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1일 금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70331_D_호세아12장 말씀

[금 새벽 교] 호세아 12장 : 축복과 형벌 2017/03/31 Friday Dawn

2015년 9월 25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호세아 12장
제목:축복과 형벌

12장의 내용은 교회가 죄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는데 있어 그 조상 야곱의 신앙을 본받아야 된다는 교훈이다. 종말에 많은 교회들이 마치 정직한 듯 자처하나 실상은 ‘거짓’이라고 꾸짖으시며, 구원자를 무시하면 벌을 받게 되고 회개하여 돌아오면 용서받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1. 교회의 배반 죄:1~2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爭辯)하시고 야곱의 소행(所行)대로 벌 주시며 그 소위(所爲)대로 보응하시리라

●1절:“바람을 먹으며” - 이 말씀은 거짓을 의지함을 가르킨다. 거짓말로 위로 받는 것과 거짓된 소망으로 만족하는 것은 모두 다 “바람을 먹음”과 같은 일이다. 동풍은 가장 거센 바람인데 그것이 불 때에는 모든 초목이 파상(破傷)된다.
에스겔 27:26 “네 사공이 너를 인도하여 큰 물에 이름이여 동풍이 바다 중심에서 너를 파하도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두로같이 「물질만능사상」에 치우쳐 기복적인 신앙노선을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새 일(이사야 42:9, 43:19, 48:6, 예레미야 31:22)을 의지하지 않고 초강대국을 의뢰함으로 맺은 국제적 맹약들을 지적하신 것이다.

“기름을 애굽에 보냄” - 이것 역시 그 나라의 도움을 받으려고 아부함이다. 기름은 진액인데 진리의 사상이 (이방과 손잡아) 희석(稀釋)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짓 선지와 손잡고 종교협상, 에큐메니칼(Ecumenical)운동으로 치우치는 오늘날의 현실에 꼭 맞는 말씀이다. 이 땅의 교회가 모두 가증한 음녀교회가 된 현실이 잘 나타난다(계시록 17:3∼7).

●2절:남쪽 유다 나라도 북쪽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이 동일하게 우상과 협상하니 하나님 역시 동일한 벌을 주시겠다고 쟁변하신다. 죄인들이 죄를 고집할 때에 벌을 내리시니 그것이 그들에게 대한 그의 쟁변(다툼)이다(잠언 3:11).

“야곱의 소행” - 12지파 전체의 소행을 가리킨다.

2. 죄에 대한 선지의 경고:3~6

『3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4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稱號)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仁愛)와 공의(公義)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

●3절:“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 뒤꿈치를 잡았고” - 이것은 태아(胎兒)였던 그 자신의 계획이나 노력에서 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렇게 되 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예지 예정하심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알 것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야곱이 형의 발꿈치를 잡은 것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깨달아진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증표이다.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 여기 “장년에”라는 말은 그의 힘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되 힘써 매달린 것을 가리킨다(창세기 32:28). 기도는 힘써 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야곱은 그의 위험스러운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그토록 힘써 기도하였다. 그의 걸음은 자손들에게 3 이레(21년)기간의 교훈을 남겼다. 아내 얻기 위해 14년, 양 떼 위해 6년을 봉사하였다.

※ 야곱의 기도는
① 이기는 기도였다(4절).
② 울음의 기도였다(4절).
③ 간구하는 기도였다.
야곱은 자기의 약함을 하나님 앞에서 가슴 아프게 부르짖으면서 자신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데서 시작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대단히 뜨거웠으며 약하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힘을 겨루는 기도는 먼저 그 기도자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무엘도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했고(사무엘상 12:23), 다윗 왕도 전무후무한 기도의 용사였다. 다윗은 시편에서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다(시편 109:4).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 창세기 35:9∼15절 내용 참조.

●5절:“만군의 하나님” -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로서 계약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그의 특징으로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400년(창세기 15:13)을 출애굽기 12:41절에서 성취시키셨다.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稱號)이다.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요 참 신이시다.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기독교 분파를 의미함이 아닌, 이 땅의 모든 종교를 가리킴)’, ‘진리는 하나’, ‘희생과 봉사를 통한 구원에 다다름’을 주장하는 교파들은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된다. 타종교의 구원을 인정해 가면서까지 외치는 ‘사랑’. ‘종교통합운동’, ‘에큐메니즘’은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것이 되니 이 발언이 도대체 누구를 그 사상의 주인으로 하여 행해지는 발언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6절: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① 사랑과 공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게 되고 ②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신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3. 저희가 하나님께 불의를 숨김:7~8

『7 저는 상고(商賈)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詐取)하기를 좋아하는도다 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7절:“상고”라는 말은 가나안 사람을 의미한다. 가나안 사람은 상업 수완(手腕)이 좋고 거짓된 수단으로 매매하기로 유명하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타락하여 사기 취재(詐欺取財)를 잘 하였으니, 이것을 본문에서는 “사취(詐取)”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되이 외식을 행했고,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다.

●8절:“에브라임”도 모든 재물을 자기 힘으로 얻었다 하며 자기의 잘못을 발견할 자 없으리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데, 벌써 “자기=나”라는 사상이 나오면 이미 바벨사상화 된 것이다. 다른 것이 죄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 죄악이다. 그것이 그의 거짓된 태도이다. 이사야 47: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영적 흑암이 오면 하나님을 피하여 요나같이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채찍을 맞게 된다.

과거 한국 교회도 1939년 12월에 평양 노회의 종교 재판에 의해 주기철 목사를 (신사참배를 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면시킨 일이 있다. 파면의 이유는 총회 관할하에 있는 목사가 신사 참배를 행하기로 한 총회의 결의에 감히 따르지 않았다 하는 것이다. 총회가 이러한 큰 죄를 짓고서도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숨길 수 있겠는가?

신사 참배는 1938년 9월 9일, 장로교 제 27회 총회 때 가결되었다(목사 86명, 장로 85명, 선교사 22명. 합계 193명 운집 『영원한 복음』 36P. 참조.). 그런데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순교 53주년 추모예배와 주기철 목사 복권 및 복적 선포식을 동시에 거행하였다(1997.4.20). 이 행사를 잘 뜯어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볼 때에는 그럴 듯하였으나 사실 그 죄가 은폐된 가증스런 행사라고 본다. 주기철 목사님의 “신사참배 반대”가 죄가 아니라면 그 당시 신사참배를 하기로 가결한 총회가 죄인이 되는 것이요, “신사참배 반대”가 죄라면 주 목사 추모예배와 복권, 복적 선포식 자체도 죄가 되는 것이다. 한 가지만 하라! 우상숭배 문제를 놓고 두 패로 나뉘어 싸웠다면 한 쪽은 확실히 죄인이다. 당시 죄인 아닌 주 목사님이 죄인이 되어 한국 교회가 치뤄야 할 옥고를 대신 치루고 순교하셨다면 그를 정죄한 총회는 오늘날 그의 복권, 복적과 무오(無誤)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총회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하나님과 민족과 교회 앞에 시인해야 하는 것이 양심의 도리 아닌가?

그런데 이에 대하여 총회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과거의 과오를 은폐시킨 채 단지 행정적 사무적으로만 해결하려 하였다. 하나님은 중심을 달아보시는 분이시다(사무엘상 16:7). 주 목사님의 목사직 복권 행사가 곧 자신들의 우상숭배 죄에 대한 회개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없다.

우리는 정치와 종교 양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친일파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였다. 총회장 박 목사는 설교 제목을 「피의 호소」로 하여 순교신앙은 ‘타협을 거부하는 신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지금 타협주의, 편의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1938년도의 타협주의는 슬쩍 숨겨 놓았다. 뜻밖에도 이 설교를 이해시키기 위한 타협주의, 편의주의의 예로 든 것은 ‘많은 교회가 주일 저녁예배 시간을 오후예배로 바꾼 것’에 관한 엉뚱한 이야기였다. 또한 말하기를 “한국 교회의 오늘의 성장은 거름을 잘 주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고난과 핍박, 순교의 열매인 것입니다” 라고 했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피 흘린 순교자들의 수난의 결과이며, 이는 한국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또 자신이 주기철에 관해 언급할 때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국 교회의 총회장이라는 분이 한국 교회의 타협주의적 근성을 고작 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바꾼 것 정도와 연관시켜서만 이야기했다. 정작 과거사와 관련된 한국 교회의 타협주의와 주기철 목사와 관련된 한국 교회의 범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천조대신’이 하나님인가? 왜 신사참배를 총회적으로 결정했단 말인가?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방 후, 1948년에 설립된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한 교단은 또한 어떤 교단이란 말인가? ‘신사참배’보다도 더 큰 우상숭배 행위는 공산주의를 용납하는 W.C.C.의 예배라고 본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구약 사마리아가 금송아지를 따라가다가 앗수르에게 밥이 되었는데, 거울을 보면서도 세계 교회는 거짓 평화공존이 참인 줄 알고 거짓 선지의 사탕발린 독약을 먹고 있는 것이다(계시록 8:10, 예레미야 23:15).

도대체 교회의 사상은 시온 사상(Zionism)인가? 막스 사상(Marxism)인가?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셨다. 일제시대에 한국의 장자 총회가 평양에서 열린 제 27회 총회 때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한국 교회를 송두리째 죽게 하였으니 이 큰 죄에 대한 결과로 1950년 6.25 동란이 있게 된 것이다. 이 재앙으로 400만 민족이 학살당했고 1,012개의 교회당이 파괴, 소실되었고, 212명의 목사가 순교하였고, 40만의 과부와 20만의 전쟁고아가 발생하였다.

이 재앙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숭배 행위를 합법적으로 가결한 한 국 기독교의 음행 때문에 민족 전체가 얻어맞은 죄 값의 몽둥이였다.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더 큰 우상을 따라가는 현실은 흑암 중의 흑암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산하 단체로 그들의 죄악에 동참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징벌로 이번에는 성경대로 소련의 몽둥이가 내려올 것이다(이사야 10:5∼16, 36:, 37:). 이 재앙을 피할 길은 이사야 14:31∼32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게 되었도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가 없느니라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하셨다. 여기서 ‘시온’이란 환난 시대의 촛대 교회(이사야 19:19 ‘애굽 땅 중앙제단’)이다.

4. 반역과 하나님의 형벌:9~14

『9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일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자자들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12 옛적에 야곱이 아람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선지자로 저를 보호하셨거늘 14 에브라임이 격노(激怒)케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 주께서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저의 수치를 저에게 돌리시리라』

●9∼10절:“장막에 거하게...”, “명절일” -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그의 은혜로만 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는 저들의 무지(無知)를 깨뜨리기 위하여 앞으로 저들을 징계하시는 한 순서가 있을 것을 말해 주신다. 곧 저들이 다시 새로운 장막절을 지키게 되리라는 것이다. 장막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서 광야의 장막 생활을 잘 통과한 은혜를 기념하기 위하여 임시 동안 장막에 거처하면서 지키는 것이었다(레위기 23:34∼44). 구약 이스라엘은 표면적 이스라엘이다. 저들에게 3대 절기(출애굽기 23:14, 신명기 16:16, 민수기 28:)를 지키라고 율법으로 정하셨으나 이는 참 형상이 아니므로(히브리서 10:1)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자기 몸을 유월절 양으로 드려 희생하셨고(고린도전서 5:7),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시어 칠칠절을 실질적으로 성취하셨으며(사도행전 2:1~), 재림 때에는 장막절(=초막절)에 알곡을 모집하여 그 육체를 보호하시사 안식세계(천년왕국=곡간)에 보내시어 이 땅 위에 에덴동산을 회복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표면적 약속이 예수님이 오심으로부터 모두 이면적, 실질적으로 성취되는 역사다. 이것이 곧 인류를 살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3대 역사』로서, 이사야 4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계시록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서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들은 7:14∼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유월절을 지키고, 애굽 땅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으나,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출애굽기 34:)을 따르지 않던 60만 대중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다.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이 법궤와 장막은 표면적 성전이다. 이 구약의 장막 성전은 후에 솔로몬 성전으로 발전하였다. 이 솔로몬 성전이 신약으로 넘어와서 다시 이면적, 영적 성전으로 발전하였다. 요한복음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 성전(제단)은 은혜로운 유월절 양(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혼의 구원이 완성된 제단이다.

히브리서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譬喩)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禮法)만 되어 개혁(改革)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구약에 기록된 3대 절기도 예수님이 다 이루신다. 이미 유월절과 오순절이 성취된 지 2,000년이 되었다. 레위기 23:34 “칠월 십 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7일 동안 지킬지니라 :39~너희는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이 초막절이 바로 추수감사절이요, 장막절이요, 환난에서 육체를 보호하시는 강권역사의 절기이다. 표면적(구약)으로는 추수감사절기요, 이면적으로는 땅에서 구속받은 144,000명과 흰 옷 입은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열매로 드려지는 완전구속의 역사이다(계시록 7:9∼15, 14:1∼5).

●11절:“길르앗” “길갈”은 우상 숭배의 근거지가 되었다.

●12∼13절: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조상 야곱을 예로 들어 그가 얼마나 미천한 존재였던가를 상기하도록 한다. 이스라엘은 값없이 출애굽의 은총을 입었으니 빚을 갚는 심정을 갖고 날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순종만 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미혹되어 우상을 만들고 말았다. 종말의 교회들도 십자가의 은총을 입었으니 은혜와 말씀으로 장성해 계시록에 예언된 짐승과 싸워야 할 것인데,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미혹을 받으며, 아니 오히려 교회에서부터 미혹을 시키고 있으니 그 타락의 형편이 구약과 동일한 처지다.

●14절:그러므로 저들에게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신다” 하셨다. ‘그 피’란 에브라임의 범죄 값을 의미한다(죄 값은 사망, 곧 피이다) ☞ 로마서 6:23, 5:12, 야고보서 1:15절. 저들은 이 예언대로 그 죄 값을 치루러 앗수르에게 잡혀가 390년간 회복이 없었다(에스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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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0일 목요일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70330_D_호세아11장 말씀

[목 새벽 교] 호세아 11장 : 이스라엘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2017/03/30 Thursday Dawn

2015년 9월 24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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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호세아 11장
제목:이스라엘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은 야곱을 복중에서 택하시고, 잘못을 책망하시어 종국에는 구원하시니 야곱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신다.

1.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에 주심:1~4

『 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2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

●1절 :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사실을 소급(溯及)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어렸을 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 초기를 가리킨다. 또한 1절의 말씀은 마태복음 2:15절에도 인용된 바 예수님의 어렸을 때 헤롯을 피하여 들어간 애굽에서 헤롯이 죽자 출애굽한 사건을 예언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예언의 동시성(同時性)이다. 선지자는 당대의 상황을 보고 외치거나 과거의 사건을 소급하여 외치지만 후손 세대에서는 외친 그대로 곧 축자영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니 다른 말로 실천적 예언이라고도 한다(이사야 설교집 46:8~10 참조).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에덴동산 찾아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다. 창세기 13:14∼17절의 축복과 창 15:13절의 말씀대로 모리아산을 중심하여 동서남북을 기업으로 받으려면 400년 후에 출애굽이 있어야 할 것이고, 최후에는 70년이 찰 때 출바벨론이 있어야 이 세상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계시록 11:15).

이 말씀이 영적(이면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예수가 유월절 양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거대한 에덴을 회복하시기 위한 실질적(이면적) 사업의 시작으로서 에덴 타락 후 4,000년(69이레에 기름부음 받으심-다니엘 9:25)만에 손수 나서신 하나님의 거룩한 현현(顯現)이다. 즉 구속사업의 실질적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애굽에서 피난생활을 하시고 약속의 땅 모리아로 오셨다(마태복음 2:15). 우리도 예수님의 포도나무 가지이니 나무가 가는 곳에는 가지도 따라가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서 은혜의 세계로 나오는 것을 영적 출애굽이라 하는데, 이는 예수의 피가 내 마음 안에 진정으로 들어오고,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은혜 시대 종말에는 강한 영적 흑암(바벨사상)이 왔으니 이를 이기려면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나오는 출바벨론(계시록 18:4, 스가랴 2:6∼7) 역사가 또한 이면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이는 흑암의 세력을 말씀의 불로 소멸시키는 스룹바벨의 머릿돌 역사로 성취될 것이다(스가랴 4:7∼11).

은혜 받은 모든 영적 이스라엘에게 예수님께서는 계시록 10:7∼11절 말씀을 주셨다. 내용인즉 “작은 책(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말씀이니 친히 부탁하신 이 귀한 말씀을 버리고, 정 반대로 행하여 우상국가인 북방 공산주의 국가와 손을 잡고 거짓된 “평화공존”에 속아 영적인 우상숭배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 세계의 피로 산 교회라는 것이다. 지금의 이러한 종교 상태가 바로 호세아 선지가 예언할 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구약은 그 때를 사는 그들에게는 실제상황이나 종말에 있을 영적 이스라엘에게는 종말의 정황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언이 된다(실천적 예언).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하나님의 완전 예지).

●2절:모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숨바쳐 외치기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였으나(열왕기하 17:13, 예레미야 7:25, 25:4, 스가랴 1:4)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예레미야 2:31). 그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로서 가나안에 입주(入住)한 후 선지 시대까지 행한 저들의 상습죄(常習罪)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겸손하여 감사하기보다는 도리어 은혜 귀한 줄 모르고 교만하여 악한 심리의 발작으로(인간성) 말할 수 없이 강퍅(剛愎)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자는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이 같은 침해(侵害)를 받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 경계하여야 한다.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고백하며 바울은 항상 겸손하게 생활하였다.

●3절:“걸음을 가르치고” -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행보(行步)를 가르치듯이 그들을 훈련시켜 오셨다(신명기 1:31, 32:11∼15, 민수기 11:12). 이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길러주신 그를 순종하지 않음은 대단히 무지하고 악한 일이다.
이와 같은 무지(호세아 4:6)는
① 실상 그들의 모든 난관을 제해 주시는 하나님(출애굽기 15:26)을 몰라보는 배은망덕이다.
② 또한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는 의원의 병 고치는 일에 비유되었던 바(마태복음 9:12∼13) 죄 가운데서 죽을 자를 살려 놓았더니 은혜 귀한 줄도 모르고 도리어 자기의 구세주, 구원자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우매의 극치라고 본다.

●4절: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심에 있어서 사람이 가축을 인도함같이 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하셨다. 곧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강하신 보호의 팔을 (목동이 그의 가축을 인도하는데 사용하는) 줄에 비유하셨다. 목동에게 양이 귀하듯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그만치 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줄은 속박의 줄이 아니고 “사랑의 줄”이라고 그 내역(內譯)이 밝혀져 있다. 보통 사람이 짐승을 줄에 묶어 인도할 때는 사랑보다는 속박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하나 당신만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는 것이다.

“목에서 멍에를 벗김”은 소나 가축이 여물을 먹기에 편하도록 배려하는 행위이다. 주인은 이렇게 그 짐승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그 앞에 먹이를 준다. 그만큼 주인은 그 짐승의 입장에 서서 긍휼을 베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행하신 그의 태도는 (특히 긍휼의 측면에서 볼 때) 가축에 대한 목자의 배려(사랑)와 유사하다는 것이 본문의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하시기는 하나, 자비와 긍휼 없이 그리하신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그의 사랑과 병행한다.

그 사랑은 그가 이스라엘과 은혜로운 계약을 맺은 것(출애굽기 24:3∼7), 그가 저들에게 식물(食物)을 주신 것, 또는 희생제물을 드려 사죄 받을 수 있도록 제사를 알려주신 것 등에서 나타난다.

2. 예수님 사랑을 배반하면 북방의 밥이 된다:5~7

『 5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7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

●5절:이스라엘은 벌써 오래 전에 애굽에서 구원받았으므로 다시 그리로 돌아갈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다시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될지니, 곧 앗수르 왕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과 같이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이미 구원(영혼 구원)얻은 자가 다시 그 구원을 빼앗길 수는 없으니(로마서 6:4, 8:2), 다만 환난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일뿐인데, 하나님이 환난으로부터 이 백성을 보호하시려고 당신의 새 일 교훈을 베푸실 때 청종치 않아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한, 북방 로스(러시아)에게 붙이신다는 것이다.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종말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이요, 말세종의 특권이며, 또한 환난을 면하고 새 시대의 거룩한 씨로 들어갈 성도의 자격요건이 된다.

●6절: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칠 때같이 종말에 공산국가가 남침하여 세계 교회를 침략 할 때(다니엘 9:26∼)에, 성읍이 파괴되며 그 성문의 빗장이 부숴지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저희의 계책”이란 교회들이 하나님의 새 일을 신뢰하지 않고 저들 자신의 지혜대로 외국을 의지한 것을 가리킨다(에스겔 17장에 시드기야가 애굽을 신뢰하다 결국 눈알이 뽑혀 잡혀감-예레미야 39:).

●7절“결심하고... 물러가나니”라는 것은 “떠나는 죄에 결부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저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태니 그 타락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일컫는 것이다. 오늘도 캄캄한 사단의 세력이 1958년 3월부터 허락받고 나와서 43년간 미혹의 활동을 한 결과, 세계 교회가 평화공존의 술책에 넘어가 단단히 잡혀 있는 상태이다. “탈 냉전”이니 “전쟁 종식”이니 하는 말은 사단의 궤변이다(다니엘 9:26∼27).

“돌아오라 할지라도...” - 선지서를 아무리 증거해도 깨닫는 자가 없다. 시련의 시기에는 믿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하박국 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3.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교회를 아끼시나 교회는 미혹을 당함:8~12

『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

●8절“아드마”“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받을 때에 함께 멸망한 도시들이다(신명기 29: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 도시들같이 멸망에 내어버리지는 않겠다고 하셨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 이 말씀은 마음이 변동되셨다는 뜻이다(요엘 2:15∼20). 그 변동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긍휼이 불붙듯”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죄를 호되게 꾸짖어도 끝 날에 가서는 약속대로 긍휼을 베푸신다.

●9절:“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 - 사람들은 자기가 품었던 목적을 변개시키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택민)을 절대 멸망시키지 않으리라’고 한 번 정하신 뜻은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말라기 3:6, 계시록 7:3∼8, 이사야 54:7∼8).

사무엘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라”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그러하니 종말에 뒤집어엎는 날, 스룹바벨로 인(印)을 삼아 쓰시겠다고 한 번 정하셨다면(학개서 2:23) 이는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변역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율법과 은혜도 말씀에 기록된 법대로 행하셨다면, 재림 전의 엘리야 사명도 모든 예언에 기록된 대로 이루실 것이다. 스가랴 4:7~9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스룹바벨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종말의 머릿돌 역사는 스룹바벨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스룹바벨의 사명을 모른다면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다.

●10절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이스라엘과 유다가 종말에 회복의 때가 되면 다 돌아올 것을 예언하심이다.

이사야 66:7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2:9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 창세기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 오셨다. 계시록 5:5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예수님의 재림 때에, 택한 종들이 사자같이 일어나서 주께로부터 받은 철장권세를 행하여 원수를 진멸하고, 야곱의 12지파에서 144,000명을 일으켜 이미 받은 영혼의 구원 위에 순종의 상급이 더하여져 그 육체까지 구원을 받게 된다(로마서 8:23. 에베소서 4:30, 계시록 14:4). 그 백성이 “떨며 온다” 함은 그들이 너무 기뻐서 진동할 것을 의미한다.

●11절:“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 마지막 시대에 부름받은 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빨리 돌아올 것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각 집에 머물게 하심”은 일한 대로 왕권을 받고 황금 보석 집에서(이사야 54:11) 천 년을 살게 될 것을 가리킴이다.

●12절: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이 행했고, 유다도 하나님 앞에 진실치 못하며 변함이 많았지만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로(호세아 1:7) 육체까지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본 예언은 결국 구원을 향해 가는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역사 노정에 있어서 완전한 구원이란 백성의 의(義)가 아닌(이사야 64:6)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만이 완성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하나님은 어떻게 하여서라도 저들을 구원하여 주심으로 당신의 일을 마감하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할렐루야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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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70329_다니엘10장 말씀

[수 오후 교] 다니엘 10장 : 세 이레와 재림주 영접 2017/03/29 Wednes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 : 다니엘 10장
제목 : 세 이레와 재림주 영접

1. 세 이레 큰 전쟁의 이상 : 1~3

『 1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

구약 이스라엘이나,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이나 그 존재 목적은 하나같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영광 받으셔야 할 신이시기 때문이다.  다윗도 성전 건축을 간절히 원하고 원하였으나 그는 피를 많이 흘린 손이라 주께서 허락지 않으셨고, 그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실 때 그가 7년 6개월간 성전을 건축하였다. 부속 건물과 왕궁건축 기간까지 합하여 합하면 도합 "21년"이 걸렸다.

• 마태복음 7: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하셨고,
• 이사야 66:1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내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하셨다.
•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심을 볼 때,

구약 때 지은 성전은 손으로 지은 육적 성전이었으나, 신약 때 지은 성전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신령한 성전이다. 즉 예수의 피로써 완성한 성전이 1차 승리를 가져왔다면(영혼구원), 옛의 피로 사신 예언의 말씀으로 짓는 촛대교회 성전(순금 등대)은 백마의 2차 승리를 이루는 성전건축 역사이다(계 6:20. 중요한건 구약이나 신약 종말이나 성전 건축기간은 동일하게 세 이레 21년이라는 것이다.

촛대 교회 역사를 자세히 알려면 구약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구약 세 이레를 살펴보자!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부터 성곽 완공까지의 기간은 세 이레이다. 이는 일하는 기간만 계산하는 카이로스 시간 관념이다. "세 이레"의 출발점은 성전건축을 시작한 고레스왕 3년 째부터이다(주전 536년).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총독이 주전 536년 2월에 성전 지대를 놓고 공사를 시작했으나, 동족(악한무화과)이 방해하므로 16년간 중단되었다(에스라 3:8, 4장). 이 때에 선지자 학개, 스가랴가 등장하여 성전 재건을 독려하였는데, 그들의 예언에 격동을 받아 다시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 다리오왕 2년 9월 24일이다(지대 놓은 날짜) 어려운 중에 다리오 왕 6년 12월 3일이 되던 날에 성전을 준공하였다(에스라 6:14). 그러나 성전은 건축했지만 성곽이 없어서 원수가 들어오게 된다. 그리하여 59년후 제사장 에스라가 성 역사를 위하여 주전 귀국했고(BC 457), 71년  쩨 되던 해에는(BC 445)  느헤미야가 귀국하여 성곽을 52일에 필역했다(느 6:15 / 아닥사스다 왕 때). 이러한 성전+성곽 건축 기간동안 동원된 국가는 동방 바사국이며 동운된 왕은 세 사람인데,

① 고레스 : 성전 건축을 위한 해방령을 내리는 사명이었다(에스라 1:1∼11).
② 다리오 : 중단된 성전 재건역사에 강권적으로 도움을 준 왕이었다(에스라 6:),
③ 아닥사스다 : 성곽 건축에 도움을 준 왕이다(에스라 7:7∼23).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보면 536∼408년까지 12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으나, 카이로스 시간으로 따져 공사하는 기간만을 합할 때에는 "세 이레 21년"을 넘지 않는다. 또한 카이로스 시간기법에 의해 성전 건축 마쳐진 12월 3일에 성곽 건축기간인 52일을 더하면 정확히 "1월 24일"이 된다. 이 날이 바로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재림주님의 형상을 본 날짜이다(다니엘 10:4~6). 성경 특히 예언서에 나타난 연대나 날짜는 하나라도 무시하지 말고 귀하게 보아야 함에는 만인이 동의할 것이다. 더군다나 성전+성곽 건축이 끝나는 날이 하필 다니엘이 재림주님의 형상을 본날이라는 것은 흘려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일인 것이다. 세 이레가 끝나는 날이 곧 주 재림의 날이 될 것을 예언한 날짜이다(종말관을 이렇게 보여 주었으니 이와 같이 될 것을 믿어야 한다).

종말에 우리의 성전(전 3년)과 성곽(5개월)도 이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다니엘서를 모르게 되면 어떠한 학사, 박사라도 감히 때와 시기에는 손을 댈 수가 없다. 70 이레 중에 69 이레 째에 기름부음을 받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성경을 손에 든 제사장들이 앞장서 반대했듯이, 종말에도 세 이레 끝에 재림하실 예수님을 예언서를 손에 든 종들이 먼저 반대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연대와 날짜를 무시하게되면 반드시 재앙을 받게 된다. 시드기야 왕도 예레미야가 외친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연대를 무시하다가 눈알이 뽑혀서 잡혀간 것이다(에스겔 17장. 예레미야 39장).

이제 말일에 이루어지는 동방역사 "세 이레"가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알아보자!

세 이레는 21년의 기간인데, 이 기간 안에 성전건축과 성곽건축 역사가 다 들어있어야 한다. 먼저 구약 때의 보여주신 그림자 역사를 잘 알아야만 종말의 동방역사도 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동방역사는 예정 속에서 하시되 그 사명을 스룹바벨에게 맡겼으므로 너도 나도 앞장서 지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스가랴 4:6~10, 학개서 2:21~23).

'스룹바벨'의 사명은 총 세 번 등장하게 되는데, 먼저는 표면적 구약의 스룹바벨이다(주전 536~516). 이는 나무와 돌로써 무너진 솔로몬 성전을 재건한 사명자였다. 신약 때 들어와서는 계시록 해석을 받은 예표의 스룹바벨이 있다(주후 1958~1972). 이는 정확히 14년(두 이레)간 사명을 하고 갔으며, 마지막 남은 한 이레는 순의 역사로서 마루리 된다. 이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자라고 예언되어 있다(스가랴 6:12, 스가랴 3:8). 최종적인 스룹바벨이 사명을 바로 맺어야 동방역사는 열매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1974~주 재림까지). 이는 반드시 학개서와 스가랴서와 다니엘서를 깨닫고 나온 종이어야 하며, 전 세계의 144,000 명을 일으킬 사명자이며, 그가 일으킨 144,000명에 의해 전 세계의 흰 무리들은 예비처로 인도되어 환난을 피하고 새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세 이레 큰 싸움"의 시작은 예표 종(이뢰자)이1958년 3월에 계시록 해석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원수 마귀 국가인 소련의 수상 후르시초프가 1958년 3월, “평화 공존” 궤휼주의를 들고 나와 자본주의 정계와 세계 교회들을 속이며 죽일 대, 하나님께서는 이 마귀 편의 미혹과 싸워 이기도록 동방 땅 끝 가련한 종에게 계시록 해석을 주심으로써 '백마 vs 청황색말'의 세 이레 큰 전쟁 싸움은 시작되었다.

모든 예언을 변함없이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예표의 종이 자기에게 맡겨진 두 이레의 사명을 마치자 1972년 8월 7일에 그를 불러가셨다. 그 후 1974년 2월부터 학개, 스가랴서가 유신 정치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스가랴 3:8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예표의 종이라"는 새로운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동방 세 이레 큰 역사가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열매도 못맺은 채 16년간 중단된 이 때(1958~1974), 학개 2:10~23절까지의 예언대로 '순의 제단'이 다시 지대를 놓아야만 한다는 것을 1974년 9월 24일 아침에야 깨닫게 되었다(다리오왕 2년 = 유신 2년). 유신체제의 긴급조치 정치가 구약 다리오 왕의 조서정치와 같음을 깨닫고 지대를 놓은 후 여덟 달 만에 1975년 5월 15일의 승리 기호를 세웠다. 다니엘 4:29절에서 한 이레의 시작점이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하고 12달이 지나서임을 깨닫고, 그것은 종말에 순의 사명자가 다니엘서를 세상 앞에 해석한 뒤 12달이 되는 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로 74년 다니엘서를 깨닫고 책자로 발간하였으니 75년이 한 이레의 출발점이 되는 해라는 것을 찾은 뒤, 그 날짜를 알기 위하여, 다니엘이 재림주님의 형상을 본 날짜임과 동시에 성전+성곽건축의 역사의 마감 날짜이기도 "1월 24일"에서 '전 3년 반'인 1260일을 감산해보니 정확히 8월 15일이 나옴을 알고, 1975년 8월 15일을 70이레 중 한 이레의 시작점으로 선포하게 된 것이다. 전 3년 반을 공포한 뒤 3년간 많은 수치와 핍박을 당하는 동시에 예표 종이 증거하지 못했던 나머지 예언서가 햇빛같이 밝아지므로 말씀성전인 '애굽 땅 중앙제단'을 건축하게 되었다(전 3년).

1978년 9월 15일부터는 이사야 49:1~4절 같이 3년 1개월간 무장시켜 갈고 닦은 중앙 제단의 말씀권세(마광한 살)를 세상이 모르게 전통에 감추어서 북방 원수가 정한 때에 들어오면 그를을 파하고 새 시대를 이루시는 날카로운 화살촉으로 사용하시게 된다. 앗수르(러시아)가 유다(한국)에 들어왔다가 185,000명이 이 권세 앞에 죽고 한국은 세계에 우뚝 선 선짓국가, 제사장국가가 된다. 이 때부터 세계적인 초막절의 역사가 뻗어나가니 5개월간 황충떼와 싸워서 종들과 양떼들을 강권역사로 모아들이게 된다.

동방역사의 "세 이레" 기간을 요약하자면, 예표의 기간이 14년이요(두 이레), 순의 기간이 한 이레이다(7년). 그 중 ' 전 3년'은 “우리”란 단체가 나오는 기간이요(애굽 땅 중앙제단 건축), 5개월 환난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는 지렁이같이 되는 시련기이다. 그러나 북방이 예언대로 내려오는 그날에 스가랴 4:7절의 예언이 이루어지므로 대중이 "은총"을 외치며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칠십 이레 속에 세 이레가 들어있고,' 세 이레' 끝에는 '한 이레의 절반'이 걸려 있는데(전 3년 반), 그 중 다시 '3년 1개월'은 성전이 건축되는 기간이요(말씀 밝히는 기간), 나머지 '5개월'은 갈아진 말씀으로 무장된 전 세계의 종들이 철장권세 역사로 원수를 소멸하면서 잠든 교회와 종들을 깨우쳐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는 마지막 역사가 되는 것이다(10:4). 이렇게 역사한 종들이 들림받게 되면, '한 이레'의 후반부인 '수정통치 후 3년 반'으로 들어가며, '후 3년 반'이 끝나면 "70 이레"의 에덴동산 회복 역사는 마감되는 것이다. 그 후의 시대는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천년간의 안식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2. 세 이레 끝에 재림 주님 오실 것을 보이심 : 4~9

『 4 정월 이십사 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데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

힛데겔 강은 티그리스 강인데 이 강가에 재림 주님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었다. 계시록 1:13절같이 다시 오실 주님은 영광과 위엄에 찬 심판의 주님이시니 그 누가 감히 그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영혼구원을 이미 얻은 사도 요한도 영광과 위엄의 심판 재림 주 앞에서는 쓰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던 것을 명심해야 한다(계시록 1:17). 이는 자범죄를 씻기움 받은 요한의 몸에도 원죄인 선악과의 죄질이 뼛골 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아담 후손은 예수의 보혈로 생령의 제사를 드릴 수 있지만, 그 육체가 죽게 되는 것은 원죄까지 소멸받는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육체까지 고쳐서 살리시려는 재림주의 역사 앞에 현실 기독교는 '영혼구원'으로 감지덕지하오니 '그 이상의 것'은 두려워 못 받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주고 싶은 하나님의 사랑이 멸시를 받고 있는 찰나이다.

다니엘도 요한과 똑같은 종이다. 큰 종들이 심판주 앞에서 동일하게 쓰러진 모습을 보이신 것은, 재림주를 영접해야 할 우리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원죄를 없이하는 역사라는 것을 계시하신 것이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작은 책을 우리게 주신 것은 이 원죄를 없애기 위함이다. 지금 은혜시대 교회 중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주님 오시면 어린아이까지 다 들림 받는다"고 가르치는 곳들이 많은데, 이런 교회는 말씀에 혼선이 온 상태이다. 그들보다 뛰어난 사도 요한이 재림 주 앞에 들림을 못 받고 쓰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는데, 계시록을 받지도 해석치도 못하는 요즘 교회는 자신 있게 주님앞에 설 수 있다 하니... 쓰러진 요한이 거짓말을 한 것인가? 현실교회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교회는 죄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피로 산 교회(사도행전 20:28)를 통해서는 영혼의 죄만을 씻어주셨고, 종말에 계시록에 나타난 촛대교회에서는 육체의 원죄를 없애 주실 것이니 우리는 때를 따라 양식을 받아 먹고 건강한 양무리가 되자. 이사야 25:6~8절을 보면 동방 산에서 오래 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풀 때 이를 먹으면 6000년 역사동안 왕노릇해 온 된 사망을 영원히 멸하게 된다고 예언되어 있지 않는가? 이 잔치를 동방에서 치루어야 만 썩어야만 하는 육체는 생기를 받고 구름 타고 올라가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스가랴 3:9~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하셨는데, 여기서 “새길 것”이란 무엇일가? 이는 바로 사도요한이 받기 전 쓰러지게 되었던 주님의 피로 사신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다. 이 내용은 계시록 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조하라.

씨를 뿌리는 시기에는 은사를 부어주셨지만, 추수기가 되어 말씀을 새기는 시대에는 은사는 폐하게 된다(고린도전서 13:9~11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꿈, 계시, 환상, 신유 등의 은사는 완전한 역사가 아니고, 개개인에게 역사하여 그 신앙을 성장시키는데만 필요했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종말에는 개인의 영혼구원이 문제가 아니고, 회복이 문제이다. 개인의 원죄문제, 민족의 회복, 세계의 회복을 통하여 천년왕국을 이루어놓아야만 하는 거대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때가 종말이다. 이 때는 구원도 역사도 단체적인 규모 뿐이다. 이 큰 역사를 이룰 때에는 이사야 40:27~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같이 새 힘을 나려주시어 적그리스도의 종 황충떼가 득세하는 5개월에 짐승떼를 권세로 소멸하므로 양떼를 살리고 공중으로 들림받는 커다란 스케일의 구원 드라마가 펼쳐진다. 고로 결론은 누구든지 새 힘을 받지 않고는 재림의 주를 영접치 못한다는 것이다

스가랴 12:1~6절을 보니 동방역사는 천하 만민이 유다(한국)를 에워싸며 모일 때, 유다의 두목들은 여호와를 인하여 힘을 얻게 될 것이니,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되고 곡식단 사이의 횃불 같이 되므로 역사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 7 이 이상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었느니라 8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 』

본문에서 재림 주를 다니엘 "홀로"만 본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대표자 한 사람을 통하여 비밀을 계시하신다는 뜻이다. 다니엘과 "함께 한 사람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는 것은 주님께서 재림 주 형상으로 다시 오실 때 그의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다니엘서가 이 땅에 계시될 때가 되면 받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해석 역시 다니엘과 같은 대표자 한 사람이 나와 이 모든 내용을 시대와 짝맞추어 홀로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다니엘의 사명을 받지 않고서는 재림 주님을 영접할 말씀을 감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고로 인간 종말에는 다니엘서가 열림으로써 출발한 제단이 복된 제단이요, 그 제단이 속해 있는 나라 역시 보배 국가요, 그 제단을 통해 세계 앞에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제단은 바로 학개 2:6~7절에서는 이 제단을 '영광으로 충만케될 제단'이라 하였다.

"세 이레"의 끝점이 "1월 24일"인 것을 다니엘서는 명백히 증거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정하신 날짜 "1월 24일"은 지구 땅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연대를 건드려서는 안 되며 연대를 만지는 자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미 성취된 일인 예수님 십자가 사건을 추억해 보라! 예수님이 돌아가실 날짜가 사실 구약에서 이미 증거되어 있었다(출애굽기 12:6, 23:5). 하지만 당시 성경을 들고 다니던 소위 서기관과 바리새 교권주의자들은 어린 양이 바쳐질 그 날짜 곧 '정월 14일'(마태복음 26:2. 마가복음 14:1)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도 스스로 깨닫지를 못하였었다(사도행전 13:27~). 출애굽기 12:6절을 비롯한 그밖의 율법서에 똑똑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성경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마귀 편에서 역사했고, 깨달은 자들은 제자가 되어 유월절 생명의 역사를 전파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무지의 역사는 재림 때에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니엘서에 기록된 "정월 24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들은 축복된 자들이요,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환난에 빠지게 될 자들이다!

3. 예수님이 다니엘을 만지니 입이 열리게 됨 : 10~17

『 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 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 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매 12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13 그런데 바사 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

다니엘의 기도의 응답을 가브리엘 천사로 알려주시려 하는데 바사 나라 임금들이 막았다는 것은 "세 이레 역사" 기간은 동방 바사 나라의 배경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고레스 3년부터가 주전 536년인데, 520년까지 16년간 성전건축이 동족의 방해로 중단되었다(에스라 4:23~24). 다리오 왕 2년까지 중단되었다가 그 해 9월 24일에 다시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다리오 왕 6년 12월 3일에 준공하여 4년 3개월만에 필역하였다. 그 후 에스라의 2차 귀국으로 성곽 건축이 시작되고 느헤미야와 함께 주전 457~408년 사이 52일만에 성곽이 준공되었다. 고로 일을 쉰 시기는 제하고, 역사한 날만을 합해볼 때(성전은 12월 3일 필역, 여기에 성곽건축기일 52일을 합하여) "1월 24일"이라는 '세 이레' 역사의 마감 날짜가 나온다. "세 이레"가 끝나는 날짜가 1월 24일임을 예언서와 역사서를 통하여 꼼짝없이 못박으신 것이다. 이것은 구약을 통해 종말을 보여주시는 주님의 모략이자 선물이다(이사야 46:10). 고로 '순'이라 이름하는 사명자는 계시록 + 구약 모든 예언서 + 구약의 모든 역사서를 한 줄에 꿰고 있는 사명자여야 할 것이다.

에스라 6:13~15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신속히 준행한지라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 왕 6년 아달월(12월) 3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느헤미야 6:15 “성 역사가 52일 만에 엘룰월 이십 오 일에 끝나매...”

구약 때 스룹바벨 성전과 느헤미야의 성곽이 완공되었으나, 예수님은 이 땅에 초림도 아니 하셨으니 이 예언은 재림 대 되어질 정확한 연대 날짜에 대한 예언적인 날짜인 것이다. 캄캄한 영적 밤이 오는 재림 때에는 촛대 교회에서 예언의 등불을 들고 공중에 오실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데 이 때 들고 나가야 하는 예언서가 바로 다니엘서이다.

『 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15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벙벙하였더니 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

"대저 이 일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다니엘 9:24절에 유다의 성을 위해 70 이레로 기한을 정했으니 이 기간 내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역사가 먼저 성취되고, 전  세계에 천국복음이 전파되고 나면 나중에 재림 역사가 있을 것이니 BC 600년 경의 다니엘이 볼 때는 오래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재림 주는 촛대 교회를 통해서만 영접하게 되니 이사야 19:19 “주 재림 때는 애굽 땅 중앙 제단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하신 말씀대로 종말에 역사를 일으킬 한 중앙제단이 촛대 교회로 등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순'이라 이름하는 자가 지어야 한다고 예언되어 있다(스가랴 6:12). 우리 나라는 제사장나라, 선지 국가의 사명을 가진 가장 귀한 나라이다(출애굽기 19:5~6). 2600년 전에 다니엘이 본 이상대로, 바벨론을 때려부순 동방 파사국의 사명이 종말의 바벨론을 때려부술 동방의 대한민국으로 임해 있는 것이다. 한국은 해 돋는 동방에 위치한 나라로, 하나님은 계시록 해석을 이 땅의 이뢰자에게 주셨고, 순 역시 이 나라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니, 동방 대한민국의 정치 역시 고레스ㆍ다리오와 같은 역사로 뒷받침 되어 오늘날까지 진행중에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을 통하여 고레스(1961년 5.16 구데타)정권과 다리오(유신) 정권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였으니, 이제 초막절 '불성곽' 역사를 위한 '아닥사스다'와 같은 정권만 등장하여 주면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살릴 동방역사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4. 바사국(동방 역사 사명)이 지나고 헬라(소련) 국가 등장함 : 18~21

『 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19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20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나아온 것을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 21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 미가엘 뿐이니라 』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동족의 참소문은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캄비세스와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沮戱)하였으며 아하수에르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였다.

이렇게 성전건축이 중단되었으나 "대군 미가엘"이 싸워 주므로 성전과 성곽건축이 어려운 중에 준공된 것이다. 구약 때에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참소(에스라 4:1~6)와 성곽 건축을 방해하는 참소(에스라 4:7~23)가 있었으나 천군 미가엘이 도와줄 때에 승리한 것같이, 인간 종말의 동방역사에서도 그와 같은 참소, 그와 같은 천사의 보호가 함께 할 것이다.

"동방역사 세 이레 큰 전쟁"이 끝나는 날인 "1월 24일"이 지나면 헬라(소련)인 적기독  나라가 세상을 차지할 예언이다(20절). 구약 때와 같이 종말에도 적기독 국가인 러시아가 통치하는 후 3년 반의 짐승정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대환난의 시대요, 짐승이 666 표로써 본격적 활동을 시작하여 우상에게 경배치 않으면 몇이든지 죽이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계시록 13장)

이 예언을 깨닫고 나니, 모든 역사는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천군"을 통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다니엘같이 겸비한 마음으로 순종할 일밖에 없다. 역사는 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예레미야 33:2~3).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7, 스가랴 4:6, 이사야 37:32).

구약 때 예언대로 "바사" 나라가 지나가고 "헬라"가 왔다면, 종말에도 (다시 예언이므로) 동방역사가 끝나면 헬라와 동일한 일곱째 짐승 러시아가 발악하는 '후 3년 반' 대환의 시대가 오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면서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여호와께 감사할 것뿐이다.


※ 참  고

세 이레는 7수가 3번 합쳐진 수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시므로 하나님의 수는 일곱 수이다(하늘의 수는 3수요, 땅의 수는 4수이니 하늘과 땅을 합하면 7수이다). 성부 하나님의 수가 7이요, 성자 예수님의 수가 7이요, 성신 하나님의 수가 7이니 합하면 21이다.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암탉에. 이스라엘은 병아리에 비유하셨는데, 이 땅 지구의 모양은 마치 계란 같은 타원형임이 신비롭다.

아담 때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년이요(양심시대에서 언약시대까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 초림까지 2000년이요(언약시대에서 은혜시대까지), 예수님 초림부터 예수님 재림하시기까지 2000년이다. 6000년의 죄앗 세상이 흘러왔다. 이제 제 7000년기의 소망이 우리 앞에 있는데...

계란이 21일이 지나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듯이... 국빈을 맞이하는 환영식에서도 21발의 축포를 울린다. 21의 수는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축복의수요, 완전한 역사의 수이다. 자연계시를 통하여도 그렇지만, 특별 계시인 성경은 구약에서도 21년의 역사로, 신약에서도 21의 역사로, 성전과 성곽이 건축된다는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세 이레의 비밀을 올바로 알아서 마지막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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