 있다는 것이다(다니엘 9:26~27). 그러나 종말의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평화공존, 교회일치운동)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예레미야 6:14~15). 이런 자들은 새 일로 강하게 때려부수어야 한다. '평강'은 예수님께만 있으므로 그분만이 줄 수 있다(이사야 9:6. 누가복음 24:36. 요한복음 20:19,21,26. 로마서 16:20. 빌립보서 4:7. 골로세서 3:15. 데살로니가전서 5:23. 히브리서 7:2. 계시록 1:5). 그런데도 1,200만 한국교회가 일치-연합 운동과 평화공존으로만 나아가며 북방의 영적 대적들에게 이용당하고만 있으니 사명자들의 마음은 아프다!


『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


예레미야는 민족을 위하여 밤낮 울고 있다. 참 선지자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인격)이 그의 선지자 된 생활에서 증표로 나타난다. 사단은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고 원하지만, 참 선지자는 민족을 사랑하기에 심판을 보고 원통히 여긴다.


• 예레미야 8: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 예레미야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 시편 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 예레미야 52:6 "그 사월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 스가랴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금식에 대하여...
시드기야 11년 4월 9일에 기근이 임하고 성이 함락(예레미야 39:2~).
시드기야 11년 5월 10일에 성이 불탐(예레미야 52:12~).
시드기야 11년 7월 그다랴 총독의 피살(예레미야 41:1~).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성읍이 포위(예레미야 52:4)>.


• 예레미야애가 1: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 예레미야애가 4:9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이와 같은 참 선지자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종말에도 이 민족과 세계를 위한 참 선지자들의 호소가 하늘에 쌓이고 있다(새일성가 9장).


4. 백성을 대표한 참 선지자의 애소(哀訴) : 19~22


『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


선지자의 기도 내용은


①자기 백성의 참상(종말론적으로는 기독교가 당할 일)을 놓고 애소(哀訴)함이며(19절).
②민족(民族)의 죄를 책임지고 자복 기도함이다(19~21). 다니엘 9:3~23 참조.
③또한 자기 민족에게는 의(義)가 없으므로 하나님 자신의 의(義)를 위하여 돌아보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21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돌아보아 달라는 것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영광의 위"란 하나님이 나타나기로 하신 성전의 장소를 가리킨다.
• 레위기 26:11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 예레미야 3: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 예레미야 17: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언약을 기억하시고"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선지자가 "언약"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이상 거기에 해당하는 축복과 약속을 필경 실현하실 것을 전제로 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실성과 변치 못하는 속성을 붙잡고 늘어지는 배짱있는 기도이다. 백성은 패역하여 주님 말씀을 어겼을 지라도 "이렇게 해주마" 하신 분이 당신이니까 당신 이름 위해서 하나님이 져달라는 것이다. 백성을 보면 축복의 언약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니, 아시고 약속한 당신이 당신 영광 위하여 이루어달라는 것이다.


시편 106:45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백성은 무지하여 범죄하나 선지자는 이렇게 눈물 흘리며 동족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였다. 시대적인 대표 종의 사명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하나님이여 유다 민족을 미워하지 마시옵소서"(21절).


위의 말씀들을 볼 때, 유다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고난의 풀무를 통과한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것이다(스가랴 13:7~9).


• 22절 : "비를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 예레미야 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 예레미야 10:13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 고로 인간은 복종할 따름이다. 복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복종할 기회를 한 번 더 마련해 보고자 우는 자가 선지자이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한 선지자의 중보도 하나님의 뜻은 돌이킬 수 없었다(15장). 백성의 죄악이 하늘까지 사무쳤기 때문이다. 이같이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이 종말의 기독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예언서의 참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예레미야의 신앙노선을 택할 것인가? 거짓된 다수의 '평강노선'을 따라갈 것인가?


21세기 대다수의 교회가 '사랑과 평화', '일치와 연합', '용서와 화해'를 말하며 뱀의 후손들에게까지 '하나 되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우리 제단의 사상은 구시대적 발상이며 시대에 역행하며, 하나님의 뜻과도 반대된다며 멸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평강노선'을 걷는 교회의 백성과 지도자들은 <면할 수 없는 재앙과 벌>로 떨어질 것을 15장에서 예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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